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선교장(船橋莊)의 유래
강릉 선교장(국가민속문화유산)은 조선 시대 양반 가옥 중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와 보존 상태를 자랑하는 대저택입니다. 그 이름에 얽힌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이름의 유래: '배다리'에서 온 선교(船橋)
선교장의 이름은 과거 이 집이 위치했던 지리적 환경과 관련이 깊습니다.
배다리 마을: 예전에는 지금보다 **경포호(鏡浦湖)**의 면적이 훨씬 넓어서 선교장 앞까지 호수 물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건너다닌 다리: 당시 사람들은 이 호수 물길을 가로지르기 위해 배를 이어서 다리처럼 만들어 건너다녔다고 합니다.
선교(船橋): '배 선(船)'자와 '다리 교(橋)'자를 써서 **'배로 만든 다리'**라는 뜻이 됩니다.
즉, **배를 타고 건너다니던 곳에 있는 장원(莊園)**이라는 의미로 **'선교장(船橋莊)'**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2. 건립 배경 및 역사
창건자: 조선 **효령대군(세종대왕의 형)**의 11대손인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 1692~1781)**이 처음 지었습니다.
건립 시기: 1703년(숙종 29)에 처음 안채(주옥)를 짓기 시작하여, 이후 약 10대에 걸쳐 증축과 보수를 거듭하며 오늘날의 대규모 저택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집터 유래: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내번의 어머니 안동 권씨가 집터를 찾던 중 족제비 떼를 쫓아와 발견한 명당(明堂) 터라고 합니다.
선교장은 조선 후기 사대부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주택이며, 특히 주위에 아름다운 연못과 정자(활래정)를 갖추고 있어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