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천사와 작은 영웅
지난 시절 내가 자주 다니던 서울시청 맞은편 시청역 7번 출구로 나가면 하늘높이 솟은 한화빌딩이 있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른바 북창동의 먹자골목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뱃속에 기름깨나 들어있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유명한 미조리 일식집이 있고 호주머니에 돈푼이나 있는이들이 즐겨찾는 고급음식점이 있는가하면 샐러리맨들이 오는데 부담감이 없는 값싼 음식점들도 많이 들어서 있다
나이먹고 할일없어 몇푼되지 않지만 소일거리도 되고 적은 돈이라도 벌을수 있음을 스스로 감사히 여기며 거의
매일같이 택배를 다니던 골목이다
따끈한 순두부로 점심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바쁘다는 핑게삼아 김밥 한줄로 점심을 때우기도 많이했다
어쩌다 강남에 가면 어느식당에서는 70세이상 노인들에게 30%씩 할인해주는 식당이있어 값싸고 맞있는 음식을
대접받아 은근히 기분이 좋아 그곳를 지나칠때마다 자주들리다 보니 주인의 지나친 친절에 [심청사달] 이라쓴 붓글씨 한점을 선물 했드니 너무도 마음에 든다며 좋아한다
심청사달 心淸事達 !
마음이 맑으면 매사가 잘 이루어진다
마음이 맑으려면 탐욕이라는 때와 화냄이라는 얼룩 그리고 이리석음이라는 먼지를 맑끔히 씻어야한다
주인의 지나친 친절에 답했을 뿐이다 주고 받는다는것은 하나의 오고가는 예절이 아닐가 싶다
시간이 여유가 있어 종각역 부근의 음식점에 가면 현금을 지불하면 500원 동전을 내어주는 값싼곳을 찾기도한다
자주 이용하다 보니 써빙 아줌마는 으례히 묻지도 않고 커다란 질그릇 대접에 비빔밥을 들고 나온다
참기름도 듬뿍 계란도 퐁당 상추도 쏭쏭 썰어 넣었다 어쩌면 밥도 한숫가락 더 넣지 않았을가 생각이든다
그런대로 배가부르니 더이상 천국이 따로없다
살얼음 추운 날씨 이건만 콩크리트 건물구석 외벽에 노인네 하나가 햇빛을 바라보며 쭈그리고 앉아있다
얼핏보아 나이를 가름하기 어렵지만 칠십이 넘어보이는 꾀제제한 노인은 대머리에 길게 수염을 늘어 뜨리고 있다
세수는 언제 했을가 싶고 면도는 아예 모르고 살았으니 그럴법도 하다
낡은 옷은 작년 이맘때쯤해서 주워입었는지 군데군데 낡아 찢어지고 흙과 때와 기름으로 찌들어 붙어있다
지나다가 이따금 보았는데 더우나 추우나 사시사철 그옷 하나이다
누구하나도 거들떠 보지않는 구석진 곳에서 바람을 피하여 라면박스를 깔고 신문지를 주워 덮고있다
어느날 노인네의 패션이 바뀌였다
누군가가 집에서 오래입다 버리려고 한것을 큰마음 먹고 이 노인에게 가저다 준것이 아닐가
아니면 고물점을 지나다가 주워입은 옷이 아닐가 그래도 전에 입었던 너덜너덜한 옷에비해 외관상은 멀쑥해 보인다
맨발에 낡은 털고무신을 신었다 요지음에는 보기드문 신발이다 이것역시 고물점에서 주워신은것 같다
나이 갓 스므나믄살쯤이나 되였을가
머리는 옛날 여고생처럼 짧게 커팅하고 날씨탓에 바싹움추린 아가씨가 편의점으로 들어가드니 빵과 우유를 사서 들고 나오더니 노인앞으로 다가가서 들릴듯 말듯한 소리로 무어라 하드니 빵과 우유를 벗겨 노인의 손에 쥐어준다
노인은 고맙다는 말대신 촛점잃은 눈으로 아가씨를 바라보며 말없이 연신 보일듯 말듯 고개를 끄덕인다
참으로 보기어려운 너무도 감동스러운 장면이다
-아가씨 고마워요 그리고 너무 감동적이네요 - 무엇이 그리 감동적일가 그리고 왜 내가 그렇게 고마워 해야할가
부끄러운지 아니면 지신의 작은 선행을 계면쩍어 하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말없이 골목으로 사라진다
뒤돌아 사뿐히 걸어가는 걸음걸이가 무척 가벼워보인다
이 골목길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고 있다
돈이 너무 많아 고민하는이도 있고 월급을 두둑히 챙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알뜰하게 재테크하는 장삿군들도 많다
나와 같이 비록 얼마 않되지만 굳이 조금쯤은 덜어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은 이들도 많이 지나가는 곳이다
나도 저 아가씨처럼 우유나 빵을 사서 줄수있을가 갑자기 나도 선善해지고 싶다
받아 먹는이 보다 작은것이라도 내어주는이가 더 행복하다는 말은 수없이 들어왔다
먹고 남아서 남을 주는 것보다는 적드라도 그중에서 같이 나누는것이 진정한 미덕이 아닐가싶다
서울역에서 남대문으로 가는 지하도로에는 많은 노숙자들이 사시사철 웅크리고 앉아 있다
어디 여기뿐일가 내가 스친 시청역 구석이나 영등포역 모퉁이에도 예외는 아니다
자주 보아 온탓일가 사람들이 너무나 익숙하다보니 동정심이 무디어 진것은 아닐가
오랫동안 이거리를 지나다녔어도 이토록 남을 배려할수있는 착한 아까씨는 처음이다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나랏님도 못하는것을 이 조그만 아가씨가 해낸것이다
물론 많고 큰것이 중요한것만은 아니다
때로롱 지인으로부터 메세지가 왔다
[작은 영웅]이라는 표현으로 어린꼬마의 착한마음씨를 보고 어느 편의점 주인이 올려놓은 글이다
아내와 맞벌이 하다가 퇴직하고 편의점을 운영하는 A씨가게 앞으로 매일매일 지나는 허리가 땅에 닿도록 구부러진
할머니가 박스를 주워 작은 손구루마에 실고 가다가 점심때에는 언제나 편의점에 들어와 삼각김밥하나를 사먹는다
수전증이 있는지 떨리는 손으로 김밥을 먹다보면 부스러기가 떨어지어 치우다보니 김밥하나 팔으면 얼마나 남을가 생각하며 때로는 짜증도 났다
잠시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작은 꼬마가 들어오드니 컵라면 한개를 사서 할머니 에게 드린다
- 할머니 김밥만 드시지 마시고 여기 컵라면과 함께 드세요 -
자기가 먹을려고 산줄알았는데 나는 그냥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김밥 부스러기를 치우며 몇푼이나 남는다며 찌증내던 자신이 생각나며 얼굴이 화끈 거렸다
-아저씨 저할머니 이 가게에 자주 오셔요?-
- 그래 매일같이 오셔서 삼각김밥 하나를 드시는데 그걸 왜 묻지?-
-그럼 잘되였네요 - 작은 꼬마는 컵라면 한개를 들고 앞으로 다가온다
-이걸 열개만 주세요 -
- 열개씩이나?-
- 세배받은 돈을 어디다 쓸가 고민했었는데 오늘 마침 쓸곳을 찾았어요-
계산을 마친 꼬마는 컵라면을 다시 제자리에 가저다 놓는다
-아저씨 이시간에 매일 계셔요? -
- 그래 이시간에 언제든지 내가 있단다 -
-아저씨 그럼 부탁하나 해도 되죠?-
-뭔데 들어줄수만 있다면 들어줄게-
- 제가 계산한 컵라면을 할머니 오실때마다 하나씩 드리시면 않돼요? -
-응 그래 -
어리둥절하는 나를 바라 보드니 문을 열고 슬며시 나간다
북창동에서 본 애띤 아가씨나 작은 영웅의 주인공은 세상에서 조금도 때가 묻지않은 천사들이다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을 빌리자면 본디 인간은 선善하다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착하게 이세상에 태어나서 풍진세상을 살아오면서 때가 묻고 오염이 되고 세파에 시달리면서 독하게 변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오염되지않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것은 참으로 살만한 세상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측은하게 여길줄 아는 측은지심과 부끄러워 할줄아는 마음과 공경하는 마음 그리고 시비를 가리는 지혜 ! 이걸 가리켜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한다
이것들이 마음에 가득하게 되고 실천하게 되면 이게 바로 선행과 직결된다
불상한이를 보면 측은하게 여길줄 알고 혼자서만 배부르고 따습게 살면 부끄러울 줄도 알며 어른을 공경하고 옳고
그름을 알고 행동에 옮기니 이어찌 영웅이 아닐가
자기만 옳고 자기만이 선한척 가면을 쓰고 자기만이 똑똑한척 하는 것을 보느라면 사람은 본디 악하다고 표현한 순자舜子의 선악설善惡說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은 본시 악하게 태어나서 이세상을 살아가면서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목격하고 새로운 학문을 터득한다
그리고 보다 참신하고 보다 완숙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세상의 오염과 때를 모르고 있는 북창동의 아가씨나 작은 영웅은 성선설의 주인공이 아닐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