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3일 연중 28주간 화요일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37-41
그때에 37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38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39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41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금이 간 접시와 천하제일미
1984년에 타이완(대만)의 창화시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주교회의가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영광스럽게 평신도로서 그 회의에 참석하여 피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첫날 수도원에 도착하여 저녁식사 시간에 모두에게 배당되어 있는 음식이 담긴 접시는 금이 가고, 적이 떨어지고, 아주 낡아빠진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고물 장수들도 가져가지 않을 형편없는 그릇에 음식이 담겨 나왔습니다. 나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옆에 계신 대주교님까지 깨진 그릇에 음식을 주는지 많이 못마땅하였지만 가난을 사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이니 모든 사람들이 참고 있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에 한국에서 참석하신 분들은 손님 대접을 정말 소홀한 것 같다고 수군대기도 하였습니다.
며칠 후 장개석 총통의 일월담 별장에서 대만의 부총통이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참석자들이 모두 그 별장의 만찬에 참석하였지요. 모든 음식은 최고급이었습니다. 그런데 접시는 수도원보다는 나았지만 금이 가 있었고, 적이 떨어져 있는 것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식사 중에 나는 염치불구하고 옆에 앉아있던 타이완의 장관급 인사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접시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음식이 천하제일미(天下第一味)임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말은 나에게는 충격적이었고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겉모양만 신경 쓰고 살았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와 같은 모습이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고 사는 ‘헛똑똑이’ 같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허장성세'(虛張聲勢)라는 전략이 있습니다. 삼국지에서 많이 보는 전술인데 <성을 텅 비어놓고 깃발을 무수하게 꽂아 놓고, 소리를 잘 지르는 군졸을 많이 배치하고 소리를 크게 질러 많은 군인들이 있는 것처럼 꾸미는 것>을 말하지요. 속은 더럽고 추하면서 겉은 아주 그럴듯하게 꾸며 놓은 모습이 나의 본모습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비단 보에 개똥을 싸다.>라는 말처럼 사악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바리사이들과 다름이 없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더러운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개는 항문, 콧구멍, 치아사이, 배꼽에 있는 때 등을 생각하지만 가장 더럽고 세균이 가장 많은 곳은 발가락 사이라고 합니다. 어느 의사가 여러 개의 멸균 가제를 준비해서 손, 어깨, 가슴, 겨드랑, 사타구니, 항문, 발가락 등에 붙여두었다가 여덟 시간이 지난 다음 떼어서 세균을 세어보았더니 발가락에 있는 세균은 어깨와 겨드랑이 보다 무려 700배나 많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손을 씻어주신 것이 아니라 발을 씻어주셨는지 모릅니다. 가장 더러운 부분은 씻지 않고, 손만 씻으면 된다는 바리사이인들의 겉꾸밈을 질책하시는 예수님은 자선을 행하라는 말씀으로 겉과 속이 함께 아름답기를 바라십니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말처럼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일치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담겨져 가득 차 있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선행을 해야 할까요? 바리사이들과 우리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자선을 베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겉을 만들어주신 주님께서 속도 같이 만들어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측은지심 인지단야(惻隱之心 仁之端也)<동정하는 마음은 인애(仁愛)의 근본이다.>라는 말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모두에게 심어주시고 만들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마음으로 자선을 베풀라는 말씀입니다. 그 동안 사랑의 실천에 게을렀던 마음을 모두 버리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할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5,1-6
형제 여러분,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2 자, 나 바오로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3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다시 분명히 말합니다.
그들은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4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와 인연이 끊겼습니다.
여러분은 은총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5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로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6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축일: 10월 13일 성 에드워드 국왕
St.EDWARD the Confessor
St. Eduardus Ⅱ, C
1003 at Islip, Oxford, England -
5 January 1066; interred at the Abbey of Saint Thomas Becket; body incorrupt
성인은 영국의 에드워드(에드와르도) 왕이었다.
이 왕은 ’착하신 왕’ 로 별명이 붙을 정도로 좋은 일을 많이 했다.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수도원을 재건하였다.
현재까지도 국왕 성 에드와르도 무덤은 그 사원 안에 있다.
성인은 웨스트민스터의 주보성인이며 고아들과 방랑자들의 주보성인이다.
그는 에텔레드 왕과 왕후 엠마의 아들로 잉글랜드의 이슬립에서 태어났다. 그가 아직 어렸을 때에 덴마크 군이 불법 침입해 왕의 일족을 추방했고, 교회와 수도원을 불사르며 약탈을 가행하고, 성직자와 수도자를 학살하며 국민에게 압력을 가했다.
그래서 에드와르도는 어머니와 더불어 어머니 고향인 프랑스의 노르만디에 피신했는데, 신심이 두터운 어머니는 왕자의 마음속에 신덕을 심어 주는 것에 전념했으므로, 그는 어려서부터 경건하게 자라나서 측근자의 입에서 궁중의 천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가 어떤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던 가는 다음 일화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
신하들이 "전하는 언젠가는 칼을 빼서 저 몹쓸 덴마크인들을 소탕하고 신성한 조국을 회복하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하니, 왕자의 대답은 "아니다. 나는 피를 흘려서까지 왕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는 것이다. 즉 그는 그런 국난(國難)도 하느님의 섭리인 줄 알고 일체를 하느님의 뜻에 맡기며, 그분 뜻이 계시면 나라의 회복이 있을 줄 알고 기도했던 것이다.
부친인 국왕은 불행한 가운데 세상을 떠났는데, 얼마 안 되어 영국 국민은 덴마트의 학정에 총궐기해 그들을 소탕하고 태자 에드와르도를 국왕으로 모셨다.
그 장엄 화려한 즉위식이 거행된 때는 바로 1042년 예수 부활 대축일이었다.
젊은 명군(明君)은 신앙은 만선의 원천이라는 신념으로 신하로부터 모든 국민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을 공경하는 정신을 함양하도록 지도, 노력했다.
이리하여 전에 폭도들에게 파괴된 교회와 수도원은 복구되고 성스러운 예식은 엄숙히 거행되었으며, 주교를 고문으로 두어 법전 편찬과 빈민 고아들의 구호사업을 추진하고, 무엇보다도 가혹한 세금에 시달린 국민의 생활안정을 위해 감세(減稅)의 대 영단을 내렸다.
에드와르도는 그때까지 왕비를 맞아들이지 않았고, 또 결혼할 의사도 갖지 않았으나, 중신들의 권유로 독실한 신자 에디타를 왕비로 맞았다. 그들은 서로 합의해 표면상으로는 부부지간이나 사실인즉 남매지간 같이 동정생활을 계속했다. 노르만디에 피신하고 있을 때, 에드와르도는 하느님께서 다시 조국을 회복시키고 자신을 왕위에 올려 주시면 꼭 로마를 순례할 것을 서원했는데, 지금 그 소원이 이루어졌으므로 그는 서약대로 로마로 출발하려 했다. 그러나 국정이 안정되지 못했으니 외유를 할 수 없다는 중신들의 권고에 그는 난처하게 되어,
그 처지를 교황 레오 9세께 전구했던 바, 로마 순례 예산으로 수도원을 세우고 빈민을 구제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회답을 받고, 즉시 웅대한 성당 부속 대수도원을 건립해 왕실의 안식처로 삼았다. 즉 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치세는 하느님께서 축복하셨음인지 지극히 평화로웠다. 사실 그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에드와르도가 무기(武器)를 든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그것은 스코틀랜드 왕 말콤이 역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이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에드와르도는 위로 하느님의 뜻을 받들고, 아래로 국민을 사랑했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짓는 등 그의 신심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대한 큰 사랑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은 영명한 군주로 그를 흠모했으며, 1066년 1월 5일 서거했다.
영국이 가톨릭국이었을 동안은 그에 대한 공경심이 대단하여, 역대 왕들은 즉위식 때 이 성인의 왕관과 망토를 사용함이 상례로 되어 있었다.
에드와르도의 유해는 1220년 10월 13일에 웨스트민스터 대성전에 안치되었다. 그래서 이 날을 그의 축일로 지낸다. 그는 1161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의 문장은 반지이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에드와르도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