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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스카이 스포츠는 프리미어리그를 만들었나?
스카이 방송사가 EPL 성공 비하인드의 이유일까?
(25년의 프리미어 리그 축구, 이것이 Sky방송사가 프리미어 리그를 완전히 바꾼 방법입니다! 빅 4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아스날, 첼시 와 같은 팀들이 함께 축구계에서 가장 큰 브랜드 중 하나를 만들기 위해 스카이 방송사와 함께 노력하면서 자신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기 프리미어 리그와 스카이방송사의 25년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상상해보세요. 이와 같은 것들을 할 수 없는 주말을 말이죠.
제프 스텔링의 사커 새터데이 그리고 또 슈퍼 선데이 더블헤더 경기들이 없는 주말이 되고, 그것들이 전혀 가치가 없어지는 주말을 말이죠.
참고. 바로 이 사람이 스카이스포츠뉴스채널에서 사커 새터데이 프로그램에서 경기 스코어를 알려주는
저널리스트 제프 스텔링 Jeff Stelling 입니다.
에당 아자르, 폴 포그바, 세르히오 아게로가 프리미어리그에 없다면 어떨까요?
글쎄요.. 스카이스포츠 중계 방송 이전 시대에는 정확히 어땠을까요?
70년대 잉글랜드의 축구는
리버풀, 노팅험 포레스트, 아스톤 빌라 팀에 의해 줄줄이 6년 연속으로 유럽을 정복하고 제패하는 장면의 주인공이 되는 영광스러운 날들을 목격하며 중흥기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향후 10년간 대침체기를 겪었고, 이 나라의 많은 나머지 사람들이 클럽을 떠나게 되었고, 팬들은 돈에 묶여서 클럽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마치 축구를 불구로 만들게 되어버렸습니다. (훌리건의 난동, 헤이젤 참사, 힐스브로 참사 등으로)
잉글랜드 클럽들은 서서히 이탈리아와 스페인 클럽들에 확실히 뒤처지기 시작했습니다.
잉글랜드의 전체 중의 톱 탤런트 재능들은 외국으로 트레이드되려고 시도했으며,
경기장의 시설들이 낙후되고 망가지고, 훌리거니즘(난동팬)은 커지게 되면서 경기 관람을 제한하게 되었고 입장 게이트가 붕괴되기 쉬워지며 엉망이 되고 경기장 출석률이 떨어지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 시기 동안 루퍼트 머독(언론재벌)과 스카이 방송 그룹에 있는 이 남자의 뛰어난 팀은
축구를 다시 대중들에게 돌려주고 부활시키기 위해 게임의 구조를 역전시키기 위한 대단히 정교하고 원대한 계획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1992년 2월 20일에 일어난 일입니다.
잉글랜드 최고 수준 리그의 104년 역사를 끝으로, 집단적으로 잉글랜드 1부리그 상위 22개 클럽들은 풋볼리그를 떠나는 것을 서명했습니다.
티비 앵커우먼 "BSkyB 방송채널은 영국 축구의 새로운 프리미어 리그의 텔레비전 생중계에 대한 독점권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프리미어리그는 FA(축구협회) 풋볼리그를 떠나면서 그들 고유의 방송권과 스폰서쉽 계약을 구성할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되었고 FA(축구협회) 풋볼리그로부터 상업적인 독립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스포츠를 보는 팬들에게 시청료를 내도록 하는 것은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축구의 퀄리티와 서비스 제공의 조합과 스카이로켓 위성방송의 프리미어리그의 가치에 대한 스카이 방송사의 마케팅 전략은 맞아떨어졌습니다.
새로운 TV권리 거래는 5년에 걸쳐 1억9천1백만파운드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이는 4천4백만파운드가 허용하는 1988년의 가치와 비교되며,
잉글랜드 클럽들은 다시 한번 대륙을 가로질러 경쟁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오늘날 TV권리 거래는 각 게임 자체가 51억 3천6백만 파운드의 엄청난 가격대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는 각 경기당 그것이 1천만 파운드의 비용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 시즌에 스카이 방송사는 단독으로 126 경기의 프리미어리그 게임과 127 경기의 풋볼 리그 게임을 보여주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청되고 있으며, 전 세계 212개의 국가에서 방송되고 있으며, 6억 4천 3백의 가정집에서 시청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 70억 인구의 절반 이상이 넘는 엄청나게 무한한 잠재적인 시청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경기 일정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만약 당신이 일요일에 낮 12시 45분 경기의 킥오프를 하는 뉴캐슬(잉글랜드 동북부 지역)과의 경기를 보려면 이를 위해서 오전 6시에 기차를 타야만 하는 것이다. 꽤 솔직히 말해서 우리(잉글랜드축구팬들)는 그들(전세계 프리미어리그 시청자)이 없다면 이렇게 경기 보러 가는 것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SYa-FZhjlFM
원문 자막
imagine weekend's without being able to do this. no soccer Saturday Jeff Stelling and again no Super Sunday doubleheader
they're not really worth it at all and
what about the Premier League without Eden hazard, Paul Pogba, Sergio aguero. well... before sky came around
is exactly how it was
[Music]
in the 70s football in England was
witnessing its glory days with the likes
of Liverpool Nottingham Forest and Aston
Villa conquering the scene dominating
Europe for six consecutive seasons in a
row. into the next decade and recession
had crippled football like it had much
of the rest of the country leaving clubs
and fans strapped for cash. English clubs
were slowly full behind the likes of
Italy and Spain and our top talent
from all try their trade abroad. stadiums woods decaying and hooliganism was
becoming its deterrent for the matters to attend games meaning attendance gates were crumbling. in the meantime Rupert
Murdoch and his crack team at Sky
were looking for a decadent plan to overthrow the structure of the game looking to bring football back to the
masses and that's exactly what happened on February 20th 1992 as the first
division clubs resigned from the Football League on mass signaling the
end of the hundred and four year history of English top-flight.
“BSkyB won the exclusive rights to live television coverage of the English football's new Premier League." the new Premier League would have commercial independence from the Football League FA leaving it free to organize its own broadcast and sponsorship agreement.
at the time charging fans to watch
televised sport was a relatively new
concept but a combination of the quality
of football and offer and slides
marketing strategy for the value of the Premier League skyrocket. the new TV rights deal was worth a hundred and ninety one million pound over five years which compared to that of 1988 which was just 44 million pound would allow
English clubs to compete across the continent once again. nowadays the TV right deal is worth a staggering five point one three six (5.136) billion pounds meaning each game cost ten million pounds itself. last season alone Sky showed a hundred and twenty six Premier League games and a hundred and twenty seven Football League games. the Premier League is now the most watched for in the whole world being broadcast in 212 territories the 643 million home a potential audience infinitely seven billion that is over half the world population and whilst they might move the fixtures which means you have to take a 6:00 a.m. train for a 12:45 p.m. kickoff against Newcastle on a Sunday quite frankly we can't do that without them.
번역글 재정리
상상해보세요. 이와 같은 것들을 할 수 없는 주말을 말이죠.
제프 스텔링의 사커 새터데이 그리고 또 슈퍼 선데이 더블헤더 경기들이 없는 주말이 되고, 그것들이 전혀 가치가 없어지는 주말을 말이죠.
에당 아자르, 폴 포그바, 세르히오 아게로가 프리미어리그에 없다면 어떨까요?
글쎄요.. 스카이스포츠 중계 방송 이전 시대에는 정확히 어땠을까요?
[음악]
70년대 잉글랜드의 축구는
리버풀, 노팅험 포레스트, 아스톤 빌라 팀에 의해 줄줄이 6년 연속으로 유럽을 정복하고 제패하는 장면의 주인공이 되는 영광스러운 날들을 목격하며 중흥기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향후 10년간 대침체기를 겪었고, 이 나라의 많은 나머지 사람들이 클럽을 떠나게 되었고, 팬들은 돈에 묶여서 클럽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마치 축구를 불구로 만들게 되어버렸습니다. (훌리건의 난동, 헤이젤 참사, 힐스브로 참사 등으로)
잉글랜드 클럽들은 서서히 이탈리아와 스페인 클럽들에 확실히 뒤처지기 시작했습니다.
잉글랜드의 전체 중의 톱 탤런트 재능들은 외국으로 트레이드되려고 시도했으며,
경기장의 시설들이 낙후되고 망가지고, 훌리거니즘(난동팬)은 커지게 되면서 경기 관람을 제한하게 되었고 입장 게이트가 붕괴되기 쉬워지며 엉망이 되고 경기장 출석률이 떨어지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 시기 동안 루퍼트 머독(언론재벌)과 스카이 방송 그룹에 있는 이 남자의 뛰어난 팀은
축구를 다시 대중들에게 돌려주고 부활시키기 위해 게임의 구조를 역전시키기 위한 대단히 정교하고 원대한 계획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1992년 2월 20일에 일어난 일입니다.
잉글랜드 최고 수준 리그의 104년 역사를 끝으로, 집단적으로 잉글랜드 1부리그 상위 22개 클럽들은 풋볼리그를 떠나는 것을 서명했습니다.
티비 앵커우먼 "BSkyB 방송채널은 영국 축구의 새로운 프리미어 리그의 텔레비전 생중계에 대한 독점권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프리미어리그는 FA(축구협회) 풋볼리그를 떠나면서 그들 고유의 방송권과 스폰서쉽 계약을 구성할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되었고 FA(축구협회) 풋볼리그로부터 상업적인 독립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스포츠를 보는 팬들에게 시청료를 내도록 하는 것은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축구의 퀄리티와 서비스 제공의 조합과 스카이로켓 위성방송의 프리미어리그의 가치에 대한 스카이 방송사의 마케팅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새로운 TV권리 거래는 5년에 걸쳐 1억9천1백만파운드의 가치가 있었다. 이는 4천4백만파운드가 허용하는 1988년의 가치와 비교되며,
잉글랜드 클럽들은 다시 한번 대륙을 가로질러 경쟁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오늘날 TV권리 거래는 각 게임 자체가 51억 3천6백만 파운드의 엄청난 가격대의 가치가 있다. 이는 각 경기당 그것이 1천만 파운드의 비용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시즌에 스카이 방송사는 단독으로 126 경기의 프리미어리그 게임과 127 경기의 풋볼 리그 게임을 보여주었다.
프리미어리그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청되고 있으며, 전 세계 212개의 국가에서 방송되고 있으며, 6억 4천 3백의 가정집에서 시청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 70억 인구의 절반 이상이 넘는 엄청나게 무한한 잠재적인 시청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경기 일정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만약 당신이 일요일에 낮 12시 45분 경기의 킥오프를 하는 뉴캐슬(잉글랜드 동북부 지역)과의 경기를 보려면 이를 위해서 오전 6시에 기차를 타야만 하는 것이다. 꽤 솔직히 말해서 우리(잉글랜드축구팬들)는 그들(전세계 프리미어리그 시청자)이 없다면 이렇게 경기 보러 가는 것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추가 설명.
이러한 개혁들을 누가 주도했느냐 에 대한 설명입니다.
축구협회가 주도했다기 보다는 10개 이상의 상위 축구 클럽들이 서로 동맹을 맺고 공동으로 주도했습니다. 스카이 방송사는 방송 중계 담당 역할을 했습니다.
집단적으로 상위 22개 클럽이 풋볼리그를 떠나는 것을 서명했습니다. 1991년 7월 17일에 창립 회원 협정(The Founder Members Agreement)을 1부 리그 클럽들이 체결하였고, 그 협정에 따라 FA 프리미어리그를 조직하기 위한 기본 원칙이 수립되었다. 고 했으니
축구협회에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상위 축구 클럽팀들이 연맹을 이룬 창립회원협정이 주도적으로 새로운 1부리그를 브랜드했다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프리미어리그는 고유의 라이선스를 가지고 독자적인 중계권과 후원사 협상을 통해 잉글랜드 축구 협회와 풋볼 리그로부터 수익 면에서 독립적이었다.
축구협회 입장에서는 잉글랜드리그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고, 상위 축구 클럽들은 중계권료 가치가 하락되고 경제적 수익 창출을 올리기 위한 목적이 우선 순위였기 때문에, 축구협회 입장에서는 그러한 집단적인 주도하의 과감한 개혁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고 봅니다. 풋볼리그라는 브랜드를 떠나 프리미어리그 라는 브랜드로 잉글랜드 축구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에 찬성적인 입장이었다고 봅니다.
축구협회에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상위 22개 축구 클럽팀들이 연맹을 이룬 창립회원협정이 주도적으로 새로운 1부리그를 브랜드했다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협회가 인정을 해주었고 프리미어리그 브랜드 개혁이 서로 협의가 되어 22개 클럽의 프리미어리그와 이제 2부리그격이 된 풋볼리그 와의 승강제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고,
국제 축구를 주관하는 FIFA의 주장에 따라, 프리미어리그 역시 참가 클럽 수를 줄이게 되었습니다. 1995년에 네 개의 클럽이 강등되고 두 팀이 승격하게 되면서 20개 팀이 참가하는 현재의 리그 시스템이 확립되었습니다.
중계권료 또한 매우 중요해졌다. 1986년에 풋볼 리그는 2년간 630만 파운드를 받는 계약을 하였지만, 1988년에는 4년간 4,400만 파운드로 계약이 갱신되었다.[6] 1988년의 협상은 리그 분리의 첫 번째 신호였다. 10개 클럽은 풋볼 리그를 떠나 “슈퍼 리그”를 조직하려는 위협을 주었지만, 결국엔 설득을 통해 풋볼 리그에 잔류하였다.[7] 경기장이 개선되고, 관중과 수입이 증가하자, 또다시 상위권 클럽들은 스포츠로 밀려드는 자금의 유입을 자본화할 목적으로 풋볼 리그를 떠나는 방안을 고려하기 시작하였다.
1991년에 시즌이 종료된 후, 더 많은 수익 창출을 위한 새로운 리그의 설립에 관한 제안이 제기되었다. 1991년 7월 17일에 창립 회원 협정(The Founder Members Agreement)을 1부 리그 클럽들이 체결하였고, 그 협정에 따라 FA 프리미어리그를 조직하기 위한 기본 원칙이 수립되었다.[8] 새롭게 만들어지는 프리미어리그는 고유의 라이선스를 가지고 독자적인 중계권과 후원사 협상을 통해 잉글랜드 축구 협회와 풋볼 리그로부터 수익 면에서 독립적이었다.
1992년에 1부 리그 클럽은 모두 풋볼 리그를 떠났고, 1992년 5월 27일에 잉글랜드 축구 협회의 본부가 있던 랭커스터 게이트에 사무실을 만들고 유한회사로서 FA 프리미어리그가 설립되었다.[4] 프리미어리그가 단일 디비전으로 운영되고 이전에 4개 디비전을 가지고 있던 풋볼 리그는 3개 디비전으로 바뀌는 일이 의미하는 바는 풋볼 리그의 104년간의 1부 리그로서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이었다. 대회 형식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전의 풋볼 리그 1부와 2부 사이에 이루어졌던 승강제 역시 프리미어리그와 새롭게 풋볼 리그 1부가 된 예전의 풋볼 리그 2부 사이에 이루어졌다.
새로운 프리미어십의 22개의 첫 멤버는 아스널, 애스턴 빌라, 블랙번 로버스, 첼시, 코번트리 시티, 크리스털 팰리스, 에버턴, 입스위치 타운, 리즈 유나이티드,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미들즈브러, 노리치 시티, 노팅엄 포레스트, 올덤 애슬레틱, 퀸즈 파크 레인저스, 셰필드 유나이티드, 셰필드 웬즈데이, 사우샘프턴, 토트넘 홋스퍼, 윔블던이었다. 이 중 윔블던은 2004년에 연고지를 옮기면서 밀턴케인스 던스가 되어 현재는 사라진 팀이다.
프리미어리그는 법인으로 운영되며, 20개 클럽이 소유하고 있다. 각 클럽은 주주로서 규칙의 변화와 협정 등에서 각각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클럽들은 리그의 운영을 감독하고 관리할 의장, 사무국장, 관리위원회를 선출한다.[12] 축구 협회는 프리미어리그 운영에 직접 연관되지는 않지만, 의장과 사무국의 선출 및 리그에 새로운 규정을 도입하려고 할 때에 특별 주주로서의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13]
프리미어리그는 UEFA 점수에 따라 참가 클럽의 수 및 클럽을 정하는 UEFA의 유러피언 클럽 포럼에 대표단을 보낸다. 유러피언 클럽 포럼은 UEFA의 세 클럽 대회, 즉 챔피언스리그와 UEFA컵의 운영과 관련된 UEFA 클럽 대회 위원회의 세 명의 관리단을 선출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14]
프리미어리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축구 리그이다. 컨설팅 기업인 딜로이트에 따르면 프리미어리그 클럽의 총수입이 2005-06 시즌에 14억 파운드를 넘었다고 한다. 이는 경쟁자인 이탈리아의 세리에 A와 거의 40퍼센트 이상 차이가 난다.[23] 2007-08 시즌에는 중계권 거래가 시작되어 전체 수입이 약 18억 파운드 정도로 늘어났다.[24] 2007년 12월의 환율에 따르면, 18억 파운드는 미국 달러로 37억 달러의 연간 수입으로 전환할 수 있다.
텔레비전은 프리미어리그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TV 중계권으로 들어오는 돈은 경기 내외적 측면에서 훌륭한 효과를 발휘하게 해준다. 1992년에 프리미어리그가 영국 스카이 방송과 맺은 중계권의 배당 결정은 당시에는 과감한 결정이었지만, 결국 잘한 결정이었다. 돈을 주고 하는 텔레비전 시청은 그 무렵에는 영국 시장에서 거의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스카이의 전략과 프리미어리그 축구를 보고 싶은 팬의 욕구가 잘 결합되어 프리미어리그의 TV 중계권료는 치솟았다.[6]
프리미어리그는 리그의 텔레비전 중계권을 공동으로 판매한다. 이는 세리에 A와 라 리가와 같은 다른 유럽 리그와 대조되는 점인데, 이들 리그는 각 클럽이 중계권을 개별적으로 판매하여, 총수입의 많은 부분이 상위 몇 개의 클럽에게 분배된다. 이 자금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33] 절반은 각 클럽 간에 동등하게 나눠 가진다. 4분의 1은 리그 순위에 따라 차등하여 지급된다. 1위 팀은 최하위 팀보다 20배 많은 금액을 받게 된다. 그렇게 2위 팀은 19배, 3위 팀은 18배 이런 식으로 배분한다. 나머지 4분의 1은 시설비로서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경기의 당사자들이 받게 된다. 상위권 클럽들이 일반적으로 여기에서 많은 배분을 챙기게 된다. 해외 중계권 수입은 각 클럽별로 동일하게 배분된다.
처음의 스카이 방송의 중계권 협정은 다섯 시즌 동안 1억9천1백만 파운드의 가치를 지녔다.[34] 다음 계약은 1997-98 시즌 전에 이루어졌는데, 네 시즌에 6억7천만 파운드로 증가하였다.[34] 세 번째 계약은 2004-05 시즌부터 2006-07 시즌까지 세 시즌 동안 10억240만 파운드로 거래되었다. 프리미어리그는 2004-05 시즌부터 2006-07 시즌까지 세 시즌 동안 해외 중계권 판매를 통해 3억2천만 파운드의 이득을 가져왔다. 이는 각 국가 및 지역별로 하나씩 판매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35] 스카이의 독점은 2006년 8월에 세탄타 스포츠가 여섯 개 패키지 가운데 두 개를 따내면서 깨지게 되었다. 이는 유럽 위원회에서 나온 독점적인 중계권은 하나의 텔레비전 회사에만 판매할 수 없다는 주장에 따라 이루어지게 되었다. 스카이와 세탄타는 총 17억 파운드의 중계권료를 지불하였고, 이는 많은 논평가가 지난 몇 년간의 중계권 가치의 급작스런 증가를 안정화해야 한다고 평할 정도로 매우 놀랄 만한 일이었다. 또한 세탄타는 아일랜드 시청자를 위한 오후 3시의 생방송 중계권을 독점적으로 가지게 되었다. BBC는 세 시즌 동안 하이라이트를 《매치 오브 더 데이》에서 보여줄 권리를 지난 세 시즌 동안의 가격인 1억5백만 파운드보다 63퍼센트 증가한 1억7160만 파운드를 지불하고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36] 라디오 텔레피스 에른(Radio Telefís Éireann)은 아일랜드에서의 하이라이트 방송을 맡았다. 2012. 6. 13(현지시간). 2013-14시즌부터 3년간의 프리미어 리그 영국내 중계권료가 30억파운드(한화기준 5조4430억원)에 낙찰되었다. 이는 연간으로 환산하면 1조8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기존의 계약보다 70% 상승한 것이다. 2016-2019시즌의 프리미어리그 영국내 중계권료는 51억 3천 6백만 파운드에 체결되었다. 이는 한화로 8조 5천 500억원에 달하는 거액으로 한경기당 17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로서 당장 내년시즌부터 우승팀의 경우 2,496억원이 중계권료로 배당되게 되며 최하위 팀에게도 1,647억원이 배당되게 되었다. 이는 사실상 라리가 중계권 수입을 독차지 하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에 비해 우승팀은 이를 넘어서는 금액을 받게 되는 것이고 최하위 팀의 경우에도 그에는 못미치지만 상당한 금액을 받게 되는것을 의미한다. 이런 추세라면 차기 계약의 경우 최하위 팀도 라리가 양강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돈이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거액은 판도를 바꿔버릴만한 엄청난 금액을 바탕으로 바야흐로 진정한 EPL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지구상 최고의 쇼”로 홍보를 한 프리미어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많이 시청을 하는 스포츠 리그로, 202개 국가에서 5억 이상의 인구가 시청하고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D%94%84%EB%A6%AC%EB%AF%B8%EC%96%B4%EB%A6%AC%EA%B7%B8
위키피디아 프리미어리그 에서 발췌.
P.S.
프리미어리그 중계 역사를 검색해 보다가 스카이스포츠 방송사가 주도한 개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다룬 유튜브 영상을 갖고
직접 번역해 보았습니다.
K리그 우리 자국리그도 중계 부분에서 확 역전시킬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호주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스카이 방송국의 대표로서 축구를 대중들에게 발전되도록 부활시키고 경제적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내어 지금 프리미어리그를 만들어냈고
각 프리미어리그 클럽들도 함께 노력하여 경제적 권리를 향상시켰습니다.
K리그가 벤치마킹해야할 역사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으로 바꿔 말하면 jtbc 같은 방송국 혹은 스포티비 등의 방송사가 주도하여 언론회장 등이 직접 주도해
K리그 클럽들도 스스로 독립적으로 경제적 권리, 방송권리, 스폰서쉽 권리를 얻어내서
K리그를 위한 굳건한 채널을 만들어내는 한국 축구를 위한 과감한 개혁 방안이 나와서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K리그를 완전히 확 바꾸고 부흥시킬 수 있도록 프리미어리그의 경제 구조, 방송 구조를 본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료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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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이네요 번역하느라고생하셨습니다
프리미어리그출범이 그래도 독자적인게아니라 축구협회측에서 주도한건맞는거죠?
축구협회 측에서 주도한 것은 아니고, 10개 이상의 축구 클럽들이 함께 동맹하여 공동으로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스카이 방송사는 중계권 계약 담당을 했구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91년에 시즌이 종료된 후, 더 많은 수익 창출을 위한 새로운 리그의 설립에 관한 제안이 제기되었다. 1991년 7월 17일에 창립 회원 협정(The Founder Members Agreement)을 1부 리그 클럽들이 체결하였고, 그 협정에 따라 FA 프리미어리그를 조직하기 위한 기본 원칙이 수립되었다.[8] 새롭게 만들어지는 프리미어리그는 고유의 라이선스를 가지고 독자적인 중계권과 후원사 협상을 통해 잉글랜드 축구 협회와 풋볼 리그로부터 수익 면에서 독립적이었다.
@첼시인천축구푸른천사 제가 이해가 힘들었던부분이 1부리그 구단들이 풋볼리그를 탈퇴하고 집단적으로 사인을했다는건데
그럼 축구협회에 반하는 행동이라 불이익같은게없었나요? 결국 1부리그로인정을 받아서 2부는 풋볼리그 그대로 이런식아닌가요? 죄송해요 멍청해서ㅜㅜ
@ginger 1992년에 1부 리그 클럽은 모두 풋볼 리그를 떠났고, 1992년 5월 27일에 잉글랜드 축구 협회의 본부가 있던 랭커스터 게이트에 사무실을 만들고 유한회사로서 FA 프리미어리그가 설립되었다.
풋볼리그 역사에서 보면, 1991-92 시즌에는 1부 리그의 팀 수가 22개로 다시 늘어났으며, 1992-93 시즌부터 1부 리그가 프리미어리그로 새롭게 설립되었다. 그 후 프리미어리그는 다시 한번 팀 수의 조정이 있었는데, 1995-96 시즌에 프리미어리그는 다시 20개 팀으로 줄어들었다.
즉, 쉽게 말해서 프리미어리그가 새롭게 1부리그로 출범했고, 상위 22개의 축구 클럽이 프리미어리그 창립 멤버가 되었고, 풋볼리그는 그대로 존속하되,
@첼시인천축구푸른천사 예전의 풋볼리그 자체가 프리미어리그 하위리그인 2부리그가 되었고, 2004-05 시즌에 코카콜라를 후원사로 새로 정하게 되어 이에 따르는 첫 번째 변화가 1부 리그가 챔피언십이 되었고, 2부 리그는 1부 리그로, 3부 리그는 2부 리그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프리미어리그 1부, 챔피언쉽 2부, 리그1 3부, 리그2 4부 명칭 체제가 된 것이죠. 제가 번역을 어렵게 해놓은거같네요. 적절히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ginger 집단적으로 상위 22개 클럽이 풋볼리그를 떠나는 것을 서명했다고 해야했네요. 1991년 7월 17일에 창립 회원 협정(The Founder Members Agreement)을 1부 리그 클럽들이 체결하였고, 그 협정에 따라 FA 프리미어리그를 조직하기 위한 기본 원칙이 수립되었다. 고 했으니
축구협회에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상위 축구 클럽팀들이 연맹을 이룬 창립회원협정이 주도적으로 새로운 1부리그를 브랜드했다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프리미어리그는 고유의 라이선스를 가지고 독자적인 중계권과 후원사 협상을 통해 잉글랜드 축구 협회와 풋볼 리그로부터 수익 면에서 독립적이었다.
@ginger 즉, 이 상위 창립회원협정이 축구협회보다 힘이 세게 된 것이죠. 축구클럽들이 함께 동맹을 맺고 공동으로 협정을 맺었고, 축구협회는 주체자가 아니고 창립회원협정이 주체자가 된 것이죠.
@첼시인천축구푸른천사 제가 이해를 못하는거라 죄송하네요... 열심히 설명해주시고 감사합니다
1부리그를 단체로 탈퇴하고 새로 만들었으니 축협이 주도권을뺐기고 힘을 잃었던거라고 보는게맞겠죠?
궁금한게 그럼 프리미어리그로서 첫 출범했던 92-93시즌은 이미 1부리그로 인정을 받은상태였을까요?? 만약 축협이랑 협의가 아직 안됐었다면 승격,강등 되는 팀이없었겠네요... 축협이 빅클럽들이 나간거라 그럴일은 없었겠지만 만약 1부리그로 인정을 안해주고 풋볼리그만 그대로 끌고갔다면 한나라에 리그가 2개가 있는 모습도 볼수있었겠네요ㅋㅋㅋ 감사합니다!
@ginger 축구협회에 반하는 행동이라 불이익이라는 개념이 없고, 축구협회 입장에서는 잉글랜드리그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고, 상위 축구 클럽들은 중계권료 가치가 하락되고 경제적 수익 창출을 올리기 위한 목적이 우선 순위였기 때문에, 축구협회 입장에서는 그러한 집단적인 주도하의 과감한 개혁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고 봅니다. 풋볼리그라는 브랜드를 떠나 프리미어리그 라는 브랜드로 잉글랜드 축구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에 찬성적인 입장이었다고 봅니다.
@첼시인천축구푸른천사 아 뭔가 한대 맞은기분이네요....너무 갑질에 익숙해졌나봐요...
생각해보니 좋은일인데 왜 무조건 갑인 축협에 반하는, 축협이 좋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했을거라고만 생각했는지...죄송합니다ㅜㅜ 더럽혀진건 저였네요
@첼시인천축구푸른천사 대회 형식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전의 풋볼 리그 1부와 2부 사이에 이루어졌던 승강제 역시 프리미어리그와 새롭게 풋볼 리그 1부가 된 예전의 풋볼 리그 2부 사이에 이루어졌다.
협회가 인정을 해주었고 프리미어리그 브랜드 개혁이 서로 협의가 되어 22개 클럽의 프리미어리그와 이제 2부리그격이 된 풋볼리그 와의 승강제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고,
국제 축구를 주관하는 FIFA의 주장에 따라, 프리미어리그 역시 참가 클럽 수를 줄이게 되었습니다. 1995년에 네 개의 클럽이 강등되고 두 팀이 승격하게 되면서 20개 팀이 참가하는 현재의 리그 시스템이 확립되었습니다.
진짜 잉글랜드 리그가 헤이젤 참사로 인해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변방리그로 몰락하고 말았죠. 최고로 떨어졌을때가 유럽리그 랭킹이 29위였나?? 그래서 영국축구계에서 어떻게든 리그 살릴려고 노력했고 고생끝에 9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해서 99년 맨유가 트레블 이룬 계기로 다시 빅리그 자리에 오를수 있게 되었구요.
문제는 한국 미디어재벌들 사이즈가 ㅠㅠ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