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밀양(密陽)은 지금의 밀양시 일원에 있던 지명으로 삼한시대에 변한(弁韓)의 일부로 가락국(駕洛國)에 속했으며 미리미동국(彌離彌東國)이 있었다고 한다. 법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推火郡, 밀벌 또는 미리벌)이 설치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개편하였다. 995년(고려 성종 16)에는 밀주(密州)로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개편되었다. 1275년(충렬왕 1)에는 군민의 모반 사건으로 귀화부곡(歸化部曲)으로 강등되어 계림부(鷄林府: 慶州)에 편입되었다가 후에 현으로 승격하였다. 1285년에는 군으로 승격되었으나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밀양부로 승격하였다. 조선 1415년(태종 15)에 밀양도호부가 되었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경상남도 밀양군이 되었다. 1918년에는 부내면이 밀양면으로 개칭되고 1931년에 밀양읍으로, 1989년 시로 승격하여 독립하였다. 1995년 밀양군이 밀양시에 통합되었다.
성씨의 역사
시조 당성(唐誠)은 《밀양당씨세보(密陽唐氏世譜)》에 의하면 중국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출신으로, 원(元) 말기 전란을 피하여 고려에 귀화하여 정동행성연사(征東行省椽史)가 되었다. 조선개국 초 공조전서(工曹典書)로서 외교문서를 전담하여 관장하였고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록되어 녹권(錄券)과 상전(賞田) 15결(結)을 하사받았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개성유수(開城留守)를 거쳐 가정대부(嘉靖大夫)로 공안부윤(恭安府尹)에 이르러 밀양(密陽)을 사적(賜籍)받았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밀양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주요 세거지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월봉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밀양당씨는 300가구 총 1,013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