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입동이 진난지 십여 일이다. 며칠 있으면 소설(小雪) 절기로 접어든다.
추위가 바로 닥칠 것 같더니 요즘 날씨는 해동하는 날씨처럼 포근하기만 하다.
새로운 역병 코로나 때문에 세상이 시들하고 세상 살아가는 모습들이 많이 바뀌고 있다. 길거리에서, 버스나 전철 안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금년 초 코로나 습격을 받고 마스크 쓴 군상(群像)을 처음 봤을 때는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마치 외계인과 마주치는 것 같아 기이하고 신기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머지않아 ‘코로나 19’ 에 시달리며 살아온 세월이 어언 일 년 가까워온다.
지금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이상해 보인다.
음식점이나 상점, 목욕탕이나 이발소를 가도 본인 전화번호와 발열 기록을 남겨야 한다. 금년 2월에 출발하기로 했던 해외여행도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언제 떠날는지 기약도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일상생활이 이렇게 불편하게 바뀐 지가 1년여 가까이 되고 보니 앞날이 답답하다. 옛날보다 바뀌는 것이 많고 생활은 불편해졌어도 우리들 삶은 이어져 가고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산다는 게 무엇일까?
산다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너무 막연해 쉽게 답변이 나오지를 않는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삶을 되돌아보면 구체적인 내용들이 나온다.
개인의 하루 삶은 보고, 듣고, 먹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말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나의 하루 삶이 된다. 이러한 개인의 삶이 그의 존재이며 실존(實存) 인 것이다.
나 자신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았을까? 조용히 명상에 잠겨본다.
어제 저녁 식사 후 책을 좀 읽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잠을 깨고 보니 6시 조금 전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와 창밖을 내다본다. 칠흑 같은 어둠뿐 여기 저기 가로등 불빛만 졸고 있다. 식탁에 홀로 앉아 커피를 한 잔 마시며 하루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가 안방에서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온다.
‘잘 잤지?’ 라는 한마디가 하루를 시작하는 인사말이다. 아내는 내가 하루의 삶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이다.
사람인(人) 이라는 한자 모양은 두 개의 막대가 서로 버팀목이 되어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막대 둘 중 하나만 빠져도 쓰러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태생적으로 홀로 살 수 없고, 다른 사람과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그러기에 인간은 홀로 살 수없는 존재가 분명하다.
날이 훤하게 밝아 오고 거실 창문에 맑은 햇살이 와 닿는다.
식사 때마다 식탁 준비하는 아내를 보며 미안하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젊어서 현직 시절 객지생활이나, 은퇴 후 고향에서 노모를 모시고 살던 시절에는 미처 몰랐다. 두 식구 단둘이서 살다 보니 아내는 끼니마다 식탁 메뉴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식탁을 준비하고, 먹고 대화하며 생각하는 것도 삶의 한 과정임에 틀림없다.
아침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나는 집을 나선다. 아파트 단지 내 도보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위에도 은행잎들이 노랗게 싸여 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는 감촉이 둔탁한 느낌이다.
초안산 근린공원에서 두 시간여 동호인들과 운동을 하고 헤어졌다.
발길을 우이동 솔밭공원으로 돌렸다. 포근한 날씨 탓인지 공원 쉼터 여기 저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오늘 모임은 60 여년 전 함께 대학 문을 들어섰던 학번(學番) 동기생들이다.
이제는 모두 고령의 노인들이 되었다. 숱은 빠지고 희끗 희끗해진 머리, 깊게 파인 얼굴 주름살, 꾸부정해 볼품없는 몸매, 불편해 보이는 걸음걸이 ...
무엇 하나 생동감 없는 초라한 모습들이다. 준비된 음식과 술을 마시며 대화는 무성하고 활기찼다.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야 할 날들이 얼마 남지 않은 군상(群像)들 이다.
우리 곁을 스쳐갈 다른 사람들은 이 ‘회색빛 좌석’을 불쌍히 여기지는 않을까.
자괴감이 들고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았다.
초겨울 짧은 해가 서산에 머무는 걸 보며 일행들과 헤어졌다. 귀갓길 한산한 전철 안에서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오늘 하루 보고, 듣고, 먹은 것,
사람들과 만나 대화 하며, 생각하고 내가 한 행동들 ...
하루의 삶이 선명하게 눈에 보이는 것 같다. 하루하루 쌓이는 삶이 평생 가면 나의 인생이 되겠지.
첫댓글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야 할 날들이 얼마 남지 않은 군상(群像)들 이다.
우리 곁을 스쳐갈 다른 사람들은 이 ‘회색빛 좌석’을 불쌍히 여기지는 않을까.
자괴감이 들고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았다.
초겨울 짧은 해가 서산에 머무는 걸 보며 일행들과 헤어졌다. 귀갓길 한산한 전철 안에서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오늘 하루 보고, 듣고, 먹은 것,
사람들과 만나 대화 하며, 생각하고 내가 한 행동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