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가이버’와 ‘형사 콜롬보’의 목소리로 친숙한 성우 배한성이 17세 연하 아내 신현호씨와의 결혼생활을 공개했다. 재혼의 성공모델로 꼽힐 만큼 남다른 부부금실을 자랑하는 두 사람이 들려준 15년 결혼생활 & 두 딸과 늦둥이 아들에 대한 사랑.》
‘형사 콜롬보’ ‘맥가이버’ ‘알프’ 등 1970~80년대 추억의 외화 시리즈의 주인공 목소리로 친근한 성우 배한성(60). 현재도 TBS 라디오 ‘배한성·송도순의 함께 가는 저녁길’의 진행자로 활발히 활동 중인 그에게 목소리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비결을 묻자 “나이차가 많은 아내 덕분에 젊게 살기 때문”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부인 신현호(43)씨는 “살아보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나이차를 별로 못 느꼈다는 신씨는 “남편이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런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88년 유럽 배낭여행 도중 독일에서 만나 첫눈에 호감 느껴
두 사람의 만남은 18년 전, 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부인과 사별한 지 3년째 되던 해 그는 유럽 배낭여행을 하던 중 독일에서 처음 신씨를 만났다고 한다. 밤 열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가던 중 잠결에 큰 배낭을 맨 한국여자가 지나가는 걸 보고 좌석을 찾는 줄 알고 도와주려는 마음에 말을 걸었다고. 하지만 신씨는 자신의 일행과 만나기 위해 곧 내렸는데 그는 순간 ‘저 여자를 따라가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여행을 하느라 초췌해진 제 모습을 보고 금세 마음을 접었죠. 그런데 얼마 후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 도착했더니 ‘여행은 잘 하셨어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 바람에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옆에 앉아 왔죠. 비행기 안에서 자다 깨 부스스한 모습도 보고, 눈곱이 낀 얼굴도 봤더니 서로 꽤 친해진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를 옆에서 듣고 있던 부인 신씨에게 “다시 만났을 때 성우 배한성씨인 줄 알고 먼저 인사를 건넸느냐”고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당시 프랑스에서 스위스 비행기로 갈아타면서 짐을 하나 잃어버려 당황하던 차에 갑자기 아는 사람을 만나 먼저 알은체를 했다는 것.
“당시엔 배한성씨인 줄 전혀 몰랐어요. 목소리는 낯익었지만 이름 따로 얼굴 따로 알고 있었거든요.”
당시 배한성은 비행기 안에서 신씨에게 비누를 챙겨주는 자상함을 발휘했지만 “이성으로 접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매사 침착한 모습을 보고 올드미스 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번의 우연한 만남으로 끝날 뻔한 두 사람에게 결정적으로 사랑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 이는 바로 당시 비행기 안에서 만난 배한성의 후배였다.
“우연히 방송국에서 일하는 후배를 만났는데 아내를 보고 ‘새 형수님이세요?’ ‘어휴 좋은데요. 그냥 우리 형수님 하세요?’하면서 인사를 하더라고요. 후배가 저희가 만난 이야기를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다며 아내에게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 저한테 슬쩍 건네줬는데 이상하게 그 전화번호 적힌 쪽지가 손에서 계속 만지락거려지더라고요(웃음).”
며칠간의 고민 끝에 신씨에게 전화를 건 배한성은 서울 대학로에서 배낭여행 중 사귄 친구들과 함께 만나 첫 데이트를 했다고 한다. 그때까지도 아내는 별 반응이 없었다고. 배한성은 “그런데 어떻게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허허 웃었다.
하지만 부인 신씨는 대학로에서의 첫 데이트 때, 남편 배한성에게 후한 점수를 줬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감기에 걸렸다고 했더니 쌍화탕을 따뜻하게 데워서 약속 장소에 가지고 왔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자상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죠. 그때 저한테 점수를 많이 땄어요(웃음). 그 후로도 남편은 제가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대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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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성은 유럽 배낭여행 중에 만난 부인 신씨와 요즘도 1년에 한번은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두 사람의 결혼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배한성은 당시 “첫 아내와 사별한 지 3년쯤 지나자 아이들에게 엄마 역할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아내가 결혼 전부터 엄마 역할을 해줘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졌다”고 말했다.
“결혼 전에 아내가 동남아 여행을 간다고 해서 아이들과 함께 가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더니 흔쾌히 수락을 하더라고요. 그때도 아내는 저와 결혼할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아이들이 좋아서 잘해 준 것뿐이었어요. 아이들이 ‘언니, 진짜 좋다!’고 해서 제가 아내의 존재를 어머니께 알렸죠. 그랬더니 제 이모님이 나서서 아내를 만나고 적극적으로 결혼을 추진하셨는데, 아~ 글쎄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결혼을 했더라고요(웃음).”
막내아들 태어난 뒤 가족이 더욱 화목해져
정식 프러포즈도 하지 못했다는 배한성은 “당시 아내는 일을 좋아해서 결혼이나 남자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프러포즈를 했다면 오히려 거부감을 줬을 것”이라면서 “그런 아내에게 이모님이 예물을 사왔다고 안기면서 정신없이 결혼식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성사가 됐다”고 말했다.
부인 신씨는 초혼이라 처가에서 반대했을 법도 한데 이에 대해 그는 “친정 부모님은 늘 제가 하는 일을 믿고 따라주셨기 때문에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도 반대하기보다 ‘힘들지 않겠냐’고 걱정만 많이 하셨다”고 털어놓았다.
이들 부부는 90년 결혼했는데 처음엔 두 딸이 당황스러워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동안 ‘언니’로 부르다 ‘엄마’로 호칭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도 부담스러운데다, 특히 고3 수험생이던 큰딸은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아 당황스러워했다는 것. 하지만 금세 마음을 열었다고.
두 사람은 결혼 후 아이문제를 놓고 잠시 고민을 했었다고 말했다.
“결혼 후 아내가 아이를 안 갖겠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마흔 넘어서 아이 낳는 게 민망해서 내심 잘됐다고 생각했는데 처가에서 신랑이 나이도 많은데 왜 아이를 빨리 안 낳냐고 성화셨어요. 그 바람에 아내를 설득해 막둥이를 낳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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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성은 두 딸과 아들을 잘 키우고 재혼의 성공모델이 될만큼 지혜롭게 살아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두 사람 사이엔 시집간 큰딸 지인씨(33)와 프랑스에서 사는 작은딸 우리씨(31) 외에 막내 민수군(15)이 있다. 배한성은 “처음엔 딸들이 동생 낳는 걸 반대했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막내 민수를 귀여워한다”고 말했다.
“지나고 보니 막둥이 낳기를 정말 잘했어요. 제가 장손인데 아들을 낳자 아파서 오늘내일하시던 어머니가 펄펄 기운이 난다며 좋아하시더라고요. 막내가 태어난 뒤로 가족이 더 화목해졌고요.”
배한성은 막내아들 민수군과 세대차를 좁히기 위해 공통 관심사인 ‘자동차’를 활용한다고 했다. 연예계에서 소문난 자동차 마니아인 배한성을 닮아서인지 아들도 자동차를 좋아한다는 것. 그래서 집안 곳곳을 미니카로 장식하고 어려서부터 자동차 관련 행사라면 어디든 함께 다녔다고 한다.
“평소에도 제가 집안일을 자주 하는 편인데 특히 청소할 때는 막둥이 방을 가장 먼저 해요. 그만큼 귀한 존재라는 걸 알려주는 거죠. 제가 자랄 때 아버지가 안 계셔서 아버지의 빈 자리를 아는 만큼 우리 자식들에겐 아버지의 분명한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비록 저도 서툴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있지만요. 예의 바르게 키우고 싶어서 가끔 사랑의 매도 들어요. 아들 녀석이 어서 커서 이런 제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어요.”
민수군은 키도 크고 성격도 활발하고 리더십이 있다고 한다. 어린데도 카리스마가 있다고 말한 배한성은 “딱 하나 공부를 덜 한다”며 웃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부인이 가정교사가 돼 공부를 시키고 있다고. 하지만 신씨는 “학교 성적보다 인성 교육이 먼저”라며 “그래서 역사 교육을 따로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역사적인 사실을 놓고 얘기를 해주면 빨리 이해하는 것 같아요. 역사의 흥망성쇠를 놓고 아들을 설득해 공부를 시키죠. ‘이렇게 놀기만 하면 어떻게 되지?’라고 물으면 아들이 ‘망해요’라고 대답해요. ‘그럼 공부를 해야 되지?’ 하는 식으로요.”
늦둥이 막내아들과 세대차 좁히려 노력하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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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성과 막내아들 민수군은 자동차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평소에도 아들과 대화를 많이 나눈다는 신씨는 아들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한다고 말했다. 쇼핑을 할 때도 아들에게 얼마의 돈을 주고 자기가 사고 싶은 물건이나 책 등을 맘껏 고르도록 하는데 이때 아들이 조언을 구하기 전에는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는 것. 설령 아들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해도 그때그때 지적하기보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고.
음식 솜씨가 좋은 신씨는 냉장고 안에 남아 있는 재료들과 한 주의 식단표를 미리 작성해 냉장고 문 앞에 붙여놓고 요리를 즐긴다고. “주말이면 아내에게 미안해 외식을 권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며 웃는 배한성은 “아내가 정성껏 해주는 음식 덕분에 젊어 보이는 것 같다”고 허허 웃었다.
“음식은 아내가 하고 저는 주로 설거지를 담당하죠. 또 제 성격이 집안에 쓰레기 있는 걸 못 봐서 쓰레기 분리수거도 잘해요. 목 관리를 위해 특별히 먹는 음식이요? 아내가 끓여주는 건강차를 수시로 마셔요. 인삼, 맥문동, 구기자, 대추를 넣고 끓인 물을 마시는데 갈증해소에도 좋아요. 오디(뽕나무)주를 담가 식사 중에 서너 잔 마시기도 하고요.”
“부부의 취향이 비슷하냐”고 묻자 배한성은 “취향과 성격이 정반대지만 서로의 개성을 존중해주면서 산다”고 대답했다. 서로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고 인정하면서 조화롭게 살고 있다는 것.
“저는 앤티크 가구나 자동차 수집광인데 아내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성격도 저는 급하고 기분이 나쁘면 금방 표시가 나는데 아내는 느긋함 그 자체예요. 충청도 여자거든요. 부부싸움을 해도 제가 화를 내면 아내는 가만히 듣고만 있어요. 말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이상하게 아내와 싸우면 져요. 아내가 법대를 나와서 조목조목 따지고 들면 꼼짝 못하거든요(웃음). 하지만 서로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고 인정했더니 싸울 일이 별로 없어요.”
화내는 남편을 보고만 있다는 부인에게 이유를 물으니 “큰딸도 처음엔 신기해하더라”며 웃은 뒤 “딸한테도 ‘그냥 둬라, 자기 기운 빠지지 내 기운 빠지니’ 하니까 ‘그러니까 아빠랑 살지!’ 했다”면서 “근본적으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면 남편이 화를 내도 못 들은 척한다”고 말했다.
“요즘은 부부싸움을 하면 딸들이 있어서 좋은 점이 많아요. 아빠의 비리를 딸들에게 얘기하면 저 대신 남편에게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혼내주거든요(웃음). 시어머님도 제 편이고요. 남편이 여자한테 곰살맞은 편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무척 자상해요. 아이가 집안을 어질러도 싫은 내색 한번 한 적이 없죠. 그런 면에서 항상 고마워요.”
이에 남편 배한성은 15년간 결혼생활을 하면서 “전처의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갈 때도 음식을 챙겨주는 아내에게 마음의 빚이 많다”고 속내를 털어놓은 뒤 “두 딸과 아들을 잘 키우고 재혼의 성공모델이 될 만큼 지혜롭게 살아준 아내에게 고맙다”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