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에 찾은 도서관
입춘 이튿날인 이월 초순 화요일이다. 입춘날 아침 경전선을 타고 가다 부전역에서 동해선 전철로 바꾸어 울산 태화강역 근처 개운포 처용암을 찾아가려다 날씨 관계로 마음을 거두었다. 한림정역까지만 나가 화포천 습지 천변 마을을 둘러 들녘을 거닐다 해가 남은 이른 시각에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부터 기온이 곤두박질쳐 바람이 세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욱 낮아지는 느낌이었다.
날이 바뀐 새벽에 전날 동선을 따라 생활 속 글을 쓰면서 덤으로 한겨울 초본에서 꽃잎을 달고 피어난 야생화를 소재 삼아 시조를 두 수 남겼다. 쇠실 마을 안길을 지나다가 볕 바른 자리에 핀 광대나물로 4음보씩 맞추었다. 그다음 한림배수장에서 시산마을로 가다가 신촌 들녘을 지나면서 특용작물을 가꾸는 비닐하우스 농수로에 핀 봄까치꽃으로도 시조를 한 수 더 남겨 놓았다.
벼를 거둔 논에는 뒷그루로 마늘이나 양파를 심어 소득을 높이는 들녘 마을 신촌이었다. 동네와 인접한 농지는 사계절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나 토마토를 심어 한겨울에도 싱그러운 열매를 따내었다. 낯선 이가 지나치는데 주인 아낙이 금방 딴 방울토마토를 한 움큼 안겨줘 간식 삼아 잘 먹었더랬다. 딸기를 수확한 농장에서는 선별에서 제외된 하품은 잼 공장 트럭이 와 수거해갔다.
날이 밝아온 입춘 이튿날 아침 추위가 맹위를 떨쳐 자연학교 수업은 실내로 전환해 도서관으로 가려 길을 나선 버스 안에서 시조를 한 수 더 남겼다. “지면에 납죽 붙어 잔디로 보기 십상 / 봄부터 가을까지 꽃으로 수를 놓아 / 그 이름 지면패랭이 꽃잔디로 불린다 // 늦가을 된서리로 엽록소 잃게 마련 / 초목은 당연히도 시듦이 정상인데 / 겨울이 워낙 따뜻해 분홍 꽃잎 달렸다”
앞 단락 인용절은 ‘지면패랭이꽃’ 전문으로 어제 쇠실 마을 안길에서 자주색 광대나물꽃과 같이 본 야생초였다. 아침이면 지기들에게 디카 시처럼 사진을 곁들인 시조를 한 수 보내는데 어제 다녀온 걸음에서 예비 작품으로 세 수를 확보해 놓아 마음이 느긋했다. 올겨울 날씨가 추울 때 몇 차례 들린 북면 무동 최윤덕도서관으로 가는 길목인 굴현고개를 넘은 외감마을 앞을 지났다.
감계 신도시 아파트단지를 지난 동전 일반산업단지에서 무동으로 들어 최윤덕도서관을 찾았다. 사서들의 출근과 같은 시각인 9시에 열람실로 드니 이용자가 아무도 없어 절집 같았다. 내 지정석으로 삼는 사각지대 열람석에 배낭을 벗어두고 서가 앞에 책을 골랐다. 글쓰기와 생태와 관련된 책을 골라 놓고 우리나라 정원을 소개한 책에 눈길이 머물러 가려내 뽑아 자리로 돌아왔다.
안동대학 사범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김태오의 ‘퇴계의 매화 사랑’과 젊은 여성이 쓴 ‘숲길 같이 걸을래요?’는 책장을 빨리 넘겨 일별했다. 김종원이 쓴 ‘매일 인문학 공부’는 생각을 보태가며 읽어야 할 듯해 뒤로 밀쳐놓고 김종길이 사진을 곁들여 쓴 ‘한국 정원 기행’을 펼쳤다. 조용헌을 비롯한 명사들이 정자와 누각을 답사한 기행문을 더러 읽어 책장은 속도감 있게 넘길 듯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한중일 정원을 비교해 놓았다. 중국 정원은 인공으로 자연을 만들고 일본은 집안으로 자연을 끌어들였는데 우리나라 정원은 자연으로 들어감이 특징이라 했다. 책의 전반부는 우리나라 3대 정원 윤선도의 보길도 부용동과 양산보의 담양 소쇄원과 정영방의 영양 서석지를 집중해 분석했다. 특히 훗날 효종이 된 봉림대군을 가르친 윤선도는 풍수에서도 대가였다.
점심은 지하 카페에서 간략히 때우고 오후에도 같은 책 후반부 책장을 넘겼다. 강진과 담양 일대 별서와 정원이 언급되고 경북 일대에도 권문세가의 고색창연한 정원이 소개되었다. 서울에서도 흥선대원군이 김흥근의 별서를 빼앗은 석파정이나 장동 세도가 안동 김씨 흔적도 보였다. 우리 고장은 함양 지곡 일두 고택과 함안 칠원 무기연당이 나왔고 창녕 대지 성씨 고가가 소개되었다. 25.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