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걔 사랑해?"
"아니."
"그럼 왜 만나?"
"..걔는 내 그림자거든."
-
"귀찮게 좀 하지마! 넌 공부 쳐 안하냐?"
"...너나 쳐 안자고 얘기해."
새로 오빠가 맡은 아이란다.
원래 자기보다 어린사람이 말 놓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오빠에게 '형, 형' 이라고 부르는 거 보니
많이 친해지긴 했나보다.
한달 후면 데뷔한다는 연습생인데 멀쩡하던 고등학교에서 왜 전학을 왔는지.. 생각해보면 나오는 것은 하나다.
스파이.
하지만 아직은 의아함뿐이다.
서로 공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성적표가 오빠네로 갔나.
"너 나에 대해서 무슨 소릴 들었는진 몰라도 오빠 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거라ㅁ..!"
"나비야~ 커피 사왔어! 오늘은 매점 아줌마가아.......어? 짝꿍이 바꼈네?"
"아까 마셔서 안 마셔, 다시 가져가."
"응, 그래. 전학생이야? 처음보는데.... 머리가 노랑노랑거려!"
오늘도 역시 빼놓지 않고 꼭 한번은 나를 찾는 양재호는 검은 머리 사이에 튀는 노랑노랑 머리가 신기한지 멀뚱멀뚱이다.
"노랑노랑..? 나비야, 얜 누구야?"
"노랑노랑아, 우리 이쁜 나비한테 친한 척 하지마. 난 나비 남자친구거등~ 아. 종치겠다. 이따 데리러 올게! 또 어제처럼 일찍 가지 말구. 기다려야 되~"
또 고레고레 소리지르며 뛰어가는 양재호를 보니 한심하단 생각이 먼저든다.
"..너 남자 친구도 있었냐? 근데 남친한테 대하는게 왜그래? 형한테 들었을 땐 애교도 많다고 들었는데.."
"..."
하나하나 대꾸해주는 것도 귀찮아 전학생을 뒤로 다시 엎드려 버렸다.
어제 공연 뒷풀이에 너무 무리를 했는지 아무리 막 써도 멀쩡하던 목까지 아파온다.
이따 학교 끝나고 연습실 가서 쉬어야지. 조용한 집보다 딩가딩가 연습실이 더 편한 나다.
수업이 끝나마자 종례도 듣지도 않고 이 곳으로 왔다.
오늘은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연습실로 가고 싶었기에.
한시간 정도 기다리면 근처에서 날 찾다가 양재호도 돌아갈 것이다.
성적보다 인격과 건강을 중시한다던 우리학교는 그 때문인지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옥상을 작은 숲으로 꾸며 놨다.
온실 안으로 들어가니 울창한 나무들이 보인다.
나무들이 기본적으로 자라라면 10년정도는 거야 한다는데 이놈의 학교는 군사체제 때도 옥상에 이런것들을 키우는 게 취미였나보다.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곳에 누워 부재중이 밀릴 핸드폰의 뱃터리를 분리해서 바닥에 놓는다.
항상 푸르름을 지킨다는 온실천장 떄문에 파란 하늘이 뿌옇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하늘도 이뻐 보이고 몸이 상쾌해 지는 느낌이다.
거짓과 모순이 뼛 속까지 묻혀 있는 이 몸에 초록 깨끗한 공기들이 들락날락 거림이 느껴진다.
나무들이 산소를 내뱉는다던데 그래서 그런가..
난 이 곳이 좋다. 연습실 다음으로.
양재호가 날 찾지 못하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도 있고.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아이는 내가 한 번이라도 지나간 곳이라면 모든 꿰고 있다.
그래서 내가 없어져도 그 아이는 얼마 되지 않아 나를 찾아.
아마 내가 이곳에 있는 걸 본다면 그가 나를 찾는 장소 중 하나가 되겠지.
이 곳은 그렇게 만들고 싶지않다.
"우와~ 여긴 옥상에 이런 것도 있네?"
"..뭐야!"
"아니, 뭐.. 니가 종례도 안 듣고 어딜 급히 가길래, 급한 일인가 해서 따라왔지.
근데 뭐야, 그냥 땡땡이잖아? 아까.. 니 남친이 너 데리러 온다고 하지 않았냐?"
"...신경꺼. 오빠가 너한테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난 태어나서 애교따위 한 번도 부려본 적 없어."
전학생은 의아하다는듯 입구 쪽에 안으로 들어온다.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애.
"..형은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
"읏차, 형은 너에 대해서 이 학교에 다닌 다는 거 밖에 말 안했어. 사실은 내가 형 지갑에 있는 사진보고 물어봤거등."
전학생은 옆에 있는 역기드는 곳에 누워 꽤나 무거워 보이는 것을 들며 말한다. 양재호도 저런 거 잘할 텐데.
- 덜컹
"....무슨 소리야?"
"어우..오랜만에 하니깐 힘들다. 그니까 애교 같은 거 니가 부리는 거 보고싶어서 헛소리 한거라고."
이번엔 일어나서 누워있는 내 위에서 허리를숙여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얘는 또 왜저래.
"나, 너 은나비한테 관심있다고."
"너...!"
"나 강혜성이 은나비한테 관심있다니깐? 너 내 이름도 제대로 몰랐지? 외워놔라, 강혜성."
그 길로 그 아이는 연습하러 가야 한다며 온실 밖으로 나가고
언제 끼어 놨는지 다시 켜져 있는 내 핸드폰에는 양재호란 이름이 계속 울릴 뿐이다.
" 니 남친한테 계속 전화 온다. 받아 줘라 좀."
위험하다.
강혜성.
-
오늘은 축 쳐진 날이다.
티비 소리는 최대로 틀어 놓고, 소파에 엎드려 시체 놀이 중이다.
아까 분명 교실에 갔을 때 기다린다고 했는데.. 금방 끝난 종례에 기쁜 맘으로 달려간 나비의 반에는 나비가 없었다.
새로운 전학생이라던 나비짝꿍 노랑노랑이도 같이.
종례는 아직 한창인데도.
뒷 문에 쪼그려 앉아 있는데 혁이가 다가왔다. 오늘 은나비 중간에 갔으니까 자기와 같이 가자고.
언제쯤 나갔냐고 물어본 후 답을 듣자마자 달려 나왔다.
나비가 가는 곳은 어디든 학교 근처를 뒤졌지만 그 아이를 찾지 못했다.
섭섭하기도 했지만.. 나비한테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내가 아직 부족해서 니가 가는 곳을 다 모른다고. 아직 찾지 못할 때도 있다고.
전화는 계속 했지만 희망을 걸진 않았다. 꺼져있었으므로.
나비의 전화는 켜져 있을 때가 거의 없는 듯 하다. 내가 전화 할 때는 받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아, 오늘은 중간에 켜졌었다.
당연히 받지는 않았지만.
다른 애들은 이런 나를 보면서 항상 불안해 보인다고 한다. 은나비가 정말로 나비처럼 날아갈까봐.
오늘도 혁이가 끌고와서 3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걸 보며 혁이는 내게 처음 들어보는 욕두문자들까지 날렸다.
이젠 니가 미쳐가는 거 같다고. 은나비에 미쳐간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않아.
나는 내 모든 사랑을 나비에게 부었고 그 아이는 그 사랑에 길들여져 내가 없으면 이제 안된다.
아무도 우리가 커플로써 하는 대화가 아닌 거 같다고 하지만, 나는 나비가 생략한 모든 말들을 들을 수 있고.,
나비는 내가 그럴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에 대한 근거를 대라고 해도 난 댈 수 있다.
내가 미쳐 그 아이를 붙잡고 있는 거라면 왜 나비는 나를 버리지 않을까.
지금도 다시 한 번 통화 버튼을 누르고 물을 한 방울 떨어뜨린다.
사랑해, 은나비.
From. 양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