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 주 화요일 그가 다시 메일을 보내 왔다. 저녁에 들리겠다고. 그리고 저녁 무렵에
그 사이 끝낸 모델 조각 들과 토마토를 한 봉지 들고 왔다.
“누가 다 먹는 다고 그렇게 많이 사오셨어요?”
“그러게요.”
내가 처음 다이어트를 시작 했을 때 습관 때문에 장은 늘 전처럼 보다 보니 냉장고에서 썩
어 버려 지는 것이 반 이상이었다. 습관이 무서운 건지 개념이 없어서 인지 알 수 없지만 그
걸 몇 년 이나 했다. 당시 나와 일상을 함께 하던 같은 연구실의 로자는 잠 자는 시간을 제
외 하고는 거의 함께 지냈는데 어느 날부터 내 장보는 버릇에 토를 달기 시작했다. 나만큼
내 냉장고 속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너 그거 안 필요해.”
“너무 많아 반 만사.”
그 덕에 장을 줄여 보는 데 성공을 해 버려지는 것이 줄어 들었다. 문제는 한국에 돌아와서
였다.
“얘 왜 이렇게 쪼잔 하게 굴어.”
“손 작은 것 봐.”
“너만 먹을 거야?”
소식을 오래 하다 보니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이 먹는 지 감이 없어져서 애써 들여 놓은 습
관에 혼란이 생겼다. 그도 다이어트 중이고 나도 그러하니 내가 토마토를 사러 갔다면 아마
두 개쯤 샀을 것 같다. 그가 토마토를 사러 갔었어도 아마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어쩔까 망
설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한 바구니를 샀을 그가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모델 바닥은 이미 학생을 시켜 끝내 놓은 상태 이고 그 위에 그가 만들어 왔던 작은 건물 모
델 들을 대충 얹어 두었다.
“이거 벌써 붙이는 거예요?”
모델을 보자 자켓을 벗다 말고 모델 쪽으로 다가 왔다.
“그래도 되죠. 지난 번 건 대충 끝났나요?”
“그저께는 부산에 갔었는데요. 대기 시간에 박스 채 가지고 거기서 모델 만들고 있었어요.
몇 개 안 남아서 좀 심심했죠.”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편해져 있었다.
“바쁠 때 가끔 불러야겠네요.”
그와 나는 항공 사진을 프린터로 뽑다 들고 만들어 온 모델 들을 일일이 하나씩 조심스럽게
붙여 나갔다.
“ 어 이거 잘못 붙였나 봐요. 옆 건물이랑 비슷해서.”
“괜찮아요. 칼 끝으로 살짝 떼내세요.”
그에게 작은 칼을 건네 주었다.
“비슷비슷 해서 잘 보고 붙여야겠어요.”
“뭐 좀 잘못 붙였다고 큰일 이야 나겠어요. 남은 건 학생 시키죠.”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와 있는 그의 모델을 바라보았다. 그가 모델들을 너무도 열심히 만
들어 왔기 때문에 그 일은 참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서 생각 했던 것 보다 일찍 끝나고
있는 중 이었다.
“이제 주인공만 남았네요.”
흐뭇한 표정으로 모델을 보고 있던 그에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연습이고, 아무래도 더 신경 써서 해야 되겠죠?”
“다르지야 않지만 깔끔하게 작업을 해야 두고 보기 좋겠죠.”
그에게 중요한 몇 가지를 설명해주고 혼자 작업하기 쉽게 자료를 준비해 주었다.
모델 이야기가 끝나자 우리는 테이블에서 그의 별장 이야기를 계속 했다. 입구라던가 그의
희망에 따라 다시 조립한 모델들을 내 놓았다.
“아 정말 멋있어요."
그가 감탄의 눈길을 보냈기 때문에 다소 안도가 되었다. 설계도 거의 마지막 단계여서 그 모
델은 실제 지어질 집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행이네요. 마음에 드신다니. 여기가 주차 공간이고 현관을 열면 조금 여유를 두고 거실
로 통하게 했구요. 바로 바다를 향하게 크게 뚫었어요. 거실 바깥쪽 테라스는 저쪽 식당하
고 연결을 시켜서 날 좋을 때는 밖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게 했구요. 아래층은 서재나 취미 공
간인데 현관서 거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내려 갈수 있어요. 이쪽 날개는 침실이나 트레이닝
공간 을 같이 붙여 두었고…. 태풍이나 강풍을 대비해서 모든 바다로 난 유리 벽에는 외부
차양을 설치 할 거고 지붕은 전망이나 일광을 생각해서 다소 높였어요…”
모델을 들고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 그에게 하나씩 짚어가면서 설명을 했다.
“바다 쪽은 같은 높이의 집이 없으니 사생활 방해 받을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길 쪽은 일부
러 오픈되지 않게 계획은 했지만 그래도 아마 보안시스템 설치를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예. 그럼 일이 이걸로 대충 끝나는 건가요?”
“다음에 오실 때는 3차원 작업 한걸 보여 드릴께요. 내부 공간을 가상적으로 한번 들어가
보실 수 있어요. 그럼 내부 분위기가 어떤지 알 수 있겠죠. 지금 같이 일 하는 분이 작업 들
어 갔으니까 곧 끝나요. 현관은 마음에 드시구요?”
“아 현관.”
그는 들고 있던 모델을 돌려 입구를 살폈다.
“생각 하던 것 보다 훨씬 심플 하게 디자인 하셨네요.”
“원하시면 그때 가지고 오신 사진처럼 해드리구요. 크게 흠이 되진 않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이것도 마음에 들어요.”
우리는 아마 그 정도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나 보다. 그날 우리는 아무도 토마토를 먹
지 않았다. 그 토마토는 다음날 고혈압에 좋다는 이유로 세미씨 어머니께로 넘겨졌다.
컨디션이 갑자기 나빠져서 거의 일주 일을 힘들게 보내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이 태산인데
그 어떤 의욕도 사라진 상태. 이런 무기력의 상태는 언제나 예고도 없이 찾아와 일상을 혼란
하게 만들곤 했다. 독일로 가기 전에 해두어야 하는 일이 열 가지도 더 되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손대지 못한 체 우왕좌왕 하고만 있었다. 그 즈음 신문에서 옛 연인이 학교에서 고위
공무원이 되어 자리를 옮긴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잘 나가고 있군. 그러면서 나의 게으름
도 무능력도 자책해 보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이순간이 어쩌면 나의 최선인지도 모른다는 생
각이들었다. 이 허약한 육체로 남들 반 만큼 이라도 가고 있는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평생 이 상황을 벗어 나지는 못할테니까. 몸이 깨어나 주지 않아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
었다.
그가 나를 다시 찾아 왔을 때는 몸이 회복기에 들어서서 겨우 남들에게 웃는 얼굴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며칠 전 오겠노라 메일을 보냈을 때 몸이 좋지 않아 미루고 싶다고
답을 보냈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예. 좋아 졌어요.”
“일 너무 많이 하시는 것 아니에요?”
“일 많이 하는 사람 아니에요. 할 일이 없어 그냥 여기서 시간 때우는 거지.”
그는 들어 오자 마자 그렇게 인사를 건넸다.
“다이어트 하시다 병 난 거 아닌가? 나도 컨디션 안 좋으면 그냥 먹는데 아무거나 다.”
“컨디션 안 좋을 때도 있으세요? 아주 건강해 보이는데.”
“없죠.”
나는 테이블에 노트 북을 내려 놓으며 그를 바라 보았다.
“이거 오다가 사 온 건데요. 뭐 좋아하실지 몰라 이것 저것 다 사왔어요.”
그는 커다란 플라스틱 봉지를 모델 박스 옆에 내려 놓았다. 그가 가지고 온 것은 여러 종류
의 죽들이었다.
“뭐 좋아하시는지 몰라 있는 다 가지고 왔는데. 다른데 들렸다 오느라고 식었을 거예요. 렌
지에 돌려 드세요.”
평범한 이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다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아이구, 정말 친절 하시네요.”
“모델 수업 받아야 하는데 기운 없으셔서 그냥 가라고 하실 까봐.”
“이걸 누가 사러 갔었어요?”
“매니져 형이요. 아직 뭐 안 드셨으면 좀 드세요. 숙제가 어려워 다 못해 왔는데 저는 그거
나 하고 있을게요.”
어쩔까 잠시 망설였다. 그는 고객이 아닌가.
“그래요. 그럼. 일부러 사오셨는데 성의를 봐서 먹어 보죠.”
뜻밖에 그가 죽을 사 들고 오는 바람에 예민하게 까칠하던 컨디션이 한 순간 잊혀졌다. 나
는 냅킨 한 장을 깔고 일회용 용기 뚜껑을 열었다.
“안 따듯 할 텐데.”
“딱 좋아요. 뜨거운 건 못 먹어요. 뭐가 어려워서 못하셨어요?”
“다 드실 때까지 기다릴게요.”
“괜찮아요. 먹으면서 볼게요. 어디 보여줘 보세요.”
호박죽을 한 술 떠 넣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외벽이 딱 안 맞아서요. 다른 건 다 조립을 했는데 뭘 잘못 잘랐는지 이가 안 맞아요.”
그가 양철 박스 에서 꺼낸 모델을 이리 저리 살펴 보았다.
“아 이거는 외벽 안쪽에 유리 벽을 아크릴 판으로 붙였잖아요. 그 판이 영점 오미리 정도
되니까 이쪽 저쪽 다 조금씩 늘어나서 딱 안 맞는 거에요. 바닥 판이 약간 들어 가 있죠. 그
게 이 맞으라고 좀 잘라 준거 거든요. 그게 좀 들 잘려서 그래요. 이걸로 이 맞게 좀 다듬
어 보세요.”
그에게 작은 줄칼을 넘겨 주었다.
“ 이 양 쪽요?”
“예.”
그는 나를 보지도 않고 줄칼로 조심스레 바닥 판 양쪽을 밀어 댔다. 그러다 이가 맞는지 맞
추어 보기도 하고.
“죽 참 맛있네요.”
“예, 이거 끝나면 다 끝난 거지요?”
“응, 남은 건 가로수 나무들 하고 마무리 작업만 남았죠.”
단 호박죽을 먹으며 그의 모델 만드는 일을 말로 거들고 있었다. 한동안 내방 한쪽을 차지
하고 있던 그의 모델이 이제 마지막 손질만 남아 있었다. 그가 마지막 건물 붙이는걸 거들
고 나서 그에게 전 영현 씨가 끝낸 3차원 작업을 보여주었다.
“어느 부분 마음에 안 드시는 데가 있나 살펴 보세요. 공사 들어 가기 전에 고치게.”
“…”
그는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도 배워 볼까요?”
“전업 하시게요? 그 분야도 만만 하지 않을 텐데.”
웃으며 그를 바라 보았다.
“다 멋있는데 가구가 별로네요.”
3차원 모델 안에는 모든 디테일이 이미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그건 그냥 해 둔 거구요. 뭐 마음에 드는 스타일이라도 따로 봐 두셨어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요?”
나는 책꽂이에서 여러 종류의 실내 디자인이나 가구 서적을 꺼내 왔다.
“원하는 스타일을 한번 찾아 보세요.”
그가 집이 모던 한 만큼 그런 가루 류를 고르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가구는 고풍스러운 종
류를 선택 했다.
“ 이런 거 정말 멋있네요.”
어느 가구 회사에서 만든 선전용 책자에서 그는 한 가구 모델을 가리켰다.
“아 그 집요. 그집 가구 참 비싼데.”
“얼마나요?”
“뭐 장식장에 6인용 식탁 세트 정도가 이천이 좀 넘을 거예요.”
“좀 다르네요. 다른 가구들 하고. 가벼워 보이지 않고.”
“색도 그 톤으로 하시게요?”
“예.이런 풍이 마음에 드네요”
그가 고른 것은 흑갈색의 중후한 가구 들 이었다.
“그래요?.. 그 집은 맞춤 가구 하는 집 이거든요. 그냥 파는 가게가 아니고.”
“그럼 여기 나와 있는 거는요?”
“그런 모델 들이 있다 뭐 그런 정도 지요. 그 집 가구를 하실 거면 내가 이번에 독일 갈
때 설계도를 가지고 가서 이야기를 한번 해야겠네요. 회사는 독일 회사지만 원래 디자인은
이태리에서 하는 회사예요.”
“직접 가 보시게요?”
“어차피 가니까. 또 직접 이야기하면 가격 딜 하는 것도 좀 수월하고. 너무 비싼 집이라.”
“언제 가시는데요?”
“다음주 말에.”
그는 잠시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 보았다.
“저도 같이 가서 결정 하면 안돼요?”
그는 꼼꼼하기도 하고 남에게 중요한 결정을 잘 맞기지 않는 스타일 이기도 한 것 같았다.
“아 그러실 수 있으세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죠. 내가 기재씨 경향을 백프로 아는 것도
아니고. 옆에서 조언 정도는 해 줄 수 있죠.”
그는 계속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가자 마자는 내 볼일이 많아서 좀 그렇구요. 기재씨는 언제 시간이 되는데요?”
“다음 주는 이미 차 있구요. 그 다음 주는 바쁘시다니까 그렇고. 그 다음 주쯤에 갈까요?”
나는 스케쥴이 든 수첩을 펼쳐 들었다.
“목요일 까지는 빠듯하고 금요일은 저녁에 잠깐 들려야 하는 곳이 있지만 그건 뭐 일은 아
니고… 그러고 나면 내 볼 일은 다 끝나는데 그때쯤 기재씨가 오면 우리 볼 일을 볼 수 있겠
네요.”
“그럼 그 주 주말쯤 갈까요?”
“예. 그러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갈게요.”
“그럼 프랑크 푸르트로 가요?”
“가구 회사도 또 내가 세미나 참석 하는 곳도 다 남부 독일 이거든요. 거기서 프랑크 푸르
트를 왔다 갔다 하려면 좀 그러니까 차라리 취리히로 오세요. 거기가 훨씬 가까워요.”
“취리히.. 예 그럼 비행기표 사는 데로 연락을 드릴 께요.”
그는 조그만 종이 쪽지 하나를 찾아내 메모를 하고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런데 독일 가면 포르셰 타고 아우토반 한번 타 볼 수 있어요?”
“나 그거 안 좋아하는데.”
“안 타 보셨어요?”
“해 봤죠. 유학 시절 철이면 철마다 손님들이 들이 닥쳐서 나한테 하자고 한 게 아우토반
타는 일이었는걸요.”
그는 장난스레 즐거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드디어 아우토 반을 타 보는구나.”
“그래도 포르셰는 안돼요. 나 막 인생 풀리기 시작한 사람 이예요. 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포르셰는 안돼요.”
그는 이번에도 깜짝 놀라 실망한 듯 표정을 장난스레 지어 보였다.
“그리고 이거는 3디 작업 한 건데 프로그람 인스탈 하시고 열어 보세요. 한번 집에서 꼼꼼
히 살펴 보시라구요. 나중에라도 뭐 고치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면 말씀하시구요.”
그가 돌아갈 차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구워 놓은 시디를 주었다.
“죽 고마워요.”
“예. 그럼 몸 조리 잘 하세요.”
“큰 병 앓고 있는 것 같네요. 그렇게 이야기 하니까.”
그는 모자를 푹 눌러 쓰며 나에게 웃어 보였다.
그뒤 며칠은 꺼실한 컨디션을 가지고 일들을 정리 하느라 예민 하게 보내고 있
었다. 그는 이리저리 스케쥴을 조정하다 금요일로 티켓을 끊었다고 연락을 해 왔다.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2.
[ 중편 ]
어느 스타의 죽음 5
푸른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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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20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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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에서 땀 냄새가 물씬 풍기네요. 잘 읽고 갑니다.
늦은 시간에 방문 하셨네요
몽당연필님이 땀냄새가 풍긴다는 글... 오늘 저 쉬는 날..^^*...지금부터 읽고 오겠습니다.
아직 안올라왔네요.. ^^ 다음편 보고싶은데 ~~^^ㅋㅋ 그럼 수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