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나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무간지옥이 될 수도 있고
한 생각 돌이킴으로써 그 무간지옥이 극락정토가 될 수도 있는 것이올시다.
이것이 불법인 것이니 무엇이 불법이 어렵습니까.
다못 바른 스승만나기가 어렵고, 바른 스승 만나가지고도 철저하게 공부해나가기가 어려운 것뿐이지,
불법 자체가 멀고 깊고 어려운 것만이 아닌 것입니다.
.그 법(法)과,
자기가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해서 또 자기의 제자에게
전수하고, 그 제자는 또 그 법에 의해서 도를 닦고
그 법에 의해서 깨달라 그 경험을 합쳐서 또 제자에게
전수허고 해서 삼천 년을 내려왔습니다
그 방법이 무조건 하고, 거두절미하고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어떠한 근심걱정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도 그 당하는 그것을 버리고 헐라고 허지
말고 그 생각으로 바로 되돌려서 ‘이 뭣고?’ 뿐인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모기란 놈이
쇠로된 황소 등어리에 입부리를 쳐 박고 황소의 몸에서 피를 빨아 먹을랴고 허는 경우와 같애서, ‘내가 저 무쇠로 지어진 소에다가 이 입 침을 박으면
박어 질 것인가 말 것인가? 도저히 안 되겠지?’
이러헌 망설임 없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를 막설(莫說)하고 이 몸띵이 채
그 무쇠로 된 황소에 몸에다가 쳐 박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참선을 허는 사람은
‘내가 말세에 태어났는데’, ‘나는 아무 경도 많이 보지
못했는데’, ‘나는 법문도 얼마 듣지를 못했는데’,
‘더군다나 나는 여잔데’, ‘나는 사회에서 사는 속인인데
스님네도 허기가 어려운 참선을 해서 될까? 안되겠지?
그러나 좋다니까 한번 해보까?’
이러헌 망설임은 이 참선에 있어서는 대금물입니다.
근기 여하도 따지지 말고,
남녀노소도 따지지 말고,
빈부귀천도 따지지 말고,
유식무식도 따지지 말고,
거두절미하고, ‘이 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마치 팔십묵은 노인 할머니가
외아들이 어디에 가서 소식이 없으니,
자나 깨나 아들생각, 밥상을 받아도 아들생각,
맛있는 떡을 봐도 아들생각, 어디서 젊은 사람을 봐도
아들 생각, 무슨 맛있는 과일을 봐도 아들생각, 먼 산을
바라봐도 아들생각, 구름을 봐도 아들생각, 달을 봐도
아들생각,
일체 것을 삼라만상을 보고 들어도 참 아들 생각뿐인 것처럼, 내가 나를 찾는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그러헌 간절한 마음으로 ‘이 뭣고?’
아들은 언젠가 돌아오면 그만이고,
돌아오지 안 해도, 설사 돌아왔다 하더라도 얼마 안가면 사이별(死離別) 할 걸, 돌아와 봤자 사실은 별것도 아닌 것인데
그런 그 아들은 그렇게 오매불망으로 찾으면서,
무량겁으로부터서 잃어버린 나, 참나는 그 아들 천 개
보다도 더 소중헌 것이 아니겠어요?
아들이 아무리 효자라 하더라도 내 대신 죽어줄 수는
없는 것이고,
내가 지옥에 떨어져서 고(苦)를 받고 있는, 있을 때
내 대신 지옥고를 받아주지는 못하는 거고.
우리는 나를 내가 찾어야 됩니다.
부처님도 내 대신 고를 받아줄 수 없는 것이고
내 대신 부처님이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다못 그 길만, 방법만을 가리켜 주실 수 있을 뿐이지
나대신 어찌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찾어야 합니다. ‘이 뭣고?’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