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생활을 할 때 이야기이다. 교실에서 학생의 가방을 뒤져서 돈을 훔쳐 가는 일이 한 달 이상이나 계속하였다. 너무 감쪽같아서 도둑을 잡아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시도한 것은 양심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양심이란 노출되면 너무 심한 상처를 주는 감시자이다. 한 아이가 화장실에 간다면 슬그머니 나갔다 왔다. ‘이 아이구나’ 직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유년 이야기를 떠올렸다. 고향과 유년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하는, 그 유년을 불러왔다. 고영옥의 유년은 일반의 수필작가들이 수필에서 표현하는 유년과는 다르다.
바닷가 마을에 살았던 작가는, 여름이면 해안가에 많은 피서객이 왔다. 아릿다운 아가씨의 벨트가 탐이 나서 슬그머니 가져왔다. 양심을 넘어서지 못해서 도로 가져다 두었던 이야기이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은 지금까지도 그를 움찔하게 하였다. 참고의 말을 보태자면 양심은 자기를 자기가 감시하는 장치이지만, 타인의 감시보다 훨씬 무서운 존재이다. 평생을 따라다니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양심이다. 작가는 그 양심의 덫에 걸려서 지금도 벌을 받고 있다. 수필에서 그 벌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표현하는 것이 진실이다. 수필에서는 진실을 강조하다. 그런 면에서 고영옥의 수필은 진실성을 담고 있다.
또 하나는 꿈에 찾이온 유년의 기억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남의 옥수수 밭에 옥수수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일이었다. 나도 어릴 적에 남의 감자밭에 감자를 캐러 갔다가 붙잡혀서 혼난 일이 있었다. 밭주인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꾸중해서, 부끄러워 혼이 났다. 고영옥 작가는 나보다. 훨씬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남겼던 이야기를 했다. 옥수수 밭 주인이 아닌 어머니의 꾸중이다. 홑어머니 밑에서 자란 작가의 마음은 어머니의 꾸중이 지금까지도 아프게 남아 있다.
눈물 범벅인 어머니가 마당을 쓰는 모습을 기억한다. 어른이 되어서, 결혼을 하고 나서도 어둠이 깔린 창 밖을 바라보면 어머니는 마당을 쓸고 있었다.
제주도 바닷가 마을에서 유년을 보냈던 작가에게 여름 철의 바닷가 모래사장이 놀이터였다. 그곳에서 선그라스를 끼고, 멋진 벨트를 멘 아가씨를 보았다. 보석이 박힌 듯 반짝거리는 벨트가 너무 갖고 싶어서 슬쩍하여 집으로 가져왔다. 어머니에게 들킬세라 장롱 안에 감추어두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얼른 옆구리에 벨트를 끼고 도망쳤다. 무거워진 다리와 텅텅 내려앉는 가슴을 붙들고 겨우 집까지 왔다. 그 사람이 쫓아 올가 봐 허리에 한 번 둘러보지도 못하고 벨터를 농짝 깊숙이 꼭꼭 숨겼다.
엄마가 없는 날, 멋진 여자가 되고 싶어서 벨트를 꺼냈다 벨트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친구들에게 알려진다면 나는 영락없이 외톨이가 될 것이다..”
“아침 일찍 밭에 가는 엄마의 눈을 피해 숨겨놓았던 벨트를 가방에 넣었다.
벨트를 훔쳤던 바닷가 그곳에 섰다. 많은 사람이 찾았던 해수욕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나 혼자였다. 그 여자가 놓았던 자리에 벨트를 놓았다.”
(가위 잠)에서
그는 밤에 잠을 자면서 가위에 눌러 깜작깜작 놀라곤 했던 것이다.
교사가 된 작가는 도둑이 된 아이를 나무랄 수가 없었다. 아이는 ‘엄마에게는 비밀로 해 달라는 눈빛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어린 시절에 가위 잠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이 아이를 회초리로 닦달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