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최하림 시인을 만났다 (외 2편)
김종해 목포 출신의 섬사람 최하림 시인을 신안군 팔금도에서 보았다 목포 앞바다 다도해의 작은 섬들 압해도 천사대교 너머 암태도 암태도 건너 팔금도에서 초등학교를 오가던 소년 최호남*의 조그만 오두막집 생가를 보았다 원산리 섬마을 벌거숭이 동무들과 주린 배를 채우던 바닷가 갯벌과 채일봉을 오르내리던 그의 유년이 팔금도 섬 안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목소리마저 들리는 건너편의 이웃 섬 안좌도의 김환기 화백이 살던 고택에선 고구마 삶는 냄새가 아이들의 주린 배를 깨웠다 목포에서 장을 보고 통통배 타고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다 늦은 저녁 최하림 시인의 유년이 목포항 오가는 옛 뱃길처럼 가물가물 내다보였다
*최하림 시인의 아명
외출
함경도 원산 출신의 원로시인 김광림 시인이 서울 홍은동 딸집에서 외출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종무소식이다 산수傘壽 때까지 못 밟으신 고향 땅 원산 바닷가를 미수米壽 때는 꼭 밟으소서 팔순 때의 시인들의 간절한 기원도 한국 대만 일본 3국 시인들의 축수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을 비워둔 외출 기간이 너무 오래다 이중섭, 박남수, 구상 세 대가를 남다른 사랑으로 좇아가던 그 북쪽 고향을 밤마다 눈에 담아 경배하심인가 6.25 전쟁 때 피비린 백마고지 백병전 김충남金忠男* 소위, 그때 그곳을 찾아서 사라진 전우들을 위로하심인가 이승 안에서 살며 이승 바깥으로 오래 외출하신 김광림 시인을 오늘따라 유달리 흐린 가을 하늘 낙엽 흩날리는 날 그를 그리워하다 * 김광림 시인의 본명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 살아가는 1백 년의 시간은 너무 짧고 허무하다 수천억 년 산과 바다와 하늘 바람과 구름과 햇빛은 지금 그 모습 변함이 없는데 사람 살아가는 1백 년의 시간은 이 땅에 잠시 맺혔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아침 이슬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에 스러지는 하루살이 떼 영생불멸을 기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새로운 생명이 진화하여 이곳을 새 낙원으로 만든다 해도 사람 살아갈 1백년의 시간은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오늘 네게 편지 써야 할 시간이 이 땅에서는 참으로 너무 짧다 —시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2023.3 ----------------------- 김종해 / 1941년 부산 출생. 1963년 《자유문학》지와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문학세계사 창립 대표. 계간 《시인세계》 발행인. 시집 『인간의 악기』 『신의 열쇠』 『왜 아니 오시나요』 『천노, 일어서다(장편서사시)』 『항해일지』 『바람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별똥별』 『풀』 『모두 허공이야』 『늦저녁의 버스킹』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시선집 『누구에게나 봄날은 온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무인도를 위하여』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