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땜으로
엊그제 입춘이 지난 이월 초순 수요일이다.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입춘이면 두 가지 현상을 보거나 들으며 자랐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입춘이면 집안 대청이나 기둥에 방을 써 붙였다. 문갑에서 붓을 꺼내 기제사 때 지방 쓰듯 한지를 더 넓게 잘라 ‘건양다경(建陽多慶)’의 가로쓰기에 이어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나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과 같은 글귀를 세로쓰기로 써 기둥에 붙였다.
봄이 오는 길목에 포근하던 날씨였다가 반짝 추위가 닥치면 으레 쓰던 말이 ‘입춘 땜’한다고 했다. 그때 들은 속담이 ‘입춘에 오지독 깨진다’였다. ‘입춘에 장독 깨진다’거나 ‘입춘에 오줌독 깨진다’는 같은 의미 속담이렷다. 장을 담그는 독이나 논밭 거름으로 쓰던 오줌을 채운 용기는 오지로 만든 항아리였다. 염도가 있는 항아리는 빙점이 낮은데 그게 얼어 터질 추위가 입춘 땜이다.
올겨울은 예년과 거의 비슷하거나 조금 따뜻하게 넘어가는 듯했다. 소한과 대한은 큰 추위가 없었고 두 절기 사이에 영하권으로 며칠 내려간 추위가 왔다. 그리고 입춘을 맞아 근년 보기 드문 강력한 한파가 우리나라 전역을 덮쳤다. 이번 추위는 이삼일로 그치지 않고 한반도가 일주일 정도 냉동고가 되다시피 꽁꽁 얼어붙는 강력한 한파다. 거기다 바람까지 심해 체감온도는 더 낮다.
입춘 이전 망울을 맺은 운룡매가 꽃잎을 펼쳤고 영춘화도 예닐곱 송이 노란 꽃잎을 펼쳤음을 봤다. 봉림사지로 오르는 들머리 볕이 바른 분재원에서다. 입춘날 아침나절은 어디 행선지를 멀리한 답사길을 나서려다 추위가 닥치고 바람이 심할 듯해 한림정 화포천 습지 천변 마을을 거닐다 왔다. 그날 쇠실 동구에서 광대나물과 꽃잔디가 피운 꽃을 봤고 신촌 들녘에서 봄까치꽃도 봤다.
봄 기운이 무색하리만치 강력 한파가 엄습해 주말도 풀릴 기미가 없을 듯하다. 어제는 추위를 피해 난방이 잘 된 도서관에서 한나절 보냈다. 날이 밝아온 주중 수요일은 추위 속에도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려는 참인데 북면 마금산 온천장이 아닌 부곡 온천을 찾아갈 셈이다. 자차 운전을 하지 않기에 북면 신촌까지 가서 거기서 창녕 영신교통을 이용한다.
여명에 길을 나서 북면 신촌에 닿아 창녕읍에서 영산을 거쳐 부곡을 둘러 온 버스를 탔다. 하루에 세 차례 본포교를 건너 학포에서 인교와 수다에서 부곡으로 가는 버스였다. 이 버스 말고는 본포에서 걸어서도 임해진 벼랑이나 비봉 산마루를 넘어 온정리에서 부곡까지 걸어서 가봤다. 수다로 걸어 고개를 넘거나 북면 오곡에서 창녕함안보를 건너 길곡에서 부곡으로 걸었던 적 있다.
부곡에 닿으니 겨울 온천 성수기라도 평일이라 한산한 편이었다. 외지에서 전지훈련 온 축구부 학생들이 간간이 보였다. 부곡을 찾으면 호텔에 딸린 대중 온천탕을 여러 차례 들러 익숙한 공간이다. 목욕비가 8천 원이나 창녕 군민만 할인 적용받는 6천 원에 입장이 가능했다. 따뜻한 온천수가 넉넉한 온탕과 열탕을 오가다가 냉탕이나 사우나실에도 시간을 보내면서 목욕을 마쳤다.
점심나절 창녕읍을 출발 영산을 거쳐온 북면행 버스를 타고 신촌에 닿았다. 시내로 들어와 집으로 곧장 가질 않고 한 군데 들릴 곳이 있었다. 동네에 20여 년 단골로 다닌 이발관이 주인장 다리 수술로 일시 휴업이라 머리숱을 정리할 곳을 찾아야 했다. 시청 부근 상가에서 내려 점심을 먼저 때웠다. 귀촌한 대학 동기가 다녔다는 창원병원 인근 주택지 이발관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간판이 없고 사업자 등록증도 반납한 이발관은 여든에 들어 보인 노인이 난롯불을 쬐며 혼자 지켰다. 68년에 이발사 자격을 취득해 젊은 날 마산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주인장은 지금 주택지로 80년도에 옮겨와 45년째였다. 자식이 그만두라고 성화여도 손을 놓지 못하고 계속한다고 했다. 나는 어르신이 앞으로 10년은 더 일하셔도 될 듯하다면서 훗날에 다시 들릴 거라 했다. 25.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