먹감나무
집중호우 때문인지 올해는 과일 맛도 예전 같지 않다. 참외와 수박도 단맛이 덜하다. 장마기간에 땄는지. 보기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복숭아도 싱겁고 생각만큼 달지 않다.
옛날에는 먹을 것이 귀해서였을까. 그때는 모든 과일이 다 맛있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겨울밤 꿀처럼 달달하게 먹던 고욤 생각이 많이 난다. 하도 조그마해서 과일 취급도 못 받던 고욤은 정말 맛있었다. 작지만, 꿀이 흐르던 고욤의 단맛을 생각하면 아직도 입에 침이 고인다.
고욤나무의 열매는 씨가 반이상을 차지해 실제로 과육은 얼마 되지 않아 먹을 게 없다. 그러나 그 맛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달달하다. 친정어머니는 초겨울에 고욤을 따서 단지 가득 채워두셨다. 고욤이 단지 안에서 절이 삭으면 긴 겨울밤을 심심찮게 보낼 수 있는 군입거리가 되었다.
고욤을 입안에 한 수저 넣으면 혀가 시리도록 차고 꿀처럼 달콤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아침이 되면 우리는 습관처럼 그릇 가득 담겨 있는 고욤 씨를 울 밖으로 훌훌 던져 놓았었다. 겨우내 땅속에서 잠자던 고욤 씨는 봄이 오면 쌍떡잎을 달고 기지개를 켰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혼자 씩씩하게 자란 고욤나무 대목에다 할아버지께서는 감나무로 접목을 붙이셨다. 실하게 접목된 고욤나무가 5년쯤 지나면 갓난아기 주먹만 한 감이 열렸다.
친정집에는 늙은 감나무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고욤나무에 접목하신 감나무였다. 한창 때는 파릇파릇한 감잎을 오지게 매달고 해마다 아기 주먹만 한 감을 선물했다. 집에 감나무가 있으니 감의 종류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은 따는 시기와 보관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아삭아삭한 식감이 있는 단감도 맛있지만, 홍시는 얼려서 먹으면 훨씬 단맛이 난다. 딱딱한 감을 깎아 시렁에 널어 곶감을 만들면 겨울철 간식으로 그만한 것도 없었다.
앞마당에 있던 감나무는 나이 들면서 먹감나무가 되었다. 먹감나무에도 감은 열렸다. 다른 감과 달리 속이 검어 먹감이라 불렀고 일반 감보다 달고 맛있어 손님의 상에 올리는 귀한 과일 중 하나였다.
감나무는 정말 쓰임이 많은 것 같다. 젊어서는 맛있는 감을 내려주고 늙어 기운이 쇠하면 안으로 영양분을 흡수해 몸통을 단단하게 만든다. 오래된 먹감나무는 물기가 적고 단단하며 결이 부드러워 아주 훌륭한 목재로 쓰였다. 아버지는 더는 생장활동을 하지 않는 먹감나무 생장점을 톱으로 잘라내고 비바람과 눈을 맞도록 방치해 두셨다. 다른 나무에 비해 속이 무른 감나무는 생장점을 잘라낸 곳으로 비와 눈을 받아들여 검은색 무늬로 속을 채운다.
오랜 시간 비와 눈보라를 견디며 검고 단단한 결이 생긴 먹감나무는 장인의 손을 거쳐 장롱이 되었다. 예전부터 세력깨나 한다는 집에는 먹감나무 장이 안방을 차지했다.
나는 남편을 만나 결 고운 먹감나무가 되었다. 감나무가 먹감나무가 되기까지는 시련도 많았다. 다섯 아이의 엄마로 사는 동안 울고 웃으며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그때가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감, 물감, 침시, 홍시, 곶감처럼 내 몸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개성이 각기 달랐다.
첫딸은 살림밑천이라더니 홍시처럼 대접감을 닮은 첫째는 늘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대학에 다니는 세 명의 동생들을 건사해 줘서 회사를 운영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물감처럼 속이 여리고 달콤한 둘째는 청담동 며느리가 되어 씨 없는 물감처럼 귀하게 살아가고 있다.
침시용 월하처럼 속이 꽉 찬 셋째 부부는 국록을 먹으며 단단하게 앞길을 펼쳐가고 있어 마음이 놓인다. 넷째는 온 국민이 좋아하는 둥시처럼 대기업에 취직해 법조인 남편을 만나 봉사도 하고 주변을 두루 살피면서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됐다 싶다. 홍일점 아들은 홍시와 반건시 곶감의 용도인 대봉을 닮았다. 조형물과 사진작가로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며 언론인과 결혼하여 동서남북으로 바쁘게 활동하니 여기서 더 바란다면 욕심이지 싶다.
환경도 다르고 풍습이 다른 가정에서 자란 남편과 만나 50년을 살아오는 동안 참 많은 일을 겪었다. 다섯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었지만, 일을 하느라 엄마 손이 가장 필요할 때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래도 밝고 건강하게 자기 몫을 하면서 사회에 쓰임있게 잘 자라준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흔 중반에 섰다고 생각하니 허허롭기도 하다. 이제 더는 꽃을 피울 수도 열매를 매 달수도 없는 먹감나무가 되었지만, 오 남매가 따뜻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예쁜 모습을 아주 오래도록 바라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