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가해 연중 제9주간 토요일
마르코 12,38-44
우리에게 언제나 지속적인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시대 율법 학자들은 유다 사회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녔던 입권 기관이자 사법기관이었던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에서 일했습니다.
그들은 구약성경의 필사자, 혹은 편집자로 구약성경의 정경을 확정했고, 성경 원문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 시대 율법학자들은 나름 한 가닥씩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유다 사회 안에서 상류층, 식자층에 속했었고, 그러다보니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고 쓸 데 없는 우월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름 잘 나가고, 자칭 경건하고 훌륭하다고 여겼던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사정없이 ‘까’버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을 향해 던지는 말씀에는 때로 너무나 날카로운 가시가 박혀있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따발총처럼 다음과 같이 격한 말씀을 되풀이하십니다. 그들을 바로 면전에 두고 말입니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는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보시다시피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구린 실상과 허례허식, 겉과 속이 다른 가식적인 삶을
공개석상에서 낱낱이 고발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은 율법 학자들을 향해 정면으로 던진 목숨을 건 도전장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이 위선자야, 이 눈먼 인도자야’ 하면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물론 우리 모두 완벽하지는 않기에 크게 반성도 하겠지만, 우선 크게 ‘빈정’이 상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가 뭔데 내게 그런 말을 하나’ 하며 따지고 대들 것입니다.
율법학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들의 실제 생활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크게 분노했고 부들부들 몸을 떨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도전장으로 여겼고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따로 모여 대책회의를 시작했고, 계속되는 예수님의 쌍날칼 같은 말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단 한 가지 어떻게 해서든 제대로 된 꼬투리 하나를 잡아 예수님을 고발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결국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율법학자들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의 말씀, 그 말씀이 비록 너무 강경해서
받아들이기 힘든 점도 없지 않았으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빨리 하느님께로 돌아서라는
예수님의 눈물겨운 말씀은 더 이상 그들에게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가장 하느님을 잘 알고 가장 하느님을 사랑해서, 자칭 하느님의 장자라고 여겼던 그들은
가장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고 하느님 구원의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늘 필요한 것이 지속적인 자기 성찰입니다. 일상생활 가운데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그리고 이웃들을 통해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때로 받아들이기 힘들고 가슴 아프지만 내 인생의 부정적인 경험, 쓰라린 체험을 통해 전해오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