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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축복은 어떻게?
2014.5.4. 서울에 가있는 동안, 서초구 태평로2길 24에 위치한 예인교회(담임목사 최성욱)에서 어린이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부모된 자, 교육자로서 어린이주일예배의 말씀이 은혜로 마음을 적셨습니다. 예배 후 1972년도 "산까치" 가수였던 최안순 사모님과 최성욱목사님이 함께 부른 찬양곡 CD를 선물받았는데 차 안에서 듣고 있습니다. "열매 맺는 제자들"을 표방한 예인교회가 주의 뜻에 합한 역사, 섬김과 나눔의 사랑 실천을 통해 21세기 한국과 전 세계 미전도 종족의 영혼 추수를 앞당길 줄 믿습니다. ^^
예배 순서 중 어린이들의 찬양
예인교회 홈페이지(http://www.yein21.org/)
자녀를 어떻게 축복해야 합니까?
13절.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절.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절.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오늘은 옆 사람을 보고 이렇게 인사할게요.
어린이를 축복하세요!
오늘이 무슨 주일이죠?
어린이 주일이죠? 내일이 어린이날이구요.
어린아이를 자녀로 두거나 손자 손주로 또 조카로 두신 분들은 오늘 설교가 아주 실감나시겠고, 어린이가 없는 가정은 조금 거리가 있겠지만 그래도 내 주위에 있는 어린이들을 어떤 눈으로 보고 어떻게 대해줘야 하느냐?
오늘 이걸 우리 주님으로부터 똑똑히 듣길 원합니다.
우선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뭐냐?
어린이를 축복하는 일입니다. 아멘?
할 수만 있으면 많이 축복해 주세요. 꼭 그렇게 하세요. 아멘?
그런데 어떻게 축복해야 하죠?
1. 존귀하게 여겨 주세요.
어린이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겨야 해요.
어린이날을 제정하도록 강력하게 주장한 분, 어린 아이를 가리켜 제일 처음 ‘어린이’ 라고 부른 분이 소파 방정환 선생이죠?
그런데 왜 어린아이를 보고 어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 그 의미를 들어보니까 ‘어린이’ 라는 말이 그냥 보통 말이 아니고 존댓말, 높임말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린아이를 ‘어리신 분’ 이렇게 높인 말이 ‘어린이’ 라는 겁니다.
그리구요. 방정환 선생께서 쓴 ‘어린이 예찬’ 을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어린이가 잠을 잔다.
내 무릎 앞에 편안히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다.
볕 좋은 첫여름 조용한 오후다.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을 모아서 그 중 고요한 것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평화라는 평화 중에 그 중 훌륭한 평화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아니 그래도 나는 이 고요한, 자는 얼굴을 잘 말하지 못하였다.
이 세상의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은 모두 이 얼굴에서 우러나는 것 같고,
이 세상의 평화라는 평화는 모두 이 얼굴에서 우러나는 듯싶게 어린이의 잠자는 얼굴은 고고하고 평화스럽다.
고운 나비의 날개, 비단 같은 꽃잎, 아니 아니, 이 세상에 곱고 보드랍다는 아무것으로도 형용할 수가 없이 보드랍고 고운, 이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라.
그 서늘한 두 눈을 가볍게 감고 이렇게 귀를 기울여야 들릴 만치 가늘게 코를 골면서 편안히 잠자는 이 좋은 얼굴을 들여다보라.
우리가 종래에 생각해 오던 하나님의 얼굴을 여기서 발견하게 된다.
어느 구석에 먼지만큼이나 더러운 티가 있느냐?
어느 곳에 우리가 싫어할 한 가지 반 가지나 있느냐?
죄 많은 세상에 나서 죄를 모르고, 하늘 뜻 그대로의 산 하나님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무 꾀도 갖지 않는다. 아무 획책도 모른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먹어서 부르면 웃고 즐긴다. 싫으면 찡그리고, 아프면 울고, 거기에 무슨 꾸밈이 있느냐?
시퍼런 칼을 들고 협박하여도,
맞아서 아프기까지는 벙글벙글 웃으며 대하는 것이다. 이 넓은 세상에 오직 이 이가 있을 뿐이다.
오오! 어린이는 지금 내 무릎 위에서 잠을 잔다.
더할 수 없는 참됨과 더할 수 없는 착함과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갖추고,
그 위에 또 위대한 창조의 힘까지 갖추어 가진,
어린 하나님이 편안하게도 고요한 잠을 잔다.
옆에서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생각이 다른 번추한 곳에 미칠 틈을 주지 않고 고결하게 순화시켜 준다.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위엄을 가지고 곱게 순화시켜 준다.
나는 지금 성당에 들어간 이상의 경건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는 얼굴에 예배하고 있다.
여러분, 방정환 선생은 천도교 신자로 기독교인도 아닌데 뭐라고 했죠?
어린 아이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고 고백하고 있죠?
첫째, 고요하고 평화롭다고 했고
둘째, 곱고 부드럽다고 했고
셋째, 어느 구석에도 먼지만큼이나 더러운 티가 없고, 싫어할만한 게 없고, 교활한 꾀나 획책도 모르는 꾸밈이 없는 하나님이며,
넷째, 더할 수 없는 참됨과 착함과 아름다움 곧 진선미를 갖춘 어린 하나님이 바로 ‘어린이’ 라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 주님 역시 어린아이를 극찬하시는 걸 볼 수 있어요.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을 주님의 손을 얹는 축복을 받으려고 데리고 왔는데 제자들이 가로 막았어요.
제자들에게 아이들은 자신의 일을 성가시게 하는 그냥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어요.
그러자 주님이 분노하시며 말씀했어요.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이런 자의 것이다.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지 않는 자는 하늘나라에는 들어올 생각을 말아라”
여러분, 잘 보세요.
주님이 보신 어린이의 모습, 이게 바로 천국 백성의 모습이었다는 거예요.
주님 말씀을 그대로 한 번 따라해 볼까요?
어린아이는 / 천국 백성의 표본이다! / 아멘?
이제부터 어린아이들을 대하고 바라볼 때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천국의 자녀로 보시기 바랍니다. 아멘?
이렇게 내 자녀를 존귀하게 여기고 소중히 여겨주세요.
그러면 그 자녀가 정말 천국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아멘?
또 어린이를 어떻게 축복해야 할까요?
2. 수시로 사랑을 표시해 주세요.
수시로 사랑을 표시할 대상이 어디 어린이 뿐이겠어요? 그러나 그래도 어린 아이들에게는 좀 더 구체적으로, 좀 더 분명하게 사랑을 표시해 줘야 한다는 거예요.
어린 시절에 부모의 사랑을 먹지 않고 자란 사람들에게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는 걸 다 아시죠?
만 24개월 이전에 엄마의 끝없는 사랑의 언어를 계속 들어야 뇌 앞 부분의 사랑을 감지하고 나눠줄 때 작용할 뇌의 부분이 발달하는데 이 뇌언어 사진을 보세요.
왼쪽이 24개월 이전에 부모의 풍성한 사랑을 받은 자의 뇌사진이고 오른쪽은 24개월 이전에 부모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의 뇌인데요. 완전히 색깔이 다르고 발달해야 할 부분이 그대로 있죠?
사이코패스들을 보세요. 수 십명을 살해하고도 현장검증할 때 히죽히죽 웃거나 전혀 뉘우침이 없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재현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예요. 이들에게는 그런 걸 느끼고 아파할 뇌가 처음부터 없었으니까요.
이번 안산 희생자 유족들을 위로 방문한 박대통령도 이게 너무 아쉬웠어요. 너무 안타까운 게 얼굴이 너무 차가운 거예요. 그래도 여성 대통령인데 유족들이 통곡할 때나 가까스로 가족 다 잃고 혼자 살아난 5살 여자 아이, 한 번만 끌어안고 눈물 한 번만 푹 쏟았으면 어디서 “대통령 사과하라!” 는 말이 나오겠어요?
어디서 ‘전국 촛불시위’ 란 말이 나올 수 있겠어요?
그런데 너무 냉정하고 차니까...
사실 이 분도 깊은 상처를 치유 받아야 할 환자잖아요?
어린 시절에 너무 큰일을 연거푸 겪다 보니까 냉정함과 엄격함, 원리 원칙 밖에는 모르는 그런 인생이 된 거죠...
그런데 우리 주님을 보세요. 제자들에게 꾸중을 듣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아이를 주님이 어떻게 하셨어요?
“천국이 바로 너의 것이다” 말씀하시고 곧바로 그 어린아이를 끌어 안으셨죠?
주님 팔에 들어 올려져 안긴 이 아이, 얼마나 좋았을까요?
평생 동안 수많은 사랑보다도 이 한 번의 안긴 추억, 이것 하나가 이 아이에게는 가장 큰 감동으로, 가장 큰 감격으로 덮여 있었겠죠?
여러분, 할 수만 있으면 아이들을, 자녀들을 많이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이뿐 만일까요?
어른도 자주 안아줘야 해요.
징그럽게 안아주라는 게 아니구요.
어깨 하나라도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터치해 줘야 합니다.
제가 언젠가도 말씀했죠?
저는 우리 주일 예배에 나온 분들은 어찌됐든 손 한 번이라도 어깨 한 번이라도 목사인 제 터치를 받고 가시게 하려고 기를 쓴다구요. 왜요?
인간은 어린아이서부터 노인들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스트로크 본능, 누군가에게 어깨를 두드림 받아야 안정을 찾는 본능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할 수만 있으면 모든 교인들을 일주일에 한 번은 터치해 보려고 기를 씁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피해 가는 분이 간혹 있어요.
목사를 피해가지 마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이건 우리 가정 안에서도 너무 중요해요.
아빠가 아들딸을 안아 주는 것, 그들에게 입술로 사랑한다고 고백해 주는 것, 이건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한 거예요.
족집게 과외 선생에게 수천만 원짜리 과외를 시키는 것보다 한 번의 안아줌이 내 아이들에게 더 큰 힘이 되고 살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돈도 안 들고 할 수 있는 일을 왜 안 하세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게임에만 몰두하고 점점 더 삭막해져 가는 거예요.
이건 아이의 문제가 아니고 부모의 문제인 거예요.
외교관의 직업을 가진 한 가장이 있었어요. 늘 일에 쫓기고 외국 출장도 잦고 모든 일이 너무 바빠서, 그래서 가정과 아이들에게 신경을 별로 쓰지 못 했죠.
어느 날 모처럼 아무 일도 없는 날을 만나서 속으로 혼자 생각했어요.
‘오늘은 하루 종일 밀린 잠이나 실컷 자야지......’
그런데 아내가 한 마디 하는 거예요.
“그러지 말고 아이들과 바람이나 쐬고 와요”
아내 등살에 집에 있다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아이들과 같이 낚시를 갔어요.
아이들이 어찌나 뛰면서 즐거워하는지......
그런데요. 집으로 돌아와서 외교관 아빠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어요.
‘오늘은 아이들과 낚시를 다녀왔다. 소중한 하루를 낭비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아들 중에 하나가 후에 훌륭한 역사가가 된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은 똑같은 날, 일기를 뭐라고 썼는지 아세요?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다녀왔다. 내 일생에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다.’
여러분, 잘 들으셨죠?
수만 마디 말보다도 한 번의 동행이, 한 번의 터치가 얼마나 아이들에게 큰 힘을 발휘하는지? 다시 한 번 명심하세요!
여러분, 지금 내 곁에, 아주 소중한 이웃이 있어요.
어린이들입니다.
훗날에 크게 될 새싹들입니다.
훗날에 이 땅 역사를 움직여 갈 일꾼들이예요.
그들에게 열심히 사랑의 고백과 표현을 해주세요.
그들에게 사랑의 감동을 느끼게 해 주세요.
그러면 이 땅의 미래는 더 푸근한 사랑의 세상으로 반드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또 어린이를 어떻게 축복해야 할까요?
3. 능력을 부어 주세요.
한 번 따라 하실까요?
축복은 /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것을 / 내 말 속에 / 이루게 하는 / 하나님의 능력을 담아 / 전달하는 것이다! 아멘?
그래요. 축복은 주님이 하시려는 걸 내가 대신하는 거예요.
그분이 이루시고자 하는 걸 내가 손을 들어 축복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거예요.
주님이 아이를 끌어안기만 하셨나요?
끌어안고 손도 얹으셨죠? 그리고 축복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어요.
주님 안에 있는 능력을 어린 아이에게 부어주신 거예요.
주님 안에 있는 전능자의 능력을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부어주신 거예요.
보세요. 얼마나 중요한 본을 보이신 거예요?
우리에게도 이렇게 하라고 직접 보여주신 거였어요.
곤충 가운데 개미를 보세요. 가느다란 허리로 하루 종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일을 하는데 그 작은 체구로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먹이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면 감동적이예요.
곤충 학자가 직접 실험을 해서 무게를 달아봤더니 개미는 자기 몸무게의 무려 60배나 되는 걸 끌고 간다는 거예요.
어떻게 작은 개미 한 마리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그 능력을 개미에게 주셨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피조물인 개미에게 주신 훌륭한 선물이예요.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이 정도의 개미하고는 비교도 안 될 더 큰 힘과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았습니다. 아멘?
그래서 바울사도는 뭐라고 선포했어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아멘?
특별히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있어요.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흉내도 못 낼 능력이 있죠?
여러분, 우리에게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 전능자의 능력이 있어요.
아담을 만드실 때 흙으로 빚어놓고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집어넣으신 후에 마지막으로 하신 일이 뭐였어요?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셨죠?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이 아담 안에 불어 넣어졌을 때 아담이 살아있는 생명이 되어 일어섰죠?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대단한 사람이 된 거예요.
그러나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범죄 한 후에 아담의 영이 죽어버렸을 때 그 능력도 사라졌어요.
그래서 아담 이후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이 죽은 채로, 하나님의 능력도 사라진 채로 태어납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언제 다시 살아납니까?
내가 주님을 영접했을 때! 아멘?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됐을 때! 아멘?
그 순간에 내 영이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살아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내 속에서 다시 살아 역사하는 거예요. 아멘?
그래서요.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아멘?
우리는 이걸 사용해야 해요.
이 능력을 내가 사용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다음 세대에게 이 능력을 부어줘야 해요. 아멘?
당장 내 자녀를 향해 이렇게 말해 주세요.
“네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 널 통해 우리 가족이 변화되고 우리 민족이 변할 거야 널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거야! ” 아멘?
그래서 우리 부모들은 이제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해요.
칼럼니스트 반 브릿 이라는 분이 쓴 ‘부모의 기도’ 예요. 제가 읽어드릴 테니까 조용히 눈을 감아 보세요.
“오 하나님, 저로 하여금 자녀들에게 훌륭한 부모가 되게 하옵소서.
제 자녀를 이해하게 하시되 그들이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듣게 하시고
그들이 묻는 말에 부드럽게 대답하게 하옵소서.
그들의 생각을 가로막거나 꾸짖지 말게 하시고
그들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거나 실수할 때에 비웃지 않게 하옵소서.
그리고 제 자신이 자신의 만족이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그들을 꾸짖지 않게 하옵소서.
매순간마다 저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정직함이 옳은 것을 알려줄 수 있게 하옵소서.
제가 기분이 언짢았을 때 입술을 지켜주시고 그들이 아직은 어리다는 것과
그들이 어른과 같이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들 자신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회를 허락할 수 있도록 저에게 참을성을 주시고 그들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게 하옵소서.
여러분, 오늘 이 예배가 끝나면서부터 당장 내가 만나는 모든 아이들을 축복해 주세요!
할 수만 있으면 주님처럼 안아주고 손을 얹어 축복해 주세요!
우리 가정의 자녀들도 축복해 주세요!
새로운 창조의 변화가 자와 여러분, 우리 모두의 축복을 통해서 강력하게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찬양과 통성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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