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항암치료 안 받을래요
“지금 상태에서 완치 안됩니다.
항암치료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생명을 더 연장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나는 항암치료 안 받을래요.
때가 되면 가는 거죠.
저는 항암치료 받으면서 그렇게 구질구질 더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러시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 심정 이해합니다.
그러면 항암치료 하지 맙시다.”
항암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분들은 생각보다 많다. 완치 목적의 항암치료라면 당연히 받아야겠지만, 완치목적이 아닌 생명연장 목적의 고식적 항암치료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일반적인 세포독성 항암치료는 기본적으로 힘든 치료이다.
사람은 한번 태어난 이상 누구나 한번은 죽을 수 밖에 없다. 이는 인간의 숙명이다. 누구에게나 정해진 시간은 있기 마련이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정해진 시간을 뒤로 더 늦출 것인지, 아니면 순리대로 살다가 때가 되면 임종을 맞을지에 대한 문제는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다.
무리수를 쓰며 항암치료를 하며 억지로 생명연장을 하기보다, 순리대로 살다가 때가 되면 돌아가겠다는 생각 자체가 틀린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 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항암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틀린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80%이상의 환자분들이 나중에 다시 항암치료를 하겠다고 마음이 바뀐다. 특히 암을 진단받을 때 불편한 증상이 없는 분들이 마음이 자주 바뀐다. 나중에 암 때문에 고통스러워지면 다시 항암치료를 하겠다고 마음을 바꾼다. 이럴줄 몰랐다는 것이다.
처음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거부할 때에, 본인의 확고한 인생관과 가치관에 의해서 항암치료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항암치료가 힘들다고 하니 항암치료로 인한 고통을 피해보려고 할 때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
인생을 길게 보지 못하고, 당장 눈 앞에 있는 고통만 외면하고 싶어하면, 사람은 본래 당장 손쉬운 결정을 하게 된다. 고통을 외면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다.
당장 지금 내가 불편한 것이 없으니, 항암치료로 인한 고통은 피하고 싶고, 나중에 어떤 더 큰 고통이 올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이다. 그렇게 당장의 항암치료로 인한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올 암으로 인한 고통은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럴 때 꼭 자연치료 운운 하는 사람들이 꼬이며 돈을 걷어가곤 한다.
기본적으로 암으로 인한 고통은 아직 겪어보지 않은 탓이고, 죽을 때에도 잠자듯이 편안하게 죽을 거라 착각하는 탓이다. 사람들은 항암치료를 안해도 암때문에 고통받는 일 없이 편안하게 잠자듯이 죽을 거라 생각한다. 이는 TV 드라마 때문이다. TV 드라마를 보면 암환자들이 너무 편안하게 돌아가신다.
때로는 진한 화장을 한 채 매우 우아하게 죽는다. 이게 문제다. 항암치료를 하던 안하던 암이 진행되어 임종에 이르게 되면 어느 정도의 고통은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TV 드라마에서 보는 암환자의 죽음은 현실의 죽음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암환자들은 결코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 처럼 우아하게 돌아가시지 않는다. 암으로 인한 고통을 어느 정도는 피할 수가 없기에 힘들게 돌아가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고로, 임종이 가까워 오는 순간 암으로 인한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것이 호스피스완화의료이다)
다시 항암치료 거부하는 환자분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항암치료 그딴 것 안한다고 큰소리 치던 환자들이 암이 커지고 암으로 인한 고통이 생기면 그때 가서 항암치료를 해달라고 한다. 고통을 외면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의사도 난감하다.
“너무 숨이 차서 못견디겠어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암이 너무 나빠졌네요.
암이 커지면서 기관지를 누르니까 암때문에 숨이 차는 것입니다.”
“숨이차서 미치겠어요. 다른 방법이 없나요”
“암을 줄이지 않으면 증상이 해결 안되겠지요.”
“암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종양의 크기를 줄이려면 항암치료를 해야합니다만…”
“선생님, 저 항암치료 할께요.
제발 항암치료좀 해주세요.
항암치료하면 암이 좀 줄어들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긴 하겠지만..
예전에 항암치료 안하기로 이미 다 결정하셨쟎아요.
항암치료 안하신다면서요…
지금와서 왜 그러세요?”
“그때는 이렇게 될줄 몰랐죠.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제발 소원이니까 항암치료 한번만 받게 해주세요.
저 꼭 항암치료 받고 싶어요.”
“안되요. 지금은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항암치료 못해요.
간기능도 안 좋아요.
항암치료는 무척 힘든 치료에요.
항암치료를 하게 되면 항암치료 하다가 돌아가세요.
항암치료 안되요.
호스피스병원에 입원을 좀 합시다.”
“아니… 제가 지금 너무 힘들어서 죽겠거든요.
어떻게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나는 그냥 이렇게 죽으란 이야긴가요?”
“지난번에는 항암치료 없이 삶을 마감해도 괜찮다고 하셨었쟎아요.”
“선생님.. 저 좀 살려주세요.
지금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구요.”
인생을 살다보면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오곤 한다. 이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힘든 항암치료여도 필요하다면 기꺼이 받고 항암치료로 인한 고통을 견뎌낸다. 그렇게 힘들게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결국에는 생명연장과 증상 완화라는 결과를 얻어낸다.
살다보면 내가 아무리 잘하건 못하건 피할 수 없는 고통이나 고난이 오기 마련이다. 살다보면 내 의지와 상관 없이 고통이 온다. 내가 잘못한 것 하나도 없는데 교통사고가 나서 반신불수가 되기도 하고, 내가 잘못한 것 하나도 없는데 암에 걸리기도 한다.
살다보면 갑자기 소나기가 올 수 있다. 소나기는 예고 없이 온다. 아무리 우산을 써도 소나기는 흠뻑 맞게 된다. 그럴 때는 묵묵히 소나기를 맞고 걸어가야한다. 비가온다고 하늘을 원망해봐야 소용없다. 비가와서 앞으로 나아갈수 없다며 가만히 서있어도 안된다. 비를 맞으면서 걸어나가야 한다.
걷다보면 비가 멈추기도 하고, 비를 피할만한 장소가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인생의 고난을 기꺼이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피하지 않다 보면 삶의 내공이라는 것이 생긴다. 인생이 깊이 있어지게 된다. 영원히 쏟아질 것 같은 소나기도 언젠가는 그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고통과 고난을 견디고 나면, 이를 통해 더 성숙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에서 고난은 고난이기도 하지만 고난이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그저 고난 없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인생에 고통이나 고난이 닥치면, 우선 피하려고만 하며 원망할 대상을 찾곤한다. 남탓을 하고 환경 탓을 하고 주변 탓을 하며 원망을 한다. 어떻게 해서든 원망할 대상을 찾아내려 하고, 어떻게 해서든 피할 생각만 한다. 외면하고 피하고 싶어도 그게 잘 안된다. 그러니까 원망을 하며 스스로 부정적 감정에 휘말리며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을 한다.
항암치료를 안하겠다고 호기롭게 이야기하는 환자들을 보면 속으로 생각한다. 과연 그 마음이 변치 않을까? 나중에 암이 나빠져서 고통스러워지면 그때 가서 몸 나빠진다음에 항암치료 받겠다고 하진 않을까? 당장은 항암치료로 인한 고통은 피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암이 커짐으로 인한 인한 고통은 피할 수 없을텐데… 작은 고난도 피하려는 사람이 나중에 더 큰 고난은 감당할수 있을까? 어디 그 마음 변하지 않는지 두고 봅시다.
물론 마음이 변한다고 환자분들을 비난하진 않는다. 그들도 그냥 고통을 피하고 싶은 평범한 우리네 이웃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왠지 마음이 변할 것 같은 사람은 외래를 짧은 간격으로 잡는다. 항암치료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몸 컨디션 확 나빠지기 전에 항암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고통은 피한다고 다 피해지지 않는다. 인생에는 피할수 없는 고통이라는 것이 반드시…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삶에서 고난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내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절에 가서 금칠해 놓은 나무토막에 큰 돈을 내고 병 없게 해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보면 부처님께서 기절하실 것이다)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고통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눈앞만 바라보지 말고, 인생은 길게 봐야만 하는 법이다.
[출처] 저는 항암치료 안 받을래요|작성자 bhum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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