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손
석야 신웅순
내게 소중한 하나를 고르라면 효자손을 빼놓을 수 없다. 수 십년 전에 등 긁으시라 사드린 어머니의 효자손이다. 등은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다. 효자손으로 긁어주면 여간 시원한 게 아니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 어머니의 등을 긁어 주었던 내겐 특별한 효자손이다. 지금은 내 등을 긁어주는 효자손이 되었다. 내게 효자손은 최고의 발명품이다.
십여년 전에 오른쪽 팔에 오십견이 왔다. 몇 년 후엔 왼쪽 팔을 건드렸다. 2년 정도 괴롭히다 갔는데 이젠 또 오른쪽으로 옮겨왔다. 병원에 가기도 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왼쪽은 치유가 된 듯한데 이제는 오른쪽 팔이 문제이다. 오른쪽 팔을 많이 사용해야하니 자연 불편할 때가 많다.
나이 들면 등을 긁어 줄 마누라가 있어야한다 하지 않는가. 나이 들면 몸이 건조해져 자주 가렵다. 정년 퇴임을 하고 나면 남자들은 갈 데가 여의치 않으면 주로 방콕이다. 자연 가려운 것도 자신이 해결해야한다. 그럴 때는 손이 멀어 효자손은 더 없이 필요하다.
요새 마누라는 집을 자주 비운다. 나이 들어 남편 눈치 보지도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친구 만날랴, 취미 생활하랴, 손주 돌보랴 나날이 바쁘다. 이를 운명처럼 받아들이지 여기에 토를 달 남편은 아무도 없다. 그냥 나가지 않고 냉장고 어디에 있으니 밥이라도 챙겨 잡수라면 그나마도 감지덕지하다. 일생 밥을 해주었으니 남편인들 무슨 면목으로 여기다 대고 대꾸를 하랴. 반찬은 고사하고 밥이나 할 줄 아나, 세탁기, 청소기나 돌릴 줄 아나. 오랫동안 습관이 굳어 마눌한테 지청구 얻어먹기는 다반사이다. 말 한마디에도 전전긍긍하는 게 요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다. 나이 들면 남편은 바깥 사람에서 안사람으로 아내는 안사람에서 바깥사람으로 옮겨간다. 역할이 바뀌게 되어 여기에 적응하지 않으면 힘들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가려울 때 아쉬운 소리 안하고 해결해주는 벗이 있으니 그게 바로 효자손이다. 왼손은 멀리 있고 오른 손은 오십견이라 어떤 때는 효자손도 닿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멧돼지처럼 문짝이나 기둥에 대고 긁을 수 밖에 없다. 이 때 말고는 언제든 내 옆을 지켜주는 벗이 있으니 바로 나의 효자손이다. 내게는 어머니의 체온이 묻어있는 특별한 효자손이다.
흔히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가려운 것은 참지 못한다고 한다. 이를 효자손이 해결해주고 있으니 우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소중한 친구이다.
그러나 정작 절실한 것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보다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는 간호사의 손길이다. 그런 손길이 옆에 있다면 그 사람은 복 받은 인생이고 참 잘 산 사람이다. 나이 들어 아픈 것 보다 더 서러운 것은 없다. 우리들의 진정한 행복은 어쩌면 늘그막 인생에서 기다리고 있는 따뜻하고도 포근한 그런 손길 아닐까. 그런 손길이 끝까지 아내이고 남편이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시 한 수 읊는다.
초겨울 외딴 집에 불빛이 반짝인다
누구의 한 생애가
거기까지 와 있을까
산 너머 풍경 소리가
들려오는 그쯤일까
-신웅순의 「아내 5」
첫댓글 참으로 공감이가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부부가 한 개씩 쓰고 있답니다.
전부가 중국제인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근데 '석야'님께 괜히 시비를 걸어 봅니다.
글 중에 '손주 케어할랴'를 '손주 돌보랴'라고 했다면 한글 전용 작품일텐데....
예 그렇네요. 케어란 말 요새 많이 써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맨 처음 그 말을 쓸 때 저도 왜 우리말 두고 영어를 쓰지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저도 동화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시비를 걸어주셔야 합니다. 사실 자기 글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말을 찾아 쓰도록 하겠습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