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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무렵, 파리와 견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음악의 중심지는 오스트리아의 빈(Wien)이었다. 하이든은 만년을 편안하게 보내 있었고, 이에 반해서 베토벤은 빛나는 예술적 생애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프랑스 혁명과 더불어서 시작된 새로운 시대의 이념, 즉 새로운 생활 태도와 사상의 변화가 시작된 19세기를 대표하는 최초의 인물, 베토벤의 음악 생애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아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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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기성의 권위에 대해서 경의를 나타내지 않았고, 어떤 일이건 자신의 소신을 굽히는 일이 없었다. 매사에 조심스럽고 신중했던 하이든이 놀랄 정도였다. 하이든은 이런 베토벤을 두고 '몽고의 귀족' '터키 왕'이라고 불렀다. 빈의 귀족사회에서 베토벤이 寵兒로 괴임을 받게되었을 때도 그는 결코 자기의 선배들이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시종'의 대접을 단호하게 거부할 정도였다. 자신이 타고난 천부적 재능이 어떤 귀족들보다도 고귀하다고 스스로를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와 사상은 서양음악사를 통해서 최초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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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으로부터 낡은 관습에 정면으로 대항했고, 그리하여 음악가의 신분을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그의 역할로 인해 음악예술은 새로운 권위를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지극히 높은 명예로운 위치로 예술의 가치를 높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서 음악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18세기의 음악은 전적으로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새롭게 대두한 중산층의 예술로 확산되면서 그 예술적 수준은 예전에 뒤지지 않는 것으로 유지되었다. 폭넓은 시민문화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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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열정적인 민주주의자이며 공화주의자였다. 정치적 문제에 커다란 관심을 나타냈고, 그만의 흔들리지 않는 정치적 이상과 열망을 지니는 서양음악 사상 최초의 음악가였다. 그 이전의 음악가들은 정치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이상을 진심으로 환영했고, 또한 공화정을 폈던 나폴레옹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지지했다. '영웅 교향곡'을 나폴레옹을 찬양하기 위해 썼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그가 공화제를 폐하고 스스로 황제가 됐을 때 너무도 분노한 나머지 악보에 써 놓았던 헌사를 찢고 그것을 발로 짓밟았다. 존경심이 큰 만큼 실망도 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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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례없는 힘과 위엄을 지닌 자기 자신의 예술에 있어서 그 역시 나폴레옹 같은 존재라고 여겨진다. 교향곡의 장대한 스케일, 예술적 착상의 대담성, 무한한 상상력, 불굴의 신념,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나폴레옹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3개의 이상 가운데서 베토벤의 미학적인 입장, 즉 그의 도덕적 이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도덕적인 이상과 미학적 신조의 밀접한 연관은 베토벤의 예술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종교와 예술의 일치는 그 이전에도 선례가 있는데 팔레스트리나와 바하가 그러한 실례이다. 그러나 인도주의적 이상을 예술에 반영시킨 것은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 다른 나라의 지식계급에 순수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연후에 비로소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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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분야에서 이와 같은 새로운 예술의 입장을 처음으로 개척한 위대한 대표자가 바로 베토벤이다. 베토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고대의 호메로스, 페트라르카, 셰익스피어, 실러, 괴테였다. 그에게 있어서 이들은 어둠을 비추어준 등불이었다. 따라서 베토벤 예술의 도덕적 기초는 이들과 프랑스 혁명에서 얻어진 것이다. 베토벤의 작품이 지니는 가장 뛰어난 특질의 하나는 작품이 지니고 있는 숭고한 감동력인데, 이것은 그 이전의 어떤 작품보다도 우월한 것이다. 특히, 소나타, 4중주곡, 교향곡들 가운데 상당한 작품들은 참으로 힘있는 도덕률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도덕률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것이라고 하겠지만 결코 특정한 교회나 교의의 성격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이 특질의 일부는 괴테의 범신론적인 이상주의에서 유래한다. 괴테의 위대한 정신과 포용력이 풍부한 인격, 세계시민의 이상은 베토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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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에게 칸트의 엄격한 도덕설을 알게 할 기회를 준 실러의 고매한 철학도 깊은 감명을 주었다. 베토벤의 아다지오 멜로디의 숭고한 찬가를 읊는 것 같은 기분은 자주 지적되어 있지만, 수많은 소나타나 교향곡이나 4중주곡의 알레그로도 역시 마찬가지로 엄숙함과 깊은 감명에 가득차 있다. 이와 같은 기분을 적절히 정확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고결한 인격성 때문이다. 베토벤의 멜로디를 다른 모든 작곡가들의 멜로디에서 뚜렷이 구별 지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이러한 성질인 것이다. 실러와 괴테가 베토벤 이후의 음악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칠 바가 없다. 실러의 영향은 주로 그 후 독일의 극적인 경향과 도덕적인 면에 나타나고 괴테의 영향은 기품 있는 서정시에 나타나 있다. 실러가 없었던들 베토벤이나 바그너도 없었을 것이며 괴테가 없었던들 슈베르트나 슈만이나 멘델스존이나 브람스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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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람의 위대한 인격이 미치는 감화력은 독일 음악의 테두리를 훨씬 넘어서 확대되었다. 그것은 유럽 도처에,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스칸디나비아 지방에까지 뻗어져 있다. 아마 단 하나의 예외는 영국일 것이다. 왜냐하면 19세기의 영국음악이 劇작품에는 볼만한 것이 없고, 독일적 의미에서의 음악적인 서정시도 거의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러의 희곡은 빅토르 위고 일파의 프랑스 낭만파에 의한 희곡의 성립을 촉구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오페라에도 자극을 주었다. 오베르의 "포르티치의 벙어리 아가씨(La Muette de Portici)"는 그 한 예이며 마이어베어와 스크리브의 역사 오페라도 실러라는 표본이 없었던들 그만한 성공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이탈리아 오페라가 극적인 내용 면에서 한층 더 패기에 가득찬 것이 된 것도 실러의 힘찬 극작법의 덕택이다. 롯시니의 "윌리엄 텔(Guillaume Tell)"이나 베르디의 "죠안나 다르고(Gioanna d'Arco)"등의 오페라는 실러의 영향을 직접 나타내는 예이지만, 그 밖에도 "아이다(Adia)"처럼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더욱 화려하게 그의 영향을 나타내는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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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러의 도덕적인 순화력은 특히 베토벤의 미학적 입장과 전반적인 창작의 태도에서 인정된다. 화려한 "환희의 송가"의 피날레를 가지는 "제 9교향곡"은 가장 뚜렷한 예이지만 많든 적든 베토벤의 음악에는 어디서나 이러한 기분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레오노레'서곡이나 오페라 '피델리오'와 '영웅', '제 5', '제 7'의 교향곡은 비교적 뚜렷하고, '비창' '라 단조' '월광' '발트스타인' '열정'등의 피아노 소나타, '크로이처 소나타'에도 이와 같은 윤리적인 성격이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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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윤리적이라든가 도덕적이라든가 하는 말을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있는 도덕률에 따라서 올바른 행위를 설교하는 의미로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러한 교육적인 일은 설교자나 교육자가 하면 족한 것이다. 교훈적인 목적은 그 자체로서는 어떤 예술에 있어서도 본래의 목적도 아니고 예술과 도덕적인 경향을 결부시키려는 시도는 어느 시대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베토벤의 음악에는 확실히 매우 높은 윤리적인 성격이 깃들여져 있다. 그것은 그의 음악이 위대한 영혼의 솔직하고 진지한 표현이며, 그의 悲慘과 고뇌에 대한 동정이나, 의무, 정의, 진리에의 감각이 자연스레 음악 속에 흘러 들어가, 그 음악에 기품 있는 이상과 숭고한 감동, 신의 섭리에 순종하고, 초인간적인 獻身을 작품에 반영함으로서 비할 바 없는 아름다움을 낳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두 순수하고 힘차고 거짓없이 예술적이다. 왜냐하면 조금도 교훈적인 티가 없고 가장 고귀한 열망에 불타는 위대한 영혼이 베토벤 전체에 충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예술할동은 모두 독특한 액센트와 색채와 감명의 심도를 가지고 있다. 그의 예술적 활동은 결국 그의 감정의 세계 --- 꿈, 초조, 정열, 야심, 高揚, 실의, 저항, 슬픈 경험, 생의 기쁨 등을 음악이라는 수단으로써 남김없이 표출해낸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넓은 여러 감정을 나타내기에는 그 당시 존재하고 있었던 음악으로서는 충분히 유효하지 못했으므로 그러한 음악을 개작하고 자기 자신의 목적에 알맞는 것으로 하는 것이 베토벤의 생애의 과제가 되었던 것이다. 자기의 감정생활의 완전히 납득이 가는 표현을 찾아서 그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뒤따르는 一世紀간의 모든 음악가들에게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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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음악은 19세기가 진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 모든 음악적 수법의 不動의 기초이다. 슈베르트를 비롯해서 낭만파의 대가들, 베버, 슈만, 멘델스존, 베를리오즈, 리스트, 바그너, 브람스, 브루크너 등은 모두 이런 의미에서 베토벤의 제자이다. 베토벤은 또한 음악가운데서 유머, 그것도 쉐익스피어적 의미의 유머를 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는 것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쉐익스피어적인 유머라는 것은 다만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따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영혼에 맞닿아서 상냥하게 웃음 짓게 하는 고급의 유머인 것이다. 이런 따위의 유머는 인간의 노력이 거의 모두 허무한 것임을 깨닫고, 그렇다 해서 그러한 노력을 익살맞게 비웃는 것이 아니고 동정 어린 웃음으로써 인생의 허무함을 이겨내는 결과에서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격의 유머는 베토벤 이전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모차르트에게는 가끔 재치라는 것이 있었지만 유머는 모차르트나 글룩에도 예가 없고, 바하는 때때로 사실적인 유쾌한 기분의 묘사에 뛰어나지만 베토벤이 지닌 상상력의 엄청난 높이나 감정의 깊이에는 따르지 못한다. 하이든의 음악은 유쾌하고 종종 재치 있는 유모에 가득차 있고 또한 그 위에 야취가 있어서 때로는 문득 웃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순진하다. 그러나 베토벤의 유머는 선배 음악가들의 폭이 좁은 사실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 있다. 유쾌함, 즐거운 소란, 때로는 도를 지나친 야단법석은 사실적으로 그려진 것만이 아니고 이와 같은 현상의 배후에 있는 인간감정의 진실성에까지 파헤쳐 들어가 있는 것은 베토벤의 음악이 처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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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자기 능력의 자각과 스스로에게 엄한 규율을 부과하여 착실하게 주의 깊게 하나의 성과를 쌓아 올라가는 계획적인 행로, 틀에 박힌 진리보다도 개성적인 것을 존중하는 경향가운데에 우리들은 비로소 19세기의 새로운 정신이 큰 규모로서 출현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베토벤 예술의 기초가 되어있는 것은 오히려 전통적인 것, 즉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소나타 형식이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이 선배로부터 이어받은 소나타 형식에 새로운 독자적인 해석을 담았다. 소나타형식을 통해서 베토벤은 새로운 결론을 찾아내고 커다란 목표를 실현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전형적인 빈(Wien) 소나타의 명확하고 엄한 틀 안에 그러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던 음악가는 오직 베토벤 한 사람 뿐이었다. 즉석에서 새로운 멜로디를 생각해내는 힘이나 요령 있게 음악을 다듬어내는 솜씨 따위를 그는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이전에는 아무도 성실하게 다루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음악상의 문제에 대결하는 정신이었다. 하나의 문제를 풀면 그는 곧 다음의 새로운 문제에 착수했다. 이와 같은 휴식 없는 활동, 차례로 새로운 문제와 맞부딪치는 태도가 그의 창작방법인 것이다. 그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작업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게나 뛰어난 재능을 가지면서도 작품을 척척 만들어내는 것은 그다지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수많은 스케치북은 그가 하나 하나의 새로운 작업에 얼마나 정열적인 노력을 기울였던가를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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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근면 성실한 노고의 단 하나의 목적은 樂想에 대해서 가장 명확하고 완전한 표현을 부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찾아낼 때까지는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베토벤 음악의 기술이나 구성방법, 또한 소나타와 교향곡의 스타일, 피아노곡이나 4중주곡의 작곡법, 관현악 용법, 主題作法, 리듬이나 액센트에 관한 수많은 발견 등을 깊이 論하는 것은 이 책의 의도를 넘는 일이다. 이 책에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작업의 개관, 그의 작품의 문화적인 배경과 윤리적인 기초, 그리고 그가 스스로에게 부과하고 또한 그것을 해결한 새로운 문제뿐이다. 그러나 그의 김정표현의 세계가 보기 드물게 풍부함에는 특히 주의를 要한다. 베토벤은 다만 서정적인 표현의 좁은 범위의 大家도 아니며 또한 다른 유명한 작곡가의 多數가 그러했듯이 어떤 제한된 범위의 감정표현을 특별히 長技로 하는 작곡가도 아니다. 그의 음악은 셰익스피어나 괴테의 작품처럼 광대한 감정의 세계- 깊은 감동과 상냥한 정서, 환희와 해학, 悲愴과 悲哀, 서정적인 것과 극적인 것 등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깊은 명상에서부터 넘치는 환희에 이르기까지, 또한 온유한 겸손에서부터 프로메테우스의 활력에까지 미치고 있다. 종교적인 정열과 디오니소스적인 황홀히 공존하며 또한 우주적인 동시에 초자연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악마적인 충동을 나타내고 때로는 성실하고 솔직한 따뜻함을 표현한다. 이와 같이 거의 헤아려낼 수 없을만한 감정의 세계가 베토벤의 불멸의 작품 속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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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32곡의 피아노 소나타에 견줄 수 있는 작품은 바하의 平均率曲集 안에 있는 48곡의 프렐류드와 푸가, 또한 바하의 오르간을 위한 유명한 일련의 프랠루드와 푸가뿐이다. 이상의 세 작품은 어느 것도 모두 최고의 창조적 천재의 소산이다. 창작력의 풍부함, 뛰어난 구성력, 감동의 표현력, 정신의 고귀함에 있어서 베토벤은 바하와 同列에 세울 수 있는 작곡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베토벤이 바하와 다른 점은 새로운 견지, 새로운 음악적인 흥미이며, 이런 것은 그의 악곡형식과 처리법이나 표현방법, 음악적 내용의 한층 더 풍부한 변화 속에서 나타난다. 베토벤의 32곡의 소나타를 개관하면 그의 음악이 감정과 지성에 호소하는 힘을 얼마나 풍부히 가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평이한 거의 天眞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해서 청춘기와 청년기를 겪어 만년의 원숙과 예지에까지 다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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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의 전주곡과 푸가는 대체로 원숙한 성년시대의 작품이며 베토벤의 소나타에 비하면 양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비교적 변화가 적다. 작품 49와 79의 꾸밈없이 단순한 소나티네는 그런 대로 순조로운 출발이라 하겠다. 초기 소나타의 여러 작품들(2,7,10,13,14,22,26,27,28)은 그 하나가 청년다운 성격을 가진 작품이지만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다 합친 것보다 양식변화가 많다. 정열적인 성격은 작품 2의 1, 7, 10의 1, 작품 13의 '비창', 작품 27의 2의 '월광', 31의 2의 '환상곡풍의 소나타'에 나타나 있다. 단순하고 우아하며 전원적인 기분을 지니고 있는 작품으로는 작품 2의 2, 14의 1·2, 작품 22, 작품 28의 '전원', 작품 31의 1이다. 그런가하면 발트스타인과 열정은 '영웅' '운명'에도 나타나는 화려하고도 힘차며 의기충 천하는 베토벤 제 2기의 作風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작품 사이에 이것과는 대조적으 로 전원적이고 유쾌한 작품이 있는데, 작품 54와 78이 그러한 작품이다. 작품 81의 a인 '고별' 소나타에서부터는 그의 최후의 양식이 시작된다.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작품으로는 작품 81의 a, 90, 101, 109, 110, 111이 있다. 모두가 높은 정신성에 충만 되어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독창적이고 대담하고 공상적인 의도를 지니고 있으며 복잡하고 풍부한 악상을 갖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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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베토벤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가 설정한 문제를 설득력 있는 뛰어난 수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또한, 악곡의 분위기는 천상적인데서 지옥을 연상케하는 것에 이르러있다. 작품 106, 109, 111은 광대무변한 우주를 생각하게 하고, 형이상학적인 깊이와 신비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한편, 작품 81의 a, 90, 101, 110은 유례없는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우수를 섞은 친밀한 어조로서 이 세상의 매력을 노래하고 있다. 9개의 교향곡은 까다로운 전문가나 음악을 좋아하는 대중이나 그 누구에게도 감명을 주는 가장 고상하고 가장 기품 있는 음악세계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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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9개의 교향곡을 일반적인 의미로서 대중적인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들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된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있을 수 있는 비애, 환희, 이상을 가슴에 지니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만 막연하게 상념하고 있는 것을 명확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대중적인 것이다. 국적과 언어와 종파를 초월하여 음악 그 자체의 정열과 설득력과 아름다움에 의해서 모든 인류에게 호소하는 세계적인 음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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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곡의 4중주곡은 베토벤의 예술이 거둔 또 하나의 세계를 보여준다. 여기엔 그의 정신과 이상의 고귀함이 뚜렷이 빛나고 있다. 악곡의 형식과 구조의 복잡한 문제를 능숙하게 처리하고 있는 것은 그가 지닌 예지의 극치점을 보여준다. 또한 음악이라는 형태로서 표현된 감정 그 자체의 본질이 있다. 그것은 높은 지성, 세련된 정신, 예술에의 깊은 이해를 가진 청중을 위한 음악이다. 베토벤은 음악의 모든 대륙을 정복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개척하고 거기에서부터 놀랄만한 새로운 수확을 거두고 있다. 적어도 한 세기를 앞서서 초근대적인 음악의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후기의 작품들은 음악의 위대한 기념비이며 최고 타입의 현대음악의 도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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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니는 1912년 5월 15일字로 자기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부쳤다. "나는 베토벤의 기념비에 대해서 멋진 것을 생각해 내었다. 그러므로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 놓기로 한다. 제일 위에는 우선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왕관 같은 戰車에 앉은 베토벤像을 세운다. 네마리의 말은 3, 5, 7, 9의 교향곡을 상징한다. 첫 번째 말은 전신을 무장 시킨다(영웅 교향곡). 두 번째의 말은(운명)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지만 매우 정력적이고 목을 높이 치 올리고 있다. 세 번째 말은(7번 교향곡)날씬하게 즐거운 발걸음으로 걸어간다. 네 번째 말은 두 눈이 있는 곳에만 구멍을 뚤어놓은 천으로 온몸을 푹 덮어씌운다. 그 아래 對座에는 가운데에 예술과 하늘을 연결하는 理想의 여신상을 놓고, 오른쪽에는 한 소년, 왼쪽에는 한 소녀의 기도하는 像을 놓는다. 下段에는 생동하는 무수한 인물을 부각시킨다. 중앙에는 플로레스탄과 레오노레, 오른편에는 많은 사람들과 섞어서 하이든, 실러, 왼쪽에는 젊은 장군의 모습을 한 나폴레옹, 그리고 둘레에 는 모두 노동자, 병사, 혁명가들을 조각한다. 정면의 두개의 큰 형상은 오른쪽에는 인간애를, 왼쪽에는 독립과 자유를 나타낸다. 뒤쪽 정면에는 아름다운 원주의 건축이 있는데, 그 아래의 세 모퉁이에는 각각 음악과 서정시, 劇을 나타내는 像을 세운다. 어떻소, 정말 멋지 지 않소!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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