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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라파타르, 생애의 고지(高地)에 서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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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PAL HIMALAYA ; Sagramatha National Park
2017—[Khumbu Himal] EVEREST.B.C. TREKKING — (5)
사진 위에 커서를 올려놓고 두 번 클릭하면 원본의 큰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 2017년 4월 1일 (토요일) * [EBCT 제6일]
<남체바자르>→ <박물관>→ <Khumjung Kunda>→ <쿰중>
* [남체바자르에서 바라본 설산의 장관 ] — 탐세르쿠-캉데가, 타르티카와 콩데
남체바자르(Namche Bazar)의 아침, 이른 아침에 일어나 2층 방의 창문을 열었다. 아직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날씨는 아주 맑았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이 없이 깨끗하고 청정했다. 부지런한 기원섭 대원이 카메라를 들고 마당에 나와서 주변의 풍경에 몰입하고 있었다. 산기슭에 층층이 지어진 집들, 남체 마을의 아침은 고요한데, 시야를 압도하여 다가오는 아, 고봉 설산의 눈부신 자태! 가슴에 안겨든다. 어제 오후에는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백설의 산봉이었다. 남체 마을의 언덕 넘어 동쪽 하늘에 치솟은 장엄한 저 설봉은 바로 탐세르쿠(Thamserku, 6,618m)와 캉테카(Kangteka, 6,783m) 연봉이요, 동남쪽으로 쿠숨캉카루(Kusum Khangkabru, 6,370m) 연봉이요, 가까운 서쪽 하늘에는 타르티카(Tartikha, 6,186m)와 콩데(Kongde, 6,086m)이 설봉이다. 동서의 두 봉우리가 남체 마을을 병풍처럼 옹위하며 치솟아 있었다. 날이 밝아지고 있었다. 히말라야의 일출(日出)은 고도의 설봉(雪峰)에서부터 시작한다. 산의 동쪽에서 해가 뜨면, 가장 먼저 가장 높은 설봉의 산정(山頂)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여 그 황금물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다. 신비스러운 장관이다.
해뜨기 전 남체의 아침 - 산기슭에 층층이 지어진 집들
탐세르쿠(Thamserku, 6,618m)와 캉테카(Kangteka, 6,783m) 거봉
쿠숨캉카루(Kusum Khangkabru, 6,370m) 연봉
* [남체에서 쿰중(Khumjung)으로 가는 길] —
오전 8시, 우리가 유숙한 ‘잠링(Zamling) 게스트하우스’의 식당에서 네팔식으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야크유(乳)로 만든 뜨거운 밀티를 곁들여 네팔식 밀떡과 계란 후라이를 두 점씩 먹었다. 오늘의 일정이 그리 길지 않으므로 여유 있는 아침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남체(3,440m)에서 산을 하나 넘어가서 이르게 되는 쿰중(Khumjung, 3,780m)까지의 여정이다. 오늘은 고도를 350m 정도 올린다. 이제 3,000m가 넘는 고지의 산행이므로 서서히 산소가 희박한 고소(高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타르티카(Tartikha, 6,186m)와 콩데(Kongde, 6,086m)의 설봉
남체(Namche)에서 쿰중(Khumjung)으로 가는 길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동쪽의 루트, 남체의 동쪽 산허리를 빙 돌아서 나아가는 대로(大路)인데 이 길은 텡보체(Tengboche)를 경유하여 초오유, 눕체,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 아마다블람, 교쿄 등으로 들어가는 쿰부히말의 중심 요로이다. 이 길로 가면 남체의 동쪽 산허리를 길게 돌아서 있는 사나사(Sanasa) 롯지마을에서 굼중(Khumjung)으로 다시 올라가야 하므로, 가장 멀고 힘든 길이다. 둘째는 남체의 뒷산[Khumjung Khunda]을 바로 넘어가는 길로 ‘에베레스트 뷰 호텔’을 경유하는 길이다. 갑자기 높은 산을 치고 오르는 경사가 급하여 좀 힘들기는 하지만 비교적 거리가 짧고 탐세르쿠(Thamserku)-캉테카((Kangteka) 등 설산연봉을 높은 위치에서, 정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길은 남체 서쪽의 상보체(Sangboche, 3,720m)-쿤데(Khunde, 3,840m) 마을을 경유하여 가는 길인데, 거리도 짧고 길도 좋아 이 지역 주민들은 통상 이 길을 이용한다고 한다. 오늘 우리의 트레킹 코스는 남체의 뒷산을 넘어서 가는 중로(中路)의 산길이다.
남체 서쪽의 상보체(Sangboche, 3,720m)-쿤데(Khunde, 3,840m) 마을을 경유하여 쿰중으로 가는 산허리길
남체의 뒷산[Khumjung K hunda]으로 올라가는 길과 사나사(Sanasa)-텡보체(Tengboche)로 가는 갈림길의 이정표
* [남체 초강마을의 민속박물관] — 히말라야 사진작가 ‘락파 소남’
오전 9시 50분, 오늘의 트레킹에 돌입했다. 날씨는 아주 화창했다. 아침부터 원색의 햇살이 따갑게 쏟아진다. 모든 대원들의 상태는 양호했다. 우리가 유숙한 롯지는 산비탈 높은 위치에 있는데, 등산로 입구까지 가기 위해서는 롯지 뒤의 산허리 길을 따라서 가야 한다. 남체 마을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소쿠리 모양의 산비탈 안에 층층이 지어진 남체마을의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이 아침햇살을 받아 환하게 보였다.
남체의 동쪽 언덕에 올라 내려다 본 마을의 풍경
우리는 산(山, Khumjung Khunda)에 오르기 전, 남체바자르 동쪽 언덕 너머 초강(Chogang) 마을에 있는 박물관을 찾았다. 셀파족의 '민속박물관'과 이 지역 출신의 히말라야 사진작가 소남(Lhakpa Sonam Sherpa)의 '사진갤러리'가 함께 있는 곳이다. 박물관은 언덕 아래 아늑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산뜻하고 장중한 대문(大門)에 ‘MUSEUM’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고 그 옆에 자상한 영문의 안내판이 걸려 있다. 읽어보니, 민속박물관과 사진 갤러리 그리고 ‘세르위 캉바’ 호텔까지 들어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니 비교적 너른 마당 한 가운에 하얀 스투파(불탑) 두 기(基)가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데 그 사이에 ‘마니 월’을 만들어 놓았다. 박물관 건물로 들고날 때, 반드시 "옴마니반메훔" 육자진언(六字眞言)을 암송하며 거쳐 가도록 조성해 놓았다. 비싼 입장료를 받았다. 왼쪽 돌판 지붕의 2층 건물은 민속박물관이요 오른쪽의 크고 산뜻하게 지은 3층 건물에는 1층 갤러리와 2·3층은 호텔이었다. 박물관 입구의 벽에 이곳을 안내하는 영문의 동판(銅版)을 박아놓았다. 이곳은 ‘Sherwi Khangba Centre’인데 그 아래 ‘Sherpa Culture Museum & The Mt. Everest Documation Centure / 1994년 4월 7일 에드먼드 힐러리 경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적어놓았다. 그러므로 이곳에는 <셀파족의 민속박물관>, <에베레스트 자료센터-셀파족의 영웅담>, <셀파족 민속사진 갤러리>가 있다. 입장료는 250Rs이다.
본관의 2층에 있는 <셀파족(Sherpa) 민속박물관>에는, 전통적인 셀파족의 주거생활의 모습과 쿰부 계곡에서 과거의 셀파족의 삶의 못습이 담긴 갖가지 공예품과 도구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옆방에는 지금도 봉사(奉祀)하는 티벳불교의 법당도 있었다. 별관의 <에베레스트 자료센터-셀파족의 영웅들의 사진 갤러리>에는,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섰던 셀파들의 사진들과 함께, 히말라야 등반과 등정에 공헌한 셀파의 사진과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 압권은 세계 최초로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던 텐징 노르게이(Tenging Norgay) 그리고 1993년 4월 22일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던 셀파족 포터인 파상 라무(Pasang Lhamu Serpa)의 사진이었다. <셀파족 민속사진 갤러리>에는 셀파족 삶의 현장과 수공예품들이 추가적으로 진열되어 있고 셀파족의 전통적인 삶과 해마다 열리는 문화 축제들에 대한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에드먼드 힐러리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던 텐징 노르게이(Tenging Norgay) 사진코너
파상 라무(Pasang Lhamu Serpa)[가운데 위]를 중심으로 한 네팔 여성산악인의 사진
이 사진들은 대부분 이 지역 출신의 히말라야 사진작가 락파 소남(Lhakpa Sonam Sherpa)의 작품들이었다. 소남은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를 완등한 라이홀드 매서너와 함께 찍은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다. 안나푸르나 지역에는 ‘구룽족’이 주로 살고, 랑탕지역에는 ‘따망족’이 살고 있는데 이곳 쿰부히말 지역은 ‘셀파족’들이 살고 있다. 네팔인의 이름에는 끝에 반드시 종족(種族)을 표시하여 쓴다.
사진작가 소남과 히말라야 산악인 라인홀트 매스너
이곳의 민속박물관과 갤러리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쿰부지역의 중심을 이루는 셀파족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와 영상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쿰부히말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에베레스트(Everest) 등정과 그 역사'이다. 세계 산악사의 중심이 되는 에베레스트 등정에는 고산 등반에 능한 이곳의 셀파(sherpa)의 도움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곳은 에베레스트를 오르거나 쿰부히말의 트레킹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관람을 해야 할 곳이다. 산을 오르는 것도 하나의 문화라면 에베레스트의 오를 때 에베레스트의 문화를 모른다면 진정한 트레킹이 아닐 것이다. 쿰부히말의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산악사의 별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 [남체의 뒷산 쿰중쿤다를 넘으며] — 콩데를 등에 지고 담세르쿠를 이마에 이고
오전 10시 20분, 본격적으로 남체의 뒤쪽의 산[Khumjung Kunda]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을 가팔랐다. 해발 3,440m의 남체에서 지그재그로 고도를 높여 올라가는 길, 산길은 팍팍했다. 화창한 날 눈부신 햇살은 뜨거웠지만 바람결이 선선해서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았다. 은근히 고소증이 오기 시작하여 몸이 좀 무겁기는 하였으나 산행을 하는데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계속에서 고도를 높여가는 산길, 한참을 오르다가 서쪽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소쿠리형상의 산비탈에 남체 마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조금 전 우리가 탐방했던 <민속박물관>을 비롯하여 학교 건물과 군부대와 헬기장 등이 바라다 보였다. 한 발 한 발 산을 오른다. 공기가 맑아서 더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고개를 들어 주변의 산을 바라보니 서쪽의 우람한 타르티카(Tartikha)-콩데(Kongde, 6,186m)와 동쪽의 거대한 담세르쿠(Thamserku, 6,608m)는 온통 하얀 운무에 뒤덮여 그 자태를 감추어버렸다. 이른 아침 맑은 날씨에 보던 그 설산고봉은 구름 속에 그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팍팍했다. 대원들의 간격이 많이 떨어졌다. 이(李) 대장은 후미의 대원을 수습하여 올라오고 있다. 선두로 가는 김준섭 대원과 함께 자연석 돌탑과 룽다르가 걸려있는 절벽 위에서 함께 포즈를 잡기도 했다.
고도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남체
운무에 싸인 담세르쿠
운무에 사인 콩데
그렇게 한참을 올라와 고원(高原)이 펼쳐지는 지점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했다. 뒤에 오는 대원들이 가다려서 합류했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3,500미터가 넘는 고지의 평원, 너른 풀밭과 군데군데 키 작은 향나무들이 누워있는 민둥산의 풍경이 펼쳐진다. 머리 위의 하늘은 파란 원색인데 주변의 설산(雪山)은 순백의 구름 속에 휩싸여 있다. 구름의 흐름에 따라 간간히 담세르쿠의 설산의 모습이 슬쩍 보이기도 했다. 몇몇 대원들은 고소증이 오는지 걸음이 느려지고 다시 뒤로 쳐지기 시작했다. 김장재 대원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앞서 가고, 야무진 김미순 대원은 저만큼 앞서서 걷고 있었다. 호산아와 김준섭 대원은 함께 호흡을 조절하며 산을 올랐다. 간간히 둘이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며 포즈를 잡기도 했다. 기원섭 대원이 셀파 가일러와 함께 오르고 있다. 묵묵히 걷는 모습이 장중했다. 마음의 성원을 보내며 기다렸다. 후미의 이 대장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고지대의 완만한 경사의 평원
이제 남체마을도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다. 한국의 전라도 광주에서 왔다는 일군의 트레커들이 우리보다 앞서서 걸었다. 완만한 경사의 산록의 따라 오르는 그들의 행렬이 아련하게 올려다 보였다. 산정으로 보이는 지점에 집이 한 채가 있다. 비교적 규모가 큰 집인데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문을 굳게 잠겨 있었다. 일반인들이 출입을 금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군부대 건물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도상에는 ‘Shyangboche Panorama’라고 적혀 있는데, 이곳에서 서쪽에 시야를 압도하는 거대한 콩데에서 상보체까지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설산의 장관을 조망하는 곳이다. 오늘은 운무가 끼어 그 장관을 볼 수 없었다. 적막한 그 집의 돌담을 끼고 돌아나가니, 동쪽으로 문이 나 있는 마당이 넓은 찻집이 있다. ‘Lavazza’라는 원형의 간판에 ‘이태리의 맛있는 커피를 즐겨보라’고 영문으로 적혀 있었다. 영업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지만 집의 주변을 인적이 없고 적막한 분위기였다.
동쪽으로는 시야(視野)가 확 열린다. 장대한 산록의 허리에 실처럼 이어져 가는 길, 아래로는 아득한 벼랑이요 위쪽으로는 높은 산이다. 우리가 가야할 그 산길이다. 저만큼 앞서 가는 트레커들의 행렬이 시야에 들어오기도 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득히 보이는 길이 이어진다. 남체에서 텡보체로 가는 그 동로(東路),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로 가는 메인로드이다. 그 아래는 두드코시의 협곡이다.
길목에서 숨을 고르며 한참을 기다리니 기원섭 대원과 카일러가 따라온다. 기원섭 대원은 천천히 걸으면서, 가는 곳마다 캠코더로 실경을 촬영하느라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김준섭 대원과 둘이서 산행을 계속했다. 현지 가이드 파샹과 김장재 대원은 선두로 나아가서 시야에 보이지 않았다.
저 아래 실처럼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로 가는 메인로드
* [호텔 ‘에베레스트 뷰’ 앞에서의 휴식] — 모든 대원이 모여 쿰중으로 내려가다
김준섭 대원과 둘이서 호젓한 벼랑의 산길을 걷는다. 높은 산록의 허리를 몇 구비 돌고 돌아 다시 고원에 이르렀다. 우리가 돌아서 온 그 산(山)의 정상으로 올라가는 평원이다. 그러고 보면 일단 남체의 뒷산을 넘은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고 짙은 안개와 구름이 몰려왔다. 변화무쌍한 날씨, 음산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서둘러 민둥산의 평원을 지나고 나니 아담한 풍경 속, 얼마간의 울창한 숲이 우거진 곳에 이르렀다. 그곳은 3,880미터 고지에 위치한 ‘Hotel Everest View’였다. 바람결이 잠잠한, 호텔로 오르는 긴 계단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후미의 대원들을 기다렸다. 남체와 쿰중의 사이의 산정에 위치한 ‘Hotel Everest View’은, 북쪽으로 멀리 있는 에베레스트를 관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한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호텔이라고 했다. 한참을 기다려 모든 대원들이 합류했다.
이상배 대장
이제 ‘호텔’에서 내려가는 길, 한 차례 숲길을 지나보니 히말라야 소나무 사이로 저 아래 구릉지애에 옹기종기 집들이 자리 잡은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거대한 산 아래 분지의 마을, 오늘 우리가 머물 바로 쿰중(Khumjung, 3,780m)이었다. 모든 대원들이 열을 지어 산을 내려갔다. 완만한 돌계단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산록에는 군데군데 키 큰 히말라야 소나무가 서 있고, 또 한 쪽의 산록에는 백색의 스투파[티벳불교의 탑]가 자리 잡고 있었다. 민둥산을 타고 내려오니 산마을의 풍경이 더욱 가까워졌다. 쿰중의 마을은 조용했다. 마을로 막 내려서는 길목에서 일군의 어린 아이들이 돌담을 쌓고 있다. 김준섭 대원이 초콜렛을 꺼내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순진한 아이들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비록 남루한 입성이지만 아이들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쿰중으로 내려가는 길
쿰중
* [셀파족의 마을, 쿰중] — 마일러와 카일러의 집이 있는
반듯한 밭들을 끼고 있는 마을의 돌담 길,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길가에 집들이 즐비하고 거대한 산록에도 층층이 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중 길 한 가운데 자연석 돌판을 모아 만든 ‘마니스토운’이 있는 곳, 바로 그 앞에 ‘마일러’의 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집이 그의 동생인 ‘카일러’의 집이 있다. 마일러의 집 맞은 편 돌담의 골목 안에 우리가 유숙할 <쿰중호텔>이 있다. 사실상 오늘의 트레킹이 종료되었다. ‘마일러’는 2013-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과, 2014-랑탕 트레킹에서 우리의 식사를 담당했던 네팔 친구인데, 작은 몸집에 착하고 친절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어서, 정(情)이 많이 들었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가끔 그리운 사람이었다. 마일러는 이상배 대장과 특별한 인연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가 히말라야에 들 때마다 마일러는 꼭 불러서 동행을 하는 사이이다. 숙소로 들기 전 먼저 마일러 집에 들었다. 마일러는 외국원정대의 도우미로 지금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 들어가 있어 집에 있지 않았다. 부인과 아들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래서 그 동생인 카일러와 동행하게 된 것이다.
쿰중호텔로 들어가는 문 입구에 판매대를 차려놓고 갖가지 기념품을 파는 카일러의 아내
네팔에서는 형제 중 첫 번째를 ‘치차’, 둘째를 ‘마일러’, 셋째를 ‘사일러’, 넷째를 ‘카일러’, 막내를 ‘진차’라고 한다. 그러므로 실제 본명이 ‘강가바두 따망’인 ‘마일러’는 둘째이고 본명이 ‘붓다바두 따망’인 ‘카일러’는 넷째 동생이다. 쿰부히말의 쿰중은 셀파족 일색의 마을인데 따망족의 마일러가 여기서 잘 사는 것은 그 착한 심성과 부지런함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 살고 있는 집도 원래는 지금의 네팔 최고의 등산여행업체인 ‘아시아 트레킹’의 툭텐 셀파 사장이 젊은 시절 빵집을 하던 곳인데 카투만두로 진출하면서 집도 없이 포터 등의 일을 하는 착하고 가난한 따망족 마일러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부인도 이곳에 와서 ‘남의집살이’하던 따망족 여인이었는데 둘이서 만나 일가를 이루었다. 마일라 부인의 이름은 ‘비알라’라고 했다.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두었는데 20대의 맏이는 집의 맞은편에 있는 쿰중호텔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쿰중호텔은 아세아 트레킹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딸은 보이지 않았다.
* [이상배 대장과 마일러] — 착한 마일러, 조난 당한 이 대장의 생명을 지켜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 마일러 부인은 따뜻한 밀티로 우리를 접대했다. 이(李) 대장은 히말라야에 올 때마다 자주 들르는 관계로 친근했다. 마일러는 이 대장의 생명의 은인이다. 2006년 에베레스트 등반 시 정상 88m를 앞두고 사우스콜에서 조난(遭難)을 당해 사경(死境)을 헤매다가 천신만고 끝에 기사회생으로 베이스캠프에 돌아왔는데, 그 때 혼수상태로 누워 있는 이 대장에게 미음을 끓여 먹이며 그를 지켜준 사람이 마일러였다. 그래서 2015년 네팔에 대지신이 일어났을 때 이 대장은 한 걸음에 이곳에 달려와 적지 않은 위로금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일러는 기원섭 대원에게도 특별한 관계이다. 기원섭 대원이 2013-안나푸르나 산행 때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 동행하며 도왔던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었다. 작은 체구에 무거운 자기 배낭을 진 상태에서 기(奇) 대원의 배낭과 무거운 카메라를 받아들고 보좌하던 그였기 때문이다. 기원섭 대원은 오늘, 그 감사의 마음을 부인에게 금일봉을 전했다.
마일러의 아내 비알라
* [오늘의 숙소 쿰중호텔(롯지)] — 마일러-카일러 형제와 파썅의 이야기
우리 트레킹의 가이드 ‘파샹 셀파’와 다른 네팔 친구들의 집도 대부분 이 마을에 집이 있다. 파샹은 영어와 일어에도 능통하며 센스가 있고 명민했다. 그래서 포터가 아닌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일러의 집 부엌을 빌려 우리가 식사를 지어서 먹기로 했다. 우리가 준비한 식재료로 우리의 입맛에 맞는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오늘 점심은 간단하게 라면과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그리고 쿰중호텔에 들어와 여장을 풀었다. 호텔이라 하지만 시설이 조금 나은 롯지(lodge)이다. 롯지는 히말라야에서 통하는 산장(山莊)이다.
쿰중호텔 입구
그런데 마일러의 집 앞, 쿰중호텔로 들어가는 문 입구에 판매대를 차려놓고 갖가지 기념품을 파는 여인이 있다. 알고 보니, 우리와 동행하고 있는 마일러의 동생 카일러의 아내였다. 다함께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고 여성대원들을 수제(手製)의 양털모자 등 기념품을 사기도 했다. 오후가 되면서 날씨가 쌀쌀해졌다. 쿰중호텔에 들어 방(房)을 정하고 여장을 풀었다. 김준섭 대원과 함께 쓰는 우리 방은 2층이었다. 이곳의 방(房)은 다른 데보다 비교적 넓고 옷장까지 있었다.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거대한 산 아래 자리 잡은 쿰중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만고만한 집들이었다. 2015년 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보았는데 그 동안 새로 지은 집들이어서 그 모양과 형태가 비슷비슷했다. 가까이에는 호텔로 들어오는 문(門)과 골목길, 그리고 마일러의 집 등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해발 3,780m, 남체보다 350m 높은 지점이다. 남체에서부터 시작된 고소증이 온몸을 휘감았다. 머리가 아프고 어질거리며 가슴이 답답했다. 침대에 무거운 몸을 누이고 휴식을 취했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