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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9일(주현절 후 네 번째 주일)
야고보서 4:13-17
행복한 인생경영
하늘사랑교회 주일예배 설교문
who?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문제와 씨름하느라 늘 우울했습니다. 그런데 왕궁 이발사는 늘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부러웠던 왕은 이유를 묻자 이발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임금님의 이발을 담당하는 왕궁 이발사니 보람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행복하지요.”
왕이 그 이야기를 신하들에게 했더니 한 신하가 왕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했습니다. “옹이시여, ‘99의 덫’을 한번 놓아 보시지요.” 99의 덫이 과연 무엇인가? 이발사에게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며 은전 99냥을 상으로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그 말대로 하자, 이발사는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에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이발사의 인상이 굳어지고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은전 99냥을 받은 이후에 100냥을 채우고 싶은 욕심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은전 1냥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는 순간 불행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김병태, 「그럼에도 은혜면 충분하다.」, 브니엘, 2021; 「생명의 삶」, 2023년 1월호, 두란노, 111에서 재인용).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가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스리고, 욕심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마음경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원래 ‘경영(經營)’이란 말은 ‘사업이나 기업 등을 계획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한다.’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업경영을 학문적으로 다루고 연구하는 학문인 경영학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습니다.
경영학이 발전하면서 인사, 재무, 회계, 마케팅, 국제무역, 리더십 같은 분야들로 세분되었고, 사람들은 주어진 재화와 용역을 가지고 최대의 수익을 낼 방법들을 연구했습니다. 과연 경영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최소의 재화와 용역을 가지고 최대의 수익을 내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사람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 철저히 계획하고, 진행하고,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자신만의 시간 계획을 세웠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오늘이나 내일이나”라는 표현은 그가 최고의 수익을 낼 수 있을 때가 언제인지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는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사람들의 소비 욕구를 파악할 줄 아는 뛰어난 마케팅 능력을 소유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많은 도시 중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한 도시’를 택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팀으로 일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우리’라고 표현은 그가 결코 혼자 일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는 팀을 조직했고, 그 팀을 이끌기 위해 자신의 사람들을 관리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동기를 부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적절한 포상과 징계를 통해 팀워크를 다지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다변화하는 시장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계발에도 힘썼겠지요? 어쩌면 그는 과거 삼성그룹의 회장이 했던 것처럼, “마누라 빼놓고는 다 바꾸라!”라고 사원들에게 독촉했을지도 모릅니다.
엄밀히 말씀드려 기업의 목표는 이익추구입니다.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계획하고, 조직하고, 재화와 용역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것은 기업인에게 있어서는 가장 기본적인 일입니다.
What's problem?
자, 오늘 본문은 이런 분들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1절)”
우리는 여기서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이 부정적인 판단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에게 존중받고 있지 못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존엄한 명령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치열한 경쟁 구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과연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사람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미국 클린턴 정부 때 경제정책을 주름잡던 ‘로버트 라이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 사람은 권력의 실세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루아침에 그 자리를 내놓고 조용히 초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쓴 책이 「The future of success」였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부유한 노예」라는 제목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권력의 실세 자리에 있을 때 너무나 기뻤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하는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래서 퇴근하는 것이 싫을 정도로 돈과 권력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런데 1년, 2년 지나다 보니 관계하던 사람들과 단절되고, 아내와 관계가 소원해지고, 자식들과 관계도 금이 가기 시작했고, 친구들과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는 성공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권력인가, 무엇을 위한 출세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일 중심, 성공 중심보다는 관계 중심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미련 없이 그 좋은 자리를 내놓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로버트 라이사’처럼,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미리 정해 놓지 않으면 뒤늦게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의 부족한 점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14절).”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네가 번 돈이 얼마나 되느냐?”라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어떠한 경우에라도 생명은 돈의 가치로는 계산될 수 없습니다. 돈도 생명이 있는 동안에만 필요합니다. 생명의 가치 앞에서 이 세상의 모든 가치는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네가 얼마를 벌었느냐?”, “네가 얼마나 좋은 아파트를 가지고 있느냐?”, “네가 얼마나 좋은 자격조건을 가졌느냐?”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묻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의 가치와 자신의 유한성을 깨닫기 원하십니다.
이른 새벽에 자욱이 덮여 있는 안개를 보신 적이 계실 겁니다. 얼마나 안개가 자욱한지 2~3m 앞도 보이지 않을 때는 운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안개가 자욱하더라도 태양이 떠오르면 곧 안개는 걷히고 맙니다. 그래서 안개는 생명의 짧음과 연약함, 무상함 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인생은 짧고 유한합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한 대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화살같이 지나가고 맙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엄밀히 말씀드려 내일은 우리의 시간이 아닙니다. 지금 살아 숨 쉬는 오늘만이 우리의 시간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장사꾼처럼, 우리는 오늘을 이야기하고 내일을 계획합니다. 어느 도시에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남기겠다고 장담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러한 자랑이 모두 다 허탄한 자랑이라고 말합니다. 허탄한 자랑은 악한 자랑입니다. 분에 넘치는 자랑입니다.
톨스토이가 지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천사 하나가 하나님께 벌을 받아 그만 땅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땅에 떨어진 천사는 ‘미하일’이라는 이름으로 구두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한 일 년쯤 지난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털외투를 입은 멋쟁이 신사 하나가 구두 가게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보자기로 싼 물건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이건 가죽인데, 20만 원이나 주고 구한 아주 훌륭한 것이네.”
그러자 구둣가게 주인이 대답합니다.
“오, 정말 이렇게 좋은 가죽을 보기는 처음입니다.”
“그럴 거야. 그런데 이걸로 내 발에 꼭 맞는 구두를 만들 수 있겠나?”
“만들 수 있고말고요.”
그러자 신사는 버럭 고함을 쳤습니다.
“그렇게 함부로 쉽게 대답하는 게 아니야! 만일 내 발에 맞지 않거나, 1년 이내에 구두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그땐 당신은 감옥에 들어가게 될 거야. 그리고 삯은 1년 이상 신어도 끄떡없을 때 그때 가서 주겠네.”
가게 주인은 겁을 집어먹고는 자신의 가게 점원으로 일하고 있던 미하일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미하일은 이 일을 맡으라는 뜻으로 주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미하일은 웬일인지 돌아가는 신사를 보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는 고급 가죽을 넓게 펴더니, 구두 모양으로 자르지 않고 둥글게 잘라내 슬리퍼 한 켤레를 만들었습니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주인이 슬리퍼를 보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자네 큰일을 저질렀군. 이것은 슬리퍼가 아닌가! 이제 나는 완전히 망했구나.”
바로 그때, 누군가가 급히 가게로 들어와서 말했습니다.
“아침에 맡긴 구두 일로 왔습니다. 이젠 구두가 쓸모없게 되었어요. 주인님이 갑자기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마님께서 구두 대신 시체에 신길 슬리퍼를 만들어 오라기에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그러자 미하일은 벌써 만들어 놓았던 슬리퍼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주었습니다. 미하일은 신사가 찾아와 구두를 맡길 때, 그 등 뒤에 죽음의 사자가 따르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미하일은 그런 줄도 모르고 오만하게 소리치는 신사의 모습을 보고서 웃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지금 화려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더라도, 내일도 그 화려함이 계속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안개와 같은 존재들이라면, 우리가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일들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what?
이 질문에 대해, 15절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우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장사꾼은 자기 생명의 유한함을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7-18).”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오로지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주의 뜻대로 행해야만 합니다.
과연 주의 뜻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앞뒤를 살펴봅시다. 11~12절에서는,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실 뿐 우리는 이웃을 판단할 자격이 없다고 말합니다.
5장 1~5절에 보면, 부한 자들의 잘못된 삶을 지적합니다. 부한 자들은 품꾼의 삯을 주지 않음으로 가난한 품꾼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들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며 자신의 마음을 살찌웠다고 고발합니다.
주님의 뜻은 가난한 자들 돌보며 그들에게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본문에 나오는 장사꾼은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가난한 형제를 돌보거나 구제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자기 사랑의 모습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아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일에는 급급하면서도 형제의 헐벗고 굶주림에는 무관심하다면, 우리는 주님의 책망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존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고,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저축하고,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나누어라.”
또한, 웨슬리는 “돈은 먼저 자기 가족과 자기 자신의 정당한 필수품을 구매하기 위해 사용돼야 한다. 그리고 남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려져야 한다.”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물질과 재능을 통해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탐욕으로 우리를 지키고, 허탄한 자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How?
감사하게도 우리 주변에는 잠깐 보이다 없어질 안개와 같은 인생을 불살라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훌륭한 분이 계십니다.
유한양행의 창설자 유일한 씨는 미국에 유학 가서 기초를 닦고 터전을 이루었지만, 조국을 위해 헌신하기 위해서 그 모든 것을 놓고 돌아와 가난한 민족을 살려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유한양행을 설립했습니다.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냈던 송자 총장은 미국에 터전을 닦아 놓았지만, 조국을 위해서 뭔가 이바지해야 한다는 뜻 때문에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와 일했습니다.
부산 복음병원의 원장 장기려 박사는 1943년 ‘간 절제술’을 국내 최초로 성공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자신은 정작 작은 옥탑방에서 평생을 지내며 사랑으로 수많은 사람을 고친 한국의 슈바이처였습니다.
병원 초창기에 장기려 박사는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진료를 마친 뒤 직접 뒷문을 열어주며 도망가라고 할 정도로 사랑이 넘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장기려 박사의 유산은 천만 원 정도가 전부였고, 그나마 절반은 자신의 간병인에게, 나머지 절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행복한 인생경영을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주님의 뜻과 관련된 인생 목표를 설정하셨나요? 올 한해, 주님의 뜻을 실천할 구체적인 계획들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러한 계획을 아직 세우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허탄한 자랑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여러분의 계획 속에 형제를 섬길 계획들을 넣어 보세요.
또한, 여러분의 가족들을 섬길 구체적인 계획들을 넣어 보기 바랍니다. 일주일 중에 여러분의 자녀들과 보낼 시간을 따로 구분해 놓으세요. 그 시간은 절대로 다른 일에 사용하지 않고 자녀들을 돌보고 섬기겠다고 작정하세요. 그리고 실천하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원하십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시간과 장소를 계획하듯이, 우리도 행복한 인생경영을 위해 좋은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