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157호 우리 성령의 불을 던지러 세계로 나가자 (눅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12:49).
예수님은 이 세상에 불을 던지러 오셨습니다. 무슨 불이냐? 성령의 불입니다. 누가복음 3장 16절에 세례 요한은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말함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성령의 불을 던지러 오심을 예언한 바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먼저 제자 열두 명에게 성령의 불을 붙이셨습니다. 그 불은 70인의 제자에게 확산되었고, 3천 명의 제자에게,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에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번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불을 꺼뜨리지 않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게 하는 일입니다.
38년 동안 지구를 150바퀴 이상 돌며 제가 한 일은 성령의 불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나라에 가든, 누구 앞에서든 저는 당당히 “나는 이 땅에 성령의 불을 던지러 왔다.”고 선언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먼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원자임을 시인하게 하고, 회개케 한 다음 통성으로 기도하여 성령세례를 줍니다. 성령의 불을 붙이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날장작에 불을 붙이는 경우도 있어 힘이 듭니다.
그러나 어떤 곳에서는 너무 갈급한, 건조가 잘 된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주 잘 붙지요. 아무튼 불만 붙으면 제가 할 일은 끝입니다. “불이 붙었으면 무엇을 더 원하리요.” 그다음은 성령께서 다 하십니다. 성령이 불같이 역사하사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뜨며,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귀신이 떠나가며 각색 병자들이 고침 받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불의 특성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 하나는 잘 번진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강원도에 산불 난 거 보셨지요? 어마어마했지 않습니까? 불길이 세면 그렇게 빨리 번집니다. 성령의 불도 이처럼 번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성령이 임해야 나가 전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해야, 불길이 세야 불을 퍼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24:49)고 하셨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1: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나가 과감히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불은 붙기만 하면 번지기 때문입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4:31).
지난주 우리는 2004년 몽골 울란바토르 집회를 영상으로 같이 봤습니다. 메인스타디움에 가득했던 사람들, 저는 그들에게 집에서 섬기는 우상을 다 버리라며 성령세례를 줬습니다. 그런데 그 후 집회가 불발되고 거의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저들은 그때 받은 불을 활활 태우고 있을까, 아니면 다 꺼져 다시 암흑 속에서 살고 있을까.’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제 저는 다시 몽골로 가서 저들에게 불을 붙이려고 합니다. 그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요, 우리 교단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교단은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의 봉홧불을 들었고, 밖으로는 성령의 불을 댕겨 세계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저는 지금도 이사야서 6장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말씀을 읽을 때면 어김없이 꼭 “접니다.” 하고 소리칩니다. 이사야 선지자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럼요, 우리는 다시 일어나 성령의 봉홧불을 들고 세계가 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불이 붙어야 합니다. 남에게 불을 붙이려면 먼저 내가 불이 붙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5:19)라고 하신 것입니다. 불 꺼뜨리지 말라는 겁니다. 나도 불이 안 붙었는데 누굴 붙이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뜨거우면 옆에만 있어도 불이 옮겨붙습니다. 내 안에 성령의 불이 활활 타고 있는가, 아니면 식었는가를 아는 방법은 내가 가는 곳에 복음이 전파되느냐 아니냐를 보면 압니다. 불 가까이 있으면 불이 붙게 되어 있으니까요. 내가 활활 타면 내 가족, 내 직장 동료, 내 이웃에게 불이 옮겨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내 안에 불이 꺼져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불을 꺼뜨리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기도입니다. 기도만이 성령의 불을 계속 타게 할 수 있습니다. 보일러에 기름이 계속 들어가야 불이 꺼지지 않는 것과 같이, 아궁이에 장작을 계속 넣어줘야 하듯이 쉬지 말고 기도해야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집회 때는 7시간 기도합니다. 해외선교 일행인 한은택 목사가 제 호텔 방에 들어와 보니 침대에는 들어간 흔적도 없이 침대 밑에 수건 두 장이 겹쳐있고 무릎 자국만 있었다는 글을 썼지요? 지금까지 기도의 일생을 살았기에 세계 72개국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불 꺼진 항구입니다. 불 꺼진 아궁이요, 배터리 나간 핸드폰이요, 기름 없는 자동차입니다. 그런 자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셨고(막1:35), 낮에 복음을 전파하시고 저녁에 기도하셨으며(막6:46), 철야기도도 하셨고(눅6:12), 산기도도 하셨습니다(마14:23).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게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하루를 기도로 시작해야 하고, 기도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하라’ 하신 것은 오직 기도뿐입니다(살전5:17).
기도하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친이요, 위대한 믿음의 역군들은 다 하나 같이 기도한 자들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가 이어져 왔고,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둘째, 불을 꺼뜨리지 않으려면 뭉쳐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모이기에 힘쓰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 나오지 않자 목사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목사님은 그 집에 가서 다른 말은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벽난로에서 타고 있는 장작 하나를 꺼내어 가만히 놔뒀습니다. 처음에는 장작이 벽난로에 있을 때처럼 잘 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점차 장작불이 사그라지더니 마침내 꺼지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꺼진 장작을 벽난로 안에 넣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목사님은 “혼자서 신앙생활 하는 게 이렇습니다. 교회에 나오십시오.” 하고 돌아갔습니다.
혼자 밥 먹는 것보다 함께 먹는 게 맛있습니다. 신앙생활도 혼자 고고하게 잘할 것 같지만 작은 바람에도 불을 꺼뜨리기 쉽습니다. 함께 하면 불이 잘 탑니다. 날장작도 불이 훨훨 타는 곳에 넣으면 금방 불이 붙습니다. 그래서 모이기에 힘써야 하는 겁니다. 이제 코로나도 끝나갑니다. 아직도 비대면예배를 드리시는 분들, 교회로 나오세요. 불이 사그라들기 전에, 불이 꺼지기 전에 기름을 부어 다시 활활 타게 하세요. 성령의 불이 꺼지면 인생의 모든 것이 끝납니다.
저는 몽골을 시작으로 다시 남미로, 전쟁이 끝나면 우크라이나로 들어가 다시 성령의 불을 던지려고 합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다시 세계 복음화에 불을 댕기려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의 적극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전쟁을 하면 전선에 나가 싸우는 군인도 있지만, 후방에서 물품을 제공하고 후원하는 지원군도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최고의 힘입니다.
우리, 다시 성령의 불을 던지러 세계로 나갑시다. 그래서 주님의 속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예수중심교단의 성도들이 됩시다. 할렐루야!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불 꺼진 항구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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