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UTmgYDDfOU4?si=rjl--z2afuIf6WP4
Bach Brandeburg Concerto No.4 BWV 1049 (Jean Pierre Rampal / Karl Münchinger)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BWV 1046에서 BWV 1051까지 모두 6곡으로 바하가 쓴 작품 중 가장 큰 규모로 고상한 악상과 화려함으로 최고의 발전을 보여준 작품이라 하겠다. 위의 곡은 이 중 네 번째 곡에 해당하는 BWV 1049의 1악장이다. 이 작품의 편성은 1대의 바이올린과 2개의 플루트에 현악 합주로 되어 있으며 경쾌하고 아름다운 곡이다.
제4번의 독주 악기군은 바이올린1, 플루트2이다. 제1악장은 독주 바이올린이 활약하는 것으로 전체에서 밝고 화려한 성격을 들을 수 있다. 제2악장은 전합주와 독주가 동일한 음형을 번갈아 가며 연주하는, 그 강약의 대비가 훌륭한 에코 효과를 들려준다. 제3악장은 푸가로서 먼저 비올라가 주제를 연주하기 시작하며, 제2바이올린, 제1바이올린으로 점차 고음역으로 계승되어 나간다. 그리고 세 개의 독주악기가 합주부와 무늬를 이루는 듯한 기교적인 움직임을 들려준다. 또한 이 제4번은 전악장을 통하여 독주 바이올린의 활약이 눈부시며, 흡사 바이올린 협주곡과 같은 아취를 가지고 있다.
작품구성
편성은 1개의 바이올린, 2개의 플루트에 현악 합주로 되어 있다. 합주 협주곡이지만 독주부가 아름답고 소협주곡의 효과를 내는 사랑스런 작품이다. 1악장, 3악장에서 바이올린의 눈부신 활약을 볼 수 있다. 때문에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해도 좋을는지 모른다. 전체적으로 비발디의 작품을 닮은 취향이 강하고 제 2번과 함께 친숙해지기 쉬운 곡이며, 빛나고 흐르는 듯한 아름다운 곡이다.
제1악장 : 알레그로 G장조 3/8박자.
2개의 플루트는 합주 악기가 으뜸화음을 연주할 때 주제를 연주한다. 겹세도막 형식을 된 무곡 형식을 확대시킨 것에 가까워서 매우 경쾌하고 화려하다. 악장의 전반을 완전 종지로 끝나며 얼마 후 조바꿈을 한 후 처음 주제가 나타난다. 다시 플루트의 2중주가 나타나며 주제를 바이올린이 연주한다. 마지막 C장조로 주제를 반복하면서 끝난다.
제2악장 : 안단테 E단조 3/4박자.
겹세도막 형식에 가까운 악장인데, 각 부분의 구별이 선명하지 않다. 플루트가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며 바이올린이 우아하게도 낮은음의 악절을 느리게 연주한다. 코다에서는 빠른 템포로 변한다.
제3악장 : 프레스토 G장조 2/2박자.
매우 화려하며 생기에 넘치는 악장인데, 이탈리아풍의 협주곡 형식을 결합시켰다. 바이올린과 플루트의 2중주의 효과는 절묘하다. 제시부와 전개부를 지난 후 투티로 연주된다. 그리고 바이올린의 카덴차풍으 연주와 푸가풍으로 전개되는 조바꿈의 중간부 마지막 주제의 모티브에 의한 코다로 끝난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4번과 쳄발로 협주곡 6번(BWV1057)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4번은 바이올린, 두 대의 리코더 그리고 현과 바소콘티뉴오를 위한 합주 협주곡이다. 두 대의 리코더가 비슷한 선율을 주고 받으며 솔로 바이올린의 선율에 대응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두 대의 리코더는 바이올린의 화려한 선율에 뒤질세라 화려한 선율을 대위법적으로 또는 화성적으로 서로 주고받으며 바이올린에 화답한다.
바하는 나중에 이 곡을 쳄발로와 두 대의 리코더를 위한 협주곡으로 편곡하였다. 솔로 바이올린의 역할은 쳄발로에게 맡기고 조성도 G장조에서 F장조로 2도 낮추었는데, 덕분에 리코더의 운지가 조금 편해졌다. 그러나 바하가 리코더 연주자를 위해서 조성을 낮추었다기 보다는 쳄발로의 음역을 고려하여 낮춘 것이었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의 한 사람이 바하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바하는 독일어로 ‘실개천 ’이 라는 뜻이라고 한다. 베토벤은 바하을 가리켜 “그는 실개천이 아니라 대해이다. ”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바하는 중부 독일 튜링겐 지방의 아이제나하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튜링겐 지방 사람들은 예로부터 의지가 강하고 성깔이 있으며 부지런하기로 이름이나 있었다. 또 그 곳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 프로테스탄트의 발상지이기도 했다.
바하가는 50명이 넘는 음악가를 배출한 집안이었으므로 튜링겐 지방에서는 ‘바하 ’라고 하면 곧 ‘음악가 ’를 가리키는 말이 되다시피 했다. 바하는 아홉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다음 해에는 아버지까지 여의어 맏형인 요한 크리스토프 밑에서 자라면서 형에게 오르간과 쳄발로를 배웠다.
소년기 바하는 남다른 면학열을 나타냈다. 도서관에 열심히 드나들고 낡은 악보를 세심히 뒤지는가 하면 희미한 등불 아래서 밤늦도록 공부를 했다. 소년기의 무리한 면학으로 만년에 바하는 시력장애로 실명까지 하고 만다. 어려웠던 소년 시절 그는 라인켄이라는 오르간 대가의 연주를 듣기 위해 함부르크까지 30마일을 걸어서 간 일이 있었다. 가는 도중 너무 지쳐 어는 여인숙 처마 밑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노라니 2층 식당에서 생선대가리를 내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거라도 먹을 생각으로 얼른 주워 보니 그 속에서 지폐가 나왔다.
하나님의 은총이라 아니할 수 없는 그 돈으로 다시 소년 바하는 함부르크에 가서 라인켄의 훌륭한 오르간 연주를 감상했다. 결혼한 지 13년 만에 첫째 부인과 사별하고 바하는 재혼하여 모두 20명이나 되는 자녀를 두었다. 그 중 꼭 절반이 10명만이 살아남아 성장했는데, 그 가운데 최소한 네 사람은 후세에 이름을 남긴 음악가가 되었다.
바하는 청년 시절 상사의 명을 거역한 죄로 한 달 가량 감방에 갇혀 있었을 정도로 뚝심 있는 사나이기도 했지만 대체로 대인관계는 원망했으며 가장으로서도 모범적이었다. 젊었을 때 고생을 한 탓이었는지 이재에도 밝아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 악장직에 있는 동안 관혼상제용 음악도 많이 써서 아르바이트로 생기는 수입이 짭짤했다.
그 무렵의 가을 어느 날, 그는 친구에세 자못 진지하게 이런 푸념을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요새는 과외수입이 신통치 않아.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영 죽지 않는단 말이야!”
바하는 독실한 기도교 신자였으므로 경건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다수의 종교음악. 기악곡. 성악곡 등을 썼으며 특히 푸가 기법의 대가였다. 또한 건반악기의 조율을 시정하여 이른바 ‘평균 ’을 만들어 악곡을 어떤 조로도 전조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그가 이룬 커다란 공적 중의 하나라 하겠다.
만약 서양음악이 일시에 다 없어진다 해도 바하의 <평균을 클라비아 곡집>만 남는다면 다시 일으킬 수 있다고 할 만큼 그의 음악은 중요한 위치에 있다. |
글쓴이 : 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