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호숫가로
이월 첫날 토요일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예약된 치과 진료를 나서면서 어제 교육단지 생태 연못에서 본 능수버들을 떠 올려 시조로 한 수 남겼다. “초록이 싱그럽던 도심 속 생태 연못 / 수련꽃 함초롬히 수면에 동동 띄운 / 버들은 휘어진 가지 포물선을 그렸다 // 겨울에 잎을 떨궈 바람이 불 때마다 / 앙상한 나목으로 너울져 낭창대다 / 뿌리가 수액 퍼 올려 연녹색이 번진다”
앞 단락은 ‘능수버들 수액’ 전문으로 사진과 함께 지기들에게 아침 안부로 전할 작품으로 마련했다. 동네 치과에서 예정된 진료를 받고 용지호수로 향하면서 모처럼 어울림도서관을 찾았다. 일 년 전 겨울에 들리고는 스마트폰 교육에 이어 아동안전지킴이 봉사활동으로 틈을 내지 못해 찾을 기회가 없었다. 퇴직 이후 사회에 적응하는 연착륙이 가능하게 도움받은 고마운 공간이다.
어울림도서관은 규모가 작아도 집에서 가까운 동네 도서관으로 내게는 개인 서재처럼 활용했다. 틈을 낸 여가에 찾으면 열람자가 없어 창밖의 잔디와 호수가 바라보인 아늑한 열람실이었다. 장서가 적어 여러 차례 들렀더니 읽을 만한 책이 거의 동이 날 무렵 바빠진 일정으로 한동안 찾지 못해 사서도 궁금했는지 무척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간 방문이 뜸했던 사연을 털어놓았다.
아동안전지킴이 역할 수행이 종료되고는 규모가 큰 공공도서관에서 책의 바다를 누볐다. 모처럼 들러 그간 안부만 전하고 사서의 휴식을 겸한 점심시간이라 바깥으로 나왔다. 빗속에 용지문화공원을 거닐고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받아 놓고 용지호수에서 남긴 풍경 사진을 몇몇 지기들에게 보냈다. 빗방울이 파문을 그리는 수면에는 고니와 쇠물닭이 떼 지어 평화로이 노닐었다.
용지문화공원을 거닐고는 창원천과 한들공원으로 진출해 봄비를 맞고 수액이 오르는 버들개지와 매화 망울을 완상하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비가 여전히 내려 그친 다음 날 찾아도 될 듯해 아껴 두었다. 대신 아까 들린 작은 도서관으로 가서 그새 바뀐 장서를 확인하고 열람석을 차지하고 싶었다. 용지호수를 한 바퀴 둘러 도서관으로 다시 가니 사서는 밝은 모습으로 맞아주었다.
일 년 가까이 찾지 않은 사이 장서는 다수 바뀌어 눈길 가는 신간이 몇 권 보였다. 유홍준이 쓴 답사기 서울 편에서 확인이 필요한 게 하나 떠올라 먼저 뽑아 놓고 생태에 관한 신간 두 권을 뽑았다. 일본인이 쓴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과 독일인 저서 ‘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이었다. 그중 이나가키 히데히로가 쓴 책을 펼치니 옮긴이는 조홍민이었는데 서문에 이어 목차를 훑었다.
서문에서 우리의 조선 중기에 해당하는 일본 센고쿠 시대 무장 무사들은 식물을 사랑했다고 했다. 전쟁터에서 피 흘리며 싸우고 하극상 시대를 누빈 무인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전국 시대 혁명아 오다 노부나카나 막대한 부와 권력으로 일본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화려한 취향을 좋아해 대규모 꽃놀이를 즐겼고 특히 벚꽃을 사랑했음이 드러나 있었다.
그 책 본문으로 들어가는 즈음 아까 만난 사서만큼 반가운 문우가 찾아왔다. 일전 대출해 간 책을 반납하러 온 길이었는데 연이어 또 다른 문우가 나타날 거라 알렸다. 생활권이 같아도 한동안 얼굴을 뵐 기회가 없었는데 설을 쇠고 한 자리에서 같이 보게 되었다. 빗속에 등장한 두 지기와 밀린 안부를 여쭈고 지난날을 회고해 봤다. 이태 동안 뚜벅이 자연 탐방에 동행한 사이였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젊은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을 찾아와 무언의 격려를 보냈다. 셋은 열람실을 나와 호숫가 산책로를 걸어 호수 중앙에 설치된 전망대로 드니 난방이 되어 따뜻했다. 쉼터에서 수면에 노니는 고니와 쇠물닭을 바라봤다. 철새로 날아온 녀석들이 비둘기처럼 산책객이 던져주는 과자에 몰려감이 신기했다. 날이 저물기 전 호수에서 귀가 발길을 재촉했다. 25.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