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숙맥이다 자본주의 사회구조 속에서 살려면 적어도 약삭 빠르거나 눈치 빠르거나 적응력이 뛰어나거나 해야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구조 속에서 살려면 남도 좀 속일 줄도 알고 사기도 좀 칠 줄알고 권모술수도 좀 부릴줄 알아야 하는데 엄만 우리 엄만 그렇지가 못하다
그 옛날 엄마의 아버지 내겐 외할아버지가 여자가 울면 집안 망한다고 여자가 배워 똑똑해지면 세상 망한다고 몽둥이로 피터지게 두들겨 패는통에 학교 문턱도 못가보아서 그야말로 문맹이 되버렸다
했으면 잘했을 공부 못해서 아니 안해서 일자 무식꾼으로 이럭저럭 살다가 아니 남의집 식모로 잔심부름 꾼으로 그렇게 살다가 열아홉 나이에 서른 가까운 노총각에게 속아서 시집갔단다 지금도 후회하는것이 그때 사진으로라도 인물을 봤다면 덧정머리없어 다른데 도망이라도 쳤을텐데 부모고 가족이고 좋은사람이니 가라고 강제로 떠미는 바람에 가긴 갔단다
첫인상이 너무 무섭고 우락부락하게 생겼고 고릴라 같이 생겼고 인정머리 없게 생겨서 결혼 싫다고 결혼 생각없다고 울며불며 거부 투쟁을 벌였지만 허사였단다 그땐 그랬단다. 무서웠단다 거가 어딘지도 모르고 강제로 팔려가다시피 간곳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형편에 입하나 덜어내면 조금은 덜 힘들겠지 체념하고 찾아간곳 그곳이 바로 강원도 평창의 어느 산골짜기였단다 지금 말로 화전민이라지만 산속에 들어가 불을 놓아 밭을 만들어 근근히 먹고 살았던 사람들 그들을 지금은 화전민이란다 나도 얼마전에야 부모가 화전민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흙과 나무로 엮어 만든 너와집 짓고 살았단다 그때가 1963년 1년 후 날 낳았으니. 그래도 서울서 살았던 엄마 깊은 산골로 우악스럽기 짝이없는 노총각 만나 살줄이야 게다가 또 주색잡기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돈도 없는 주제에 아버지는 화투 놀음에 몇날 며칠을 집에도 안 들어 오곤 했단다 또 그놈의 술은 와그리 많이 마셔 대는지 술마시고 고이 자면 누가 뭐래? 술만 취하면 엄마에게 시비걸어 그 억센 손으로 엄마를 두들겨 패대니 그렇게 평생을 폭행당하며 살아 오셨다
그땐 호랑이가 있었단다 아버진 놀음하러 마을 나가고 새파랗게 젊은 아낙 혼자서 호롱불 하나에 의지해 밤을 지새곤 했는데 때로 밖에서 호롱불보다 더 밝은 빛을 내는 짐승이 집앞을 서성거리다 사라지곤 했단다 아침에 나와보면 큰 호랑이 발자국이 여기저기 나있더란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엄마도 문맹 아버지도 문맹 우리 부모는 모두 일자 무식꾼이다 내머리 아버질 닮았는지 무척 둔하다 엄마는 까막눈이라 자식들 글눈이라도 떠야 한다면서 학교는 꼭 보내려고 힘을 쓰셨다 아버지는 일본어를 좀 아시지만 그마저도 다 몰랐고 한글도 겨우 아버지 이름 석자만 쓸 줄 아는 정도였다
엄마는 머리는 돌아가는데 아는게 없으니 상황 판단을 못할 때가 많다 지금도 엄마는 글을 못 배운것을 한으로 여기지만 지금이라도 배우라고 하면 이 나이에 뭘 배우겠느냐며 거절하신다
엄마는 평생을 가난에 찌들어 살아 오셨다 일자 무식꾼에 게으른 아버지 만나서 자주 두들겨 맞아서 피멍이 가실 날이 없었고 끼니 굶는 날도 많았다고 한다 자식들 만큼은 굶기지 않으려고 엄마는 남의 집 식모를 살며 얻어온 누룽지를 끓여 먹이곤 했단다
글도 모르고 아는게 없으니 평생을 남에게 무시당하며 살아 오셨다 그래서 남의집 식모살이나 식당 설거지나 청소나 건설 잡부 등으로 전전하며 생존을 연명해 오신 것이다
아버지 만나 30년 넘게 살면서 아버지랑 헤어지려고도 했으나 자식들이 눈에 밟혀 다시 돌아오곤 하셨다 가끔 집을 나가셨는데 그 이유는 술이 '만땅' 되서 허구헛날 엄말 매타작하니 결딜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아버진 나이가 들수록 더 술도 많이 마시고 더 많이 난폭해져 갔다 나이가 10살 차이 나다보니 혹시 바람 피는거 아닌가 하고 의심도 많았단다 술주정뱅이 남편 만나서 만날 두려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은 자식들이 커서 출가한 후로도 계속되었다 엄마는 더이상 못참겠다며 짐 싸들고 나가 버렸고 아버지는 2년까지 혼자 사시다가 집에서 급사하셨다
주위에서 집에 들어가라는 권유를 뿌리친 엄마는 숨어서 혼자 살았다 덧정없고 보기만해도 진저리가 난다며 죽어도 못 들어가겠다고 했다 술주정이 심한 아버지는 가끔 우리가 찾아 갈 때도 맨정신으로 있을 때가 없었다 손자손녀들에게도 술주정을 부리는 아버지 며느리에게조차 왕따 당했다
5년 전 쌀쌀한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회사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웃 분의 연락이었다 집에 가보니 아버진 부엌에서 알몸으로 엎어져 숨을 거둔 뒤였다 주변 이야길 들어보니 전날 댓병으로 소주를 마시더란다 아버진 젊어서부터 찬물에 몸 씻늘 걸 자주 하셨다 물도 한겨울인데도 찬물만 마셨다
술이 덜깬 다음날 아침 아버진 찬물에 샤워를 시도하다가 아마도 심장마비를 일으킨거 같았다 집이 산동네에 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도 엄마는 산동네에 가기 싫다고 해서 산동네에 있는 집을 헐값에 팔아 치웠다
회사가 어려워져 다니던 회사도 '짤려버린' 엄마는 생활이 여전히 어려웠다 자식들도 살기가 빠듯해서 도와 줄 수도 없다 가끔 손자들 보려고 오면 아내는 도끼눈 뜨고 못마땅해 한다 이상하게 엄마랑 아내랑 뒤틀려 있다 아내는 엄마를 왜그리 꼴보기 싫어 하는지 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손자손녀 보려고 오려해도 며느리가 겁나서 못오신다 엄마에게 좀 잘대하라고 다투기도 하지만 막무가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난 그냥 지켜볼 뿐이다
눈치코치 없는 엄마 문맹인 엄마 아둔한 엄마는 그렇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속고만 살다가 어느새 60살이 넘어 버렸다
숙맥은 나이들어도 숙맥인지 얼마 전 어떤 아줌마 따라가서 보증서고 카드 만들었다 그러나 약삭빠른 그 아줌마는 엄마를 속여 엄마 명의로 카드를 만들고 400만원 대출 내고 잠적해 버렸다 찾아가 갚으라고 생떼써서 얼마쯤 갚았는데 그쪽도 집안이 엉망인지라 갚을 능력이 없었다
결국 엄마는 돈 한푼 만져보도 못하고 '덤태기' 쓰고야 말았다 또 멋도 모르고 보증을 섰는지 엄마도 모르는 빚이 320만원이나 더 있었다 이래저래 엄마는 국가 채무기관으로 넘어가 갚아야 할 빚이 600만 원으로 불어 있었다
채무기관에서는 이자는 빼고라도 원금이라도 갚으라며 독촉이었다 매월 10만원씩 60개월을 갚으란다 아니면 일시금으로 480만 원을 내란다 아버지랑 살면서 골병든 몸으로 무얼해서 돈을 버나? 지금은 길거리 쏘다니며 박스때기 주워 모아 모은 돈으로 근근히 먹고 사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똑똑해야 하고 능력도 있어야 하고 눈치가 빨라야 한다 그렇지 못한 엄마는 만날천날 당하고만 살고있다
엄마는 바보다 엄마는 쑥맥이다 엄마는 멍청이다 그래도 내겐 한 분뿐인 소중한 분이다
날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인 것이다 쑥맥이라 멍청이라 바보라 약아빠진 인간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살지만 그래도 난 엄마가 좋다
이 오만에 찬 세상에 물들지 않았으니까 이 구역질나는 천민자본이 판치는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았으니까
첫댓글 어머님 몸은 건강하신지??^^
건강하지 못합니다. 아버지에게 맞고 찔려 반병신 다 되었지요. 팔목도 부러지고 발목도 부러지고... 성한데라곤 한곳도 없답니다. 골병들어 온 몸이 욱신거리고 쑤시고 결리답니다. 화병도 있어 속도 아프답니다. 궂은 날이 되면 증상이 더 하답니다.
그야말로 시대의 십자가를 한 몸에 제대로 짊어지고 가시는 분이시군요. 그래도 건강하시기를 소원해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