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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지야(知之至也)
지식을 지극히 한다는 뜻으로, 힘쓰기를 오래해서 환하게 통하여 깨닫게 되면 이것을 일러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이라 하며 이를 일러 지식이 지극해진다고 하는 것이다.
知 : 알 지(矢/3)
之 : 갈 지(丿/3)
至 : 지극할 지(至/0)
也 : 어조야 야(乙/2)
출전 : 대학(大學) 傳五章
此謂知之至也.
이것을 앎이 지극하다고 하는 것이다.
間嘗竊取程子之意, 以補之.
그 사이에 내가 조심스럽게 정자의 뜻을 취하여 다음과 같이 보충하였다.
曰所謂致知在格物者, 言欲致吾之知, 在卽物而窮其理也.
이른바 앎을 이루는 것이 사물의 이치를 연구함에 있다고 한 것은, 나의 앎을 이루고자 하면 사물에 직접 나아가 그 사물의 이치를 연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蓋人心之靈, 莫不有知, 而天下之物, 莫不有理.
대개 마음의 영험함은 알지 못할 것이 없고, 세상의 모든 사물은 이치를 갖지 않은 것이 없다.
惟於理有未窮, 故其知有不盡也.
오직 그 이치를 연구하는 것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앎도 완전하지 않게 되었다.
是以大學始敎, 必使學者, 卽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 而益窮之, 以求至乎其極.
그러므로 대학에서 처음 가르칠 때에는 반드시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사물에 나아가 이미 알고 있는 이치에 근거하여 더욱 연구해서 완전한 데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
至於用力之久, 而一旦豁然貫通焉, 則衆物之表裏精粗, 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 無不明矣.
그렇게 노력하기를 오래도록 지속하다 어느 날 아침에 환하게 깨달아 모두 알게 되면 모든 사물의 겉과 속, 정밀한 것과 거친 것에 이르기까지 알지 못함이 없고, 내 마음의 온전한 본체와 큰 쓰임이 분명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此謂物格, 此謂知之至也.
이것을 사물과 마주했다고 하는 것이며, 이것을 앎이 지극하다고 하는 것이다.
● 格物致知에 관하여(大學 傳五章)
사물을 탐구하여 앎을 확충한다
此謂知本此(차위지본)
謂知之至也(차위지지지야)
이것이 근본을 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앎의 지극함을 의미한다.
此謂知本이 바로 앞에 나왔는데 다시 반복되었다. 주자는 이를 衍文(더 들어간 문구)이라고 말했다. 즉 쓸데없이 잘못 반복된 것이다. 예기의 대학을 편집하다 보니 같은 구절이 연속으로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예기에서는 此謂知之至也는 大畏民志,此謂知本 보다 한참 앞에 있는 구절이었는데 주자가 이를 뒤로 가져온 것이다. 주자는 此謂知之至也는 어떤 내용의 결론 부분인데 그 앞에 들어가야 할 말이 모두 누락되었다고 주장한다. 격물치지를 설명하는 부분(傳文)이 대학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격물치지의 설명이 모두 누락되었고 그 위치가 바로 여기라고 한다.
주자는 자신의 생각으로 빠진 부분을 만들어 집어 넣으려 했다. 이를 '격물치지보망장(格物致知補亡章)'이라고 한다. 60세에 과거 합격한 조선 선비 김득신이 이 보망장을 2만번 읽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에서 이 보망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성리학자로 공자 사당인 문묘에 배향된 이언적은 이 보망장을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양명학자들은 당연히 이 보망장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주자가 재배열한 대학을 인정하지 않고 예기에 나오는 대학(고본대학)을 그대로 사용한다.
정약용도 이 보망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주자가 만들어낸 이 보충분때문에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이를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학파가 갈라지기도 하니 동양사상사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격물치지(格物致知)
所謂(소위) 致知在格物者(치지재격물자)는 言欲致吾之知(언욕치오지지)면 在卽物而窮其理也(재즉물이궁기리야)라.
소위, 지혜를 넓히는 길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해 밝히는데 있다는 것은 내 지혜를 넓히려고 하면 곧 사물에 대하여 그 이치를 궁리 분석하는데 달려 있음을 말한 것이다.
蓋人心之靈莫不有知(개인심지령막불유지)요 而天下之物(이천하지물)이 莫不有理(막불유리)면 惟於理(유어리)에 有未窮故(유미궁고)로 其知(기지)를 有不盡也(유불진야)니
대체로 사람의 마음이 가진 영묘함은 아는 힘을 가지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없고, 천하의 모든 사물은 저마다 이치가 없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이치를 궁리 분석하는데 미진할 수가 있기 때문에 그의 아는 힘을 다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是以(시이)로 大學始敎(대학시교)에 必使學者(필사학자)가 卽凡天下之物(즉범천하지물)하여 莫不因其已知之理(막불인기이지지리)에 而益窮之(이익궁지)하여 以求至乎其極(이구지호기극)하니
그러기에 대학(大學)에서 맨 먼저 가르치는 것이 반드시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릇 천하의 모든 사물에 대하여 그가 이미 알고 있는 이치에 근거하여 더욱 그것을 궁리하여 그 극한(極限)에 이르도록 추구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였다.
至於用力之久(지어용력지구)하면 而一旦(이일단)에 豁然貫通焉(활연관통언)하여
이러한 노력이 오래되다 보면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영지가 활짝 트여서 만사에 관통(貫通)케 된다.
則衆物之表裏精粗(즉중물지표리정조)가 無不到(무불도)하여 而吾心之全體大用(이오심지전체대용)이 無不明矣(무불명의)리니 此謂格物(차위격물)이며 此謂知之至也(차위지지지야)러니라.
온갖 사물의 겉과 속, 정밀함과 조악(粗惡)함이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없게 되고, 내 마음의 전체적인 큰 작용이 명백해지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니 이러함을 두고 사물의 이치를 궁구(窮究)한다 말하고, 이러함을 두고 지혜를 넓히는 길이라고 말한다.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유교철학의 인식이론이다. '대학'에서 제시된 8조목 가운데 처음 두 조목이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대학'의 주석인 주희(朱熹)의 '대학장구(大學章句)'에 따르면, "사물의 이치를 궁극에까지 이르러 나의 지식을 극진하게 이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격물치지 문제는 중국 남송대의 주희가 '대학장구'를 저술한 뒤로부터 유학의 이론 가운데, 특히 학문과 수양에서의 기초적인 문제로 매우 중요시되었다. 이 문제는 곧 유학의 인식론을 이루는 기본 체계를 제공하며, 도덕적 인식의 근거를 밝혀 주는 문제이기도 하다. 격물치지에 관한 이론적 연구는 매우 정밀하게 추구되어 왔으며, 그 이론체계를 격물치지론, 또는 줄여서 격치론이라 일컫는다.
대학의 경전 원문에서는 격물치지 문제에 관한 것으로, "나의 지식을 극진하게 이루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궁극에까지 이르는 데 달려 있다(致知在格物), 사물의 이치가 궁극에까지 이른 다음에 내 마음의 지식이 극진한 데 이른다(物格而後知至), 이것을 일러 나의 지식이 극진한 데 이르렀다고 한다(此謂知之至也)"의 세 구절이 있다.
이 밖에 주희가 '대학장구'에서 격물치지에 관한 현존의 '대학' 본문에 불충분한 점이 있다고 보고, "이것을 일러 나의 지식이 극진한 데 이르렀다고 한다"의 구절 6자 앞에 상당한 부분이 결손된 것이라고 판단하여 그 자신이 128자를 보충하였다.
주희가 보충한 이 부분을 격물치지보망장(格物致知補亡章) 또는 주자보망장이라고 일컫는데, 본문의 구절 6자와 합쳐 전체가 134자이다. 이 격물치지보망장을 중심으로 한 주희의 격물치지설은 주자학의 핵심적 기본 문제로서 중요시된다.
곧, 주자학과 양명학을 비교할 때 그 기본 특징의 하나로서 '대학'의 8조목 가운데 주희는 격물치지를 기초로 하고, 왕수인(王守仁)은 성의정심(誠意正心)을 출발점으로 삼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격물치지 문제는 매우 섬세한 개념적 논쟁으로 전개되어 왔다.
먼저, 중국 유학자에 있어서 격물치지론의 논쟁점과 주장을 살펴보면 몇 가지 대표적인 경우를 들 수 있다. 격물의 '격'이 갖는 의미에 대한 해석은 학자와 학파적 입장에 따라 다양하다. 한나라의 정현(鄭玄)은 "격은 오는 것이다(格來也)"라 하여, 대상의 사물이 주체에 다가올 때 지각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장재(張載)는 "격은 제거하는 것이다(格去也, 物外物也)"라 하여, 대상으로서의 사물을 제거할 때 마음이 평정하게 사물을 지각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이(程頤)와 주희는 "격은 이르는 것이다(格至也)"라 하여, 인식의 주체가 대상인 사물에 나아감으로써 사물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호안국(胡安國)은 "격은 헤아리는 것이다(格度也, 猶曰品式也)"라 하여, 대상적 사물에서 법칙적 요소를 헤아림으로써 지식을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왕수인은 "격은 바로잡는 것이다(格正也, 正其不正, 以歸於正也)"라 하여, 주체인 마음의 작용에서 바르지 못하므로 바로잡아 앎(知)을 이루는데, 그것은 본심(本心)에 갖추어진 양지(良知)에서 찾아진다.
이러한 '격'의 의미에 대한 이해는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인 입장의 차이가 있고, 주체인 마음을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인 구실로 파악하는 차이를 드러내 준다. 이에 비하여 격물에서 '물'의 의미에 대한 이해에서는 정현 이후 주희나 왕수인의 입장에 공통성이 있다.
곧, 그 '물'은 '사(事)'와 같은 뜻으로 이해하였다. 대학의 8조목에서 본다면, 의(意)· 심(心)· 신(身)· 가(家)· 국(國)· 천하(天下)의 대상적 존재를 '물'이라 하고, 성(誠)· 정(正)· 수(修)· 제(齊)· 치(治)· 평(平)의 행위적 사실을 '사(事)'라고 분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물'이 '사'와 같다고 하면,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등을 격물의 물이라고 보는 것이 된다. 이에 따라 주희나 왕수인의 격물론은 사물의 객관적 사실에 관한 과학적인 탐구와 인간의 정당한 행위법칙을 찾는 도덕적인 탐구를 통합하는 입장을 보여준다.
이러한 송대 이후의 이학적(理學的) 격물론에 대하여, 근세의 실학적 또는 기학적(氣學的) 격물론에서는 객관적· 과학적 격물론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치지(致知) 문제에서 '지'는 주희에 의하면 지식으로 파악되고 있다.
주희의 지식은 인간 마음의 지각능력을 전제로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사물에 닿아서(卽物) 그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窮理)으로써 각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에 비하여 왕수인은 '지'를 양지(良知)라 한다. '맹자'에서는 양지를 사려하지 않고 아는 것이라 하였으며, 왕수인은 "양지가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은 성인과 어리석은 사람 사이에 차이가 없으며, 천하와 고금에 일치하는 것이다"고 하여 인간의 개체적인 경험적 지각을 넘어선 본심의 보편적 이치를 가리키는 것이라 하였으며, 양지를 천리(天理)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주희는 격물치지보망장에서, "이치에 궁구하지 못함이 있어서 지식에 극진하지 못함이 있다"고 하여 지식의 대상적 근거를 중요시하고 있다. 여기서 나아가 이미 알게 된 이치를 기초로 점점 지식을 축적시켜 가고 노력을 오래 계속해 간다면 "하루아침에 활연관통(豁然貫通; 환하게 통하여 도를 깨달음)하여 모든 사물의 겉과 속이나 정밀한 세부와 거친 대강이 모두 이르고, 내 마음의 큰 본체와 작용이 모두 밝혀질 것이다"라 하여 격물치지의 방법 내지 과정과 그 궁극의 경지를 밝혔다.
사물의 이치와 마음의 지식이 시원하게 꿰뚫리는 '활연관통(豁然貫通)'의 경지는 긴 과정과 오랜 노력의 단계적이고 축적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나 왕수인의 치양지(致良知)에서는 양지가 환히 트여 지극히 공변된 확연대공(廓然大公)한 본체이므로, 이를 흐리게 하거나 은폐시키는 물욕을 제거하면 그 본체가 드러날 수 있다는 본체적이고 소거적(消去的)인 성격을 띤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격물치지 문제는 매우 활발하게 논의되어 왔다. 이황(李滉)은 격자의 의미를 '궁구하여 이른다'는 뜻으로 파악하여 격물은 궁구하는 데 비중을 두어 '사물을 격(궁구)한다'로 해석하고, 물격(物格)은 이른다는 데 비중을 두어 '사물에 격(이른다)한다'로 해석하였다.
물격에서 '사물에 이른다'라는 것은 격의 주체가 인간이지만, 이에 대해 김식(金湜) 등은 '사물이 이른다'로 해석하여 격의 주체를 사물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황도 만년에는 '사물이 이른다'라는 해석을 받아들였다. 곧 '사물이 이른다'는 말은 사물의 이치가 인간에게 드러날 수 있는 능동성을 갖는 것으로 파악하는 입장이다.
그것은 이(理)의 능동성에 근거한 이도설(理到說)과 연관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이이(李珥)는 물격을 '사물의 이치가 극처에 이르는 것'이라 하여, 사물의 이치가 인간의 마음에 이른다는 이의 능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격물설의 해석 입장은 성리설과 연결되어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의 격물설이 하나의 학파적 전통을 형성해 왔다.
주희가 제시한 격물치지보망장에 대해 찬반론이 예리하게 대립되고 있는 사실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왕수인은 주희의 보망장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대학장구'의 체제를 부정하여 '고본대학(古本大學)'을 드러냈다.
주희의 보망장을 찬성하는 인물들은 이른바 주자학의 정통성 속에 속하는 인물이지만, 정통 도학파의 인물인 이언적(李彦迪)의 경우는 '대학장구보유'를 저술하여 그 속에서 주희의 보망장 없이도 격물치지장의 내용을 '대학'의 첫머리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격물치지장의 내용은 각각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보망장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들로는 이전(李銓)과 최수지(崔收之) 등이 있다. 이언적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황과 유성룡(柳成龍) 등은 주희의 입장을 지지하여 이를 비판하였다.
또한 정제두(鄭齊斗)는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로서 '고본대학'을 결함이 없다고 존중하여 '대학장구' 자체를 거부하였다. 조선 후기 실학의 대표적 인물인 정약용(丁若鏞)은 물의 대상을 사와 엄격히 구별한다. 그는 격의 의미로서 '온다'거나 '이른다'는 뜻이 적합하지 않고, 왕수인이 '바르게 한다'고 해석한 것이 옳다고 지지한다. 또한 그는 '대학'의 8조목에서 격물과 치지는 다른 6조목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격물의 '물'은 본말(本末)이 있는 것이고, 치지는 선후(先後)하는 바를 아는 것이라 하여, 의와 심이 근본이고 가·국이 지말임을 알며, 성과 정이 시작이고 제와 치가 마침임을 아는 것이 격물이요, '바르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뜻을 참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나, '뜻을 참되게 하고 난 뒤에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일의 선후를 아는 것을 치지라 분석하여 '격치도(格致圖)'를 만들고 있다.
격물치지 문제는, 특히 최근에 와서 유학이 과학적 탐구방법이나 지식체계와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과제를 지니고 있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 지지지야(知之至也)
自天子以至於庶人(자천자이지어서인)
壹是皆以修身爲本(일시개이수신위본)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모두 몸을 닦는 것을 뿌리로 삼는다.
其本亂而末治者否矣(기본란이말치자부의)
그 뿌리가 어지러운데도 그 우듬지가 다스려지는 일은 없다.
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기소후자박이기소박자후)
未之有也(미지유야)
두터워야 할 데를 얄팍하게 하고, 얄팍하게 할 데를 두텁게 하는 일은 아직 없었다.
此謂知本(차위지본)
此謂知之至也(차위지지지야)
이것이 뿌리를 안다고 하는 것이고, 이것이 앎이 지극하다고 하는 것이다.
서인(庶人)은 도성에 사는 사람들로, 대체로 귀족층에서 가장 낮은 자리를 차지하는 사인(士人)들을 가리킨다. 일(壹)은 '오로지', '한결같이'라는 뜻이다. 박(薄)은 '엷다', '얇게 하다'는 뜻이다.
천자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나랏일을 맡아 하는 계층이 먼저 해야 할 것으로 몸을 닦는 수신(修身)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뿌리이기는 하나 몸통은 결코 아니다. 뿌리가 없어서는 몸통도 없지만, 뿌리만 깊게 내리고 몸통이 없다면 이 또한 온전한 나무가 아니다.
따라서 몸을 닦는 일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하게 만들기 위한 뿌리지 몸통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 뿌리가 어지러운데도 그 우듬지가 다스려지는 일은 없다"고 한 말이 그런 뜻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몸을 닦는 일이 사대부가 할 일의 전부인 것처럼 여긴다면, 이는 '대학'의 본뜻을 심각하게 곡해하는 것이어서 통치술로 활용할 수 없다.
여기에서 구태여 몸을 닦는 일을 뿌리로 삼는다는 것과 그 뿌리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지극함'이라 말한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고대에 천자나 제후, 귀족은 태어나면서부터 백성을 지배하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헤아리거나 고민할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않았다. 몇몇 뛰어난 인물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지만, 그 또한 스스로 철저하게 사유해서 깨달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거의 800여 년을 이어간 주 왕조에서 성군(聖君)은 커녕 명군(明君)조차 드물었다는 사실, 춘추전국시대 수많은 제후 가운데 패자(覇者)로 불리거나 현명하다고 일컬어진 군주가 또한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타고난 신분이 통치 계층에 속한다 해서 그 신분에 따른 책무를 저절로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신분 질서 자체가 인위적인 것이니, 그 질서를 유지해 나가는 일 또한 인위적인 노력을 더해야 가능하다. 수신을 정치와 통치의 뿌리라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知(알 지)는 ❶회의문자로 口(구; 말)와 矢(시; 화살)의 합자(合字)이다. 화살이 활에서 나가듯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말한다. 많이 알고 있으면 화살(矢)처럼 말(口)이 빨리 나간다는 뜻을 합(合)하여 알다를 뜻한다. 또 화살이 꿰뚫듯이 마음속에 확실히 결정한 일이나, 말은 마음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알다, 알리다, 지식 등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知자는 '알다'나 '나타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知자는 矢(화살 시)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知자는 소전에서야 등장한 글자로 금문에서는 智(지혜 지)자가 '알다'나 '지혜'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슬기로운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 智자는 '지혜'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고 知자는 '알다'라는 뜻으로 분리되었다. 智자는 아는 것이 많아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만큼 말을 빠르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知자도 그러한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그래서 知(지)는 (1)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정신의 작용하는 힘. 깨닫는 힘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알다 ②알리다, 알게 하다 ③나타내다, 드러내다 ④맡다, 주재하다 ⑤주관하다 ⑥대접하다 ⑦사귀다 ⑧병이 낫다 ⑨사귐 ⑩친한 친구 ⑪나를 알아주는 사람 ⑫짝, 배우자(配偶者) ⑬대접(待接), 대우(待遇) ⑭슬기, 지혜(智慧) ⑮지식(知識), 앎 ⑯지사(知事) ⑰어조사(語助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알 인(認), 살펴 알 량/양(諒), 알 식(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을 지식(知識),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지혜(知慧), 지적 활동의 능력을 지능(知能), 지혜로운 성품을 지성(知性), 지식이 있는 것 또는 지식에 관한 것을 지적(知的), 알아서 깨달음 또는 그 능력을 지각(知覺), 지식과 도덕을 지덕(知德), 아는 사람 또는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봄을 지인(知人), 새로운 것을 앎을 지신(知新), 은혜를 앎을 지은(知恩), 지식이 많고 사물의 이치에 밝은 사람을 지자(知者), 제 분수를 알아 마음에 불만함이 없음 곧 무엇이 넉넉하고 족한 줄을 앎을 지족(知足), 자기 분에 지나치지 않도록 그칠 줄을 앎을 지지(知止),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안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 여러 사람이 어떤 사실을 널리 아는 것을 주지(周知), 어떤 일을 느끼어 아는 것을 감지(感知),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붕지(朋知), 기별하여 알림을 통지(通知), 인정하여 앎을 인지(認知), 아는 것이 없음을 무지(無知), 고하여 알림을 고지(告知), 더듬어 살펴 알아냄을 탐지(探知), 세상 사람들이 다 알거나 알게 함을 공지(公知), 서로 잘 알고 친근하게 지내는 사람을 친지(親知), 나이 50세를 말함으로 50세에 드디어 천명을 알게 된다는 나이를 달리 이르는 말을 지천명(知天命), 천명을 알 나이라는 뜻으로 나이 오십을 이르는 말을 지명지년(知命之年), 자기를 가장 잘 알아주는 친한 친구 또는 서로 뜻이 통하는 친한 벗을 일컫는 말을 지기지우(知己之友),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의미의 말을 지피지기(知彼知己), 참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한다는 말을 지행합일(知行合一),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허물을 알면 즉시 고쳐야 한다는 말을 지과필개(知過必改),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을 일컫는 말을 지명인사(知名人士), 지식과 행동이 한결같이 서로 맞음 또는 지식과 행동이 일치함을 일컫는 말을 지행일치(知行一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뜻으로 믿는 사람에게서 배신당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지부작족(知斧斫足), 알면서 모르는 체함을 일컫는 말을 지이부지(知而不知), 형세가 불리한 것을 알면 물러서야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난이퇴(知難而退), 모든 일에 분수를 알고 만족하게 생각하면 모욕을 받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지족불욕(知足不辱),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보답함을 이르는 말을 지은보은(知恩報恩), 지자는 도리를 깊이 알고 있으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미혹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지자불혹(知者不惑), 사리에 밝은 사람은 지식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함부로 지껄이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지자불언(知者不言), 밝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대우大愚의 덕을 지키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백수흑(知白守黑), 대우를 잘 받아서 후의에 감격하는 느낌을 이르는 말을 지우지감(知遇之感), 족한 줄을 알아 자기의 분수에 만족함을 일컫는 말을 지족안분(知足安分), 족한 것을 알고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은 부자라는 뜻을 이르는 말을 지족지부(知足知富) 또는 지족자부(知足者富), 간악한 꾀가 많아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꾸며 대어 상대방을 곧이 듣게 함을 이르는 말을 지족식비(知足飾非)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至(이를 지, 덜렁대는 모양 질)는 ❶지사문자로 새가 땅(一)을 향하여 내려앉는 모양이라 하여 이르다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至자는 '이르다'나 '도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至자는 화살을 그린 矢(화살 시)자가 땅에 꽂힌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至자를 보면 땅에 꽂혀있는 화살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목표에 도달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至자는 대상이 어떠한 목표지점에 도달했다는 의미에서 '이르다'나 '도달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至(지, 질)는 ~까지의 뜻을 나타내는 한자어(공간이나 시간에 관한 낱말 앞에 쓰임)의 뜻으로 ①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②영향을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③과분하다, 정도(程度)를 넘다 ④지극(至極)하다 ⑤힘쓰다, 다하다 ⑥이루다 ⑦지향(志向)하다 ⑧주다, 내려 주다 ⑨친근(親近)하다 ⑩표(表)하다 ⑪진실(眞實), 지극(至極)한 도(道) ⑫실체(實體), 본체(本體) ⑬동지(冬至), 절기(節氣)의 이름 ⑭지극히, 성대(盛大)하게 ⑮크게 ⑯최고(最高)로, 가장 ⑰반드시 ⑱마침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를 도(到)이다. 용례로는 더할 수 없이 급함을 지급(至急), 더할 나위 없이 독함을 지독(至毒), 더할 수 없이 가장 높은 위를 지상(至上), 더할 나위 없이 천함이나 너무 흔해서 귀한 것이 없음을 지천(至賤), 더할 수 없이 어려움이나 아주 어려움을 지난(至難), 지극한 정성을 지성(至誠), 더할 수 없이나 지극히 착함을 지선(至善), 더할 수 없이 크다 아주 큼을 지대(至大), 더없이 높음이나 뛰어남 또는 더없이 훌륭함을 지고(至高), 지금까지를 지금(至今), 몹시 가까움이나 더 없이 가까운 자리를 지근(至近), 지극한 즐거움이나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을 지락(至樂), 더할 나위 없는 재능을 지재(至才), 더할 나위 없이 곤궁함을 지궁(至窮), 더 할 수 없이 존귀함을 지존(至尊), 어떠한 정도나 상태 따위가 극도에 이르러 더할 나위 없음을 지극(至極), 한군데로 몰려듦을 답지(遝至), 수량을 나타내는 말들 사이에 쓰이어 얼마에서 얼마까지의 뜻을 나타냄을 내지(乃至), 장차 반드시 이름이나 필연적으로 그렇게 됨을 필지(必至), 지극한 정성에는 하늘도 감동한다라는 뜻으로 무엇이든 정성껏 하면 하늘이 움직여 좋은 결과를 맺는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지성감천(至誠感天), 지극히 공평하여 조금도 사사로움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지공무사(至公無私), 지극히 공정하고 평등함을 일컫는 말을 지공지평(至公至平), 매우 가까운 곳을 이르는 말을 지근지처(至近之處), 진정한 명예는 세상에서 말하는 영예와는 다르다는 말을 지예무예(至譽無譽), 지극한 정성이 있는 사람은 그 힘이 신과 같음을 일컫는 말을 지성여신(至誠如神), 지극히 도리에 맞는 말을 말없는 가운데 있음을 이르는 말을 지언거언(至言去言), 매우 인자함을 일컫는 말을 지인지자(至仁至慈), 지극히 가깝고도 정분 있는 사이를 일컫는 말을 지정지간(至情之間), 더할 수 없이 높고 순수함을 일컫는 말을 지고지순(至高至純), 죽음을 당하는 처지에 이르러도 끝까지 굽히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지사불굴(至死不屈), 거의 죽다시피 되는 어려운 경우를 일컫는 말을 지어사경(至於死境), 매우 어리석은 듯 하나 그 생각은 신령스럽다는 뜻에서 백성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듯하지만 그들이 지닌 생각은 신령스럽다는 뜻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지우이신(至愚而神), 몹시 천한 물건을 일컫는 말을 지천지물(至賤之物), 절대로 복종해야 할 명령을 일컫는 말을 지상명령(至上命令), 지극한 정성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지성진력(至誠盡力),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일컫는 말을 지우금일(至于今日), 지극히 원통함을 일컫는 말을 지원극통(至冤極痛), 그 이상 더할 수 없이 매우 곤궁함을 일컫는 말을 지궁차궁(至窮且窮), 더할 나위 없이 정밀하고 미세함을 일컫는 말을 지정지미(至精至微), 매우 가난하여 의지할 곳조차 없음을 일컫는 말을 지빈무의(至貧無依),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도 남을 나무라는 데는 총명하다는 뜻으로 자신의 허물은 덮어두고 남의 탓만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지우책인명(至愚責人明), 끊임없는 지극한 정성이란 뜻으로 쉼 없이 정성을 다하자는 의미로 지극한 정성은 단절될 수 없다는 뜻을 나타냄을 일컫는 말을 지성무식(至誠無息), 초나라로 간다면서 북쪽으로 간다는 뜻으로 목적과 행동이 서로 배치됨을 이르는 말을 지초북행(至楚北行) 등에 쓰인다.
▶️ 也(잇기 야/어조사 야, 잇달을 이)는 ❶상형문자로 뱀의 모양을 본떠서 본 뜻은 뱀이다. 그 음(音) 빌어 오로지 어조사(語助辭)로 쓰여지고 있다. ❷상형문자로 也자는 '어조사'로 쓰이는 글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어조사란 '~이다'나 '~구나', '또한', '역시'와 같은 것을 뜻한다. 也자는 乙(새 을)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새'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렇다고 也자가 어떤 것에서 기원한 것인지도 명확하지는 않다. 일부에서는 뱀이 꽈리를 틀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고대에 사용하던 주전자를 그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두 가지 해석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닌 것은 也자와 결합하는 글자들을 보면 두 해석이 모두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고대에도 也자의 기원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也(야, 이)는 ①잇기(한곳에 대어 잇거나 한곳에 닿아서 붙는 일) ②어조사(語助辭), ~이다, ~느냐?, ~도다, ~구나 ③발어사(發語辭) ④또한, 역시(亦是) ⑤딴, 다른, 그리고 ⓐ잇달다(다른 사물에 이어서 달다)(이) ⓑ대야(둥글넓적한 그릇)(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영탄하는 어조사 야야(也耶), 그러한가를 야여(也歟), 별로 해로울 것 없음을 야무방(也無妨), 괜찮음 또는 해롭잖음을 야자무방(也自無妨) 또는 야자불방(也自不妨), 마침내 또는 마지막에는 급기야(及其也), 만일에 또는 행여 나를 혹야(或也), 그 사람 또는 그 자라는 궐야(厥也), 나는 것 같음이나 매우 빠름을 비야사(飛也似), 홀로 푸르다는 말을 독야청청(獨也靑靑), 말인즉 옳다는 말을 언즉시야(言則是也), 입이 관문과 같다는 말을 구자관야(口者關也), 옳으니 그르니 하고 시비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시야비야(是也非也), 전쟁에서 사람은 죽는다는 말을 병사지야(兵死地也), 누구들이라고 드러내지 않고 가리키는 말을 모야수야(某也誰也), 의외로 많음을 이르는 말을 하기다야(何其多也)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