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는 조금 더 걷고 싶어 해
서윤후 그런 기분 느껴본 적 있니? 장례식장에 너무 늦어버린 너무나도 늦은 손님이 도착한 곳의 맏이가 되어가는 자신을 처음 들여다본 웅덩이 앞에서 길을 잃은 개의 흐느낌처럼 그렇게 시작된 생일 노래는 꼭 금세 꺼질 것 같은 촛불인지 그 과일을 좋아하던 사람의 얼굴로 열매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서부터 개수대 앞에서 비 맞는 날들 신발은 다정하게 나눠 신어본 적 없어서 한쪽 슬리퍼만 풀 무더기 속에 남아 홀로 외발로 서 있던 저녁을 우리는 기억해야 해 이름 없는 것을 달랠 때 떠올리게 되는 가장 작고 부드러운 것 그것만은 꼭 지켜야 한단다 또 무아지경으로 졸았구나……. 꿈이 걷게 만드는 외곽을 따라 쇼케이스 속 쿠키들은 예쁘게 무너지고 있어 이젠 웃으면서 구겨질 수 있게 되었지 투명한 꿈엔 얼마나 많은 손자국이 묻어 있던지 미소가 인간의 무표정을 헤매다가 입꼬리에 달라붙을 때 그렇게 고른 헤어짐의 얼굴을 꼭 외워둬야 해 그땐 걷고 싶은 기분인 데다 쉬어갈 곳 없었지만 지금은 차가 너무 막히니까 가도 가도 끝이 없으니까 기다리던 사람들도 하나둘 잠들고 있으니까 ―계간 《포지션》 2023년 겨울호 --------------------- 서윤후 / 1990년 전북 정읍 출생. 2009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휴가저택』 『소소소 (小小小)』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