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3) 평강 (엡1:1-2)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에 사도에 대해 성도에 대해,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은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누리는 것이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입니다
1. 사도가 에베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은혜와 평강’이라고 인사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도가 말하는 평화는 세상이 말하는 평화와는 다른 것입니다. 성경은 그저 싸움이 없고 다툼이 없고 평안한 상태를 평강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원수지간이었던 자들이 서로 화해를 하고 돌아서서 부둥켜안는 것 까지를 평강이라 합니다. 그 말의 근본적인 의미는 연합의 의미가 더 큽니다. 성경은 분리가 있은 뒤에 오는 연합을 평강이라 합니다.
범죄 한 인간은 모두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였다는 것은 인간이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떨러져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기도하고 미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하는 말에 대하여 귀를 기우릴 준비가되어 있는 자들입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존재였고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적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하여도 적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박에 계시는 하나님과 싸우고있는가 하면 내면적으로 자기 자신속에서도 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지음받을 때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때에만 자기 속에 평강을 누릴 수 있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자신을 신으로 삼으려는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자기 삶의 원리와 법칙으로 세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란과 악함으로 특징 지워지는 것입니다. 죄는 자기중심 자기위주로 인간을 유도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평안을 알지 못합니다. 해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하나의 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법으로 교정 받을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담 이후로 하나님과 평강의 관계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는 하나님과 화해가 되어야만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평강을 빌고 있는 것입니다.
2. 히브리어로 메시아가 헬라어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바울은 그 메시아 예수를 철저하게 인정한 기독교인이란 것입니다. 당시는 예수를 메시아로 부르고 따르는 자들은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했던 시절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처럼 십자가에서 하릴없이 죽어버린 그런 나약한 목수가 아닌 힘 센 메시아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그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무엇이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강이라는 것입니다.(엡2:14-17). 평강이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고 만들어져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도 평강을 이야기 합니다. 거짓 평안을 외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렘6:14) 예수를 믿으면 축복을 받고, 소원이 이루어지며, 내가 원하는 모든 일이 만사형통으로,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고, 병도 안 걸리는 그런 요술램프를 쥔 알라딘 같은 신앙을 외치는 자들이 널리고 널려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평안은 그런 평안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물질적, 공간적 편이들이 내게 주어져 있지 않을 때, 그 때도 사라지지 않는 그 어떤 하늘의 것을 ‘평안’‘에이레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안은 세상이 말하는 평안과 다릅니다.
요14: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눅12:51-53“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평강은 아무 일 없는 조용한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오히려 분쟁이 생깁니다. 싸움이 생깁니다. 예수님 때문에 친한 친구들이 떠나가고 예수님 때문에 가족 사이에 분열이 일어납니다. 예수님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평강은 전쟁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손해보고, 예수 때문에 고단하고, 예수 때문에 멸시받는 것이 평강이 임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렇게 당하면서도 예수로 말미암아 그 마음은 기쁘고 잔잔하기만 한 것을 성경이 말하는 평강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 평강은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지도 않는 평강입니다. 그래서 그 평강은 선물로밖에, 은혜로밖에 주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뚫고 들어와서 마음속에 새겨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게 평강입니다.
성경은 인간들 스스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평강을 쟁취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평강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만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일이 잘 되어서 주어지는 기쁨은 ‘편안’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세상은 절대 흉내 낼 수도 없는 그 것이 바로 평안, 평강, 평화인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삶을 간섭하고 있는 그 진리에 기쁘게 순종하며 가는 것을 성경은 평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4. 어떻게 그런 평강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까?
세상은 흉내도 낼 수 없는 그런 평강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오직 그 분의 공로로만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그 평강은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것이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사45:7)
그런데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을 보십시오. 한 아기가 태어나는데 그 아기의 이름이 평강의 왕이며 그 아기로 말미암아 평강의 더함이 무궁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사9:6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평강이 없는 세상에 평강을 주시는 방법이 이 한 아이를 통해서 입니다. 성경에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어집니다. 슥9:9-10에 예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것을 예언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로 말미암아 이방사람들에게 ‘평강’‘ 샬롬’이 전해 질 것이라 예언하십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엡2:14-17“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평강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수난의 정점에 선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그의 찔림이 없으면 절대 그 평강은 우리에게 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상함이 없었다면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음을 인지하고 얻을 수 있는 그 평강이 우리에게 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평강은 바로 십자가로만 말미암는 것입니다. 우리 죄인들의 삶을 뚫고 들어 온 십자가,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에 평강이 넘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에베소서는 옥중서신입니다. 감옥에서 썼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더럽고 불편한 감옥에서 사도 바울에게 바로 그 평강이 넘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감옥에 있는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자신이 누리고 있는 평강을 빌고 있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누리는 평강,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그 평강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저주받았던 그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해의 연합을 하게 된 것입니다. 원수였던 우리 성도들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서로 돌아서서 서로 부둥켜안고 화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거기서 오는 평강, 그 평강을 무엇과 바꾸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러한 평강을 누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부탁하십니다. ‘너희들은 한 몸이니 세상과 너희는 반목하더라도 너희끼리는 평강을 누려라. 너희 안에서는 그 하늘의 평강이 있게 하라’고 하십니다.(골1:20,골3:15 )
5. 십자가로 말미암아 평강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과 화목케 된 자들입니다.
수직적 화해의 장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수평적으로도 화해와 평강의 장을 이루어 내게 됩니다. 성경은 자기 안에 있는 평화, 다른 사람과이 평화 외에, 하나님과의 평화라 불리우는 것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안에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있다고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빌4:7)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 알려 주실 뿐만 아니라 평강을 유지시켜 주십니다.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것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유혹을 당할 수 있고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은혜가 인도하는 바 평강 속에서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