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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로미오와 줄리엣
『 여는 장 』
괴상한 날이란게 참 그렇다.
분명 어제 야자까지 튀고 7시 쯤 달잠에 빠져들었건만, 눈을 뜨자 이미 생을 달리한 자명종과 9시를 가르키는 시계가 보였다.
상황파악이 안된건지 두 눈을 끔뻑거리다가 느릿하게 욕실에 들어가 평소처럼 씻고 나왔다. 그 시각 9시 30분이었다.
썰렁하고 조용한 거실을 훑고 방에 들어가 교복을 느릿느릿 입었다. 스타킹을 신고, 리본을 어떻게 매더라..고민하다가 대충 매곤 부엌으로 가 다 식어버린 토스트를 물어 앉았다.
'째깍째깍'
9시 50분이다. 한창 2교시가 끝나갈 시간이구나. 난 근데 지금 여기서 뭐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 들었다.
부모란 분들은 제주도 여행가셨고 내 귀여운 중학생 남동생은 감히 날 버리고 가버렸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정신이 든 후에도 조금도 내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느릿하게 화장실로 들어가 칫솔을 무는 나였다.
#
"야, 너 뒤질래?"
뒤에서 들려오는 나직한 목소리에 느릿하게 뻗던 왼다리를 다시 돌려놓았다.
who.....앞머리를 만지작 거리다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Wow. 왠 연예인 뺨치게 잘생긴 남자가 삐딱하게 서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10:30 am.
3교시를 시작하고도 남은시간. 점점 늘어가는 무단 결석체크를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
"이거 안보이냐?"
"뭐."
"와 진짜, 너 이거 안보여?"
아 짜증나, 뭐라는 거야. 지금 학교가느라 바쁜 내 발이 보이지 않는거니?
잘생긴 놈은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저 언덕 위를 힐끔거리는 날 빤히 보다가 주욱 시선을 내려 내 교복 한 쪽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같이 시선을 따라가니 우리 학교 마크가 보인다.
아니 이게 뭐?
"너 광성여고 다니냐?"
응. 그런데........당신은?
남자의 교복을 주욱 훑으니, 아......우리 학교 왼쪽에 딱 붙은 한성상고 교복이다.
베이지색 마이와 갈색바지가 눈에 띄는 교복이다. 하지만 한성상고 교복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란, 갈색 나비타이다. 거참 그거 잘 어울리면서도 묘한 것이, 한성상고 교복에 자랑이었다.
"씨발 왜 걸려도 광성이냐."
작게 중얼거리는 남자를 보다가 언덕을 향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당황해서 버벅버벅 날 부르다가 재빠르게 따라 붙는다.
우리 학교는 우리 동네 자랑스러운 광성 언덕배기 정상 정 가운데 위치해있다. 그 덕분에 지각할 수록 느는 건 다리 근육이요 지구력이었다.
그 오른쪽엔 교문은 다르나 운동장도 같이 쓰고 축제도 같이하는 거의 같은 학교나 다름없는 같은 재난 광성남고가 있다. 이른 바 '광남' 은 불행하게도 교문을 찾아 언덕을 올라 우리 두 학교의 건물을 돌아 언덕 뒤로 넘어가야 그 교문이 보였다.
그에 귀찮은 놈들 한 둘이 여고 교문을 몰래 이용하던 것이 이제는 거의 공용화 되었다. 어차피 여고 교문이 우리 광성 두 학교의 교문 같고 그 광남 교문은 꾸진 후문 같아서 음침했다.
그리고 딱 대칭으로 찍어 낸 듯 우리 바로 왼쪽엔 광남처럼 딱 붙은 한성상고가 있다.
재단도 다르고 같은 인문계도 아니지만 어찌나 달라붙어 있는지 가만히 복도 창문으로 내려다 보면 그 학교 운동장과 건물 안이 보일정도였다.
이 정상의 세 학교를 따라 언덕을 내려오다보면 광성중과 초등학교가 보인다. 쪼끄만 언덕의 왠 학교가 그리 많은지.
헌데, 희한하게. 우리 딱 붙은 두 재단은 사이가 지독히도 나빴다.
이웃 사촌끼리 더 사이가 지독하달까. 교문이 나란히 있는 바람에, 하교시간이 비슷한 토요일엔, 매번 싸움이 일어나곤 했다.
' 한상 여학생 vs 광녀 ', ' 한상 남학생 vs 광남 ' .
물고 뜯고 난리가 아니다.
이런 진 풍경을 이미 두 재단의 선생들은 손 놓은지 오래였다. 아니 어쩌면 선생들끼리 더 흥분해서 싸우고 있을지도.
한성상고는 이 주위 최고의 실계학교라는 자부심을 우리는 공부하는 인문계 학생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며 서로 깔보기 때문이라 모두들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있을것이다.
물론 난 이런 귀찮은 상황이 싫어 하교시간이 겹치는 날이면 종례를 씹어먹거나 아예 느즈막히 나오곤 했다.
그만큼 귀찮게도 무지막지하게 싸워댔다.
그나저나...왜 얘기가 일로 샜냐.
"야.야."
"춥다....."
"야! 광녀! 너 말 씹냐?"
"안 추워?"
"추워 디지겠.......아니, 이게 아니고, 야! 너 니가 저지른 것 좀 보라고!"
교문......저 앞인데.....다 왔는데....
내가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바라보자, 남자가 말 없이 턱으로 자신의 교복바지를 가르킨다.
에에- 왠 흙탕물이 그 아이의 갈색바지 한 쪽을 흠뻑 적시고 있다. 어머- 칠칠 맞게시리.
"자랑.....이야?"
"..........장난까냐?"
"잘 좀 놀지. 아직 애구나?"
"...........너 병신이지?"
가만히 고민했다.
"나 병신 아닌데....아닌 거 같아."
"또라이냐 그럼?"
".....어쩌다 바지씨를 그리 물에 젖은 생쥐 꼴로 만드셨나요~?"
".......아까. 기억안나....?"
길다란 검지를 쭉 뻗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높다란 언덕배기 밑, 끝에 신이 난 내가 뛰어 놀았던 물 웅덩이가 보였다.
이걸 어째,.........설마 내 잘못인건가여..........
"이제 기억 난 눈치네."
"기억 안나! 절대 흥이나 물 웅덩이에서 뛰어 논 기억따위 안나!"
"병신. 다 기억났네."
"헙..어떻게 알았지?"
"이거 진짜 개 또라이 아냐? 야- 너 이거 어쩔거야."
".........이 똥강아지!"
버럭 뜬금없는 내 소리침에 딱딱히 굳어버린 그 남자다. 짙은 눈썹이 꼬물꼬물 거리며 인상이 팍 쓰여지는데 오메나, 두려워라아.
진심.......진심으로 두려웠다. 싸늘한 눈초리를 슬그머니 피해 쪼그리고 앉았다. 가디건 주머니에서 키티 손수건을 꺼내 바지를 살살 문지르니 탁 내 손을 밀치며 물러나는 그다.
"왜 피해?"
"아 씨발. 느낌 이상해."
"응?"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 보니 얼굴이 안 보이게 저쪽으로 돌려버렸다. 왜 저럴까. 치마를 툭툭 털고 일어나 텅텅 비어 있는 가방을 앞으로 돌려 열었다.
가벼운 가방 안을 채우고 있는 건 우리학교 보라색 체육복. 내 이름이 왼쪽 허벅지에 자리하고 있는 체육복을 꺼내 내밀었다.
"뭐야, 이 걸레는."
"걸레 아닌데 이 똥강아지야."
"........"
"저기 걸어가는 강아지 한테 한 말이야."
그제야 무서운 표정을 푸는 그 놈. 쳇, 그런다고 누가 무서워 한데?
"입어, 빨아다 줄게."
"미쳤냐?! 나보고 지금 이 걸레를 입으라고?!"
"걸레 아니라고 똥개야!!"
"........."
"똥개야, 똥개야, 저기 걸어가는 똥개야~"
".......설마 너희 광녀 체육복이냐?"
"응."
"꾸질꾸질 하긴."
"그러는 너흰 야채모임이면서."
"뭐?"
"3학년은 호박, 2학년은 잡초, 1학년은 토마토. 채소가겐 줄 알겠어~"
"씨발..! 오늘 점심시간까지 다림질까지 다해서 가져와."
내 말에 빡친건지 잠깐 욕을 외치던 그 놈은 내 체육복을 잡아채 옆에 있는 건물 화장실로 휘적휘적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5분도 안되서 그 후줄근한 보라색 체육복으로 교체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한쪽 팔엔 흙물투성이인 바지를 들고.
와아- 잘난 것들은 다르네. 어떻게 저런 걸 입고도 간지가 나지?
"받아."
"으억-"
휘익- 던지는 교복바지를 얼굴로 정성껏 받아 들었다. 이씨 저 똥강아지 같으니라고.
"아, 개 쪽팔려. 천하에 내가 이게 뭔 꼴이냐...."
"나 이제 가봐두 돼?"
"어. 가라."
"빠이 빠이."
손을 흔들고 교문을 향해 돌려는데 갑자기 불러세우는 그 강아지놈.
"야!"
"또 왜에!"
"점심시간까지 다림질까지다! 2학년 5반으로 찾아와!"
"응.....응?으에?"
"아 씨발 개 쪽팔려."
날 지나쳐 빛의 속도로 얼굴을 가린 채 뛰어가는 그 강아지의 뒷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빠였어....?"
작게 중얼거린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학주한테 깨지고, 담임한테 깨지고, 숙제 안해서 3교시 교과 선생한테 깨지고......최악의 날이다.
맞아서 퉁퉁 부어버린 손을 보다가 책상에 힘없이 널부러졌다.
"이 지각대장!!!"
"수정아아....."
"야아- 그거 알아? 너 오늘 최고기록이다?!"
"씨이 너..."
"미안미안~ 그나저나 오늘도 늦잠?"
"응."
수정이는 대단하다~ 라고 말하며 내 앞에 주저 앉는다. 그리고 문득 내 열려진 가방에 빼꼼히 보이는 것을 주욱 꺼내 본다.
억! 저건.
"한파랑. 이거 뭐냐?"
"으....으헤헤-"
"왠 상고 교복이 니 가방에 있는거지?"
"설명하자면 긴데....."
"당장 불어!!"
예...옙!!
난 아침에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두 커다란 눈이 더 커지는 수정이다. 안 그래도 치켜올라가 무서운 눈...더 무서워졌다.
"그 씨발, 상고 개 싸가지들."
".......헤헤-"
"뭘 잘했다고 웃어!"
"미,미안!"
"그나저나 그 개새끼 이름이 뭐래?"
".........뭘까?........"
"설마...너 모르냐?"
"....헤헤- 그런 것 같아."
"한파랑 진짜 아오...."
손을 번쩍 드는 수정이를 치해 몸을 움츠리니 어이구, 이 화상아! 하며 일어나서 유선이에게로 가버린다. 무서운 이수정.....중얼거렸다.
책상에 널부러진 갈색 교복을 멍하니 보다가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헉.......벌써 4교시다.
허둥지둥 그 교복을 들고 일어나는 순간 타이밍 좋게도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젠장, 젠장. 다림질까지 해오랬는데.
교복을 일단 가슴에 고이 품고 살금살금 일어나 뒷문으로 향했다. 바지런히 4교시 준비를 하며 자리에 앉는 반 애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날 주시한다.
"한파랑, 어디가?"
"양호실!"
은수에 물음에 커다랗게 외치고 냉큼 교실을 빠져나왔다. 으엥, 출석부에 또 체크되겠네.
조심조심 구 계단을 내려가, 폐 화장실에 자물쇠를 전처럼 솜씨좋게 금방 따서는 조용히 들어갔다. 삐걱되는 나무 문이 으스스하기 짝이 없다.
이 폐 화장실은 구석탱이에 위치한 창고 교실옆에 있는 구식 화장실로, 아무도 걸음하지 않는 덕분에 선생님들은 개조할 생각도 않고 방치하고 있는 곳이었따.
삐그덕 소리나는 나무 문들과 뒷산과 바로 연결된 으스스한 화장실 창문 때문에 우리 학교 괴담에 원산지가 바로 이곳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왠만하면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이 곳 근처에도 오지 않는다.
허나, 불량 학생들에겐 안 좋은 것을 하기엔 참 좋은 곳인지 가끔 땡땡이 치고 여기서 담배를 피곤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신기하게도 물은 나오는 꼬질한 세면대에 그 교복을 올려놓고 물을 약하게 틀었다. 졸졸졸하며 나오는 물에 교복을 적셨다.
그리곤 치마 주머니에서 세숫비누를 꺼내 바지에 문질렀다. 거품이 몽글몽글 하니 이쁘게도 일어난다.
"씨발, 비겁한 새끼들아!"
악!
갑자기 폐 화장실 커다란 창문 밖 으스스한 뒷산 쪽에서 들린 큰 소리에, 난 소리를 내질렀다. 누구야! 철렁한 심장을 추켜올리며 열심히 빨던 교복을 내려놓고 커다란 창문으로 다가갔다.
분명 화창한 낮인데도 불구하고, 음침한 뒷산이 보였다.
그리고 시선을 밑으로 내리니, 동글동글한 윗통수들이 네 명 보인다.
음........교복을 보니, 저 한상 놈들이네.
"비겁하고 야비한 놈들!"
"비겁하고.....야비......?"
중얼거리면서 창틀에 턱을 괴었다. 대치 상황이 딱, 1대 3이네.
저 소리지르는 애가 1, 그리고 그 앞 놈들이 3. 엥, 까려는 건가? 재밌겠다.
난 교복바지는 까맣게 잊고 그 놈들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1인 애가, 주먹을 꼭- 쥔다. 부들부들 떠는 게 좀 애처롭다.
"그러게, 왜....후- 날 건드려."
"유진인 내 여자친구야!"
".....그래서?"
"네가 내 여자친구를 빼앗었잖아! 나쁜새끼.."
".....미안하지만 김유진 걔가 나 좋다고 쫓아다닌거 난 예뻐해준 것 뿐이야."
"니가 그러고도 친구냐?"
"넌 그러고도 내 친구라고 할 수 있어?'
"뭐.....?"
"여자 하나 때문에 나랑 쌩까자는 거 아냐? 우리 우정이 이렇게 쉬웠냐?"
"......내가,.....나한테 유진이가 어떤 존잰지 너 알잖아!"
그니까, 그니까.....
저 1과 3의 젤 앞에 있는 놈이 친군데.......1인 애의 소중한 여친을 1/3인 놈이 뺏었다는 얘긴거지?
와, 개 쓰레기 같은 놈이네. 저 1/3.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지형상 좀 높은 1층인 덕분에 얘깃소리가 선명히도 들린다. 결국 1인 애가 심히 화가났는지 먼저 주먹을 날린다.
그 쓰레기 놈....가만히 있길래 맞겠구나 싶었는데. 이게 왠일. 옆에 있던 2/3 놈이 가볍게 막는다.
"준아, 그만하자."
"윤호야. 난 도저히 저새끼 용서할 수가 없어."
으음, 다 친군건가.
1인 아이 주먹을 가볍게 막은 놈은 한숨을 쉰다. 그러고는 미안하다 한마디 하더니, 와우. 빡- 소리나게 1인 애 배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갑작스런 충격에 허리를 깊게 구부린 1은...안쓰럽게 쿨럭거린다. 명치를 제대로 빗겨 맞았나보다.
근데, 그 놈은 제대로 정신 차릴 새고 없이 턱을 주먹으로 갈기고 발을 들어 가슴을 뻥 차버린다. 멋진....옆차기다.
1인 애가 벽에 부딪혀 쓰러져 끙끙거리니, 멋진 폭력을 선보인 놈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고, 마지막 놈이 그 애 앞으로 다가간다. 주먹을 꼭 쥔게 또 때리려는 건가.
아니, 지들이 뭘 잘났다고 감히 학교 폭력이야! 순간 욱 해버렸다.
"야!"
한파랑. 정의사도, 천사소녀 제티 나섰다.
내 커다란 소리에 시선이 다 나에게로 향한다. 난, 가볍게 창틀을 짚고, 뛰어 넘었다.
내 육중한 몸이 갑자기 떨어지자 서있던 2명은 우르르 비켜났고 난 멋지게 정착해야지. 한 생각과는 다르게......
멋지게! 엉덩방아를 찓었다.
파당!
괴상한 소리가 나면서 떨어져 엉덩이가 욱신욱신 거린다. 받침대로 짚은 손은 까져서 피가 나고 있다. 히잉- 하면서 상처를 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아 맞아. 그 아이 지켜줘야지!
여전히 끙끙거리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쭈그리고 앉았다. 발자국이 상아색 조끼위에 진하게도 나있다. 손으로 툭툭 털어주니, 한 쪽 눈을 슬그머니 떠서 날 바라본다.
그에 싱긋- 웃어주었다. 뒤돌아서 그 아이를 보호하는 주먹을 쥐었다. 일어섰다.
"넌 뭐냐?"
"1대 1로 싸우던가......비겁하게 이게 뭐야."
"쟤 뭐래니?"
조무래기들이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린다. 그 뒤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넘버원이 있다.
저 놈이 제일 나쁜 놈이니까 쟤 많이 혼내주자.
"덤벼라, 악당들아!"
기합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어어? 어벙한 소리를 지르는 조무래기들 부터 공략했다.
아빠에게 배운대로 주먹을 내지르고 발차기를 힘차게 내뻗었다.
여자라고 방어도 안하던 녀석들은 덕분에 정통으로 내 공격에 맞아들었고, 바닥에 주저 앉아서야 상황파악을 끝냈다.
"저거 뭐야?"
"야!"
일단 주저 앉았으니 너희들은 LOSE! 음하하! 시원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우두머리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고개가 살짝 숙여져 그 못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검지 손가락을 힘껏 쳐들었다. 악당에게로!
"악당아!"
"흠, 악당?"
고개를 천천히 드는데, 악당의 밝은갈색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바람에 맞춰 휘날린다. 와....머릿결 좋다. 멍하니 그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칼을 보자니, 시선이 느껴진다.
악당이 날 웃음띈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악당을 노려보려는데.......노려 보려는......데?
"앗? 넌!"
"음....나 알아?"
"넌! 똥강아지?!"
"똥강아지.....?"
분명 똥강아지 얼굴인데! 날 모르는 사람처럼 고개를 갸웃하는 놈이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바지도 내 체육복이 아니네? 멀쩡한 교복이잖아!
"너 나 아냐구요, 정의의 사도 아가씨."
"어?어? 너 나 몰라?"
"음.....난 너 처음 본다만?"
"악당에다가 똥강아지야! 우리 아침에 만났잖아!"
"아침에.....?"
"그러고 보니 너 내 고귀한 체육복 어따 팔아먹었어!"
"체육복....? 아, 혹시. 너 여고 특유의 거지같은 보라색 체육복 바지?"
"그래! 아까전엔 걸레 같다더니 이젠 거지같다니!!!이 똥강아지!!"
내 말에 뭔가 생각하는 듯 고개를 갸웃 하던 놈은 갑자기 커다랗게 웃음 터뜨렸다.
배까지 부여잡고 무지무지 커다랗게 웃는데....참 사람 무안하다.
"그 천사소녀 제티 한파랑♡ 의 주인공이 너였냐?"
"참나, 아침에 그 문구가 적힌 체육복 입고 간 사람이 댁이면서 그걸 왜 또 물어보신데?"
"으하하하하하하하,"
아 저런 미친 놈을 보았나.
손가락으로 머리 주위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혀를 쯧쯧 찼다. 미치셨군.
"선우 민 존나 귀여운 놈. 푸하하하-"
"이봐! 당신! 왜 그렇게 웃는 거야?"
내 뾰루퉁한 표정에 그제야 대충 진정한 놈이 아직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날 응시한다.
"지금 그 체육복의 주인공은 적의 옷을 입고 왔다며 전교생에게 시달리고 있다면....알려나?"
"뭐?"
"아아- 별거 아냐. 좀 있다가 점심시간에 오면 알게 될걸?"
"뭐래는거야아!"
알 수 없는 말들만 지껄인다. 빙글빙글 도는 머릿 속에 짜증이나 소리를 내지르니 짜증이 나게 웃기만 한다.
저런 미친놈!
"그나저나 한상의 적인 광녀 아가씨께서 왜 이 싸움에 끼어드셨나요?"
"아니, 그건 당신들이 너무 비겁하게 한명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잖아!"
"흠, 그건 우리의 공공의 적. 광녀 아가씨께서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우리 사정이고, 우리가 다 알아서 할건데 말이지."
"이런 비겁한 일에 적이라서 모른 척 하고 그런게 어딨어! 그리고 한상 대 광성 따위 귀찮은 일에 날 끼워넣지 말라고!!"
"그래서 지금 우리들을 저 놈을 위해서 해치우겠다.....?"
"그,그래!"
순간 차가워진 놈의 눈빛에 급 움츠러드는 나였다. 아까전 장난기 어린 눈빛과는 쌩 딴판이다.
"이봐요 광녀씨. 당신은 좋은 뜻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광녀의 한 일원인 당신이 우리 한상의 일원을 치게 되면.....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생각 안해보셨어요?"
"어.....어?"
"한상애들이 우오오 일어나서 광녀에게 몰려오면 어떡하려고?"
"아.....아.....아?"
어느세 자리에서 일어나 놈의 뒤로 선 조무래기들을 힐끔 거리다가, 뒤로 몇걸음 물러섰다.
놈의 굳어버린 표정은 도저히 가까이서 받아들이기 두려울 정도다. 아아, 차라리 끼어들지 말걸.
이런 저런, 요런 조런. 사정들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냐구! 놈은 주춤 거리며 물러서는 날 보면서 차게 웃었다.
"그러나. 나에게 큰 웃음을 준 귀여운 광녀 아가씨를 봐서, 오늘 일은 쉿- 일급 비밀. 좀 이따 점심시간에나 보자구."
"어?"
"그럼 안녕."
"어어? 그냥 가는 거야? 야!"
"아참, 올 때 교복입고 오면 생매장 달할껄? 명심해~"
"야!야! 너 대체 뭐야!"
놈은 조무래기들과 껄렁한 걸음걸이로 멀어지면서 쿨하게 휘휘 손을 저었다. 그리고 내 질문에 답을 하듯 좀 더 멀어졌을 때야 소리 높여 말했다.
"점심시간에 오면 알아!"
후다다닥- 난 넋을 놓고 그 놈들을 보다가, 정신을 차려 뒤에 쓰러진 아이에게로 달려갔다.
신음을 흘리며 한쪽 눈을 찌푸리고 있다.
"괜찮아?"
"넌......뭐야?"
"정의의 사도! 음.......근데 어떡하지, 우리 양호실 가면 난리 날테고, 상고 양호실까지는 내가 못가고..."
"됐......어......"
내손을 탁 하고 내치는 녀석.
쪽팔려서 그런건지, 아님 적에게는 도움도 받지 않겠다는 건지. 못마땅하게 아이를 바라보다가 낑낑거리고 일어나지도 못하는 녀석을 두고 그냥 벌떡 일어나버렸다.
"뭐 원하신다면, 그 상태로 어디 한번 한상까지 가봐."
"......젠....장.."
"갈 수나 있으려나,"
일어나다가 이내 벽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져 내린다. 쯧.
"도와줄까?"
"씨발 됐다고!! 좀 가!!!"
흥, 자존심이 하늘 높은 녀석 같으니라고.
여전히 낑낑 거리며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를 보다가 그냥 뒤돌아버렸다. 그렇게도 도움 받길 싫어하는 데 굳이 붙어 도와줄 의향은 없다.
몇번 녀석을 뒤돌아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는 녀석 때문에 더이상 돌아보는 것도 그만 두고 그냥 바로 담을 타 화장실 창문으로 넘어와 버렸다.
안전하게 화장실에 착지해 마지막으로 내려다 보니, 어느세 녀석은 사라지고 없다.
어......귀신같은 자식.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다시 빨래를 하기 위해 비누를 집어들었다. 몽글몽글한 거품이 다 사라져 있다.
다림질까지 해야되는데......씨이- 언제하고 있냐! 생각같아선 때려치우고 싶지만, 아까 그 악당의 정체가 궁금해서 말야....
머릿속에 떠오르는 날 전혀 몰라보는 악당의 얼굴과 날 어이없이 노려보던 놈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비누의 거품이 몽글몽글 바지의 흙탕물을 씻어낸다.
◆
젠장할ㅋㅋㅋㅋ
아이엠어모델 어따 때려치우고 이런 몹쓸!!
반갑습니당! 기말고사 일주일 앞두고, 이리도 뻘짓하고 있습니다.
아이엠어모델은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제 미니노트북에 7편 8편 곱게 써내려가고 있답니다ㅋㅋ
문제는 왤케 안풀리는 걸까요! 맘에 안들어서 지우고 다시쓰고 지우고 다시쓰고....그래서 이렇게 못올리고 있답니다....젠장..
그러다가 갑자기 옛날에 써놓았던 소설공책이 보여서 손발 오그라드는 부분은 각색해 갑자기 새작품을 올려보아요.
음.....처음인거 같애요. 이런 뭔가 보통 인소같은 소설은.
제가 시도했던 소설은 맨날 특수한 직업에 관련되었거나, 아님 특별한 사람들뿐이었는데. 얘네들 너무 평범하죠..?
근데 남주 쪽이....음....어쩌면 그리 평범하지 않을지도....
집안은 평범할지 모르나, 그냥....그냥...다음편에 밝혀져요!
ㅋㅋㅋㅋㅋㅋㅋ
이번 작품이랑 아이엠어 모델은 유난히 끝까지 가고 싶은 작품이네요.
한번 노력해볼게요.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
첫댓글 재미있어요. 다음편 기대할꼐요^^ (저도 시험 일줄 나뚜고 왠지 빠지는...쩝)
오우웃 담편기대기대 >.<너무 재미있어여~~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