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박세미
메뚜기 한 마리가 뛰어다니면 그건 메뚜기다
메뚜기들이 공중을 메우고 땅을 차지하고 지붕을 덮어버리면
그건 재앙이다
사람들에게 재앙은 메뚜기일 리가 없다
방문을 열고 엄마가 들어오면
나는 '나들'이 되어 있고
엄마는 나를 못 본다 그건 재앙이다
엄마에게 재앙은 나일 리가 없다
밤이 된다는 것은, 눈을 깜박이는 순간의 어둠이
떼로 몰려들 때.
침대에 누워
엄마를 죽이고 아빠를 죽이고 애인도 죽이면
그건 '나들'이다
꿈꿀 때 나는 재앙이 될 수 있다
떼를 지어 다니는 내가
오늘 하나 더 죽으면
나는 내일 하루 더 살 수 있을 것 같다
밤마다 눈을 감는 것은
수많은 거울을 만드는 일
계속해서 나를 거울로 되돌려 보내는 일
오늘밤은 내 방문 앞에 모여 있다
꾀병/박세미
곧 아플 겁니다.
슬픔이 오기 전에 아플 거예요
물에 빠진 개와 눈이 마주쳤을 때
마침 나는 차가워졌고
조금 늦게 감기에 걸렸습니다
아프고 나면, 정말 아플 겁니다.
스스로를 믿는 힘으로
갑자기 손이 아프면 혼나지 않았습니다
열이 나지 않아도
따뜻한 손이 이마를 짚어주었는데
온몸이 아픈데
온몸이 그렇게
여기 있습니다
그대로
다이빙대에 올라
검은 구멍 속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우아한 몸짓으로 뛰어내렸는데
온몸이 이렇게
여기 있습니다
죽은 개의 얼어붙은 꼬리를
꼭 붙잡고 매달려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속는 힘으로
-박세미
-2014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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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 외 / 박세미
안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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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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