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사찰 ] 서산 개심사
뒤틀리고 구부러진 낙락장송과
대화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절
마음만 열면, 바라는 대로
자유로움도 만끽할 수 있어 …
오솔길과 개울을 건너 솔숲이 우거진 고개 마루를 넘으면 절이 보일락 말락 하여 개심사는 가는 길에서부터 한적함을 즐길 수 있다.
굽어진 산길 따라 산허리로 올라가니
경쇠소리 들리는데 어딘가 절이런가.
무성한 송죽가지 사찰 둘러 자라나고
그윽한 골짜기는 속세 생각 끊어지네.
조선후기 문인 송내희가 쓴 ‘개심사를 방문하고’ 시의 일부이다. 산길을 걸어 경쇠소리 들리는 한가한 개심사가 가 본 듯 눈에 아른거리는 시이다.
서산 개심사는 흰 눈에 덮인 낙락장송의 휘어짐도 아름답고, 감나무 꼭대기에 남은 까치밥도 넉넉한 여유를 준다. 마음을 열고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가는 곳이 바로 상왕산 개심사(象王山 開心寺)이다. 시멘트로 포장길보다 오솔길과 개울을 건너 솔숲이 우거진 고개 마루를 넘으면 절이 보일락 말락 하여 참 걷기 좋은 절이다. 돌부리에 걸리고 솔방울을 차기도 하며 노송에 기대어 시원한 바람으로 땀을 훔치면 그래도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입구 사각형 연못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의 아찔한 맛도 좋고 연꽃 위를 걸어 사바에서 극락으로 들어가는 신선함도 좋다. 몇 계단을 오르면 극락세계를 알리는 안양루에는 근세의 명필 해강 김규진이 예서체로 큼직큼직하게 쓴 ‘象王山開心寺(상왕산개심사)’ 글씨가 보는 이의 마음까지 뻥 뚫리게 한다. 상왕은 무슨 뜻일까? 부처님은 코끼리의 왕이란 뜻이다. 불교에서 코끼리는 중생구제의 실천행을 보여주는 동물로 부처님의 행동거지는 마치 코끼리처럼 편안하고 여유가 있음을 알려 준다. 마음을 열면 세상일이 편안한 코끼리왕 부처님처럼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낮추게 되는 해탈문
지혜의 칼을 찾는 수행자
안양루의 오른쪽에서는 해탈문이 겸손하게 우리를 맞아 준다. 사찰의 다른 큼직한 문과는 달리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것만 같은 외소한 문이다. 뒤틀린 기둥과 낮은 지붕은 자신을 낮출수록 바른 해탈의 경지에 다다름을 말해주는 건 아닐까? 도량에 들어서면 왼쪽에 시골 툇마루와 사랑방과 같은 아늑함이 느껴지는 심검당이 있다. 심검(尋劒)! 검을 찾는다? 아! 스님이 검객? 스님은 어리석음을 자르는 지혜의 칼을 찾는 수행자이다. 마음의 본성을 찾는 참선수행을 통해 지혜의 검으로 무명을 자르면 바로 대웅전의 부처님과 같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 그대로 목재의 아름다움을 살린 심검당
당나라 영운지근선사는 뜰 앞에 핀 복숭아꽃을 보고 깨달았다. “삼십년 동안 칼을 찾던 나그네여, 싹트고 잎 지는 것 몇 번을 보았던가. 복사꽃 한 번 핀 것을 본 이후에는 지금까지 다시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네(三十年來尋劍客 幾回葉落又抽枝 自從一見桃花後 直至如今更不疑).” 매년 피고 지는 꽃이지만 꽃을 꽃으로 보지 못했는데, 간절한 의구심 속에 바라보니 이젠 꽃이 꽃인 본질적인 세계를 보았다는 것이다. 심검당은 생긴 그대로의 자연미를 살린 아름다운 건축물로 휘어지면 휘어진 대로, 구부러지면 굽은 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선(禪)이란 더 보탤 것도 없고 인위적으로 조작할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임’을 눈으로 확인시켜 준다. 겨울 햇살에 흰 빛을 토하는 미닫이, 여닫이 등등 어느 것 하나 예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추운겨울 고드름 밑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그대로가 지혜의 칼이고 아름다운 자연이다.
개심사 대웅전 아미타삼존불.
대웅전에 왜 아미타불이?
개심사는 의자왕 14년(654)에 혜감국사가 창건한 고찰로 대웅전 법당 안에는 고려 충렬왕 6년(1280)에 보수하여 모신 아마타불과 좌우에는 보관을 쓴 관세음보살과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이 계신다. 가끔 ‘대웅전에 왜 아미타불이?’ 또 ‘관음ㆍ세지보살이 계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지만 이 모든 것들이 부처님과 보살님을 모실 당시의 중생의 염원에 따른 것이다. 편액이 ‘대웅전’이라 해도 아미타불을, 대세지보살보다 지장보살을 모신 것은 당시 사람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없애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미타불은 높은 연화좌 위에서 설법하는 모습인데, 균형 잡힌 비례, 유려한 옷자락, 갸름한 얼굴과 섬세한 손가락 표현 등 아름다운 형상불이다. 특히 연화대좌는 고려 후기 수덕사 대웅전 연화좌를 닮았다. 연꽃잎은 하나하나 별도로 만들어 아랫부분을 못으로 고정하여 활짝 핀 연꽃을 정교하고 아름답게 장식했다. 또한 관음ㆍ지장보살은 중생들을 돌보느라 앉을 시간조차 없어서 서 계신걸일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개심사 대웅전에는 극락의 세계를 볼 수 있는 1767년에 제작된 관경변상도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1991년 대웅전 벽을 뚫고 들어온 문화재 전문절도단이 훔쳐가 지금은 새로 그린 관경변상도가 있다. 훔쳐간 도둑이든, 훔친 물건을 사서 몰래 숨겨둔 사람이건, 이젠 탐욕에서 벗어나 잘못을 뉘우치고 원래의 자리로 돌려주어야 한다. 불교문화재는 돈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다. 1769년부터 1991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 불화를 통해 극락세계에 태어나길 기원하였기 때문이다.
해탈문 밖으로 나와 좌측으로 가면 틀어지고 휘어진 무량수각의 귓기둥이 아름답다. 세월에 할퀸 듯 꼬여진 나뭇결의 흔적은 낙락장송으로 살아올 때도 그리 순탄한 삶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을 과시하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빵빵’ 거만하게 자란 곧고 큰 기둥보다도 마음이 끌린다. 왠지 힘들고 어려운 우리들의 삶을 이해해 주는 것 같아 정겹고, 바위처럼 당당함을 보이는 주춧돌을 딛고 일어선 모습도 듬직하다. 잠시 툇마루에 걸터앉아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명부전 입구의 옥졸 모습.
명부전으로 가는 길은 봄이 되면 왕벚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지장보살의 큰 서원이 중생의 마음을 꽃과 같이 변화시키는 듯하다. 명부전에는 건물 채광을 위해 단 교살문 사이로 보이는 엄정한 저승의 세계를 살짝 보는 재미도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중생을 어떻게 구할까 고민인데 반해, 지옥의 10왕(十王)들은 어떻게 하면 더 잡아둘까 실랑이를 한다. 특히 명부전 입구에 떡 버티고 있는 옥졸의 매우 사실적인 모습은 살아있는 듯 놀라게 한다. 조상들이 만든 지혜이다.
‘상왕회관’ 마음도 가져보고…
동쪽 산모퉁이를 돌아 서면 낙락장송이 우거진 솔 숲 사이에 한 명이 들어서도 꽉 찰 것 같은 조그마한 산신각이 있다 이곳에서 바라다보는 숲의 풍광이 너무도 호젓하여 호랑이와 얘기 나누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명당이다.
부처님은 코끼리처럼 천천히 머리와 몸을 함께 돌려 사물을 바라보셨다고 한다. 이 몸짓을 상왕회관(象王迴觀)이라 하는데 몸짓이 경망스럽지 않고 품위가 있는 것을 말한다. 우리도 세상의 모든 일에 ‘상왕회관’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개심사는 뒤틀리고 구부러진 낙락장송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마음을 열면, 바라는 대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슬에 옷이 젖어도 아까울 것이 없는 한가한 개심사에 한번 다녀오시는 건 어떨까?
[불교신문3662호/2021년4월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