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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전통을 넘어서라 (눅3-9)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찬양 : 참 반가운 성도여
본문 : 눅1:57-66절
☞ https://youtu.be/c0FPoVFjjKU?si=rAMC2cHE4DXXYbeZ
어제 스페이스알 사역의 감사가 있었다. 수입은 없고 지출만 있는 사역을 점검하는 감사님의 심정이 어떠하셨을까? 그럼에도 늘 지지해 주시며 함께 하시며 겸손히 감당해 주시는 감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대림절인데 탄핵이란 단어로 온 세상이 도배되고 있다. 진리란 기준에서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일까? 민주주의의 기능인 삼권분립이 깨지고, 국회가 마치 삼권을 다 가지고 있는 듯 보여지는 현실이 과연 옳은 일일까? 서로가 잘못을 감추기 위해 상대를 공격하는 현실이 금번 대림절을 맞은 이 땅의 현실이다.
주님, 어찌해야 합니까? 이 나라와 민족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이 난국이 누군가를 죽이고 일어나는 싸움이 아니라 진리가 바탕이 되어 용서와 화해와 일치가 되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남북으로 동서로 나누어져 싸우며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소서.
오늘은 함께 만들어 가는 2025년 목회계획 세미나가 있는 날이다. 이런 시대적 환경에서 과연 교회는 어디에 서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참으로 주제가 광대하지만, 시간적 제한으로 작은교회의 현실에서 교회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주제를 나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은 세례요한의 탄생과 그 이름을 짓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59-60절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영원한 언약이다. 신생아가 안정된 상태가 되었을 때 완전한 순종의 표시로 할례를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체 일부를 제거함으로 죄악과 세속적인 것을 벗는 거룩한 헌신을 의미하며, 신약 로마서에서 마음의 할례로 영적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이렇게 할례를 받은 아이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 유대 문화에서는 자녀에게 가족 중 특히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친족들이 사가랴란 이름을 쓰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엘리사벳은 요한이라 주장했다. 사람들은 집안에 그런 이름은 없다고 반대하며 아버지인 사가랴에게 물을 때 사가랴는 서판에 이름을 쓴다. 63절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
사가랴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이다. 이름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또 간절한 기도를 기억하셨다.
그러나 요한이란 뜻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의미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과 사명을 담은 이름이다. 사가랴는 천사가 한 말을 기억하고 아내에게 말을 하지 못했지만 분명하게 전달했고, 엘리사벳은 이것을 당당하게 주장한 것이다.
말 못 하는 사가랴에게 모든 시선이 몰려올 때, 사가랴는 분명하게 순종하여 이스라엘의 전통을 넘어 하나님의 약속이 은혜로 성취됨을 선언한 것이다.
이 전통을 넘어 하나님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내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집안의 전통을 깨는 그런 이름은 안돼! 하며 얼마나 반대가 심했을까? 사가랴는 말도 못 하는데 당대 발언권이 별로 없던 여인이 요한이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직 천사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이제 은혜의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한 엘리사벳과 사가랴의 헌신을 깊이 묵상하게 된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64절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하나님은 사가랴의 입을 열어주심을 통해 이 이름이 맞는 이름임을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분명하게 알려주신 것이다.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이 아이에 대해 외친다. 66절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이르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
아이를 낳을 수 없이 늙어버린 가정, 그러나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당신의 주권적 선택을 따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 가정에 아이를 주셨다.
그리고 구원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찍는 사람으로 요한이란 이름 즉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란 이름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분명하게 선포하셨다. 은혜의 시대를 여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엘리사벳과 사가랴의 믿음으로 전통과의 충돌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을 동반한 것이다. 엘리사벳은 천사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가랴를 통해 그것도 말도 안 통하는 사가랴의 글과 몸짓을 통해 알아야 했지만, 성령의 조명속에 이를 확신하고 주변 친족들의 무서운 눈초리와 입김을 견디며 하나님의 뜻을 믿음으로 붙잡은 것이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의 길을 이렇게 하나하나 세심하게 인도하셨음을 묵상한다. 순결한 부부, 그러나 인간의 한계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가정, 집안의 전통으로 은혜의 시대를 열 수 없는 환경 ~
그러나 주권적인 하나님의 선택은 믿음을 가진 부부를 통해 그 모든 과정을 뛰어넘어 세례요한을 태어나게 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분명하게 사람들의 주목속에 태어나 자라게 하신 것이다.
오늘이란 시대를 믿음으로 산다는 것 쉽지 않다. 수많은 한계를 만난다. 어제 감사를 받으며 감사님께 이렇게 수입은 없고 지출만 있는 이런 상황에 이 일을 가능합니까? 물었다. 감사님은 가능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런 속에서 요한이라 외치는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오늘 작은교회 목회계획 세미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은혜로우시다. 사가랴에서 요한으로 넘어오는 자리가 필요하다.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작은교회 사역자들이 하나님이 은혜로우심을 믿고 일어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된다. 이분들에게 진실로 성령의 통로가 되어 힘이 되고 길이 되는 자로 쓰임받기를 소망한다.
오늘 엘리사벳처럼 믿음으로 요한이라 주장할 수 있는 믿음에 서라고 주님은 내게 말씀하신다. 작은 현실에 갇혀 은혜를 보지 못하며 안 된다고 외치는 그들에게 믿음으로 사랑안에서 요한이라 외치라고~
그로 인해 주님이 말 문을 열어주시는 표적을 통해 모두가 함께 주님을 경험하며 2025년을 은혜의 꿈을 꾸며 일어나는 소중한 목회계획 세미나가 되기를 소망한다.
주님, 오늘도 귀한 말씀으로 이 종에게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고 외치는 날 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이 희망을 가리는 시대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와 우리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고 이제 은혜의 역사를 이루실 줄 믿습니다. 감사가 끝나고, 목회계획 세미나를 열면서 요한이라 외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성령 하나님 조명해 주시고 모두가 확신가운데 일어서는 주의 손이 함께하는 표적이 있게 하소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중보기도 제목>
웨이브리즈: 콘텐츠 제작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목회사관학교: 목회사관학교 12기생 20명이 모집되게 하소서.
재정적 필요: 100명의 새로운 후원자와 30억의 출자금이 공급되게 하소서.
박정제 목사와 팀원들: 성령을 충만하게 하소서.
스페이스 알 사역: 젊은 세대 사역자를 세워 다음 세대 부흥이 이루어지도록
틴케이스 공간: 박예은 간사의 빠른 쾌유와 틴케이스 공간의 새로운 도약을 ~
작은교회 부흥: 2024년 작은교회 부흥을 이루는 해가 되게 하소서.
충주 라마나욧: 세워지는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도록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적용 질문
1. 엘리사벳이 만난 전통을 따르라는 주장처럼 오늘 우리가 만난 세상이 주장하는 전통은 어떤 것이 있고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요?
2. 요한,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는 새로운 선언이 오늘 내 삶에 일어남을 엘리사벳처럼 믿고 주장하기 위해서 대림절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3. 내 삶에 지켜야 할 전통과 새롭게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