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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리 사회가 반지성주의와 교육만능주의 그리고 서구에 대한 지적의존으로 인해 교육지옥과 힘의추구라는 폐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본다. 한국사회는 지난 백여년간 사회 자체와 그 속의 개인이 엄청난 정체성 변화를 겪었음에도 자신들을 성찰하는 연구가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저자가 이 독특한 한국인의 정체성의 변천에 대해 자신의 연구결과를 담은 것이 이 책이다. 다 읽어보니 총 두권인것 같은데 '한국인의 탄생' 편에서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를 다루고 다음편에서 현대편이 이어지는 것 같다.
한국인의 정체성 변천을 연구하려다보니 저자는 곧 어려움에 봉착한다. 한국인의 사상과 철학을 담아놓은 체계적 저술이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상당기간동안 부재했던 것이다. 이는 거대한 혼란기로 인함인데 자신들이 신봉하던 성리학이 부정당하고, 서구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며, 일제에 강점당한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그럴만하다. 그래서 저자가 주목한 것은 바로 소설이다. 소설에 담겨진 인물상과 저자의 의도 파악을 통해 당대 한국인의 변화를 살펴볼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먼저 근대 이전의 소설에 주목하는데 우선 홍길동전이다.
1. 근대이전(홍길동전)
한국인이 언제나 마음편하게 자신들의 작은 문제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소환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홍길동일 것이다. 홍길동이 비교적 편한 해결책인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로 아이같은 외모와 폭력없이 상대를 해치우는 강력한 도술이다.
작가인 허균은 연산시절의 혼란함에서 소설의 모티브를 따왔음에도 홍길동전의 시대를 하필 세종대로 설정했다. 이는 홍길동이 시대가 불러낸 영웅이 아닌 그런 것과 상관없는 천상의 영웅임을 설정하기 위해서이고 영웅의 시대적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함이었다. 허균은 사실 역성혁명을 하기 위한 대리목적으로 홍길동을 만들어낸 것이지만 당시 역성혁명은 성리학에 반하는 것이고 이에 물든 백성들의 정서에도 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허균은 충분히 역성이 가능한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홍길동이 단지 율도국 하나만을 세우게 함으로써 혁명의 가능성만을 보여준다. 더구나 홍길동은 도술이 무척 뛰어나 적들을 농락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폭력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와 같은 폭력성과 혁명의 거칠음이 없기에 이후에도 한국인들은 부담없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홍길동을 쉽게 소환할 수 있게 된다.
근대이전엔 소설엔 개인이 없다. 있다해도 성리학적 사고방식에 갇혀있고 선인과 악인으로 뚜렷히 구분되며 이렇다할 내면 표현도 적다. 소설의 주인공은 대개 영웅이나 특별한 주인공으로 그래서 제목도 대부분 - - 전이다. 내용도 권선징악이나 교훈을 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2. 근대소설의 등장
서구에서 근대소설이 등장한다. 서구근대소설은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라는 시대가 낳은 것이다. 자본주의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로 근대소설엔 개인에 등장하며 개인을 부각시키는 다양한 도구가 등장한다(내면묘사) 그래서 근대소설은 어떤 개인의 생애를 기술하기 위한 문학형식인 경우가 많으며 그 안에서 인물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며 세상과 공동체에 대항하여 맞서 갈등을 일으킨다. 근대소설은 아름다운 문체를 추구하지 않으며 천박한 문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주의를 추구하는데 이는 진짜 사실이 아닌 없는 인물을 그럴듯하게 묘사하는 사실성의 추구다. 대표적인 예로 돈키호테, 파우스트, 돈후앙, 로빈슨크루스 등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개인주의의 신화적 영웅들이다.
서구 역시 자본주의 등장 이전인 근대엔 서사시나 비극, 영웅담이 소설의 주류였으며 주인공은 개인이라기보단 우리의 경우처럼 공동체나 민족의 염원, 꿈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이였다. 그럼에도 근대 이전의 주인공들은 홍길동처럼 아이다운 경우가 많았으며 근대소설의 개인들은 성숙한 남성성을 표출한다. 그만큼 영웅에 아닌 개인으로서 세상에 부딪히는게 거칠고 힘들기 때문이다.
3. 구한말-대한제국까지(신소설-혈의 누, 치악산, 화세계)
[피동적이고 주체성없는 약한 피해자 한국인]
구한말에서 대한제국까지의 시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힘든시기중 하나였다. 사회의 시스템과 전통적인 공동체 질서는 완전히 붕괴했고, 외세의 침략이 눈앞에 있는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시기였다. 정계에선 매관매직이 판을 쳤고, 조정은 나라보단 자신의 살길을 찾았으니 일반백성들의 삶이야 어떠했을까.
이런 시기 서구 근대소설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 신소설이 등장한다. 이인직의 혈의누가 최초이고 귀와 성, 치악상등이 잇달아 등장한다. 작품엔 공통점이 있는데 주인공이 김옥련, 길순이, 이씨부인으로 모두 여성이며 각자 다른 처지지만 모두 끔찍한 운명에 처했고, 성격상 주체성이나 자의식 개성없이 끌려만 다닌다는 것이다. 이들은 피동적이고 내용이 없는 껍데기의 여성피해자로 우리나라 소설상 최초의 근대인이다. 강한 남성이 개인주의적 영웅으로 등장하는 서구와는 딴판으로 당시 시대상을 잘 반영한다. 소설의 다른 인물들은 이유없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한인 경우가 많으며 이들은 물질적 성공을 위해 전통적인 의를 무시하고 악행을 일삼는다. 하지만 이시기 소설은 아직 한국인의 금기인 비극으로 치닫진 못하고 끔찍한 운명에도 어떻게든 권선징악적인 해피엔드로 작품을 끝내는 경향을 보인다.
1910년경에 이르러서는 주체성과 개성없이 피해만 입던 주인공들은 이 시기에 적응하여 영약하고 합리적인 근대적 인간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어쨌든 당시 사람들은 혼란한 홉스식의 자연상태에 높인 상황에서 강한 국가를 원했고, 그래서 이상스레 대원군의 인기가 오래도록 신화처럼 이어진다. 개화가 이어지며 언론을 통해 대한제국 정부의 무능은 더욱 드러났고, 반작용으로 오히려 일본과의 사회계약을 통해 강한 정부를 세우려는 일진회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일진회는 한일합방후 총독부의 명령으로 허망하게 사라질때까지 무려 100만에 달하는 회원을 가진 활발한 조직이었다.
하지만 을사늑약과 친일파들의 부역행위가 드러나며 일진회는 그 인기를 잃어간다. 반작용으로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과는 구분되는 조선인의 차별성이 부각되었다. 조선인은 구시대적 표현이었으며 일본이 만들어낸 일본국민과도 대비되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채택되었다. 다음은 이 민족주의자의 탄생이다.
4. 1910년대까지(근대소설-무정)
[민족주의자의 탄생]
우리 민족이란 개념은 고통속에 탄생했다. 구한말 조선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일차 부정에 그 반작용으로 새로운 강한 권력을 찾았던 일진회를 포함한 친일행위에 대한 이차 부정이라는 이중의 부정속에서 탄생한 개념이었다. 국가가 없던 시기에 탄생했기에 대부분의 다른 국가에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일치하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했고 이같은 성향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민족주의자들은 1880년대부터 백성의 교육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러일전쟁과 일진회의 행위에 대한 반작용, 민영환의 자결로 인한 고취는 개화민족주의를 형성했다. 이들은 교육을 통한 서구와 같은 사회건설이 목표였다. 반면 여기에 일제에 대한 강한 투쟁을 포함하는 것이 저항민족주의다.
이 같은 분위기를 한국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받는 이광수의 무정에 반영된다. 무정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형식은 한국 최초로 내면을 갖춘 근대적 인물이다. 내면을 가졌으므로 개인은 욕망을 가진 주체이자 그것을 자제하는 주체가 된다. 구한말의 주체없는 인물에서 진일보 한것이다. 당시 민족주의자들은 민족개화를 위한 지식이 필요했으나 이는 조선자체가 아닌 유학이라는 밖에서부터 얻어지는 것이었다. 민족주의자들은 이것에 목말라 했으나 그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조선안에 있던 모든 지식과 문화가 부정되고 외세에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던 당시 상황은 지식과 체계를 모두 서구에 의존하는 지식의존주의를 낳았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강력하게 한국사회에 자리잡고 있다. 당시 민족주의자들은 본인들이 민족주의자이면서도 아직 민족을 강력하게 경험하지 못했고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정엔 이형식이 사랑을 통해 민족주의자로 눈을 뜨고 유학길에 오르지만 그들에게 환호하는 조선사람들은 아직 민족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들에게 민족이 강력하게 등장한 것은 3.1운동이다. 3.1운동으로 민족이 비로서 확실히 등장했고, 일진회나 여러 다른 잘못된 길로 들어선 모든 이가 하나의 민족으로 통합하는 계기가 된다.
5. 1920년대(김동인의 소설들)
[강한 조선인의 추구]
구한말을 거쳐 일제시대초기까지 조선인은 피해자였고, 약자였다. 하지만 민족주의자가 등장하고 민족개념이 등장하며 비로소 강한 조선인 상이 요구되었다. 이 시기는 이런 강한 조선인을 소설상에 어떻게 상정할지를 고민한 시기로 평가된다.
1920년대인 김동인이 있었다. 주로 연애소설을 쓴 것으로 평가되지만 저자가 보기엔 김동인은 약한 한국인과 강한 한국인을 대비시켜 강한 한국인을 꾸준히 발견하고자 노력한 사람이었다. 김동인은 -다로 끝나는 현대 한국어 문어체를 확립했다. 기존엔 -더라, -라. 등의 표현이 많았는데 -다의 표현이 자리잡아 화자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주어가 확실히 주체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김동인은 또한 그 또는 그녀라는 3인칭 표현을 확립하여 화자의 사고 구조를 근대화하였다. 그리고 이광수가 만들어낸 내면을 서간체와 고백체, 일기체등의 도입으로 더욱 소설안에 확립하였다.
김동인은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위를 남의 행위를 의식함으로 인해 하게되는 사람들을 그려낸다. 김동인은 인간을 나누는 기준으로 약함과 강함을 독창적으로 제시하였고 약함의 이유로 당시 등장한 모더니즘 도시사회의 남을 의식하는 허영에서 찾아냈다. 그는 1920년대 말부터 소설에서 꾸준히 강한자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만든 강한 조선인은 약한자에 비해 내면도 없고 말과 생각없이 그저 강하게만 행동하는 괴물같은 존재였다.
6. 1930-40년대
[강한 조선인의 등장]
1930년대에서 40년대를 거치며 서울은 대도시로 성장한다. 인구는 40만에서 100만에 달했고, 대중문화가 발달하고 익명의 대중사회가 되었다. 1910년대에서 민족개화의 의무를 띄었던 지식인들은 이젠 넘쳐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민족개화는 커녕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실업에 시달렸다. 이런 모습은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와 이상의 날개에 잘 등장한다.
이 시기에 등장한 이광수의 유정은 한국에서 최초로 결말이 비극인 소설이다. 주인공인 최석은 지식인이자 부유하고 경성학교의 교장으로 지인의 딸을 키우게 된다. 문제는 주인공과 지인의 딸이 사랑에 빠진다는 점이다. 교장인 최석은 실제론 사랑을 자제했음에도 모함을 받고 모든 것을 잃게된다. 가족에게서도 제자들에게도 비난받는다. 만주와 시베리아 여행을 통해 그는 자살을 선택한다. 이런 사랑안에서의 갈등이 강한 조선인을 탄생시킨 비결이었다. 사랑해서는 안될 사랑을 상정해 갈등과 고뇌를 겪게 하고 이성과 욕망사이에서 두 힘의 갈등이 최대화해 강한 조선인이 탄생하는 식이었다.
보다 제대로된 강한 민족주의자로서 강한 조선인은 임꺽정에서 등장한다. 임꺽정은 홍길동과 마찬가지로 필요에 따라 한국인의 필요에 따라 현재도 소환된다. 차이가 있다면 홍길동은 무해함과 비전복성으로 주로 생활문제의 해결을 맞는다면 임꺽정은 체제를 전복시키는 거친인물로 필요로 하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 임꺽정은 홍길동과는 다르게 거친 외모에 백정출신이고, 홍길동의 말도안되는 도술정도는 아니고 현실적인 힘을 갖는 편이다. 또한 왠지 현실적이지 않은 홍길동과는 다르게 소설에서 강하게 현실에 뿌리박고 있다. 임꺽정 자체는 다소 비현실적인 인물이지만 그의 가족과 그의 동료들이 처한 비참한 조선의 현실은 매우 현실적이기에 꺽정도 자연스레 현실성을 얻는다.
임꺽정에 등장하는 또 다른 두개의 독특함은 반지성주의와 민중이다. 민중은 오래전에 등장한 말로 서구의 개념이 아니고 동북아 삼국의 지식인이 만들어낸 말이다. 그러나 특유의 아나키스트적인 뜻으로 말이 탄생한 중국과 일본에선 이미 오래전에 좌우파의 공격으로 사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한국에선 임꺽정이란 소설에서 살아남아 오랜 세월을 묶다 민주화의 시기에 폭발하여 자리잡게 된다. 반지성주의는 역설적으로 당대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것이었다. 지식을 통해 개화가 되고 무언가 이루어질줄 알았지만 상황은 무기력하게만 흘러갔다. 민중은 개화되지 않고 식민지 조선은 해방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일본은 더욱 강대해져만 갔다. 일부 지식인들은 친일로 돌아서기까지 한다. 그런 무력감에 반지성주의가 작품에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소설 임꺽정에서 꺽정은 글을 모른다. 심지어 언문조차 모르며 글을 배우려는 시도자체를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알것을 다 알고 일을 처리해내가며 두목이다. 힘이 가장 센자가 두목이 되는 것은 좀 이례적인 것으로 로빈훗이나 양산박에서도 두목은 무력순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정치력과 두뇌가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임꺽정에선 무력순이다. 반지성주의가 더욱 드러나는 점은 무리중 글을 유일하게 아는 서림이 잔학하고, 세속적이며 악한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하여튼 강한 조선인은 해방을 앞두고 마침내 등장한다. 전통문화에서 개인이 부재하고 영웅만있던 시점에서 구한말의 시대적 혼란으로 주체성 없는 피해자 개인이 등장한다. 그들은 각자도생에 성공해 영악한 인물이 된다. 그리고 조선의 부정과 일본이라는 강한 권력의 부정이라는 이중 부정을 통해 민족주의가 탄생한다. 민족주의자는 지식인이었으며 3.1운동을 통해 민족도 탄생한다. 그리고 민족을 이끌 강한 조선인 상이 요구되며 약함과 강함의 대비과정에서 강한 조선인이 탄생하고 이는 임꺽정에서 완성된다. 하지만 강한 조선인의 등장과 그 강함이 해방으로 연결되지 못한 상황과 반지성주의는 해방후 시대적 혼란속에서 반지성주의적 상황에서 힘을 추구하는 문제상황으로 연결된다. 저자는 반지성주의가 지식과 지식인에 불신과 의혹, 증오와 질투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큰 장애를 미쳤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개화주의자들의 교육만능주의는 이와 결합해 현재의 최악의 교육지옥을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럴듯한 분석이다.
책을 읽으며 근대의 역사적 상황과 소설을 통한 민족적 과제 해결을 위한 한국인 상의 변천을 느낄수 있었다. 재밌고 흥미로웠다. 다음권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다소 작위적인 면도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훌륭한 책이다.
한국인의 탄생
저자
최정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