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왕이 미리 안 세 가지 일
제이십칠대 덕만[德曼: 만(曼)은 만(万)으로 쓰기도 한다.]의 시호는 선덕여대왕이고, 성은 김 씨이며,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진평왕 오십사년 임진년(632)에 즉위하여 십육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는데, 세 가지 일을 미리 알았다.
첫째는 당나라 태종이 붉은색·자주색·흰색의 세 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꽃 그림과 그 씨앗 석 되를 보내왔다. 왕이 그림의 꽃을 보고 말했다. “이 꽃은 정녕코 향기가 없을 것이다.”
명령을 내려 씨앗을 정원에 심게 했더니, 꽃이 피었다가 질 때까지 과연 그 말과 같았다.
둘째는 영묘사 옥문지(玉門池)에서 겨울에 많은 개구리가 모여 사나흘 동안 울어대니, 국인들이 괴이하게 여겨 왕에게 물었다. 왕이 급히 각간 알천과 필탄(弼呑) 등에게 명령하여 정예병사 이천을 뽑아 서둘러 서쪽 교외로 가서 여근곡을 물어보면 틀림없이 적병이 있을 테니 습격하여 죽이라고 했다.
두 각간이 명령을 받고 각각 병사 천 명씩을 거느리고 서쪽 교외로 가서 물었더니, 부산 아래에 과연 여근곡이 있었고, 백제 병사 오백 명이 그곳에 와 숨어 있었으므로, 그들을 모두 잡아 죽었다. 백제 장군 우소(亐召)는 남산(南山) 고개 바위 위에 숨어 있었는데, 또 포위하여 활을 쏘아 죽였다. 또 백제에서 후원병 천이백 명이 왔지만, 역시 공격해 죽이니, 한 명도 살아남은 자가 없었다.
셋째는 왕이 병도 없을 때인데 신하들에게 말했다. “짐이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이 되면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 가운데에 장사 지내어라.”
신하들이 그곳 어디인지 몰라 물었다. “어디입니까?”
왕이 말했다. “낭산의 남쪽이다.”
과연 그달 그날이 이르자, 왕이 붕어했다. 신하들이 낭산의 남쪽에 왕을 장사지냈다.
십여 년이 지난 뒤에 문무대왕이 왕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를 지었다. 불경에 이르기를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했으므로, 그제야 사람들이 대왕의 신령함과 성스러움을 알게 되었다.
왕이 살아 있을 당시 신하들이 왕에게 여쭈었다. “모란꽃과 개구리의 두 가지 일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꽃 그림에 나비가 없어 향기가 없는 것을 알았다. 이는 당나라 황제가 과인에게 배필이 없음을 놀린 것이다.
개구리의 성난 모습은 병사의 모습이고, 옥문은 여자의 음부이다. 여자는 음이 되고 그 색깔이 희니, 흰색은 서쪽을 나타내므로 병사가 서쪽에 있음을 알았다. 남근이 여자의 음부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다. 따라서 그들을 쉽게 잡을 수 있음을 알았다.”
이에 신하들이 모두 왕의 성스러운 지혜에 충심으로 복종했다.
당나라 황제가 세 가지 색의 꽃을 보낸 것은 아마도 신라에 세 여왕이 있을 것을 알았던 것인가? 선덕왕·진덕왕·진성왕이 바로 이들이니, 당나라 황제의 놀라운 선견지명이 있었다.
선덕여왕이 영묘사를 세운 경위는 <양지 스님 전기>에 자세히 실려 있다. 그 <별기>에는 “이 선덕여왕 시대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고 했다.(펌글)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