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그리고 떡이야기
내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설과 추석명절이면 '민족의 대이동'이란 타이틀이 붙는다.
예전 우리가 젊었을땐 정부가 음력설을 못쇠게하니, 설에는 고향을 가지 못하고, 추석명절에 부모님 계시는 고향을 다녀왔다.
자가용이 없던 시절, 버스표 타기도 쉽지 않았다. 버스표를 살때도, 버스를 탈때도 구부러져 앞이 보이지 않는 긴 줄을 서야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세살쯤 되었을때 버스좌석을 잡지 못하고 입석표를 산적이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고향을 가지 못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차는 만원에다 도로는 차들로 밀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팔로 아이를 안고, 다른 팔을 교대하며 천정의 손잡이를 잡아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
행여나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아이를 무릎에 앉혀줄까? 기대를 안한 것도 아니었지만, 추석을 쇠려가는 사람들도 짐이 있거나 피곤한 모양이었다.
포기하고 이를 악물었다. 애 엄마는 곁에서 안절부절해 했다. 그렇다고 힘약한 여자가 선채로 아이를 안고 가는건 무리였다.
그렇게 해서 평소 두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네시간에 걸쳐 갔었다. 그러나 그러한 피로함도 고향을 보고, 부모님을 만나고 나니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잊혀져 버렸다.
예전에 살던 도시에는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재래시장이 있었다. 내가 시장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뒷산을 가는 중간에 있어서 자주 지나다녔다.
시장골목 입구에 들어서면 떡집이 나타난다. 그 떡집엔 여러 재료로 만든 갖가지 모양의 떡들이 진열되어 있고, 나는 그 떡집을 지날 때면 옛날의 추억들을 떠올리곤 했다.
어릴 적 동네 사람들은 호박을 넣은 시루떡이나 백설기, 콩떡 그리고 쑥떡을 주로 해 먹었었다. 시루떡, 백설기와 콩떡은 명절이나 잔칫날에, 그리고 쑥떡은 배고픈 계절에 당장의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많이 만들어 먹었다.
나는 팥이 섞인 하얀 백설기를 먹을 때마다 목이 메어짐을 느낀다. 백설기는 쌀가루로 만들어 팍팍하기도 하거니와 그것을 먹을 때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떡가루 한번 빻아주시지 못하시고 먼저 받으신 떡을 시원찮은 잇몸으로 오물거리며 잡수시던 아버지와 가마솥 옆에 턱 괴고 쪼그려 앉은 나에게 갓 만든 따뜻한 떡을 떼어 먹으라며 넘겨주던 그리운 누님의 모습들이다. 두 분 모두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하늘나라로 먼저 가버리셨다.
떡에 관한 또 다른 추억이 있었다. 70년대 중반 내가 군 입대를 하여 훈련을 받을 때의 일이었다. 추석이 지난 다음날, 오전 훈련을 위하여 군장을 메고 훈련장으로 서둘러 가는 나에게 먹다 남은 백설기를 내미는 마을의 어린 소년이 있었다.
당시 배고픈 훈련병 생활을 하던 나는 그 소년이 내민 떡을 염체불구하고 받아들긴 하였었지만, 떡을 먹으려는 순간 고향의 부모형제의 그리운 생각에 목이 메었었다.
떡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많다. 나는 ‘떡 하나주면 안 잡아먹지’ 하던 떡장수와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에서 떡장수 아주머니가 팔던 떡은 무슨 떡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찹쌀떡일 것이라는 애기도 있고...
나는 육식동물인 호랑이가 정말 떡을 좋아했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해 보기도 하였었지만, 어째든 옛날이야기는 그래도 우리들을 즐겁게 하였었고, 그 이야기의 소재가 내가 먹는 떡이었다.
갑자기 좋은 일이 생길 때의 의미로는 ‘웬 떡인가?’하고 말하기도 하고, 튼실한 아이를 보고 ‘떡두꺼비 같은 아이’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좋지 않은 것에 대하여는 ‘개떡 같다.’라느니, ‘떡이 되고 말았다.’라는 말하곤 하였다.
떡은 우리민족과 역사를 같이 한다. 떡은 단군왕검 때부터 만들어 먹어왔다고 전하며, 떡의 어원은 덕(德 )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떡을 만들면 혼자먹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웃과 나누어 먹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다.
결국 떡을 만들어 나누면 덕을 쌓는 것이 되는 것인지? 그래서 좋은 일에나 학생들의 시험장 입구에도 떡이 등장한다.
떡의 재료는 오곡과 갖가지 과일 그리고 나물 등을 사용하고, 그 것들의 색채와 향기를 이용하여 맛과 멋을 낸다.
떡은 시루를 앉히고, 김을 올리며, 뜸을 들이는 과정을 거친다. 나는 그것 말고도 메로 떡치던 생각, 다 익은 솥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떡을 먹고 싶어서 침을 삼키던 시절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콩떡을 만들고 남은 고물을 밥에다 버무려먹는 맛을 잊을 수 없다.
요즘 내가 다니는 트래킹 코스 주변에 떡집이 있다. 나는 어제도 그 떡집 앞을 지나오며 다시 한 번 눈여겨보았다.
떡을 매일 만들긴 만드는 모양인데, 떡을 사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떡은 새벽에 모두 사간다고? 하긴 우리도 행사때 아침 일찍 미리 주문해 두었던 떡을 찾아갔다.
가계 안에선 계속해서 떡을 만든다. 떡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잘 팔리는 것이라는게 진실이다.
어째든 지금의 나에겐 당장 필요 없어 보이는 떡일지 모르지만 저 떡이 언제 좋은 인연으로 내게 다가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 건강하게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