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농촌은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 60대와 70대 노인이 지키는 농촌마을엔 시간이 흐르면 마을 자체가 없어질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인력 공백 현상을 보이고 있다. 시시각각 노촌화(村化)되고 있는 우리 농촌의 현실을 진단하고 고령 농업인에 대한 대책과 함께 젊은 후계인력을 유입시킬 대책은 무엇인지 5회에 걸쳐 집중 조명해 본다.
〈편집자〉
◆젊은이를 찾기 어려운 농촌=전북 임실군 신덕면 학산마을. 벼와 고추가 주작목인 이 마을은 전체 23가구 중 자녀가 초등학생인 농가는 단 한 농가에 불과하고 대를 이어 농사를 짓겠다는 후계 농업인이나 전업농·농업경영인 출신 농가는 아예 없다.
그나마 남아있던 농업경영인은 농사로 빚만 지고 고향을 떠나 이 마을 50세 미만 농업인도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기성원씨(46) 혼자 뿐이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70대이고 젊은 영농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보니 소득작목 발굴 등을 통한 지역농업 활성화는 기대조차 하기 힘든 실정이다. 경북 김천시 지례면 신평2리 삼실마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마을 33가구 가운데 40대인 농가가 2명, 50대가 4명, 60~65세가 9명이고 절반이 넘는 나머지는 모두 65세 이상이거나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다. 전업농은 40대가 1명, 50대가 2명(축산) 등 모두 3명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10년 후 이 마을은 상업적 영농을 하는 농가는 고작 6명으로 줄어들고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 마을조차 사라질 것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이 마을 농경지 가운데 한계농지를 중심으로 40% 정도가 휴경상태이다.
경북 의성군의 경우 군 관내 18개 읍·면에 연간 선정되는 후계 농업인은 13~15명 정도여서 후계농업인이 선발되지 않는 읍·면도 있고 더구나 올해는 8명밖에 안되는 실정이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인 경기 연천군 연천읍 통현2리 마을은 60가구 120명의 주민 가운데 60세 이상이 80%를 차지하고 있고 40세 이하 젊은 농업인은 아예 없는 상황이다.
◆인력 부족이 농촌에 미치는 영향=농촌의 젊은 인력 부족은 농촌 생활환경에 큰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벼 1만평과 밭농사 2,000평을 짓는 전북 임실의 기성원씨는 이장을 물려줄 마땅한 젊은 사람이 없어 8년째 이장을 맡아오고 있고 잠시라도 마을을 비울 수가 없는 형편이다. 기씨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라 간단한 농기계·보일러 고장은 물론 냉장고 등 가전제품 설치, 전구 교체 등을 주민들 스스로가 할 수가 없어 이장을 찾기 때문에 농사일 외에 마을 일을 감당하기에도 하루해가 짧다”고 말했다.
마을에 초상이 나거나 대소사가 있으면 주민들이 이장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상의하기 때문에 휴대전화가 울리면 언제나 뛰어나가야 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김치도 혼자 담글 수 없어 마을 노인네들이 함께 모여 김치를 담가 나눠 먹는 게 농촌 현실이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는 기씨는 “학교가 멀리 떨어져 있고 마을에 같이 놀 친구들이 없어 애들이 도회지로 나가자고 성화를 부릴 때면 당장이라고 떠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경기 연천군 전곡읍 간파리 조억휘 이장(59)은 “내 나이면 마을에서 농사짓는 사람 중에 청년 수준에 속하고 농번기에는 군부대 지원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며 “노인네들이 농사를 대부분 위탁하고 있어 40~50대 주민이 마을 농사 절반을 짓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 재배 전업농인 윤성중씨(39·충남 천안시 성환읍)는 “배 솎기 작업을 위해 일손을 구하면 환갑을 넘긴 할머니가 대부분인데 그렇다고 쓰지 않으면 사람을 찾을 수 없어 항상 고민”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