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작고 불편하게
하느님의 창조질서 보전을 위해서
우리는 지금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초월해 있을 수 없다. 특히 환경문제는 지구촌 생존의 문제에 직결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 즉 땅과 하늘, 물 그리고 나무 등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하는 자연이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상태에 빠져 있다.
우리 재속 프란치스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부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이 세상에 하느님의 평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이 평화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화해를 전제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을 함께 아우르면서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피조물 간 참된 연대회복을 통해 하느님이 이 세상에 주신 한 처음의 행복을 회복시켜야 한다. 이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도록 부서진 자연을 치유하고 파괴된 환경을 복구하며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그 날까지 계속되는 창조사업에 우리 자신을 투신하는 것이다.
재속 프란치스코회 안에서 창조질서보전 운동은 점점 더 중요한 활동이 되고 있다. 각급 정평창보위원회는 형제회 안에 창조질서 보전 운동을 위한 소명에 신명을 다할 수 있도록 그 연대 범위를 넓혀 가야한다. 정평창보위원들은 시대를 앞서가며 시대의 문제를 꿰뚫어 보는 예언자(예언자는 외롭다.) 로서, 자신들의 몸과 마음, 삶을 통해 형제회에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 프란치스칸들이 프란치스칸 카리스마 안에 도도히 흐르는 창조영성을 삶 안에서 실천함으로써 “증거 하는 그리스도의 제자” “실천하는 프란치스코의 벗”이 되어 창조질서를 보전하여 피폐된 자연을 회복시키고 창조의 협력자로서 계속되는 창조사업을 수행하여야 한다.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이 각각 서로 다른 세 가지의 주제같이 보이나 나누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긴밀히 상호 연관되어 있다. 이 세 가지 주제는 생명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척하지만 생명을 부정하는 세력에 의해서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어 가고 있다. 오늘날 곳곳에서 일어나는 생명 파괴 현상과 자연재해를 보면서 생명경시 더 나아가 생명파괴현상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현상들은 정의를 올바로 세울 수 없게 하고, 인간과 자연의 평화를 깨트리며, 축복받아야 할 인류와 창조물의 세계를 파괴하는 환경의 재앙을 앞당기게 할 것이다.
느리고 작고 불편하게 운동은 정의와 평화와 창조질서 보전을 함께 다짐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을 밝혀내어 그것들이 상호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창조세계를 파괴하는 세력과 투쟁하고 대처하는데 협력하도록 우리 프란치스칸들의 행동을 촉구하기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그 첫 단추는 재속 프란치스칸 특히 정평창보 담당자들의 몫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만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 운동은 특정한 이들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행동양식이다.
정의(Justice)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음.
오늘 우리의 세계가 겪고 있는 분배의 불균형, 인종차별, 성차별, 사회 계급 차별, 인권의 문제, 정치적 민주화의 문제 등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정의를 외치려 하면 자칫 목소리가 높아지고 폭력적 분위기가 되어가는 것을 보고 있다. 그러나 참된 정의가 없는 참된 평화란 있을 수 없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프란치스칸들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자신들의 힘을 집중시켜 헐벗고 굶주리며 소외받는 이들을 우선 선택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평화(Peace)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사람과 사람과 관계, 사람과 피조물과 관계, 사람과 하느님과 관계에서 참된 정의와 창조질서 보전은 참된 평화와 더불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팍스 로마나, 팍스 아메리카나에서 보듯이 군사적 충돌과 강대국의 무력개입 등으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 풍부한 경제력과 무력으로는 참된 평화를 이룰 수 없는 것이다. (pax christi)
창조질서의 보전(Integrity of Creation) 보시니 참 좋구나! 생태계 문제, 환경 문제, 과학기술 오용에 의한 질서파괴 문제 와 정의, 평화를 포함하는 여러 종류의 문제들을 포괄하여 사용되어진다. 인간의 삶과 생존은 자연에 의존되어 있으며, 자연 역시 그들의 생존을 위해 인간에 의존되어 있다. 오늘날 창조질서 보전 문제는 공해 문제와 환경재앙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이러니칼하게 우리사회가 따르고자 하는 선진국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며 그것을 해결하기위해 후진국, 개발도상국으로 그 피해가 고스란히 밀려가는 것을 보게된다. 창조질서 보전 문제는 경제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생활양식을 바꾸는 노력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바로 창조영성을 지닌 느리고 작고 불편하게 운동을 통해서이다.
창조계의 현실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상호의존적인 모습으로 창조하셨다. 오늘날의 환경파괴는 피조물과 자연을 아끼고 사랑할 줄 모르고 자연자원을 착취 수탈을 일삼아 과도한 부하를 주어 생태계 재생 능력을 파괴시키는 우리 때문에 생겨났다.
인구증가, 자원의 부족, 열대림의 파괴, 동식물 종들의 멸종, 과중한 부하로 자연파괴(주로 쓰레기), 대지와 하천 그리고 바다의 오염, 변화된 대기와 기후의 변화(온실가스 농도 변화, 오존층의 파괴, 온난화 현상) 환경호르몬, 유전자조작 식품 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
지구 온난화와 오존층의 파괴
에너지 과소비와 현대 산업사회를 떠받치는 화석연료(기름, 석탄, 가스)들이 타면서 내는 가스들이 온실 효과를 내어 지구 온난화를 가져온다. 주로 가연성 물질들이나, 화학 가스, 경작을 위해 숲을 태우거나 무기물 발효를 위해 취하는 현대적 방법들에서 배출되는 온실 가스들이 주원인이다. 이산화탄소(이는 나무 부족과 관계 있다)는 주로 자동차, 비행기, 배, 가정의 냉난방, 공업 때문에 발생한다. 종이와 개발을 위한 삼림 벌채로 인해 이산화탄소를 저하시킬 수 있는 나무조차 사라진다.
프레온가스(CFCs), 할론 등의 화학물질들이 오존층을 파괴시키고 있다. 프레온 가스(이 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하고, 지구 온난화를 가져온다)는 비교적 독성이 없고 연소되지 않으며 분해되지 않는 성질이라서 주로 냉장고나 에어컨의 냉매제, 스프레이 분사제, 전자 제품의 세척제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이용되고 있다. 오존층은 21세기 중엽이면 60%까지 파괴되리라 예상한다. 이 결과 지상에서는 오존층이 흡수하였던 유해 자외선이 증가하게 된다. 오존층이 감소하면 백인의 피부암 발생률이 증가하고 백내장 발생이 증가할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뿐 아니라 농작물의 수확이 감소되며 물고기의 수도 줄게 된다.
또한 공기 오염은 엘니뇨, 라니냐와 같은 기상 이변을 초래했으며 공기 오염에 따른 산성비는 많은 산림을 파괴하고 농작물의 수확을 감소시켰다.
홍수
2000년 7월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은 지구온난화로 그린란드 빙원이 녹아내려 지난 100년 동안 해수면이 약 23㎝ 상승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린란드 빙원이 녹아 1년에 500억 t 이상의 물이 바다로 흘러 해수면이 0. 13㎜씩 상승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그린란드의 빙하 두께는 매년 2m씩 얇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남북극뿐 아니라 고산지대의 만년설에도 해당된다. 지구 온난화는 해수면을 높여 주어 많은 해안을 침식하고 육상, 해양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농작물 수확량도 감소하게 되는데, 얼음이 녹을수록 지구 표면이 태양에너지를 많이 흡수하여 지구 온난화가 촉진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강의 삼각주, 저지대 해안 형성 계곡, 저지대의 주요 지역, 고수위, 고조수, 그리고 높은 폭풍 파도와 사투하는 모든 지역들은 위험에 처해져 있으며, 최근의 폭풍우나 해일과 쓰나미 현상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지구의 사막화 (열대림과 삼림 면적의 급감과 산소부족)
해마다 지구에는 ‘사하라 사막 크기의 새로운 사막이 생기고 있다. 이것은 공해가 불러온 지구의 고온화와 건조화와 관련이 깊다. 전 세계의 10억 이상의 인구가 지구의 직접적인 사막화의 위협을 받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 개발로 말미암아 산림 면적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이 때문에 공기 오염이 확산되고 맑은 공기, 곧 산소 공급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강 유역의 남벌 등은 산소 부족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숲이 망가지면서 땅이 오염되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대부분의 땅이 오염되었으며, 사막화되고 있다. 사막화로 인해 물 부족, 식량 부족, 채소 부족이 심화되고 있다. 나무는 종이, 건축, 땔감 등으로 사용되는데, 꼭 필요한 만큼은 써야 하지만 지나치게 낭비하고 베어내기만 할뿐 새로 심지는 않는다면 한정된 나무가 언제까지 지탱하겠는가!
생물 대량 멸종
밀림의 파괴는 또한 많은 생명체의 멸종으로 이어진다. 광산 개발, 도로 건설, 목축지 개발을 위한 나무 훼손이 밀림 파괴의 주범이다. 12초마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생물의 종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인류가 그들 생명체 없이도, 그 먹이 사슬 밖에서도 살아갈 수 있을까? 생태계의 대량 멸종을 예고하고 있는 보존 생물학자와 생태학자들에 따르면, 오늘날 약 6,500만 년 전에 있었던 공룡의 멸종 이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생물 대량 멸종이 인간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지금처럼 삼림 파괴가 계속될 경우 앞으로 50년 안에 지구 생물종 가운데 4분의 1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열대 우림 지역의 파괴는 곧 그 숲에 살았던 원주민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이런 식으로 수백만의 부족들이 사라지고 있다. 산업화나 소비주의의 유혹을 물리치고 단순한 생활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하는 원주민들이 복음의 가치를 충분히 살고 있는지, 소위 개발된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지 의문이다.
바다와 강의 오염과 물 부족
증가 일로에 있는 생활 오수와 공장 폐수의 방류 때문에 바다와 강의 오염이 극심하여 해양 생물과 수서 생물의 수량이 급감하고 있으며, 심지어 남태평양에서 잡은 참치와 남극에서 잡은 광어에서도 중금속이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많은 종류의 어패류와 해조류가 사라져 바다가 죽어가고 있고, 남해는 적조 현상이 빈발하고, 동해에 백태와 석화 현상이 발생하여 해저가 황폐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강과 하천은 오염이 심해서 생물이 살기 어렵게 되었다.
공기와 물과 땅의 오염은 급기야 생명줄인 식수 부족을 초래했다. 유엔 환경계획UNEP)은 2003년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해’를 맞아 1월 27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하여 “식수 등 물 부족을 겪는 인구가 2003년 4억여 명에서 2050년에는 40억 명 이상으로 크게 늘어날 것” 이라고 예상했다. 보고서는 또 현재와 같은 수자원 낭비와 부적절한 관리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지구촌은 물 부족과 함께 어획량은 물론 농작물 수확량 감소, 해안 오염,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증가, 수자원을 둘러싼 국제 분쟁 등 숱한 어려움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이 속해 있는 아시아와 태평양 국가들은 물 부족과 오염에 특히 취약하고, 1인당 사용 가능한 담수 비율이 가장 낮은 편이다. 유엔은 이미 2001년에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로 선포하였다.
세탁기와 식기 세척기 등을 사용하는 가정이 매일 1천 리터를, 수도를 쓰는 가정은 100-350리터를, 공중 수도를 쓰는 가정은 20-70 리터를, 인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지역은 1Km 걸어서 물을 길어 와야 하는데 이런 가정은 2-5 리터를 쓴다. 같은 세계, 같은 시대에서 1천 리터를 쓰기도 하고 2-5 리터를 쓰기도 하는 것이다. 21세기에 전쟁은 물 때문일 것이라고도 예측한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국가임에도 전혀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생활 폐기물 소각과 다이옥신 배출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10조원에 이르는 음식물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02년 10월 초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 47개 소각장 중에서 11개 소각장은 맹독성을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다이옥신이 배출 허용 권고치를 초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심지어 어떤 소각장은 권고치의 15배와 12배를 배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젖은 음식물뿐만 아니라 종이와 목재, 플라스틱등도 소각 온도가 850도 이하가 되면 다이옥신이 발생한다.
환경호르몬의 발생과 피해
환경 호르몬이란 생물의 체내에 들어와서 내분비계를 교란 시키고 생식 장애 등 건강과 생태계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환경오염의 화학 물질이다. 우리들의 생활 주변에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와 편리함을 추구하는 생활양식으로 말미암아 무심코 버린 생활 용품이 환경 호르몬이란 화학 물질로 우리에게 되 돌아와서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화학 물질들은 먹이 사슬로 농축되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면 몇 조 분의 1의 아주 극미량으로도 내분비 호르몬에 교란을 일으켜 생식 이변이 나타나므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환경 호르몬을 다른 환경오염 물질처럼 일과성으로 생각하고 이를 그냥 방치한다면 인류에 대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환경 호르몬의 작용을 하는 화학물질은 농약, 공업용 재료와 일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현재 약 70종에 이른다. 예컨대 농약 PCB, 생활 쓰레기 소각에서 발생하는 다이옥신, 합성 세제, 플라스틱 제품, 통조림 내부의 코팅제 등이다. 환경 호르몬이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환경 호르몬 작용물질 때문에 지구촌 곳곳에서는 생태계와 인간에게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환경호르몬은 최근에 나온 새로운 용어로 조금은 생소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환경오염 물질 중 가장 위험하다.
1980년대 후반기에서 1990년대 전반기 동안 보고된 사례를 보면, 북해나 미국 서해안, 동남아시아 등에서 유기 주석(선박 하체의 녹이나 해조류의 부착 등을 방지하기 위하여 페인트에 첨가한 화학 물질)이 불러온 고동(소라, 우렁 등)의 생식 장애, 영국의 하천에서 자웅동체 잉어의 출현, 수컷 숭어의 암컷화, 미국 플로리다 주 아포프카호에서 악어 페니스 왜소화와 부화율 저하, 오대호 주변의 조류 부화율 저하 등 생태계 전반에 끼친 영향들이 보고되고 있다.
덴마크 연구팀의 문헌 조사에 따르면, 사람의 경우 과거 50년 동안 정자 수가 반감 하였고, 남성생식기의 이상이나 정소의 증가와 생식기 이상 현상과 관련된 보고가 발표 되었다. 또 미국의 암학회에서는 유방암 세포 증식 실험 중 우연히 실험 기구에서 녹아 나온 노닐페놀(Nonylphenol)이 유방암 세포를 증식시키는 것을 발견하여, 노닐페놀이 여성 호르몬과 같은 작용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 스탠포드 대학 연구팀도 플라스틱제의 실험 기구에서 검출된 비스페놀 A(bisphenol A)가 여성 호르몬과 같은 작용이 있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지구의 모든 생물의 수컷이 환경 호르몬의 공격을 받아 암컷이 되면 어떻게 될까? 다양한 생물의 생식 이상, 성기 이상이 확인되었고, 인간에게도 정소의 증가, 성기 기형, 정자 수의 감소, 남성의 여성화 등이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환경 호르몬은 ppt(1조분의1)라고 하는 극히 적은 양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전자 조작 식품(GMO; Genetic Modified Organ)의 문제
유전자 조작 식품이란 세균 또는 미생물이나 바이러스 등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조작하고자 하는 대상 생물에 주입하여 만든 식품이다. 예컨대 밀이나 옥수수, 콩 등에 바이러스 등의 유전자를 주입하여 유전자 구조를 조작하는 것이다. 문제는 유전자 조작 물질이 직접적으로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위험성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계의 순환 구조에 크게 의존하는 유기 농업, 곧 친환경적 종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유전자 조작 물질은 지금까지 지구상에 없었던 새로운 생명체이기 때문에 사전에 예방 차원에서 엄격한 안정성 평가가 나온 뒤에야 이를 식용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 조작 식품의 만성적 독성이나 유전적 독성이 나타나는 시차가 일정하지 않으며, 어떤 것은20~30년이 지난 후에 나타날 수도 있으므로 단기간의 동물 실험 결과만을 가지고 유전자 조작 식품의 안전을 확언할 수는 없다. 유전자 조작 물질은 생태계에 “내분비 교란 물질”, 곧 환경 호르몬을 확산시킨다. 그것은 제초제와 살충제에 내성을 갖고 있어 점점 더 강력한 농약 계통의 투입 증가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내분비 교란 물질은 확산 이동성이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른 오염은 발생지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구 전체로 확산될 수 있으므로 지구 생태계의 보전이란 측면에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또한 내분비 교란 물질은 생물체 속에 축적되어 그것을 잡아먹는 상위의 생물에게도 축적되므로 이러한 먹이 사슬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생태계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유전자 조작 작물을 재배하는 곳은 땅속의 미생물을 감소시킴으로써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유전자 조작 물질은 생물 순환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생물들과 상생하고 공존하는 것을 파괴한다. 그리고 폐기된 유전자 조작 물질로 발생하는 유전자 오염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사실은 생태계 질서를 전면적으로 교란, 파괴 시킬 수 있다. 유럽연합(EU)에서는 유전자 조작 식품을 만들지도 팔지도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전자 조작 식품 이용에 조심하여야 한다.
생태 환경 오염에 관한 대책
생태 환경 오염에 대한 해결책은 두 가지이다. 우선 대체 에너지를 발견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연구가 필요한데, 예를 들면 물로 가는 자동차를 개발하거나 새로운 에너지원을 연구하는 것이 그러하다. 태양 에너지가 대표적인데, 한 번 설치할 때 비싼 편이지만 그 후에는 경제적이라고 한다. 풍력 에너지와 수력 발전소도 좋은 에너지원이다. 두 번째는 느리고 작고 불편하게 운동을 통한 우리 생활양식의 변화이다. 환경친화적 제품을 선택하되 아껴 쓰고 줄여 쓰는 노력이 필요하며, 꾸준히 전파해야 한다.
“느리고 작고 불편하게” 운동의 기본원리
“느리고 작고 불편하게” 운동은 너와 나 우리를 아우르는 보편적 형제애 운동이다. 그 기본원리는 일차적으로는 물론 성경이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사회교리에서 드러난 교회 공동체의 원리(교회가르침)인 존엄성· 공동선 · 연대성· 보조성의 원리를 적용하며, 우리 회칙과 회헌 여러 곳에서 특히 회칙10조에서 19조 회헌 18조에 나타난 창조질서 보전의 삶을 충실하게 살기위한 보편적 형제애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존엄성의 원리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인간과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권한으로 인해 다 존엄하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려면 속도전쟁에서 벗어나 느림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느림은 적게는 개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크게는 자연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반드시 실천되어야 할 과제이다.
공동선의 원리
인간과 자연이 더 이상 불균형 속에서 살 것이 아니라 공동목표인 선이신 하느님 찬양을 위해 투신하는 것이며, 상호의존을 통해 생명가치의 실현을 공동목표로 삼는 것이다.
연대성과 보조성의 원리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결정적 원리이며 상호의존의 다른 표현이다. 자연의 아픔이 인간의 아픔이고, 인간의 기쁨이 자연의 기쁨이 되도록 하는 것이며, 인간과자연의 상호연대와 협력 속에서 창조질서 보전을 구현해 내는 것이다.
왜 “느리고 작고 불편하게” 인가 ?
자연과 천체의 움직임은 자신과 창조된 모든 피조물을 위해서 활동한다. 그것을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것처럼 착각을 하고 남용하고 만 결과는 우리가 지금 겪는 지구촌 곳곳의 재앙에서 볼 수 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은 인간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이를 다시 되살리는 이들도 파괴자인 인간이어야 한다. 인간은 피조물을 하느님의 선물로 인식하여야하며 피조물을 위한 자신의 책임을 늘 새롭게 상기해야한다. 책임을 지려면 인간과 피조물사이의 새로운 관계와 근본적으로 변화된 인간의 행동 방향이 필요하다.
‘느리고 작고 불편하게’ 운동은 단순히 좋은 활동이 아니라, 영성을 동반한 활동이어야 하는 창조 행위이다. 창조질서 보전은 생명체의 생존권을 존중하고, 자연과 인간은 상생 공존의 관계에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날로 파괴되어가는 세상을 하느님 이름으로 재창조하고, 회복시켜야 할 때이며, 그리스도인들 특히 우리 재속프란치스칸들은 이 소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노고와 정열을 바쳐야만 한다.
느리고 작고 불편하게만을 강조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간의 훌륭함을 후퇴시키는 것과 같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만물 중 으뜸을 사람으로 삼으셨고 다른 창조물들을 인간에게 맡기시며 잘 돌보라고 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빠르고 크고 편하게 살려는 인간의 삶을 잘못 된 것으로만 인정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빠르고 크고 편함도 추구하도록 하셨다. 하느님 나라가 어서 빨리 오라고 우리는 기도하지 않는가! 사부님께서는 “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은 버립시다.”라고 하셨다. 다만 하느님께서 주신 그 지혜를 인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를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느리고 작고 불편하게만 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빠르고 크고 편하게만 살라고도 하지 않으셨다. 다만 우리에게 당신의 뜻에 맞갖게 조화를 이루며 살라고 말씀하셨다. 프란치스코처럼 회개운동과 평화와 기쁨의 전달자가 되어야 한다.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시어 수난과 고통을 통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묻히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느리고 작고 불편하게’를 볼 수 있다. 하느님의 원리는 빠르고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맞갖게 살아가는 것이다. 하느님의 선은 곡선이며 사람들의 선은 직선이라고 한다. 정의는 느림에 있고 더디 찾아오며, 평화는 작음으로부터 시작하고 하느님의 평화로 끝나며, 창조질서 보전은 우리가 불편함을 참아내어 모든 피조물과 함께 기뻐함에 있다.
보다 ‘느리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빠른 것은 바람직하고, 좋은 것으로 여긴다. 현대에 속도경쟁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웃을, 상대방을, 생각할 겨를도 없고, 그들은 모두 경쟁의 대상으로만 여기게 되었으며, 뒤처지는 것은 패배자이며, 무능력자로 몰리게 되었다.
우리가 느리게 또 단순하게 생활의 규모를 줄이며 살아간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속도와 경쟁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경우 시작이 쉽지 않겠지만, 생활의 일부분에서라도 느림을 직접 실천하고 체험해보기를 권한다.
미국이 발명한 최악의 패스트푸드문화가 한국에도 침입하여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발효 식문화가 파괴되고 있다. 슬로우푸드 운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생활에서 느림을 실천하게 되면 삶이 달라진다. 보다 건강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또한 창조질서 보전을 실천하는 길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내려 스스로 선택한 느린 속도의 수레를 끌고 자발적 가난과 겸손의 기다림을 재속 프란치스칸은 선택해야한다.
우리가 기도를 잘 하고 싶은데도 잘 안되는 이유도 조급함 때문이다. 기도 하면 떠올리는 성녀 모니카를 보면 마니교 이단에 빠진 아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회개를 위해 30년을 기도하셨고 그 결과는 아들과 함께 성인반열에 올려졌다. 기도는 천천히 충분한 시간을 갖고 오래 해야 한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하러 와서 부탁할 일만을 말하고 가면 우리는 몹시 기분 상해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기도 중에 관상기도가 최고의 기도라고들 하는데 관상기도를 잘하려면 염경기도와 묵상기도를 잘함으로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또 성사 특히 성체성사를 통해서 화해와 평화를 전하는 힘을 얻어야 하는데 미사 봉헌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바쁜지! 낫의 경우 날을 천천히 세우면, 그 낫의 날은 오래가고 따라서 오래 사용할 수 있다. 기도와 미사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식적으로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현재의 순간을 잘 살고 있다면 십 분이란 시간이 영원이 될 수도 있다. '시간의 함정'을 피할 또 다른 방법은 의식적으로 매사를 느긋이 하라는 것이다. 오솔길을 서둘러 간다면 여러분이 숲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걸어가노라면 느린 속도로 자기 집을 지고 움직이는 달팽이를 발견할 수 있다. 느긋하다는 것은 마음이 더욱 안정되어 있음을 의미하는데, 모든 위대한 성인이나 학자들은 느긋하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였고 그들의 모든 소중한 발견들도 이와 같이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죽음이 우리의 안내자가 되게 한다. 성인의 피조물의 노래를 되새겨 보면 좋을 것이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들 중 하나는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인지 재임기간 안에 끝나지 않을 일은 아예 손대지 않든지, 선출직 공직자들은 자기 임기 안에 성과가 나타는 일만을 추구한다. 모든 일을 서두르다 나타나는 시행착오를 우리는 당연히 여긴다. 우리 사회 모든 부문이 그런 것 같다. 다음 세대에 가서 열매를 거둘 사과나무를 심는 여유 있는 마음가짐은 찾아보기 힘들다.
너무도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생활 속에서 느리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바보같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 인 듯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느리게 살 필요가 있다. 살아온 삶의 박자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여유를 갖는 것도 좋은 일다. 잠시 벗어나는 여유가 필요하다. 바둑이나 장기의 훈수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느림에 대한 갈망은 삶을 실제적으로 변화시키는 힘과 방법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진정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놓쳐버린 채 중요하지 않는 것과 무의미한 것을 중요하게 만드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느림과 기다림의 미덕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빈 하늘에 저녁별이 떠오르듯, 비운 마음속에서 문득 찬란한 빛을 내는 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있듯이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우리 조상들은 한가로이 걸으며 자신을 성찰했고 ‘아는 길도 물어가는’ ‘돌다리도 두들겨 가는’삶의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옛 말에 이르길,‘엉킨 실을 풀 때에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라고 했다.‘아무리 바빠도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못 쓰는 것’처럼 아무리 바쁜 일이라도 순서를 밟아서 차분하게 진행하는 것이 질서의 순리라고 가르쳐 준다. 차분하고 침착해야지 조급하게 서둘러서 좋을 것이 없다.
보다 ‘작게’
우리들에게 하느님을 만나는 삶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복음의 불안정한 삶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 순례자요 나그네인 삶에서 짐은 그대로 짐일 뿐이다. 짐은 작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보다 작음’은 프란치스칸 영성의 핵심이며 겸손과 가난의 다른 이름이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은 누구도 부족함이 없도록 창조되었지만 어느새 세상은 가진 자와 못가진 자로 나뉘었고, 버리는 자와 굶주리는 자가 공존하게 되었다. 이것은 절제되지 않은 탐욕의 결과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지혜"의 잘못된 사용은 인간지배와 소비주의인 신자유주의로 말미암아 지구는 망가지고 있다. 인간존재를 통해 지구의 산림은 훼손되었다. 비옥한 토양이 해독성이 되고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씻겨 나간다. 인간이 만들어낸 산더미 같은 쓰레기들은 끊임없이 계속 그 높이가 높아져 간다. 개펄과 습지대들이 메워져 간다. 매년 약 1만가지 종들이 영구적으로 사라져간다. 지구상의 오존층마저 고갈되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자연계의 교란은 인간영역에 만연하고 있는 인종적,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 긴장과 공존한다. 그 결과는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대한 파괴를 가져오고, 다른 피조물에게는 물론, 선한 이웃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
하늘의 새처럼, 들판의 꽃처럼(마태 6, 26.30 참조)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을 추구할 때 누구도 부족함이 없이 넉넉하고 세상은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보다 ‘불편하게’
장애는 불편하다. 그러나 불행하지는 않다. - 헬렌 켈러지금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개인의 건강과 질병 문제는 인류가 공유하는 환경의 문제와 상호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 자초한 '편리하게 살기'에서 나왔다. 무조건 추구하는 편함이야말로 나태와 권태에 이르는 지름길이며, 오늘날 겪는 환경오염과 재앙의 원인은 '좀 더 편하게'를 열망하는 인간의 게으름에서 비롯됐다. 하느님께서 만들어내신 모든 창조물들의 편안함이 바로 우리의 편안함과 직결되어 있음에도 인간의 편안함만을 추구한 결과는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불편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내가 편하기 위해 다른 이에게 봉사를 시키는 것은 프란치스칸의 모습이 아니며, 내가 편하기 위해 자원을 남용하는 것도 프란치스칸이 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극복할 수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참 프란치스칸의 표양일 것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부족한 자원을 절약하여 지구환경의 피폐화를 줄일 수 있는 작은 실천이며, 불편함은 게으른 육신을 다스릴 수 있는 은총의 기회이기도 하다.
오늘날 ‘다운시프트’, ‘웰빙’이 주로 미시적이거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행복 추구로 논의되고 있지만, 이들 흐름의 배경에는 생태학적 바탕에서 비롯된 숙고가 깔려 있다. 개인을 넘어선 사회 공동체 전체의 ‘저단 변속’과 ‘삶의 질 향상’이 그 진정한 목표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개인주의를 버려라’는 호소만으로 현재의 소비 위주의 삶을 바꿀 수는 없다고 말한다. 편리함을 향한 인간욕망의 자연스러운 발로를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물질 또는 에너지에만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다른 차원의 기쁨’이 있다는 것은 찾아내어 알린다면 그것을 통해 불편함을 감수 할 것이다. 물자나 에너지의 소비를 줄이고도 더 많이 행복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환경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택하고 하나씩 실천에 옮겨야한다.
우리들이 어떤 일을 정말로 즐겁게 한다거나 아주 중요한 일에 몰두되어 있으면 거의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사소한 불편함을 적극 받아들이고 포용함으로써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창조질서 완성을 위해서
하느님의 창조질서는 이미 주어져 있지만 우리들의 도움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창조질서 보전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창조질서 보전은 기대할 수 없고, 다른 이에게 전해 줄 수 없다.
느리고 작고 불편하게만을 강조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간의 훌륭함을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만물 중 으뜸을 사람으로 삼으셨고 다른 창조물들을 인간에게 맡기시며 잘 돌보라고 지혜를 주셨는데 그 지혜를 잘못 사용하여 인간만 빠르고 크고 편하게 살려고 하여 오늘날의 우주적 재앙이 일어난 것이다. 벗어나는 길은 한 처음에 주어진 참 평화, 참 행복은 온 우주와 화해, 하느님과 화해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빠르고 크고 편하게 달려온 인간만의 발전을 지양하고 자연과 함께 발전해야 하는데, 창조된 본래 모습대로 움직이는 자연이 아니라 우리들이 느리고 작고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창조질서 보존을 위해 헌신하는 것 바로 이것이 새로운 복음화이며, 우리 회칙과 회헌이 말하는 복음생활이다. ‘느리고, 작고, 불편하게’는 바로 지금 나부터 실천할 수 있는 ‘평화’운동이다.
부록 (사목 2004년7월호에서 옮김)
■ 환경과 관련된 성서
<구 약>* 오경: (창세 1,1-26), (창세 1,27-31; 2,4), (창세 2,8-10.15), (창세 2,19), (창세 9,9-16), (창세 15,5), (출애 3,1-5), (출애 23,10-11), (레위 19,9), (레위 23,40), (레위 25,2-4), (레위 25,23), (민수 15,18-21), (신명 11,10-15), (신명 16,20)* 역사서: (2열왕 2,21-22)* 시서와 지혜서: (욥 12,7-10), (욥 37,5-7), (욥 37,14), (욥 39,4-7), (욥 40,6.15-24), (시편 1,2-3), (시편 8), (시편 9,9-10), (시편 11,7), (시편 19,2-5), (시편 23,1-2), (시편 24,1-2), (시편 33,5), (시편 42,1), (시편 50,10-11), (시편 65,10-11), (시편 65,12-13), (시편 74,16-17), (시편 89,12), (시편 95,4-5), (시편 96,11-13), (시편 97,1-6), (시편 98,4-9), (시편 102,25), (시편 104,24.27-30), (시편 104,25-28), (시편 107,33-42), (시편 113,7), (시편 121,1-2), (시편 135,6-7), (시편 140,13), (시편 145,9), (시편 146,5-7), (시편 147,7-9), (시편 148,7-10), (잠언 3,19-20), (잠언 8,1-2.22-31), (잠언 11,28), (잠언 12,10), (잠언 12,28), (잠언 14,31), (전도 3,11), (아가 2,8-10,16-17), (지혜 1,1), (지혜 7,17-22), (지혜 8,24), (지혜 9,1-4), (지혜 11,22-12,1), (지혜 12,15-16), (지혜 13,5), (지혜 16,24)* 예언서: (이사 5,8-17), (이사 6,3), (이사 11,6-9), (이사 24,4-5), (이사 32,15-18.20), (이사 40,8), (이사 40,12-13), (이사 40,28), (이사 40,31), (이사 41,17-20), (이사 42,5-6), (이사 43,19-20), (이사 45,18), (이사 48,18-19), (이사 49,13), (다니 3,57), (호세 4,2-3), (요엘 1,10-12), (아모 4,13)
<신 약>* (마태 3,16), (마태 4,1-11), (마태 4,16), (마태 6,10), (마태 6,26), (마태 6,28-29), (마태 8,23-27), (마태 10,28-29), (마태 11,25-27), (마태 13,1), (마태 13,3-8), (마태 13,31-32), (마태 14,23), (마태 14,25-27), (마태 17,1), (마태 22,39), (마태 24,32-33), (마태 25,34-36), (마태 27,29)* (마르 4,33-34), (마르 4,41), (마르 6,46), (마르 16,15)* (루가 4,16.20), (루가 6,12), (루가 8,25), (루가 12,15), (루가 12,24), (루가 12,27-28), (루가 12,33), (루가 12,48), (루가 13,18-19), (루가 19,40), (루가 21,25), (루가 21,29-30)* (요한 3,5), (요한 3,12), (요한 3,16-17), (요한 10,10-11), (요한 12,12-13), (요한 15,1-3), (요한 18,1), (요한 19,29), (요한 19,41) * (사도 7,49-50), (사도 10,39), (사도 14,15), (사도 14,17), (사도 17,24-28), (로마 1,19-20), (로마 8,18-22), (로마 12,5), (1고린 11,26), (에페 1,7-10), (에페 1,22-23), (골로 1,15-23), (히브 1,2-3), (히브 11,3), (야고 1,17), (1베드 1,24), (1베드 4,8-10. 5,5), (묵시 4,11), (묵시 5,13), (묵시 11,18), (묵시 21,1.5)
■ 환경과 관련된 성가들
* 가톨릭 성가 2 4 15 16 22 24 144 161 401 402 417 431 438 440 445 453 472 495
* 청소년 성가 98 110 117 132 134 137 139 194 204 210 238 242 243 247 250 252 253 259 296 298 309 351 385 402 411 417 419 423 435 444 446 447 448 449 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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