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처럼 좋은 계절도 없다. 쾌적함이 지속되는 나날이다 보니 가정과 관련된 행사도 많은 달이다. 푸른 하늘아래 숲은 연두 빛에서 점점 녹색의 정원으로 변해가고 늦은 봄꽃들도 마지막 향연을 경쟁하듯 펼쳐주어 시선을 한시라도 놓을 수 없는 계절이 바로 5월이다. 좋은 계절 5월에 난데없이 여름계절이나 초가을과 진배없는 태풍 급 비바람 소식을 접하니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어린이날을 즐기려 많은 인파들이 제주로 몰려갈 계획이었지만 비바람이 강한 폭우 성 비가 내려 수백편의 항공기가 결항되고
비 피해도 있다는. 이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하면서 긴장하며 기상예보에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서둘러 작업을 하여 큰 일은 대부분 종료하였다. 남은 일은 한 번 더 퇴비를 뿌린 후 갈아엎은 후 쇠스랑으로 이물질을 걸러내어 고랑을 만들어 준 후 둔덕에 모종을 심는 일만 남았다. 잡초를 막아내고 흙의 수분을 보호하는 비닐을 사용할 것인지 고심하고 있는 중이다.
어두움이 밀려오기 전에 일을 접었다. 세신 후 식사와 설거지를 끝내고 나니 거의 9시가 되었다. 오랜만에 TV 앞에 앉았다. 볼만한 영화가 있나 찾아보았더니 고전 중에 고전 영화인 로마의 휴일이 보였다. 볼까 하다 다시 채널을 돌려 살펴보니 애수 방영시간을 공지하고 있었다.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 그리고 전쟁이라는 불가항력이 가져온 이별. 다시 운명적인 재회와 이별 그리고 죽음. 멜로영화의 전형을 보여준 <애수>는. 1940년 머 빈 르노이 감독이 세기의 미남 미녀 로버트 테일 러와 비비안 리를 내세워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심금을 울렸던 고전 중에 고전영화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9월, 안개 낀 런던의 워털루 브리지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신사가 깊은 상념에 잠긴다. 그의 한 손에는 못생긴 마스코트가 쥐어져 있다. 그는 로이 크로닌(로버트 테일러) 대령. 안개 속에 마스코트와 로이 대령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화면은 한창 1차 세계대전이 열리던 그곳, 워털루 브리지로 넘어간다. 런던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던 초급장교 로이는 독일군의 공습에 대피소로 피하다 발레리나 마이라(비비안 리)를 만난다.
로이와 마이 라가 처음 만난 런던의 공습대피소. 하지만 이들의 만남은 운명의 장난 처 럼 참담한 비극을 낳는다. 서로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 둘은 만난 지 하루 만에 결혼을 약속하지만 로이가 부대복귀 명령을 받는 바람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다. 연습시간을 어기고 로이를 배웅나간 마이라는 친구 키 티(버지니아 필드)와 무용단에서 쫓겨난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마이라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문 전사자 명단에서 로이를 확인하고 실신한다. 그 뒤 자포자기 심정으로 거리의 여자로 전락한 마이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군인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던 마이라는 낯익은 얼굴을 보고 아연실색한다. 로이가 살아 돌아온 것이다. 자신을 마중 나온 것으로 착각한 로이는 마이 라를 뜨겁게 포옹한다. 창녀가 됐다는 사실을 털어 놓을 수 없는 마이라. 그렇다고 이미 더럽혀진 몸으로 로이와 결혼은 더욱 할 수 없는 마이라. 그녀의 선택은 단 하나였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어요.” 그녀는 울부짖으며 로이와 처음 만났던 워털루 브리지에서 달려오는 트럭에 몸을 던진다. 로이로부터 받은 마스코트가 아스팔트에 나뒹군다.
내용만 떠올려도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영화다. 비극적 여인의 사랑을 이처럼 애절하게 표현한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자기주장과 생활력 강한 미국 남부여성을 연기한 비비안 리가 <애수>에서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는 연약한 여인으로 나와 남성을 자극한다. 로이가 마이 라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카페에서 촛불이 하나하나 꺼지며 흘러나오던 ‘올드랭사인’은 영화를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이끌어 주는 영화다. 젊은 날 애수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남녀의 사랑은 과연 무엇이 감정의 원천이며 어떤 시작과 과정을 거쳐 완성해 나가야 하는지 골몰한 적도 있었다. 고전적인 영화는 대부분 기교가 없는 인간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것이 특징이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천둥 소리가 들리더니 거센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져 내린다. 커튼을 살짝 올리고 밖을 보자 여름날 저녁에 쏟아지는 장맛비 같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잠이든 모양이다. 깨워보니 오전 4시30분, 동창이 밝아오는 기운이 느껴졌다. 밖을 내다보니 비는 멈춰 으나 먹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 상태로 유지만 되어도 예정하고 내려온 대로 모든 일을 정리한 후 8일 오전 일찍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월요일, 화요일 선약이 있고 수요일은 철쭉 사진 찍으러 서리리 산을 다녀올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