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춘화
영춘화(迎春花)라는 이름을 풀이하면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뜻입니다. 이름 그대로 봄이 오면 제일 먼저 피어 노랑색 화려한 색깔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이 뭐냐고 물으면 좀 난감하지만 그래도 좀 부지런한 꽃들을 열거할 수는 있습니다. 우선 나무로는 이 영춘화와 매화, 그리고 산수유를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데, 아직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학자분들은 생강나무 꽃을 꼽으시더군요. 그리고 풀 종류로는 제비꽃, 봄맞이꽃, 복수초, 얼레지 등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영춘화는 원래 중국이 원산지인데 관상용으로 들여와서 우리나라 중부 이남 정원에 심어 기르고 있습니다. 책에는 4월에 핀다고 되어 있으나 제가 있는 따뜻한 남쪽 지방 부산에는 2월이면 벌써 하나둘씩 노랑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잎이 나기 전에 꽃이 먼저 피고 이어서 깃꼴의 자그마한 잎들이 오종종하게 돋아납니다. 줄기는 대개 곧게 자라다가 옆으로 기거나 밑으로 처지는데 줄기 능선을 따라 줄이 나 있습니다.
꽃을 한약명으로 영춘화라 하여 해열, 이뇨제로 쓰며 잎은 타박상, 창상출혈 등에 처방한다고 합니다.
해운대로 이사온 뒤 폭포사 경내에서 처음 보고 한참 이름 찾기에 고심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러다 작년(1999)에 수영여중 아래 민가에서 활짝 핀 모습을 보고 역시 슈퍼카 위에 올라가서 찍은 게 위 사진입니다. 2년 연속 가서 찍었더니 그 집 아주머니께서 기억하시고 반갑게 인사해 주시더군요. 그런데 그분조차 그 꽃 이름을 모르시길래 친절히 가르쳐 드렸지요. 오가는 사람들이 신기한 동물 보듯이 쳐다보면서 "개나리가 벌써 피었네"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더군요. 그렇게 보면 정말 일반인들이 개나리와 혼동할 만한 꽃색과 모양입니다. 그치만 개나리는 네 갈래의 꽃잎이고 그 모양도 끄트머리가 뾰족한 것이 영춘화와는 완전히 차이가 나지요.
대개는 밑으로 처져서 꽃이 피는데 다행히 그 때는 가지치기를 해서인지 가지가 똑바로 선 게 몇 개 있어서 제법 맘에 드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러움이 좋긴 하지만 자유방임은 때때로 곤란할 때가 많다는 생각을, 가지치기가 잘 된 나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종종 가져 봅니다.


매화가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 24년(41년) 8월에 "매화꽃이 피었다"라는 기록과,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 제3권 아도기라阿道基羅 맨 끝에 "모랑의 집 매화나무에 꽃을 피웠네"라는 다음의 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금교엔 눈이 쌓이고 얼음도 풀리지 않아 계림의 봄 빛은 아직도 완연히 돌아오지 않았는데, 예쁘다 봄의 신은 제주도 많아 먼저 모랑의 집 매화나무에 꽃을 피웠네.
雪擁金橋凍不開 鷄林春色未全廻 可怜靑帝多才思 先著毛郞宅裏梅
고려후기의 고승인 일연이 지은 이 시의 내용은 아도阿道는 고구려 사람으로서 신라 21대 비처왕毘處王 때에 시자侍者 세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 지금의 경상북도 선산에 있는 모례毛禮의 집에서 여러 해 동안 살았고, 그 이전에 묵호자墨胡子도 모례의 집에서 숨어 살면서 불법佛法을 전파하였다. 따라서 이 시에 의하면 이미 일연의 시대에 시문학詩文學이나 일상생활에서 매화가 그 상징성과 함께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수있다. 그리고 삼국시대의 4세기 후반경에는 모례와 같은 상류사회 사람들이 중국의 영향을 받아 매화를 사랑하고 정성껏 키웠음을 짐작케 한다. 이 시는 봄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서라벌은 불국佛國이 되기 이전의 신라를 뜻하고, 봄의 도착은 불교의 전파됨을 뜻하며 모랑의 집 매화나무만이 봄의 신이 조화를 일으켰다는 것은 모례의 도움으로 아도가 신라에서 불교의 기초를 닦을수 있었다는 즉 불교흥법佛敎興法 의 전조를 은유한 ,것으로 해석 한다.


목련은 봄을 대표하는 꽃의 하나로 탐스러운 꽃과 은은한 향기로 예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목련은 또 여러 가지 이름을 가졌는데, 옥처럼 깨끗한 나무라고 옥수 , 옥 같은 꽃에 난초 같은 향기가 있다고 옥란 , 난초같은 나무라고 목란 ,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고 목련 , 꽃봉오리가 모두 북쪽을 향해서 북향화 , 꽃봉오리가 붓끝을 닮아 목필 로 불린다. 미술품에는 목련이 그리 자주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미술품에 표현되었을 경우는 옥란(玉蘭), 옥수(玉樹)의 옥(玉)자를 의미하거나 목필(木筆)의 필과 동음인 필(必)을 의미한다. 이 때의 목련은 다른 길상 의미를 강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장수를 의미하는 길상 문양과 목련이 함께 그려지면 반드시[必] 장수하라는 의미가 된다. 또한 목련은 석가모니의 10대 제자인 목련존자와 발음이 같은 때문인지 사찰 벽화에 그려지기도 했다.




x쌍떡잎식물 측막태좌목 차나무과의 상록교목. 학명 Camellia japonica 분류 차나무과 분포지역 한국(남부지방) ·중국 ·일본
동백나무는 밑에서 가지가 갈라져서 관목으로 되는 것이 많다. 나무껍질은 회백색이며 겹눈은 선상 긴 타원형이다.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이다. 잎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잔 톱니가 있고 윤기가 있으며 털이 없다. 꽃은 이른봄 가지 끝에 1개씩 달리고 적색이다. 꽃잎은 5∼7개가 밑에서 합쳐져서 비스듬히 퍼지고, 수술은 많으며 꽃잎에 붙어서 떨어질 때 함께 떨어진다. 암술대는 3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삭과(殼果)로 둥글고 지름 3∼4cm로서 3실이며, 검은 갈색의 종자가 들어 있다. 식물체와 꽃은 관상용으로 하며, 종자에서는 기름을 짠다. 꽃말은 ‘신중·허세부리지 않음’이다. 경상남도·전라남북도·충청남도·중국·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꽃잎이 수평으로 활짝 퍼지는 것을 뜰동백(var. hortensis)이라 하며 많은 품종이 있다. 백색 꽃이 피는 것을 흰동백(for. albipetala), 어린가지와 잎 뒷면의 맥 위 및 씨방에 털이 많이 나 있는 것을 애기동백(C.sasanqua)이라고 한다.
잎 ;
잎은 호생하며 타원형 또는 장타원형으로 점첨두이다. 잎의 가장자리에는 거치가 있고 표면은 짙은 녹색이고 혁질로 광택이 난다. 잎의 뒷면은 황록색이며 Cork warts라는 선점(갈색의 점)이 조밀하게 밀집되어 있다. 이것은 동백나무속의 식별상 주요한 거점이 된다.
꽃피는 시기 ; 꽃은 赤色이며, 한 개씩 정생 또는 액생한다. 꽃받침과 꽃잎은 5~7개 씩이며, 꽃밥은 황색이나 지역에 따라 11월 중순경부터 이듬해 5월말까지 지속적으로 개화하는데, 화색은 주로 적색이나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꽃말
동백 (Camelia) : 자랑, 겸손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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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2~3m 정도 자란다. 타원형 또는 피침형의 잎은 어긋나는데,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뒷면에는 조그만 비늘조각들이 빽빽하게 나 있다. 분홍색의 꽃은 잎이 나오기 전인 4월부터 가지 끝에 2~5송이씩 모여 피는데, 통꽃으로 꽃부리 끝은 5갈래로 조금 갈라져 있다. 수술은 10개,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삭과(蒴果)로 익는다. 진달래는 한국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개나리와 함께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나무의 하나로 사랑받아 왔는데, 봄에 한국의 산 어디에서나 꽃을 볼 수 있을 만큼 널리 퍼져 있다. 개나리가 주로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는 반면에 진달래는 약간 그늘지며 습기가 약간 있는 곳에서 잘 자란다. 가지가 많이 달리기 때문에 가지치기를 해도 잘 자라며 추위에도 잘 견딘다. 뿌리가 얕게 내리고 잔뿌리가 많아 쉽게 옮겨 심을 수 있다. 꽃을 따서 먹을 수 있으므로 참꽃 또는 참꽃나무라고 부르는데, 제주도에서 자라는 참꽃나무와는 다르다. 꽃을 날것으로 먹거나 화채 또는 술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술을 빚어 먹을 경우 담근 지 100일이 지나야 맛이 난다고 하여 백일주라고도 하는데, 한꺼번에 많이 먹지 말고 조금씩 먹어야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달래를 두견화(杜鵑花)라고도 하는데, 이는 두견새가 밤 새워 피를 토하면서 울어, 그 피로 꽃이 분홍색으로 물들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매화의 종류
매화의 종류로는 강 희안이 범 석호范石湖의 매보梅譜를 인용하여 양화소록에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 강매江梅의 씨가 들에 나서 재배나 접목을 하지 않은 것을 「직각매 直脚 梅」또는 「조매早梅」.(동지전에 피기 때문에 조매라고 함). 척박瘠薄한 땅에서 나서 자라지 않은 것을 「소매消梅」(둥글고 작은 열매가 다래다래 메 달린다).라고 하며. 「고매古梅」란 가지가 굽은데다가 푸른 이끼가 비늘처럼 번져있고, 또 이끼가 가지 사이에 수염처럼 길게 드리워 바람이 불면 푸른 실이 나부끼는 것 같아 관상 가치가 높은 것을 말하며 , 고매가 매화 기르는 사람에게는 가장 사랑을 받는 품종으로 여긴다. 고매를 만들기 위해서는 야생매를 파종한 대목에 중엽매重葉梅를 접목하여야 한다. 「중엽매重葉梅」는 꽃 봉오리가 풍성하고 잎이 층지고, 겹으로 나며 활짝피면 마치 소백련小白蓮과 같고 열매가 쌍으로 열린다. 「녹엽매綠葉梅」는 꽃 받침과 꼭지, 가지, 줄기가 모두 녹색綠色이며.「백엽상매百葉湘梅」는 천엽향매千葉香梅라고도 하며 열매가 작고 가지가 조밀한 것을 말한다. 「홍매紅梅」는 꽃 빛이 분홍이고 매화의 품격을 갗추었으며 살구와 같이 무성하고 조밀하며 향 또한 살구와 같다. 「원앙매鴛鴦梅」는 다엽홍매多葉紅梅라고도 하며 대부분 열매가 쌍으로 열리는 것은 꼭지도 두개인데 반하여, 원앙매는 한 꼭지에 두개의 열매가 달린 것이 특징이다. 「행매杏梅」는 꽃 빛이 홍매에 비하여 연하고 열매가 납작하며 얼룩 빛이 있고, 맛이 살구와 같다. 「납매臘梅」는 매화와 같은 종은 아니지만 매화와 같은 시기에 꽃이 피고 향기도 비슷하여 납매라고 한다. *범석호范石湖 : 남송南宋 4대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인 범 성대范成大. 〈범촌매보范村梅譜〉를 지었으며 그 서문에 보면 살던 집 남 쪽에 남의 집 70여채를 사서 다 헐고서 범촌范村을 마련 했는데 그 ⅓에 모두 매화만 심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조선말기 유 희柳僖의 명물고名物考에는 취매脆梅, 학정매鶴頂梅, 시매時梅, 다매多梅, 황매화黃梅花, 구납狗臘, 단향檀香, 작매雀梅, 양매楊梅, 금매金梅, 금사도金絲桃,라는 종류가 기록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양매는 수양매垂楊梅이고 구납은 개살구를 가리킨다. 위의 품종은 모두 21종이며 이는 「화암수록花菴隨錄 」에 기록된 매화의 품종 스물한가지와 일치한다. 운승원매보韻勝園梅譜에는 조선매朝鮮梅?라는 품종이 있으며, 또 다른 매화의 품종으로는 백매白梅. 홍매紅梅. 주매朱梅. 주사매朱砂梅. 시매時梅. 소매消梅. 침매侵梅. 록매綠梅. 자화매紫花梅. 동심매同心梅. 인지매人脂梅인 여우매麗友梅. 여지매麗枝梅. 품자매品字梅. 궁성매宮城梅. 천엽매千葉梅. 구영매九英梅. 담홍매淡紅梅. 송춘매送春梅. 철골매鐵骨梅.가 있고. 묵매화의 화재상畵題上의 이름으로는 노매老梅. 고매古梅. 월매月梅. 설매雪梅. 계매溪梅. 강매江梅. 야매野梅. 촌매村梅. 궁매宮梅. 성매城梅. 정매庭梅. 소매疎梅. 유매庾梅. 왜매矮梅. 연매煙梅. 암향매暗香梅. 수월매水月梅. 라부매羅浮梅. 유령매庾嶺梅. 고산매孤山梅. 산중매山中梅. 서호매西湖梅. 서창매書窓梅. 금옥매琴屋梅. 미개매未開梅. 반개매半開梅가 있다.
앞에서 말한 수양매는 도심倒心이라고도 하며 꽃이 아래쪽을 향하여 피기 때문에 겸손을 나타내는 형상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기르기도 한다. 퇴계는 그의《도산방매陶山訪梅 》라는 시 가운데서 한 봉오리만 등진다 해도 의심할 터인데 어찌 드리우고 드리워져 모두 거꾸로 피었느냐. 一花재背尙堪猜 胡乃垂垂盡倒開 라고 했으며. 두보杜甫의 시 가운데도 강가에 한 그루 매화가 드리워 피었네. 江邊一樹垂垂梅 . 라고 하여 수양매를 읊은 구절이 있다.

산수유 /산수유,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
가을에 완전히 익은 열매를 채취하여 씨를 빼고 건조시킨다. 성분은 주로 타르타르산·말산·당분·수지 등 여러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간과 신장의 경락에 작용하며, 성질은 약간 따뜻하며 독이 없다. 산수유는 보익간신(補益肝腎)·삽정(澁精)·염한(斂汗) 등의 효능이 있어 간신부족(肝腎不足)으로 정액이 저절로 나오는 증상에 쓴다. 간신허(肝腎虛)로서 빈뇨(頻尿)·야뇨·어지럼증·이명(耳鳴)·요슬산통(腰膝酸痛:허리와 무릎이 시리고 아픈 증상)이 있는 경우에 쓰며 신양허(腎陽虛)로 인한 음위(陰痿:발기불능)나 조루 등에도 사용한다. 또 간신부족(肝腎不足)으로 인한 고혈압에도 쓴다. 기혈(氣血)이 모두 허(虛)하여 생기는 자궁출혈, 월경과다에도 쓰이는데 이때는 지혈약(止血藥)을 배합해야 효과가 있다. 망양(亡陽:급성·만성의 허탈상태)으로 땀이 멎지 않을 때도 효과가 있다. 자한(自汗:수면·노동·기후 등에 관계없이 낮에 나는 땀으로 대개 기허에 기인함)에는 황기(黃芪·인삼 등의 익기약(益氣藥)을 배합한다. 도한(盜汗:수면중에 나는 땀으로 대개 陰虛에 기인함)에는 당귀(當歸)·숙지황(熟地黃)·목단피(牧丹皮)·백작약(白芍藥) 등의 자양보혈약이 배합된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사람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매화의 전설과 설화
〔 어무적魚無迹과 『청강시화淸江詩話』〕
어무적魚無迹은 조선조 연산군 때의 시인이며, 자는 잠부潛夫요, 호는 낭선浪仙이며 본관은 함종咸從이다. 어무적은 장성한 다음에도 서자庶子라는 신분적 제약 때문에 많은 정신적 갈등과 현실적인 좌절을 맛 보아야 했다. 조선중기의 학자이며 문장가였던 청강淸江 이제신李濟臣의 『청강시화淸江詩話』에 보면 어렸을 때의 어무적의 뛰어난 재주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어무적이 아버지를 따라 이른 새벽 절간을 지나갈 때에, 산 봉우리에 구름이 덮여 있는 것을 보고 시를 지어 보도록 했더니,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청산은 객이 오시매 예절을 차리어, 백운白雲의 갓을 머리에 썼도다.
靑山敬客至 頭戴白雲官 이와 같이 출중出衆한 글 재주를 가지고 있었기에 모계母系가 비천卑賤한 관비官婢 출신이었음에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는 있었지만, 당시의 사회적 제도와 여건상 그는 자신의 기계氣計를 크게 떨치지는 못 했다. 어무적이 성장하여 활동하던 시기는 연산군의 폭정暴政이 극에 달해 있을 때였다. 수차의 사화를 겪으면서 양심적인 선비들은 관직에서 쫓겨나고, 도탄塗炭에 빠진 백성들의 원성은 날로 높아가도 있었으며, 좌절挫折과 실의失意에 빠진 참담慘憺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때에, 어무적은 여러 차례 상소문上疏文을 올렸으나 헛 일이 되고 말았다. 그는 김해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살고 있었으며, 그 곳의 참상도 말이 아니었다, 탐관 貪官汚吏들은 사복私腹을 채우려고 가혹苛酷한 수탈收奪을 서슴치 않았으며, 끝내는 매화나무의 열매인 매실을 강제징수强制徵收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백성들은 이를 견디다 못해 매화나무를 찍어 버리기에 이르렀다. 농부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매화이며, 사대부士大夫들이 침이 마르도록 칭송稱頌하고 좋아하던 매화를 무참無慘히도 도끼로 찍어 버리는 절박切迫한 현실을 지켜본 어무적은 매화를 쪼개는 노래 즉 〈작매부斫梅賦〉를 지었다. 이 작매부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매화에 대하여 가져왔던 인식과는 많은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고통과 역경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백성들의 처지에서 느껴지는 매화의 모습이 사대부들이 느끼는 그것과 같을 수가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동일한 사물 즉 시제詩題를 두고, 시대적 현실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한 시인의 현실파악에 근거根據한 형상화形象化는 매우 달라질 수 있는 것이며, 가변적可變的 인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매화를 쪼개는 노래 세상에는 훌륭한 군자가 없고, 시대는 뱀과 호랑이 같은 가혹한 법에 힘쓴다. 참혹한 정경은 숨은 꿩(숨어사는 백성)에게도 이르렀고, 정치는 또 뿔 없는 양(힘없는 백성)에게 가혹하다. 백성이 한 그릇 밥에 배부르면, 벼슬아치 군침을 흘리며 노염을 부리고. 백성이 한 벌 옷에 따뜻하려면, 아전은 팔을 걷어 부치고 살갗을 벗긴다. 내 향기로 들에 굶어 죽은 혼을 덮어주고, 꽃잎으로 떠돌다 죽은 뼈에 뿌리네. 마음을 상함이 이 지경에 이르러, 어찌 초췌함을 논하랴. 어찌하랴, 무지한 시골 농부의, 도끼 날에 욕까지 보게 된 것을. 바람도 시고 달도 괴로우니, 누가 끊어진 혼을 부르리요. 황금 같은 열매는, 아전의 창고에 흘러 넘치네. 낱알 흘리고 배로 징수하니, 문득 채칙으로 얻어 맞는다. 아내는 원망하며 낮에 울부짖고, 아이는 울며 밤을 세우네. 이는 모두 매실 때문이니, 매실은 더욱 좋은 물건이 되었네. 남산에 가죽나무가 있고, 북산에 상수리나무 있으되. 벼슬아치 그것은 상관하지 않고, 아전도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매화는 도리어 없는것만 못하니, 어찌 버혀짐을 벗어 나리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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斫 梅 賦 世乏馨香之君子 時勢蛇虎之苛法 慘己到於伏雌 政又酷於童羔 民飽一盂飯 官?涎而齎怒 民暖一衣 吏攘臂而剝肉 使與香掩野?之魂 花點流民之骨 傷心到此 寧論憔悴. 奈何田夫無知, 見辱斧斤. 風酸月苦, 誰招斷魂. 黃金子繁, 吏肆其. 增顆倍徵, 動遭鞭. 妻怨晝護, 兒啼夜守. 玆皆梅崇, 是爲尤物. 南山有樺, 北山有. 官不之管, 吏不之虐. 梅反不如, 豈辭剪伐.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보면, 남자의 생식기生殖器를 자르는 비극적 사건을 슬퍼하는 내용의〈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가 있다. 그 당시 군적軍籍에 기록된 사람에 대하여는 병역兵役을 수행하는 대신 군포軍布를 바치는 제도가 있었는데, ?백골징포白骨徵布?라 하여 죽은 사람을 군적軍籍에 실어 놓고 징세徵稅했던 일과 같이, 황구첨정黃口簽丁이란 이른바 갓난 아이의 이름을 군적에 올려 놓고 무자비無慈悲하게 세금을 거둬 들이는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세금을 바치기 힘들었던 사람이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식기를 손수 잘라 버리는 비극적인 참상慘狀을 읊은 시다. 지아비의 잘린 생식기를 들고 피를 흘린체 관가官家에 나아가 울부짖는 아내의 처참悽慘한 모습이다. 당시의 암울했던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不條理의 단면을 볼수있는 사례이며, 〈작매부〉와 함께 탐학 무도한 정치상황을 고발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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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나무와 휘파람새 〕 고려때 어느 산 골 마을에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팔아서 살아 가는 도공陶工이 있었다. 그 사람에게는 예쁜 약혼녀約婚女가 있었고, 두 사람은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게될 혼인 날을 손 꼽아 기다리고 있던 어느날, 혼례일을 사흘 앞두고 약혼녀가 그만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온 세상을 다 잃은듯 비통悲痛에 빠진 도공은 매일 같이 그녀의 무덤 옆을 지키며 못잊어 하던 어느날 , 무덤가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싹이 터 자라기 시작했다. 도공은 이를 기이奇異하게 생각하던 끝에 그것이 죽은 약혼녀의 넋이라 생각하고, 매화나무를 자기 집 마당가에 옮겨 심고, 그 나무를 가꾸는 일을 더 없는 즐거움으로 여기며 정성껏 보살폈다. 약혼녀가 죽은 뒤 부터는 일이 손에 잘 잡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만드는 그릇마다 찌그러져 잘 팔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도공의 생활은 가난과 고통을 면하기가 어려웠다. 이토록 생활이 몹씨 어려운 형편이었음에도 매화나무를 돌보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화나무는 제법 커다란 거목巨木으로 자랐고, 도공 또한 백발의 노인이 되고 말았다.
내가 죽으면 이 매화나무를 누가 돌봐 준단 말인가? 이와 같은 도공의 걱정이 날로 더해가던 어느 날, 아무도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는 노인의 집 대문이 굳게 잠겨 있는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이 문은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람의 그림자는 온데 간데 없고, 항상 노인이 앉아서 그릇을 만들던 자리에 예쁜 질 그릇 하나가 놓여 있었기에, 사람들이 그 그릇의 뚜껑을 열자 그 속에서 휘파람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노인이 죽어서 휘파람새가 된 것이다. 지금도 매화 꽃에 휘파람새가 따라다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사연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이 정李定의 절명시絶命詩 매화 〕 조선 전기 종실宗室 가운데 강양군江陽君 이 정李定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화를 얼마나 사랑하였던지 일생동안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이 정이 죽음을 당하여 분매盆梅의 가지를 꺾어 코에 가까이 대고 향내를 맡으면서 매화시 한수를 짓고 싶었지만, 도저히 글씨를 쓸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옆에서 임종臨終을 지켜보던 사위에게 절명시絶命詩를 받아 쓰게 하였다. 이제 겨우 쉰 살이 되려는데 병이 드니 지붕 모퉁이 아득하고 마음은 아리고 서글프구나 매화는 사람에게 병고가 생긴 것도 알지 못하고 한 가지에 먼저 꽃을 피워 향기를 보내 오네. 年將知命病相催 屋角悠悠楚些哀 梅蘂不知人事變 一枝失發送香來 이 시를 다 받아 쓰고 난 뒤 그는 숨을 거두었다. 일생동안 가까이 두고 사랑하며 길러왔던 분매가 주인의 죽음을 바라보며 우선 가지 하나에 몇 송이의 꽃을 피워 청향淸香을 선사하고 있지만, 생의 마지막을 맞고 있는 이 정에게 있어서는 매화가?사람에게 변고가 생겨 죽게된 것을 알지 못한다?는 하소연을 하면서도, 결코 자신을 모른체 하지 않고 그의 죽음 앞에 ?꽃을 피워 향기를 보내주는 아름다운 보은報恩의 정을 느끼게 하는 시다. 이 정은 매화를 좋아 했을 뿐만 아니라 거문고와 술을 좋아 했으며,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가 죽을때에 이 정은 이 세가지 물건을 함께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거문고와 《자치통감》, 술항아리 하나를 묻어 주었다고 한다.
〔 퇴계退溪 이 황과 매형梅兄 〕
퇴계 이 황(1501-1570)은 천품天稟이 고결高潔하고, 수양修養을 거듭하여 도道를 지녔으며, 마음이 항상 깨끗하고 시원하여 운치韻致가 맑고 심원하였다. 사람을 대할 때에는 온공溫恭, 겸손謙遜하여 화락和樂한 기운이 돌았고, 자신에게 조그마한 잘못이 있으면 비록 필부匹夫가 말해 주더라도 이를 고치기에 인색함이 없었다. 그는 매화에 대한 사랑이 남달리 유별났으며, 내 평생 즐겨함이 많지만 매화를 혹독하리 만큼 사랑한다 我生多癖酷好梅?고 『매화시첩梅花詩帖』에 적고있다. 그는 조정에 나아가 국사國事를 처리할 때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군사郡司의 마당가에 있는 정매나 분매와 더불어 묻고 답하는 삶을 살았음이대매화답對梅話答?의 시에 잘 나타나 있으며, 눈 내리는 겨울 밤 도산의 서당에 홀로, 분매盆梅와 마주 앉아 술 상을 가운데 놓고 ?매형 한잔 나 한잔?하며 밤을 지새워 시정詩情에 취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읊기도 했다. 마음은 언제나 산 속의 매화와 함께있고 밤마다 매화꽃 송이를 어루만지는 꿈뿐일세. 心期獨在山中梅 溪夢夜夜探梅악
퇴계는 도산의 매화가 혹독酷毒한 겨울 추위에 여덟 그루가 얼어 죽은 것을 보고, 안타깝고 비통悲痛해 하면서 그가 평생 짚고 다니던 지팡이(명아주 막대기)를 짚고 매화의 혼을 부르며 백 바퀴를 돌았지만 매화가 당한 액운厄運에 대하여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을 탄식하면서 하늘을 향하여 왜 나의 매화를 얼어죽게 했느냐고 항변하기도 하고, 하늘이 매화를 불쌍히 여겨 본 뿌리가 살아서 꽃을 피우기만 한다면 앞으로는 날마다 매화를 방문하여 매화와 함께 살 것을 다짐하기도 할 만큼, 그는 매화에 의탁依託하여 정을 붙임이 깊고 유별했다. 퇴계는 도산에 백여 그루의 매화를 심고 가꾸면서 청정淸淨한 세계를 꿈꾸었으며 매화가 한창 필 무렵이면 매화나무를 배회徘徊 하면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완상하기도 하고, 다음과 같은〈도산월야영매시陶山月夜詠梅詩〉를 읊기도 했다. 뜰을 거니노라니 달이 사람을 쫓아오네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기를 잊었더니 옷 가득 향기 스미고 달 그림자 몸에 닿네. 步서中庭月진人 梅邊行요幾回巡 夜深坐久渾忘起 香滿衣巾影滿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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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매화나무 밑에 앉아 매화를 감상하기 위하여 도자기를 둥근 통 모양으로 만들어 그 속에 불을 피워 따뜻하게 한 다음 그 위에 앉도록 고안한 의자가 있다. 추운 겨울 날 온몸에 온기溫氣를 잃지 않고, 매화를 즐기는 퇴계만의 독특한 매화 감상법鑑賞法이기도 하다. 퇴계는 그의 나이 70세가 되던 해(1570년)에 온계리의 시향時享에 갔다가 병을 얻어 이질로 설사를 하게 되자 방안에 취기臭氣가 스미게 되므로 옆에 있던 ?매화분梅花盆을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였다. ?매형梅兄에게 불결不潔하면 내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해 12월8일 유시酉時(저녁5-7시)갑자기 흰 구름이 지붕 위로 모여 들고 눈이 한치 가량 내렸다. 퇴계는 자신을 일으켜 앉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방안에 있는 매화에 물을 주라.命淮盆梅?고 하므로서, 자신을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주인의 마지막 순간을, 아름다운 꽃 망울을 터뜨리며 암향으로 영혼을 달 래주는 매화를 바라 보면서 좌절坐折하였다. 그러자 구름은 흩어지고 눈은 그쳤다고 한다. 〔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와 매화음梅花飮 〕
당대의 대가大家요 화선畵仙이었던 김 홍도에게도 살림살이의 궁색窮塞함은 어쩔 도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항상 사람들 앞에서 가난과 궁핍窮乏함을 내색하지 않고 의연하게 처신 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홍도를 찾아와 매화나무를 팔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거칠고 굵다란 줄기가 뒤 틀리고 이끼가 나부끼며 성근 가지에 금방 필 것만 같은 하얀 꽃 망울이, 아릿다운 여인의 속살처럼 삐져 나올듯한 백매화였다. 단원은 그 매화가 갖고 싶었지만 당장에 살 돈이 없었다. 때 마침 단원의 그림을 몹씨 사랑하는 사람이 구세주救世主 처럼 찾아와 단원의 그림 한 점을 청하고, 그림 값 삼천냥을 내 놓고 가는것이 아닌가!. 뛸듯이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한 단원은 그 돈 가운데 이천냥을 주고 당장 매화를 사 들이고, 이백냥으로는 쌀과 나무를 사서 집에 들여 놓았으나 하루 지낼 것밖에 되지 않았으며 나머지 팔백냥으로는 몽땅 술을 사서 여러 친구들을 불러 매화를 감상하며 마셨다고 하는데 이 때에 친구들과 마신 술을 ?매화음梅花飮이라고 한다. 한漢 나라 무제武帝는 매화를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선약仙藥"으로 여겼고, 김 유金紐 도 매화를 술에 띄워 마셨다고한다. 오늘날도 매화가 필 때면 가까운 친구들이 함께 모여 술잔위에 매화 꽃잎을 띄워 매향을 음미하는 일이 있다. 그래서 양상경梁相卿은 술잔 위에 매화 꽃잎을 띄워 매향을 느끼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품어내는 향기에는 정성이 가득ㅎ구나 그 정성 술잔에 띄워 마실수록 향기롭네. 〈근대시조. 매화〉 〔 한강寒岡 정 구鄭逑와 백매원百梅園 〕 옛 사람들은 매화를 심되 백 그루를 심는 것을 좋아 했던 것같다. 퇴계 이 황이 절우단에 백그루의 매화를 심어 청정한 세계를 꾸몃고, 범성대范成大가 자신의 집 남쪽에 있는 초가 80여채를 사서 모두 헐고 백 그루의 매화를 심었듯이, 정구鄭逑도 서른 여덟 살때에 창녕 현감으로 있다가 내직인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으로 발령이 나자 그만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여, 성주 회연檜淵에 초당草堂을 짓고 매화 백 그루를 심은 다음에 그 곳에 ?백매헌百梅軒?이라는 현판을 걸어 놓았다. 이 회연초당會淵草堂과 백매헌百梅軒을 두고 누속陋俗을 등진채 초야에 묻혀 사는 한유閒遊한 자신의 삶이 가장 사치스럽다고 느끼며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자그마한 산 앞에 조그마한 집을 지었도다 뜰에 심은 매화 국화 해마다 늘어나고 구름과 시냇물이 그림처럼 둘렀으니 이 세상에 나의 삶이 사치함이 그지없네. 小小山前小小家 滿園梅菊逐年加 更敎雲水莊如畵 擧世生涯我最奢 『한강집寒岡集』 한강에게는 조 식曺植 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한강이 집에 없는 사이에 최영경이 한강의 백매원을 찾아왔다. 최영경은 한강의 집에있는 하인에게 도끼를 가져오게 하여 매화나무 백그루를 모두 찍어 버렸다. 이유인즉 매화가 추위가 다 지난후에 피는 춘매春梅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도 한강의 백매원에 심겨졌던 매화는 한매寒梅가 아니었던가 보다. |

대나무
식물학 문헌에는 75속(屬)에 1,000여 종(種)이 넘게 기재되어 있지만, 같은 종에 여러 이름이 쓰인 경우가 많다. 아열대 및 열대에서 온대지방까지 널리 퍼져 있으며 특히 아시아 남동부, 인도양과 태평양 제도에 그 수와 종류가 가장 많다. 속이 빈 목본성의 탄소질 줄기는 두꺼운 뿌리줄기에서 가지가 무리져 나와 자란 것이다. 줄기는 종종 빽빽하게 덤불을 이루기도 하며 다른 식물들이 침범하지 못하게 한다. 줄기는 길이가 보통 10~15㎝ 정도이나 큰 것은 40m가 넘는다. 무성한 잎은 납작하고 길쭉하며 가지에 달리지만, 어린 탄소질 줄기에 나는 잎은 줄기에서 바로 나온다. 대부분 몇 년 동안 영양생장을 한 다음 꽃을 피워 번식한다. 대나무는 건축재, 가정용품, 낚싯대, 식물 지지대 등으로 쓰이며, 관상용으로 심거나 땅을 굳히는 데도 이용된다. 몇몇 대나무의 어린 순은 채소로 요리하여 먹는다. 여러 종들 가운데 특히 덴드로칼라무스 스트릭투스(Dendrocalamus strictus)와 밤부사 아룬디나케아(Bambusa arundinacea)의 섬유와 펄프는 종이 제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덴드로칼라무스 스트릭투스와 수대나무(male bamboo)로 알려진 비슷한 종류들의 단단한 줄기는 지팡이나 창 자루로 이용된다. 우리나라에는 왕대속(Phyllostachys), 조릿대속(Sasa) 및 해장죽속(Arundinaria)의 3속 15종의 대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특히 키가 10m 이상 자라는 왕대속 식물만을 대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왕대속은 잎집이 일찍 떨어지며 마디에 눈이 2개씩 만들어지는 점이 다른 종류들과는 다른데, 우리나라에 자라고 있는 5종은 모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대(P. bambusoides)를 참대라고 하며 충청도 이남에서 심고 있다. 마디에는 2개의 고리가 있고 키 20m까지, 지름 5~10㎝까지 자란다. 잎은 5~8장씩 달리며 길이는 10~20㎝이고 잎과 줄기가 만나는 곳에는 털이 나 있다. 줄기로 여러 가지 가구나 공구를 만든다. 초여름에 올라오는 죽순을 캐서 삶아 먹으며, 줄기 내부에 있는 종이처럼 얇은 껍질을 죽여(竹茹)라고 하여 치열(齒熱)·토혈(吐血)에 쓰고 있다. 죽순대(P. pubescence)는 마디에 고리가 1개만 있는 것처럼 보이며, 잎과 줄기가 만나는 곳은 털이 떨어지고 거의 없다. 주로 남쪽 지방에서 심고 있다. 5월에 나오는 죽순을 먹기 때문에 '죽순대'라고 하는데, 눈이 쌓인 겨울에 죽순을 캐서 부모님께 효도한 맹종(孟宗)의 이름을 따서 '맹종죽'이라고도 부른다. 오죽(P. nigra)은 고리가 2개이며 줄기가 검은색을 띠는 종으로 강릉 오죽헌에 심어진 대나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오죽의 한 변종인 솜대(P. nigra var. hononis)도 널리 심고 있는데 처음에 흰가루가 줄기를 뒤덮고 있기 때문에 '분죽'이라고도 부른다. 솜대의 마디 사이를 끊어 불에 굽거나 더운 물에 담가서 스며나오는 진을 죽력(竹瀝)이라고 하여 열병 치료에 쓴다. 조릿대속은 잎집이 떨어지지 않고 달라붙어 있으며, 마디에 눈이 1개씩 만들어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키는 1~5m쯤 자라며, 6종의 조릿대속 식물 중 조릿대(S. borealis)가 가장 흔히 자라고 있다. 가을에 열매를 따서 녹말을 얻어 죽을 끓여 먹으며 어린 잎을 삶아 나물로 먹기도 한다. 조릿대 잎을 따 그늘에 말린 것을 죽엽(竹葉)이라고 하는데 치열 이뇨제 청심제(淸心劑)로 쓴다. 제주도에는 제주조릿대(S. quelpaeriensis)가, 울릉도에는 섬조릿대(S. kurilensis)가 자라고 있다. 이대(S. japonica)는 조릿대속 식물과는 달리 수술 3개만을 지니고 있어 따로 이대속(Pseudosasa)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해장죽속에 속하는 해장죽(A. simonii)은 키가 6~7m쯤 자라며 잎집이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으며 가지가 마디에서 3개 이상 나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충청남도 이남에서 심고 있다. 대나무는 겨울에도 푸른 잎을 지니고 있으며 속이 비어 있으나 곧게 자라기 때문에 옛날부터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식물로 여겨왔다. '대쪽같다'라는 말은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굳게 지킨다는 것을 뜻한다.소나무와 함께 송죽(松竹)으로 부르는 대나무는 사군자와 십장생의 하나로서 귀하게 여겨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심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삼국사기〉에 신라 학자 최치원이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송죽을 심으며 책을 읽었다는 기록이 나오며, 고려시대에 쓰인 〈동국이상국집〉에 대나무에 대한 표현이 많이 나오고 있는 점으로 보아 신라시대 이전부터 집안의 뜰 등에 심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때 심었던 대나무가 어떤 종류인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일부 학자는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자라던 대나무는 키가 작은 조릿대 종류뿐이었을 것이며 따라서 중국이나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은 키가 큰 왕대속 식물들과 해장죽이라고 주장하나 조릿대 종들도 뜰 등에 심었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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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완연한 봄이네요....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매화가 피고~!동백은 우리를 반기건만 ~!홀로 피었다가 지니,,,,외롭기 그지없습니다~~~!!!!
글이 잘아서 사진만 잘 봤수다.
모진 겨울을 견디고 예쁜 꽃망울로 봄을 전하는 삼라만상 화엄세계의 장엄함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좋은작품 스크랩 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