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앙의 막대기 / 박주병
기원 전 4세기경,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초기에 상앙(商鞅)이라는 한 법가가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위(魏)나라 사람이었으므로 위앙(魏鞅)이라고도 불리어졌다. 처음에 그는 위나라 재상인 공손좌(公孫座)의 가신으로 있다가 뒤에 진(秦)나라에 몸을 의탁했다. 그는 진나라에서 제도(帝道)와 왕도(王道)를 논했지만 그러한 방안이 효과가 너무 늦게 나타난다고 효공(孝公)이 달가워하지 않자 마침내 패도(覇道)를 논했다.
그는 어느 날, 길이가 3장(丈)쯤 되는 가벼운 나무 막대기 하나를 진나라 도성의 남문에 세워 두고 사람을 불러 모아 놓고서는, 그 막대기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는 10금을 주겠다고 했다. 백성들은 기이하게 여기면서 어떻게 그렇게 쉬운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시 상금을 올려서 이번에는 50금을 주겠다고 외쳐댔다. 마침내 한 사람이 그 막대기를 옮겼더니 정말로 50금을 주는 게 아닌가.
상앙은 하찮은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백성들로 하여금 정부의 말은 지켜진다는 걸 믿게 만들었다. 이 고사를 ‘사목입신’(徙木立信)이니 ‘사목지신’(徙木之信)이니 한다. 상앙은 이와 같이 백성이 정부의 말을 믿게 한 뒤에 비로소 신법(新法)을 정식으로 반포하였다. 신법이 얼마나 엄격했던지 그 법이 시행되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백성들은 불평을 했고 효공의 아들인 태자도 법을 위반할 정도였다. 그러자 상앙은 “법이 시행되지 않는 것은 윗사람부터가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태자를 처벌하려 들었다. 태자는 군주의 후계자이니 처벌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위에서 말리자 태자 대신에 시종장(侍從長)인 공자(公子) 건(虔)을 처벌하고 태자의 교육을 맡은 공손가(公孫賈)를 입묵(入墨)의 형에 처했다.
이렇게 되자 진나라 사람들은 모두 법령에 복종하였다. 신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되자 진나라 사람들은 매우 좋아하였고, 집은 풍족하였고 투덜대던 백성들도 신법을 환영하게 되었다. 상앙은, 그러나 이런 백성들은 결국에는, 여차하면 정부가 반포한 법령에 대하여 제멋대로 말하고 평가할 것이므로, “이들은 모두 혼란을 일으키는 배성들이다.”(此皆亂化之民也)라고 하고는 모조리 변방으로 이주시켜 버렸다. 그 뒤로는 백성들이 감히 법령에 대하여 왈가왈부하지 못하였다. 『사기』의「상군열전」에 나오는 얘기다.
진나라는 상앙의 이 정책으로 해서 부국강병이 되어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는 데 기초가 되었지만 상앙의 말로는 어떠했던가? 효공이 죽자 태자가 즉위하게 되었는데(혜왕), 태자의 사부였던 공손가는 전에 상앙한테 처벌받은 일로 해서 원한을 품고 벼르고 있던 터라, 혜왕이 즉위하자 상앙이 모반을 도모한다고 고했다. 마침내 상앙은 마차에 사지가 묶여 찢어지고 말았다. 상앙의 과도한 태도에 대해 조양(趙良)이란 자가 간하길, “아침이슬처럼 위태롭습니다.”(朝露之危)라고 했지만 상앙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다. 천하를 통일한 진 왕조 또한 불과 3세 16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으니 성을 얻는 것은 말 위에서 할 수가 있어도 성을 지키는 것은 말 위에서 할 수가 없다고 하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다.
장관이 텔레비전에 얼굴을 내밀고는 언필칭 직을 걸고 한다는 말이, 연탄 값은 절대로 올리지 않겠다고 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그 이튿날 날이 밝기가 무섭게 돈을 꾸어서라도 연탄을 더 많이 들여놓고는 했었다. “쌀 수입만은 대통령직을 걸고 절대로 막겠습니다.”라고 장담한 대통령이 누구였지?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했을 뿐 대통령직을 내놓지도 않은 그 뻔뻔스러운 거짓말쟁이가 누구였지? 백 마디 말 가운데 참말은 겨우 한 마디가 될 둥 말 둥한 작자를 예로부터 ‘백일’(百一)이라고 한다. 백일의 무리가 장관도 하고 대통령도 하는 그런 세월을 살아온 지가 오래 되었다. 기름 집 문짝에는 ‘순 진짜 참기름 있습니다.’라는 쪽지가 나붙게 되었던 것이 다 까닭이 있었다.
선거 때만 되면 공약의 홍수를 만난다. 모두가 자신이야말로 ‘순 진짜 참기름’이란다. “뭐라카노? 내는 마 선건 날 새북에 등산 간다 안카나!…”
꼬일 대로 꼬인 이런 마음이 어떻게 하면 되돌려질까? 아마도, ‘순 진짜 참기름’에서 ‘순’과 ‘진짜’를 떼어 버리는 일부터 착수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순’이며 ‘진짜’를 떼어 버리는 일은 상앙의 법보다는 그의 막대기에 물어 봐야 되지 않겠나.
자공(子貢)이 공자께 정치를 물었을 때 공자는 “먹는 것을 족하게 하고 병력을 족하게 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믿게 한다.”(足食足兵使民信之)라고 했다. 그 가운데 부득불 버려야 할 경우에는 먼저 무기를 버리고 다음은 식량을 버릴 수가 있어도 백성의 신뢰는 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널리 알려진 진부한 얘기다. 백성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서지 않는다고 한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는 공자의 정치철학을 상앙의 막대기는 제대로 실행한 셈이다. 왜 백성인가. “마부가 말을 잘 모는지는 말만큼 잘 아는 게 없고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지는 백성만큼 잘 아는 게 없다.”(問善御者 莫如馬 問善治者 莫如民 )
우리는 지금 상앙의 막대기가 그리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