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번 만큼은 '불후의 명곡2'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남인수가 세상을 떠날 당시 나이가 43세였다. 요절이라 하기에는 가수로서 이미 많은 것을 이루고 남긴 뒤이기도 했다. 더구나 김재희와 김진호는 사실상 자기 노래를 불렀다. 김재기는 녹음만 하고 떠났고 이후 실제 활동은 김재희가 했다. SG워너비의 '살다가'는 김진호가 채동하와 팀을 이루고 있던 시절의 노래였다.
일관성을 잃은 주제는 아무래도 프로그램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일관된 주제 아래 감상도 감동도 연속성을 갖는다. 아, 이런 가수도 있었지. 정말 아깝게 일찍 떠나가 버렸다. 그립다. 혹은 안타깝다. 살아서 더 많은 영광을 누리고 우리에게도 더 많은 것들을 남겼으면. 출연가수와 무대의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만큼은 듣는 자신도 조금은 산만해져 있었다. 하지만 노래는 역시 좋다.
기타소리가 마치 북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조곡이었다. 진혼곡이었다. 닿을 수 없는 그곳으로 산 사람의 목소리를 전한다. 북소리는 하늘과 땅을 잇는 소리였다. 원곡과 달라진 것은 없다. 김재희 자신의 노래이기도 했을 테니까. 다만 후반부에 이어진 고음과 애드립은 그 노래를 들려줄 대상이 누구인가를 특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모두의 노래가 아닌 한 사람을 위한 노래다. '사랑할수록'은 원래 형 김재기의 노래였으니까. 닿았으리라. 들렸으리라. 노래가 삶과 죽음마저 잇는다.
남인수의 '무너진 사랑탑'은 사랑에 배신당한 남자의 처절한 분노와 원망을 담은 노랫말과는 달리 차라리 장난스럽기까지 한 경쾌한 멜로디와 리듬이 인상적인 곡이다. 달콤했던 기억과 지금의 아픈 상처과 격정이 대비되며 공존한다. 먼데이키즈의 무대를 보며 느끼는 아쉬움이었다. 먼데이키즈의 스타일로서 매우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었지만, 그러나 오히려 원곡이 갖는 모순과 역설의 감성은 모두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더 극적으로. 더 격정적으로. 그러나 딱 거기서 멈추고 말았다. 더 깊이 들어가지도 더 자유롭게 가지고 놀지도 못했다. 패인이었다.
강민경의 '내 눈물 모아'는 '열창'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도 노래도 조금의 여력도 남기지 않고 모두 쏟아붓는다. 목소리가 막히는 것 같았다. 벽에 무딪힌 듯 감정도 목소리도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태생이 맑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해맑은 목소리에 담긴 넘칠 것 같은 격정이 감동이 되어 전해진다. 떠난 이를 생각하듯. 혹은 남은 이들에게 들려주듯. 노랫말속 누군가에게 들려주려는 듯. 무대를 지배했다. 요즘 '불후의 명곡2' 수준이 너무 높아졌다.
빅스의 '말하자면'은 한 마디로 귀여웠다. 김성재가 보여주던 압도적인 박력은 없었다. 더 낮았고 더 힘있었다. 더 거칠었다. 완성된 아이돌의 다듬어진 노래와 춤사위가 차라리 위로하는 듯 편안한 느낌마저 준다. 아이돌은 관객을 윽박지르거나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다. 관객에게 사랑받는 존재일 것이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대선배 김성재에 대한 경의는 원곡을 최대한 살린 노래와 안무로써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 노래가 누구의 노래인가를. 김성재 어머니의 눈물을 이해한다.
예능에 나와 자꾸 웃음에 욕심을 내서 그렇지 이정 역시 노래를 잘 부를 줄 아는 가수일 것이다. '낙엽따라 가버린 사람'의 절제하여 부르는 도입부가 매혹적이다. 중반에 이르도록 자신을 최대한 누르며 원곡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간주에서 기타 애드립에 맞춰 스캣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고음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폭발. 쓸쓸한 가을의 정취가 떠나간 사랑에 대한 격정으로 이어진다. 고음에서도 여유를 두고 감성을 싣는 것은 베테랑의 경륜일 것이다. 항상 집중하며 보게 된다. 좋은 노래를 더 좋게 부를 줄 아는 가수다. 우승을 놓친 것이 정말 아쉬웠다.
조장혁은 과연 조장혁이었다. 쓸쓸한 격정과 폭발하는 격정이 조장혁의 감성적인 목소리 안에서 노닐고 있었다. 때로는 아련하게 그립고, 때로는 미친 듯 보고 싶다.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문득 다가가 말을 걸어보고 싶다. 끌어안고 싶고 사랑도 나누고 싶다.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가 아마 이랬을 것이다. 그보다 더 격정적이었다. 감정에 더 솔직해질 수 있는 지금이다. 토하는 듯 전해지는 감정이 그러나 절제되어 들린다. 이정이 조금은 미웠을 것이다.
자기 노래이기도 했지만 김진호는 이제 어떤 경지에 발을 딛은 것 같았다. 최대한 절제하여 누르며 부르는 도입분는 마치 이문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가수가 먼저 울 필요는 없다. 가수가 먼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 듣는 것은 관객이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관객이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스탠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그때부터는 김진호의 노래다. 그의 모든 감정이 무대를 채울 듯 터져나온다. 때로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그의 공간이다. 그의 노래가 들리는 곳은 모두 그의 공간이다. 채동하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 순간 김진호가 느끼는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자신에 대해서.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에 대해서. 가수란 무엇인가. 가수란 어떤 존재인가. 그를 통해 본다.
앞으로 '불후의 명곡2'에 김진호가 출연한다며 진짜 긴장하며 봐야 할 것이다. JK김동욱, 정동하, 왁스, 조장혁, 기존의 강자들 사이에 또 하나 괴물이 더해진다. 원래는 조금 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지향하던 프로그램이었을 텐데. 하지만 신인이라고 혹은 아이돌이라고 편견을 가지고 보지는 않는다. 전혀 기대도 않던 출연자가 때로 우승을 차지하기도 한다. '불후의 명곡2'의 장점이다. 대중음악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훌륭한 가수라고 반드시 히트하는 가수는 아니다.
오랜만에 보는 이름들이 많았다. 남인수는 많이 멀다. 차중락도 사실 잘 모른다. 김정호는 노래를 통해 뒤늦게 알았다. 김성재와 서지원, 채동하의 무대는 직접 보았다. 김재기는 목소리로만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아쉽다. 작은하늘 시절 그는 샤우팅이 일품이던 훌륭한 메탈보컬이었다. 사람은 가도 노래는 남는다. 시대를 뛰어넘는 노래가 그들을 영원히 살게 한다. 곰곰히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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