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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변혁, 통일운동의 주체는 민이고, 외세와 매국노(반동세력과 배신세력)는 그 대상이다
1. 개혁을 논하면 흔히 민을 기만하는 요식 행위나 개량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일정 부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현상은 지금의 시대사적 요구에서 개혁의 내용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지금 시기의 개혁을 지난날의 사이비 개혁가나 배신세력이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이용했던 현상과 혼동해서 바라보고 있기에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상 한국 사회를 보면 김영삼 정권이 군사독재세력과 야합하여 배신정권을 세운 이래 수없이 개혁이 거론되었습니다. 하지만 참다운 개혁은 이뤄지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배신세력들의 잘못된 정치에 대한 반동으로 반동세력이 나타나면서 배신세력(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문재인 정권)과 반동세력(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 윤석열 정권)이 계속 권력을 나눠 먹는 과정만 벌어졌습니다. 그러니 개혁을 거론하면 선뜻 믿음이 가지 않고,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2. 하지만 개혁의 기치를 사이비 개혁가들이 계속 도용하는 현상이 벌어지도록 놔두어서는 안 됩니다. 사이비 개혁가가 아니라 참다운 개혁세력이 시대적 요구에 맞게 개혁의 깃발을 내걸고 나서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변하면 개혁의 내용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지금은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이 아니라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살 것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누리려면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방면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집단을 구성하여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방면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것이 시대적 요구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3. 그러면 지난날과 달리 지금의 개혁이 이런 내용을 가지게 되는 시대사적 배경이 무엇이겠습니까? 지난시기에 추진된 개혁은 민이 민주화 투쟁을 벌인 끝에 군사독재 통치를 종식시키는 과정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과정은 민주화 세력이 아니라 한때 민주화 투쟁을 벌였지만, 민의를 배반하고 군사독재세력과 야합한 배신세력이 권력을 잡게 되면서 이뤄졌습니다.
이들 배신세력, 즉 김영삼 정권은 자기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개혁을 내걸었습니다. 이것은 군사독재세력의 견제로부터 자신들의 권력 안정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행정협정을 통해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주인 행세하고 있는 미국의 이해와도 부합하였습니다.
그 당시 미국은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된 이래 세계 유일의 패권국으로 등장하여 국가의 장벽조차도 무력화하며 세계적 차원에서 직접적이며 유일적으로 지배하고자 획책하였습니다. 그런 요구에서 나온 것이 바로 세계화 정책입니다.
이 세계화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거대독점자본의 이윤 추구를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본의 이윤 추구를 전면적으로 보장하려면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의 보장이 요구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초기 시절, 자본가들이 노동력을 원만히 공급받고자 신분제 해방을 요구했던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런 면에서 배신세력은 개혁이라는 명분 하에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자유와 평등의 질서를 세워나갔습니다. 김영삼 배신정권 이래로 또 다른 배신정권(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문재인 정권)이 성립하든, 반동정권(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 윤석열 정권)이 탄생하든 개혁이 수없이 회자되었지만,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의 수준에 멈췄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조차도 보장하지 않고 짓밟았던 군사독재 통치를 부분적으로 청산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차원으로 이용함으로써 군사독재 통치의 잔재가 철저히 청산되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역사의 발전을 뒤로 돌리려는 반동세력이 되살아나 다시 등장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이들 배신세력 또한 더 이상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 발전의 질곡으로 다가오는 세력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줍니다.
4. 반동세력과 배신세력이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고, 사회 발전의 질곡이 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배신정권과 반동정권이 번갈아 가며 권력을 잡았지만,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개혁되지 못했다는 것에서 명확히 확인됩니다.
반동세력과 배신세력 중에서 누가 권력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일정한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선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의 주권을 얼마나 제대로 행사하고 있는가에서 드러납니다. 미국과 불평등한 협정과 조약 때문에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반동세력은 물론이고 배신세력 또한 그것을 질적으로 고쳐나가기는커녕 미국의 유일 패권을 행사하기 위한 군사전략까지 적극 추종함으로써 더욱더 주권을 제약당하는 부분으로 나아갔습니다. 그에 따라 남북관계 또한 평화와 조국통일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대립과 대결이라는 도돌이표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개혁이 되면 민생이 나아져야 하는데, 반동세력만이 아니라 배신세력이 집권해도 빈부격차가 더욱 확대되어 더 비참한 상황으로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노동자, 농민 등 각종 대중단체의 이해와 요구가 반영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여전히 짓밟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지금의 시대사적 요구가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사는 것인데, 이를 외면하고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의 보장이라는 수준에 멈춰 있기 때문입니다.
민이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는 것은 그것을 실질적으로 누리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자유와 평등을 문서나 말로 백날 외치더라도 실질적으로 누리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누리고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사람이 개성을 가지고 집단을 구성하여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는 조건에서 이 모든 영역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여기서 지금 시기의 개혁은 지난날과 달리 어떤 의미와 내용을 담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대사적 요구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5. 현시기의 개혁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영역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있는 내용을 담보해야 한다고 명확히 밝히는 이유는 지금껏 배신세력과 반동세력이 민을 기만하고 우롱함으로써 개혁의 영상을 심히 흐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바꾸자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차피 개혁을 들고나와도 그놈이 그놈이다는 식으로 영상이 흐려져 있는 상황이라면 사람들은 개혁 자체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애국의 이미지가 심히 왜곡되어 미국으로부터 주권을 제약받고 있어도 이를 고치려고 하지 않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이익을 한국에서 보장하라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성조기 깃발을 자랑스럽다는? 듯이 나부끼며 동족인 북과 대결 내지는 전쟁하자고 하고, 그래서 한미동맹만이 살길이라고 대놓고 목청 높인 현상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으니 어찌 애국의 영상이 흐려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행위는 매국노 짓거리이지 애국적 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한 형제와 싸우자면 떳떳하게 자기 힘으로 싸워야지 외세의 힘을 빌리려고 하고, 그런 속에서 자기 나라의 주권을 제약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면 그것이 어찌 참다운 애국적인 모습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런 매국적 행위가 애국 행위인 양 둔갑되니 어찌 미국으로부터 주권을 제약받고 있는 현실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열의가 생길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자면 신성한 애국의 기치를 감히 매국노들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확히 확립해야 합니다. 이렇게 흐려진 애국의 영상을 바로잡아야만 많은 사람들이 애국적 열의와 열정을 분출시키면서 나라와 민족의 주권을 철저히 고수하고 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적극 나설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성한 애국의 기치를 올바로 세워내야만 참다운 애국의 길이 열릴 수 있는 것처럼, 개혁에 있어서도 잘못되고 왜곡된 현상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개혁을 수행하자면 광범위한 사람들이 나서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개혁에 대한 영상이 흐려져 있다면 어찌 사람들이 거기에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그러면 개혁은 물 건너가게 됩니다. 그 때문에 우선 개혁에 대한 잘못, 왜곡된 현상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6. 현시기 개혁의 시대사적 요구를 분명히 해야 하는 이유는 또한 이것이 참다운 개혁을 바라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질선 계선을 가름하는 기준을 제시해주기 때문입니다. 즉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행사하기 해서는 실질적인 계선이 무엇으로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려준다는 것입니다.
자유를 보장받자면 자유의 파괴 행위를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처럼,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되는 주장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계선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게 하는 계선이 무엇일까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이에 근거해 살펴볼 때, 그것은 먼저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주권을 철저히 고수하여 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이를 담보하는 애국법의 제정이 될 것이고, 민족이 분단된 상황에서는 조국통일을 이루어야 하니만큼 조국통일법의 제정도 필요할 것입니다.
또 빈부격차가 확대되면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민생이 파탄 날 것입니다. 그 때문에 빈부격차의 해소를 일관된 정책으로 밀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민이 주인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행사하자면 그 이해와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제도와 질서 체계를 세워야 합니다. 민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짓밟는 데도 응징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민이 주인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행사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애국법과 조국통일법의 제정과 함께 빈부격차의 해소를 일관된 정책으로 추진할 것, 아울러 노동자, 농민 등 각종 대중단체들의 이해와 요구를 국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와 질서 체계를 세워내는 것이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개혁을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의 핵심적인 계선이자 기치로 된다는 것입니다.
7. 물론 개혁의 내용이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요구를 핵심적인 계선이자 일치된 지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고, 이보다 더 후퇴한 정책적 입장은 시대사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니만큼 반개혁적 입장으로 바라보아도 무방하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더 진보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일치된 지점을 견지하도록 하면서 입체적으로 접근하여 통일적으로 적용해서 풀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일치와 입체, 통일의 방법론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8. 일치된 부분을 질적 계선으로 삼아 입체적으로 접근하여 통일적으로 적용하여 풀어간다는 것은 사람, 즉 사회와 역사의 주체인 민이 누구나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집단을 구성하여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기에 이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에서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원리입니다.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해 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지 못하는데, 거기서 참답게 개성을 발휘하거나 집단의 권리를 원만하게 행사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 이치로 개성이 짓밟히고 집단의 권리가 유린당하고 있는데, 과연 그런 속에서 나라와 민족의 주권을 철저히 고수하고 민의 생명과 재산을 견결히 지켜내는 모습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매국노들이 외세에 추종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 내지는 그 패거리들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나 몰라라 하면서 자신들의 이기적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것일 터인데, 과연 이런 자들이 나라와 민족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나올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집단을 염려할 정도의 염치와 양심이 있다면 애당초 매국노 짓거리를 하지 않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각 부분의 문제는 서로 배치되거나 모순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서로 일치되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군사독재정권 이후 배신정권과 반동정권이 서로 번갈아 등장하는 과정에서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및 조국통일의 영역에서 그 지점이 서로 일치되고 연계되어 전개되었던 과정을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배신세력은 조국통일을 이룩하는 데 있어서 그 무슨 획기적인 변화를 이룩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남북관계는 결국 본질적인 측면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도돌이표의 부침을 겪었습니다. 조국통일 영역에서 민을 기만했던 것처럼, 그 양상만큼 노동자, 농민들의 요구는 여전히 반영되지 못하고 짓밟혔으며, 빈부격차 또한 해소되기는커녕 계속 확대되었습니다.
조국통일의 영역에서는 진보적인데, 개인과 집단의 영역에서는 퇴보적인 정책을 내놓는 현상은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빈부격차를 해소할 것처럼 시늉만 한 결과 그 격차가 더 확대되었던 것처럼, 노동자, 농민들의 요구에 대해서도 겉으로는 전향적으로 대할 것처럼 행세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요구를 반영하지 않았고, 이와 똑같은 양상으로 조국통일의 영역에서도 형식적으로는 큰 진전을 이룩할 것처럼 기만했기에 더 이상의 진척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미국과 관계가 불평등한데도 이를 고치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 관계도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는커녕 여전히 세계 유일적인 패권 질서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정책을 철저히 추종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도리어 더 주권을 제약받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9.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의 권리 실현이 서로 연계되고 일치되어 나타나는 조건에서 이 모든 부분을 따로따로 떨어뜨려 놓고 볼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연관시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런 시대적 요구 앞에서 한국 사회의 변혁운동의 목표였던 자주, 민주, 통일은 더욱 새롭고 풍부화된 내용으로 확장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즉, 자주는 민족 자주만이 아니라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확장되었고, 민주는 독재정치에 반대하는 것만이 아니라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와 질서 체계를 수립하는 것으로 확대되었고, 통일 또한 한반도 차원에서 민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내용으로 풍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10. 자주와 민주, 통일의 내용이 시대사적 요구 앞에서 더 풍부화되었고, 또 현시기의 개혁이 시대사적 요구에 의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행사하는 내용으로 되었다는 것은 사실상 변혁운동과 개혁이 동일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때문에 개혁의 주체 따로 있고, 변혁의 주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개혁과 변혁의 주체는 똑같이 민이고, 그 대상 또한 외세와 매국노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외세와 매국노가 한국 사회에서 주인 행세하면서 민의 권리 실현을 가로막으면서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1. 여기서 배신세력 또한 사실상 매국노로서 개혁의 대상으로 분명하게 설정하는 것은 그들의 역할이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하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배신세력이라고 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민의를 배신했다는 것입니다. 민이 군사독재세력에 반대하여 싸운 것은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배신세력은 자신들이 권력을 잡고 난 이후 그 길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배신세력이 자신들의 존립 근거를 민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단지 군사독재세력과의 형식적이고 방법론적인 차원에서의 차별성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는 사회인데, 여기서 군사독재세력은 매국노의 핵심 세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을 철저히 청산하여 한국 사회를 정말로 개혁하는 길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면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는 사회는 바뀔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는 사회를 그대로 인정하는 조건에서 형식적이고 방법론적인 차원에서의 개량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 사회는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는 사회가 실질적으로 바뀔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민으로부터 존립 근거를 찾지 않고 단지 군사독재세력과의 형식적인 차이에서만 그 존립 근거를 찾았다는 것은 잘못된 세상을 정말로 바꾸려는 데 있지 않았고, 여러 사회적 역학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잇속을 채울 수 있겠는가 하는 방향에서 처세했다는 뜻이고, 그래서 배신세력은 참다운 개혁세력이 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집권했을 때 어떤 정책을 펴나갔는지를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주권 문제는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권리와 생명, 재산을 지켜낼 수 있는가가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미국과의 불평등한 협정에 의해 미국이 사실상 한국에서 주인 행세하는 현실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권을 찾으려는 본질적인 노력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민의 눈초리가 있으니 그것이 관철되는 모양새가 원만하게 처리되는 방식으로만 접근했다는 것입니다.
주권이 제약받고 있다면 그것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지난날 군사독재세력처럼 미국의 이해와 요구에 굴복하고 추종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면 외세가 침략해 올 때 여러 핑계를 대며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주권을 양보할 수 없으니 한 사람까지 끝까지 싸워서 지켜내야 한다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까? 그러니까 침략자들이 쳐들어올 때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식민 지배를 받아들이는 것을 허용해야 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배신세력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지난날 외세의 요구를 무조건 추종하는 핵심 세력인 군사독재세력과는 언뜻 차별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철저히 주권을 고수하려는 애국적 열의와 열정을 꺾어버리고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여 지배를 받는 것이 합당하다는 결론을 도출해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지난날 매국노의 핵심 세력인 군사독재세력과는 다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애국적 열의와 열정을 안고 투쟁하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군사독재세력과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행세하면서 자기 존립의 정당성을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거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실상 이들이 외세에 의해 주권이 제약받는 상황을 고민하고서 애국적 열의와 열정을 불러일으켜 주권을 되찾자고 적극 나섰다고 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떨쳐 나설 수 있게 되었을 것이건만, 그 길을 차단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주권 문제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빈부격차의 해소는 물론이고 노동자, 농민 등 각종 대중단체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는 정책에서도 똑같은 형태로 드러납니다. 여기에서도 재벌이나 부자들의 요구들도 있으니 무조건 노동자와 농민의 요구를 극단적으로 주장하지 말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자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세상을 실질적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고 불합리한 그 질서 자체를 인정하니만큼 여기에서 나온 모습들도 주권 문제를 대하는 것처럼 피장파장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때껏 미국의 요구를 추종해왔던 핵심 매국 세력인 군사독재세력이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던 상황에서 배신세력들이 권력(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문재인 정권)을 잡았지만, 노동자와 농민들의 요구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그에 따라 빈부격차가 확대되었으며 세상이 실질적으로 바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들 배신세력들이 존립하는 한 외세와 매국노를 청산할 길이 막히게 됩니다. 외세와 매국노의 핵심 세력이 존재하는 것 자체를 그 존립 근거로 삼고 있으니 이들의 청산을 한사코 반대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배신세력이 화해와 포용을 내세우며 외세와 매국노의 철저한 청산을 외면한 결과 한국 사회는 참답게 개혁되기는커녕 도리어 반동세력이 되살아나 다시 권력(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 윤석열 정권)을 잡는 기가 막힌 현실이 벌어졌던 것도 여기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 배신세력을 응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개혁을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며, 세상이 바뀔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하자면 지금 시기에서 외세와 매국노의 핵심 세력인 반동세력은 물론이고 배신세력 또한 매국노로서 협력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철저한 응징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12. 외세와 매국노를 개혁의 대상으로 놓고 응징해야 할 필요성은 현시기 한반도 전쟁 위기와 관련해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집니다.
한반도는 남북이 분단되어 대립과 대결을 겪으면서 수없이 긴장이 격화되는 사례를 겪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위험했던 상황의 두 시기를 뽑는다고 한다면 하나는 1990년대부터 진행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이 시기가 바로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미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을 사실상 행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세계 유일의 패권국이 되자 유고슬라비아,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등 수많은 나라들을 침략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서 한반도도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이때의 위기가 미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을 행사하는 절정의 시기에서 전개되었다고 한다면, 또 다른 하나는 미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적 지위가 흔들리자 어떻게든 유지해보고자 발악하는 과정에서 전쟁 위기가 발생하고 있는 측면입니다. 지금이 바로 이 시기에 해당합니다. 자신이 힘이 약화되었으면 그것을 인정하면 될 것인데, 제국주의 세력은 합리적인 이성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한사코 죽을 줄 알면서도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의 짓거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적 지위를 어떻게든 유지해보고자 중국과의 대립 대결을 불러일으키며 신냉전 정책을 추구하는 속에 동북아의 정세가 긴장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한반도 또한 단순히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태에서 동족에 적대감을 내뿜어대고 극한적 대립, 대결 정책을 펼치는 것은 화약고에 불을 지피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형제간에 서로 생각이 달라 싸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부에서 진행해야지 바깥에 있는 외세를 끌어들여 싸우려고 하는 행위는 매국노 짓거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리보다 강한 국력을 가진 나라를 한반도에 끌어들이게 되면 그 외세에 의해 온 민족과 강토가 유린되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온 민족과 강토가 외세에 의해 유린당하게 한다면 이것은 같은 한 형제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남보다도 못한 짓거리로 보이는 꼴불견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한국 사회만 놓고 보면 개혁과 변혁, 통일운동의 대상이 외세와 매국노로 일치하니만큼 이들을 철저히 응징해야 합니다. 이것이 당면해서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막는 방안임과 함께 바로 개혁과 통일운동을 올바로 풀어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13.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점은 지금껏 민족문제는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았는데, 이런 입장을 어떻게 이해하냐는 것입니다.
사회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주체는 민입니다. 그리고 민은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집단을 구성하여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왔습니다. 그 때문에 이 모든 부분을 서로 일치시켜 입체적으로 접근하여 통일적으로 적용하여 푸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결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대적 발전이 요구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노예제나 신분제, 제국주의 의한 구식민지 상태에서는 민족문제의 선차적 해결이 절박하게 요구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외세의 지배를 받게 되면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는 그 모든 사람이 그 자체로 식민지의 노예적 삶을 강요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그런 시대에서는 계급문제나 인간해방의 문제에 앞서 민족문제의 선차적인 해결이 당연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의 진보적 국가와 각국 민의 견결한 투쟁에 의하여 구식민지적 형태는 사실상 유지될 수 없었고, 신식민지 형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일제의 총독부 지배와 미 군정의 직접적 지배를 받았지만, 결국 대한민국의 집권자를 직접 선출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국주의 세력은 식민 지배를 유지하고자 그들을 추종하는 매국노를 내세워 온갖 불평등 조약과 협정 체결을 강요해 주인 행세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의 요구와 배치되는 그런 불평등한 협정과 조약은 거센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민의 반발을 힘으로 내리누르기 위해서 독재정권이 요구되었습니다. 제3세계 국가에서 군사독재정치가 유행처럼 번지며 실시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제국주의 세력은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을 통해 여전히 식민 지배를 유지하고자 음으로 양으로 군사독재세력을 지원해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민의 강력한 투쟁에 의해 철권통치로 여겨졌던 군사독재 통치도 점차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차원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식적인 차원에서의 자유와 평등이 이뤄진 조건에서 그다음의 시대적 요구는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사는 것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기에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누리자면 이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시대적 요구와 발전 속에서 민족문제, 계급문제, 인간해방의 문제는 지난날과 같이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서로 총체적으로 일치되고 연결되어 풀어지는 방식으로 귀결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 실현을 가로막는 최대의 세력이 각각 외세와 매국노로 똑같고, 그 각각의 주체 또한 민으로 동일하게 드러난다는 것에서 확인됩니다. 이것은 결국 현시기의 개혁과 변혁운동, 민족문제, 계급문제, 인간해방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그 대상이 외세와 매국노로 일치하고, 그 주체는 다 민으로 똑같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14. 현시기의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개혁과 변혁운동, 계급문제, 민족문제, 인간해방의 문제, 조국통일 문제에서의 주체와 대상이 다 일치한다는 것은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는 한국 사회를 참답게 개혁시키려고 할 때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도 일정한 해답을 내려주는 것으로 됩니다. 그러니까 구식민지의 지배방식과 신식민지의 지배방식에서의 차이가 나타남으로 인해 그 해결방식에서도 일정한 차이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식민지, 즉 일제의 총독부와 미 군정 시기에서는 외세가 직접적 지배를 통해 주인 행세하는 방식이었으나, 신식민지 통치방식에서는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는 식민지매국사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외세만이 아니라 매국노를 응징하는 것이 매우 중대한 문제로 제기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외세와 함께 매국노를 특별히 언급하는 이유는 이들 매국노가 외세의 지배를 허용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직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국노를 철저히 응징하면 외세가 주인 행세할 수 있는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을 파기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외세가 식민 지배를 할 명분과 고리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에서 개혁세력이 애민과 애국의 기치 하에 애국정권을 세워서 매국노들을 철저히 응징한다면 미국과 불평등하게 맺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행정협정 등을 파기할 수 있고, 나아가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주한미군 보고 우리 땅에서 나가라고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요구해도 나가지 않는다면 힘으로 관철시켜야 할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의 주권을 자기 힘으로 지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15. 결국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하려면 시대사적 요구에 맞는 핵심적인 기치와 계선을 견지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애국법과 조국통일법을 제정하고, 빈부격차의 해소를 일관된 정책으로 추진할 것, 아울러 노동자, 농민 등의 각종 대중단체의 이해와 요구가 국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제도와 질서 체계를 세워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 상황에서 이를 관철해가자면 한국의 정치지형을 명확하게 바라보면서 어떻게 해야 이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현실 정치에서 이를 실현해가지 못한다면 결코 개혁을 이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정치 지형은 매우 복잡해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개혁을 성공시키자면 어떻게든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한국의 정치지형은 형식적으로 살펴볼 때 거대양당과 군소정당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여기서 총선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제3정당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은 형식적인 측면이지 본질적인 분석이 아닙니다. 그래서 형식상의 측면에 그칠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정치지형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치는 정책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니만큼 그 정책을 보고 판단해야 그 내막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정치적 방안을 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책과 정치적 입장으로 살펴볼 때 한국의 정치는 크게 4가지 부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외세의 요구를 무조건 추종하면서 재벌과 부자들의 요구를 적극 관철시키려는 외세와 매국노의 핵심 세력(옛날에는 군사독재세력, 지금은 반동세력)이고, 또 하나는 외세와 매국노의 핵심 세력인 반동세력과의 차별성을 통해 자신의 존립 근거를 내세우기는 하지만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개혁에 불철저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우려고 하는 세력(배신세력)이며, 또 다른 정치 세력으로 이 두 세력에는 반대하지만, 한국 사회의 본질적이고 실질적인 개혁보다는 자신들의 정책적 가치 실현에 더 중심을 두는 세력(여러 군소 정당들)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정말로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하려는 지향과 요구를 품고 있는 세력(몇몇 군소정당과 여러 정당 안에 각기 분포함) 등으로 나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치지형을 보면 이런 잣대와 기준을 가지고 곧바로 대입시킬 수가 없습니다. 앞에서 밝혔듯이 개혁적인 지향과 요구를 갖고 있지만, 그것이 한 정당에 모여 있지도 않고 여러 정당에 분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한국 사회의 정당은 섞어찌개와 잡탕찌개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를 개혁하기가 그만큼 어렵게 되어 있는 구조라는 것을 드러내 줍니다. 문제가 단순하게 형성되어 있으면 그만큼 쉽게 풀릴 수 있겠지만, 그 지형이 복잡하면 그만큼 단합하기가 어렵고, 그러면 쉽게 풀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국의 정치지형은 외세와 매국노가 그만큼 주인 행세하면서도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강고한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복잡한 지형은 이번 총선을 통해서 제3지대가 나오고 있는 것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것도 거대양당만이 아니라 군소정당까지 포함해서 제3정당 건설론이 나오고 있으니 앞의 4부류로 대략 분류하였지만, 도대체 어디에 포함해야 할지 매우 복잡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하자면 이런 복잡한 지형을 단순화시켜 어떻게든 실질적인 개혁의 실현을 위한 핵심적인 기치를 견지하도록 하는 가운데 개혁과 반개혁의 전선이 확립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지금 현시기의 각 정치 세력을 어디에 분포시켜야 할 것인지 정리 정돈하면서 모든 개혁세력이 단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 때문에 현시기 각 정치 세력을 어디에 포함시켜야 할지 매우 어렵기도 하고, 또 향후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 조건에서 자칫 잘못을 범할 수 있는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무릅쓰고 현시기 각 정치 세력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를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개혁과 반개혁의 전선을 확립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 각 정치 세력은 앞의 4가지 부류 중에서 어디에 포함시킬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단, 여당인 국민의힘은 그 안에 개혁을 지향하는 세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그 주류는 반동세력권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윤석열 정권 자체가 역사를 뒤로 되돌리려는 반동적인 정책을 펴는 것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의 아바타라고 할 수 있는 한동훈이 비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보다 개혁 지향의 요구를 견지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할 수 있고, 또 그 주류는 아직까지 참다운 개혁적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반윤석열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어떤 길로 나아갈지는 향후 지켜보아야 할 상황입니다.
그리고 제3지대론의 경우는 여러 세력이 있기에 하나로 정의하기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준석 계열은 한국 사회 개혁의 최대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는 윤석열 정권에 대해 반윤적 입장을 취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으나, 아직 참답게 개혁적 입장을 제시하고 있지 않으니만큼 이 또한 향후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나머지 제3지대론을 들고 나오는 세력은 두 거대 정당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그 주된 입장이 반이재명과 야당에 대한 반대로 자신들의 존립 근거로 삼기에 반윤석열 투쟁을 약화시킨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사실상 반동세력의 이중대 내지는 배신세력의 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군소정당은 두 거대양당과의 차별성을 견지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엇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도 자신의 정책적 가치를 더 중시하는 입장과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개혁의 실현을 중시하는 입장으로 나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신의 정책적 가치를 더 중시하는 입장은 향후 실질적인 사회 개혁을 위한 방향에 대해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 따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하려는 지향과 요구를 견지하고 있는 세력들이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그 수가 다수가 되지 못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각기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정치지형으로서는 개혁세력이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이런 정치지형에서는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반동세력과 배신세력이 권력을 나눠 먹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자면 이런 정치지형을 어떻게 해서든 개혁과 반개혁의 전선으로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 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선 개혁을 지향하는 세력들이 서로 단합해 가야 합니다. 그것도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질적 계선을 명확히 제시하는 방향에서 진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날 가도 개혁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적 계선을 견지하는 세력이 많지 않은 조건에서는 또한 한국 사회 개혁의 가장 걸림돌이 되는 반동세력, 즉 윤석열 정권에 대한 투쟁을 적극 전개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혁의 질적 계선을 견지하는 부분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 부분을 포기하게 되면 반동세력과의 형식적인 차이만을 자신의 존립 근거를 내세워 또다시 민을 배반하는 배신세력이 나오는 상황을 막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 개혁의 최대 걸림돌이 윤석열 정권이니만큼 반윤석열 정권에 대한 싸움을 적극 전개하면서도 동시에 참다운 개혁을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계선을 세워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견지해간다면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면서 반동세력과 배신세력이 서로 번갈아 권력을 장악하는 정치지형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반동세력과 배신세력이 준엄한 심판을 받으면서 청산되어 갈 것이며, 그러면 개혁세력이 점차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누리고 사는 세상을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024. 1. 22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