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26)-
상트페테르부르크 2
St. Petersburg 2 이신웅
한국식당에서 바쁘게 보쌈과 대구 지리, 파전을 먹고 마린스키 극장으로 발레를 보러간다. 마린스키 신관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현지에서 백조의 호수를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더구나 지그프리트 왕자 역의 발레리노가 한국인 김기민이었다. 그의 춤은 러시아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오데트 공주 역의 발레리나는 키도 작고 좀 그랬지만 러시아에서 처음 보는 발레여서 감동이 컸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흐려서 비가 내릴 듯했다. 시외로 나가 여름궁전 페테르호프(Peterhof)에 간다. 나무 길이 잘 만들어져 있는데 마로니에 같다. 표트르 대제는 핀란드만의 해안을 잘 개발하러 노력했고 그 결과로 페테르호프가 1705년에 착공되었다. 궁전은 1714-25 년에 만들었으나 붕괴되어 1745-55년에 재건축했다. 베르사이유 궁전 같은 정원에는 140여 개의 황금빛 분수대가 있다. 11시가 되자 분수들이 물을 뿜기 시작한다. 관의 두께로 수압을 조절하여 분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왕궁 앞 계단식 분수와 그 앞에 있는 삼손 분수가 압권이다. 힘찬 삼손이 사자의 입을 찢으러 벌리고 그곳에서 뿜어지는 물줄기가 수십 미터 하늘로 치솟는다. 1802년 미하일 코즈로프스키 작품이다.
분수 구경을 마치고 시내에 들어와서 넵스키 대로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미디엄으로 구운 스테이크를 먹는다. 음식을 만드는 솜씨는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을 한다.
오후에는 에르미타쥐 박물관에 간다. 1754-62년에 로코코 양식으로 지은 겨울궁전이다. 소장된 보물들은 대개 예카테리나 대제 때 것이라 하는데 예카테리나 대제가 이곳에서 혼자 감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에르미타쥐, ‘은둔처’라는 뜻이라고 한다. 많이 오는 한국인, 중국인에게 오디오 가이드를 한다. 편리한 점도 있지만 적당한 시간에 빨리 내보내려는 속셈도 깔려있다. 여러 방들을 보며 놀라지만 이곳에 오면 나는 렘브란트의 ‘이삭의 희생(The sacrifice of Isaac, 1635)’과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60)'에 꽂힌다. 2003년에 왔을 때는 액자도 없이 걸어놓아 이게 오리지널인지 묻기도 했지만 지금은 황금빛 액자에 넣어 특별전시하고 있고 그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의 설명은 이렇다. 집을 나가 많은 돈을 탕진하고 집에 돌아온 탕자를 아버지는 손을 벌려 맞는다. 탕자는 남루한 옷을 입고 신발이 벗겨진 왼쪽 발은 긁히고 부르튼 상태로 무릎을 꿇고 아버지 품에 안긴다. 아버지의 왼 손은 탕자의 어깨를 잡고 있는데 강한 남자의 손으로 묘사되어 용서와 격려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오른 손은 부드러운 여자의 손으로 그려져 사랑과 포용의 어머니의 모습을 나타냈다고 한다. 곁에 서서 두 손을 끼고 바라보는 이는 탕자의 귀환을 마뜩찮게 여기는 형의 모습으로 탕자를 정죄하고 있다. 뒤에 희미하게 보이는 이는 어머니일 거고 앉아있는 사람은 재산 관리인이나 세리일 것이라고 한다. 렘브란트가 아버지의 손을 그릴 때 의도적으로 그렇게 그린 것인지 그리다보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말년에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어서 자신의 생애의 과오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귀의하는 그의 마음이 표현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곁에 전시된 렘브란트의 ‘이삭의 희생’에는 반라의 소년이 뒤로 팔이 묶인 채 장작더미 위에 놓여있고 아브라함은 소년의 얼굴을 감싸 쥐고 오른 손에 칼을 들고 소년의 목을 내리치려 할 때 천사가 그의 손을 잡아 만류하여 칼을 떨어뜨린다. 여기에서 소년 이삭은 아무런 저항 없이 조용히 칼을 기다리고 있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카라바조의 ‘이삭의 희생(The sacrifice of Isaac, 1603)'은 좀 다르다. 소년은 바위 위에 얼굴을 눌리고 몸을 움직여 저항하며 입을 벌려 소리친다. 천사가 한 손으로 아브라함의 손을 잡고 만류하며 한 손으로는 수풀에 걸린 숫양을 가리킨다. 배경에는 엉뚱하게 성당건물들이 서있다. 카라바조는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이삭에게서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화려한 공작새 시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돈나와 아기 예수(1491)‘, 마티스의 ’춤 (1910)‘ 등도 눈에 뜨이는 작품이다.
호텔에 돌아와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긴자프로젝트에 속한 식당이라는 ‘만사르다’에 갔다.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니 이삭 성당의 돔이 바로 곁에 있다. 야간 조명을 받고 있는 성당의 모습이 찬연하다. 전채로 종이처럼 얇게 썬 둥근 소고기 위에 야채를 얹어 마치 한국 육회 같은 것이 나온다. 정찬은 송로버섯을 넣은 쌀죽 같은 음식, 이름은 모르지만 버섯 향이 좋다. 최후만찬답게 격이 있는 음식이다.
호텔에 돌아올 때는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서 나이든 피아니스트가 차이코프스키를 연주한다. 중앙 홀을 따라서 5층 중앙 공간까지 소리가 들려온다. 로비 소파에 앉아 한참동안 음악을 감상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름다운 마지막 밤이다.
다음날 아침 가방을 들고 호텔을 나선다. 곁에 있는 카잔 성당 (Kazan Cathedral)에 들어간다. 1801년에 만든 성당인데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처럼 코린트식 열주가 서있어서 웅장하다. 성당 안에 마침 미사 중이다. 사제들이 서있고 20-30 명의 신도들도 서있다. 화답하는 이층의 찬양대의 성가가 가슴을 울린다. 대여섯 명이 반주 없이 노래한다. 경건함으로 눈물이 나온다. 한참 서서 기도한다. 인간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기도와 찬양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많은 말을 하고 있다고 항상 생각한다.
오늘 일정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교외에 있는 황제의 궁전들을 구경하는 날이다. 동남쪽으로 25km 떨어져 있는 파블로프스크 시와 푸시킨 시에 간다. 가는 길에 거대한 목조건물로 된 뽀드보리 레스토랑이라는 곳에서 러시아식 점심을 먹는다. 푸틴 대통령도 다녀갔다고 선전하는 것으로 보아 꽤나 유명한 곳인 모양이다. 목조건물을 여러 박물관에서 보았지만 현대인들이 만든 나무집은 훨씬 크고 복잡한 구조다.
파블로프스크 궁전(Pavlovsk Palace)에 간다. 1777년에 예카테리나 대제( 2세, 1762-96)가 그의 아들 파벨 페트로비치 대공을 위해서 슬라비안카 강가에 파블로프스크 시를 건설한다. 1782-86년에 그곳에 궁전을 짓고 많은 호수와 다리와 정자가 있는 공원을 꾸민다. 후에 파벨 1세(1796-1801)가 되는 그의 아들을 위한 것이었다. 백치 황제 파벨은 표트르 3세와 예카테리나 대제 사이의 아들이다.
파블로프스크 궁전은 당당하고 단순한 외관과 우아한 장식으로 러시아 고전양식의 대표적인 건물이라고 한다. 주 건물은 양쪽 날개로 이어져 호(弧)를 만들고 가운데 큰 광장이 있다. 광장 가운데에는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파벨 1세의 동상이 있다. 궁전의 내부는 예카테리나 궁전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아한 장식, 조각, 그림들이 좋다. 특히 메인 홀의 녹색 코린트식 원주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아마 공작석 기둥일 것이다.
이제 머지않은 곳에 있는 예카테리나 궁전( The great Catherine Palace)에 간다. 표트르 대제가 이 지역을 자기의 황후이자 2대 짜르인 예카테리나 1세에게 선물로 준다. 예카테리나 1세가 1717-1743년에 여름궁전을 짓는다. 사람들은 이곳을 짜르스코에 셀로(Tsarskoye Selo, 황제의 마을)라고 불렀다. 공산혁명 후에 1918년 데츠코에 셀로(Detskoye selo)라고 바꾸었는데 ‘아이들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1937년 푸시킨 사후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푸시킨 시로 바꾸었다.
1752-1756년에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 황제는 로코코 양식으로 개축하고 분산된 건물을 하나로 연결하여 300m나 되게 했다. 예카테리나 대제 때 많은 건물을 증축하고 특히 카메론이 설계한 돔이 다섯 개 있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성모승천성당을 지었다.
청록색과 백색의 로코코 풍의 예카테리나 궁전은 외관부터 우아하다. 방마다 금으로 현란하게 장식되어 있고 인간이 누리고 싶어 하는 모든 사치스러움으로 가득하다. 실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호박 방(Amber room)에서는 사진을 못 찍는다. 2차 대전 때 독일군들이 모든 호박을 벗겨갔는데 행방불명되었고 그 후 칼리크 지방의 호박으로 복원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 설립 300주년이 되던 해, 2003년에 완공하여 공개했다. 온 방안이 노란 황금빛으로 가득하다. 호박도 황금과 같은 색을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은 시간에 넓은 공원의 호숫가를 거닌다. 벤치에 앉아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한다. 호수 건너편의 작은 정자들이 평화롭게 보인다. 저녁이 되어 길가 식당에서 스파게티를 먹고 공항으로 나간다. 화려하고 사치스런 짜르의 도시, 느긋하고 평화로운 예술의 도시, 과하게 치장한 성당들이 있는 성 베드로의 도시를 이제 떠난다.
(2019. 7)
마린스키 극장, 상트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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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호수, 발레리노 김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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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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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자, 렘브란트 1660, 에르미타쥐 상트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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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희생, 렘브란트 1635, 에르미타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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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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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프스크 궁전, 파블로프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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