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천 버들개지
입춘을 하루 앞둔 이월 초순 일요일이다. 포근한 날씨 속에 한동안 지속된 겨울 가뭄을 해갈시켜 준 비가 촉촉이 내린 이튿날이다. 입춘이 지나면 주중 한반도는 역대급 한파가 닥쳐 수은주가 빙점 아래 뚝 떨어지는 시베리아발 북극의 찬 공기가 한동안 머문다는 예보를 접했다. 여기저기 봄기운이 번지고 있을지라도 기상은 카오스 세계인지라 봄이 가까이 왔다고 단언할 수가 없다.
아침 식수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서니 비가 그친 후 날씨가 풀려 내일모레 강추위가 엄습해 올 거라고 믿기지 않은 영상의 날씨였다. 동네 한 바퀴 정도로 가볍게 산책을 나선 기분으로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걸어 퇴촌교삼거리로 나갔다. 자투리 쌈지공원 산수유 나뭇가지는 꽃눈이 부풀어져 몽글해져 갔다. 수변 산책로 들머리에서 창원천 천변으로 내려섰다.
여름 철새로 겨울을 나는 중대백로는 물웅덩이에서 길쭉한 목을 빼고 먹잇감을 찾았다. 다른 구역에는 흰뺨검둥오리 한 쌍이 주둥이를 밀고 다니면서 먹이활동을 하고 곁에는 쇠오리들이 오글거려 놀았다. 흰뺨검둥오리는 겨울 철새로 가을에 우리 지역으로 날아온 녀석도 있지만 여름에도 떠나지 않고 머물기도 했다. 덩치가 작은 쇠오리는 봄이 되면 북녘으로 갔다가 다시 올 테다.
살얼음이 얼다 녹은 천변 가장자리 버들개지는 솜털을 감싼 꽃눈이 부풀어감이 눈에 띄어 가까이 다가가 피사체 삼았다. 얼핏 봐 잎눈처럼 보여도 잎보다 먼저 피우는 꽃눈이 부풀면서 외피를 감싼 솜털이 보송보송해졌다. 버들개지가 부풀면 봄이 가까워짐을 알려주는 지표식물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내가 생활 속에 남기는 시조 글감으로 삼아 한 수 읊어도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징검다리를 두세 군데 지난 천변에서 창이대로와 가까운 건너편으로 갔다. 양지켠에서 산책로를 따라 걸어 창이대로를 건너 사림동 주택지 한 골목으로 들었다. 고급 주택이 즐비한 어느 집 영춘화를 살피니 담장에 드리운 잎줄기는 꽃눈이 부풀기는 해도 꽃잎은 보이지 않아 겨울잠을 깨지 않았더랬다. 수형이 잘 다듬어진 홍매화도 꽃망울이 부풀어도 꽃잎을 펼치기는 이른 때였다.
발길을 돌려 창원의 집으로 가니 둘러친 토담을 배경으로 자란 홍매화는 자잘한 망울이 부풀어 붉은 기운이 비쳤다. 열흘쯤 지나면 꽃잎으로 벙글어질 낌새를 보였다. 산수유도 꽃망울만 봉긋했지 노란 꽃 수술은 볼 수 없었다. 한옥 경내에서 나와 골목을 지나니 애기동백은 선홍색 꽃잎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봉림동 주택지 골목에서 창원 컨트리클럽으로 가는 진입로 근처로 갔다.
아파트단지와 함께 조성된 한들공원에서 봉림사지로 가는 들머리 분재원을 찾아갔다. 예전 자연마을 ‘안담’은 사라지고 공원이 되어도 산기슭에 분재원은 남겨져 있었다. 울타리와 경계에 드리운 영춘화 줄기에는 노란 꽃잎이 예닐곱 송이 달려 반가웠다. 보름께 전 다녀갈 때는 한두 송이 보였는데 그새 몇 송이가 더 피어났다. 분재원으로 들어 뜰에 자라는 멋진 운룡매를 완상했다.
분재 화분이 아닌 정원수로 자라는 운룡매는 가지가 용틀임하듯 옹글고 비틀어져 붙여진 이름이었다. 내 키 높이보다 높게 자란 관목으로 수형이 잘 잡혀 관상 가치가 좋은데 분에 담겨 옮겨질 나무는 아니었다. 양지바른 곳인지라 별도 보온하지 않은 노천에서도 꽃망울이 부풀어져 꽃잎을 펼치기 시작했다. 며칠 뒤 닥칠 추위는 전혀 예감하지 못하고 매향은 그윽하게 번져나갔다.
운룡매를 빙글 돌면서 살피고 한들공원으로 나와 쉼터 의자에서 아까 창원 천변 버들개지로 시조를 한 수 남기니 운룡매가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봄 오는 길목에서 창원천 가장자리 / 아직은 겨울비로 살얼음 얼다 녹아 / 몇 가닥 버들개지는 수액 올라 윤난다 // 묵은 잎 떨군 이후 부름켜 붙은 꽃눈 / 겨우내 용을 쓰고 망울로 뚜렷해져 / 나날이 달라져 보인 보얀 솜털 부푼다” 2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