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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용암이 분출하여 용암평원을 이루었으므로 순상화산(楯狀火山)
의 형태를 보여주며 중앙화구는 함몰되어 칼데라가 되었다. 천지의 맑은 물은
압록강과 두만강, 중국 송화강의 원류가 된다.
산은 선상(線狀) 혹은 대상(帶狀)으로 연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산맥이라고 부르고 때로는 수십km에서 때로는 수백km의 대산맥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명확한 선상이나 대상의 모양으로 연속되지 않고 많은 산이
넓은 지역에 걸쳐서 모여 있는 지형을 산지(山地)라고 부른다. 또 몇 가닥의
산맥이나 산지가 집합·형성된 지형을 산계(山系)라고 한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태백산맥·낭림산맥·소백산맥 등은 이들 산맥에 속한 산들이 비교적 명확한 선상
배열(線狀配列)을 이루고 있으므로 산맥이라고 하나, 강남산맥이나 차령산맥
등은 선상배열이 분명하지 못하므로 엄격히 따지면 강남산계·차령산계라고
(두산백과)
우리 역사 속의 산
흔히 우리는 언덕보다 높이 돌출한 지형을 일컬어 ‘산’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대가
낮은 호남평야 일대나 서해안 지방에서는 산이라는 개념이 매우 다르다. 전북 부안
에 있는 백산은 높이가 47.5미터밖에 안 되지만, 그 일대의 50리 반경에서는 가장
높기 때문에 우뚝 솟은 산처럼 보여 동학농민운동 당시에 주요 거점이 되었다. 한편
모악산은 해발 794미터의 산으로 평지에서 돌출하여 호남평야 일대를 굽어보듯 서 있다.
우리나라의 산 모양은 전체적으로 동해측사면(東海側斜面)이 급경사를 이루며 서쪽
이나 북쪽이 완경사인 경동성지형(傾東性地形)이다. 즉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그 동쪽인 동해안을 따라서 지리산으로 이어지고, 함경도에서 그 한 맥인
장백정간이 두만강의 끝자락인 서수라까지 이어진다.
단군신화가 산에서 시작되는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의 발상지가 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마니산이나 태백산과 같은 높은 산정(山頂)에 제단을
마련하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백제 때는 선사신기급산곡지신(先祀神祇及山谷之神)으로 산을 숭배했고, 신라 때부터
삼신산(三神山)과 오악(五嶽)에 제사를 지냈다. 삼신산은 중국의 『사기』에 나오는
‘해동삼신산’을 본떠서 봉래산(蓬萊山)에는 금강산을, 방장산(方丈山)에는 지리산을
, 영주산(瀛洲山)에는 한라산을 각각 정하였다. 그리고 오악은 동서남북과 중앙 지역을
대표하는 산으로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는데 그 제사는 국가가 관장하였다. 오악에는
동쪽에 토함산(吐含山), 서쪽에 계룡산(鷄龍山), 북쪽에 태백산(太白山), 남쪽에
지리산(智異山), 중앙에 부악산(父岳山)을 각각 정하였다.
고려 때 이르러서는 사악신(四嶽神)으로서 지리산과 삼각산(북한산), 송악산, 비백산을
지정하여 제사를 지냈고 덧붙여 치악산, 죽령산, 주흘산, 금성산, 한라산, 오관산, 마니산,
감악산, 백두산 등에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오악을 변경하게 되었는데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 삼각산
(북한산)을 말한다. 동쪽에 있는 금강산에는 고려 때부터 의관산단(義館山壇)을 만들어 소사
(小祀)를 지냈고 서쪽으로 묘향산은 단군과 사명대사의 사당이 있던 곳으로 단의 이름은 전해
오지 않는다. 북쪽에 있는 백두산은 우리나라의 종주산으로 영조 때 망덕산(望德山)에 백두산
단(白頭山壇)을 만들어 제중축(蹄中祝)이라는 망제를 지냈다. 남쪽으로 지리산의 지리산단은
남원 동남쪽 소의방(所義坊)에 있었다는데, 신라 이래로 중사(中祀)를 지냈으며, 중앙에는
서울에 있는 삼각산을 각각 정하였다. 그와 함께 오대산을 동진, 속리산을 남진, 백악산을
중진, 구월산을 서진, 장백산을 북진으로 하여 오진(五鎭)을 설치하고
산제를 지내면서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최남선은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 “밝은 뉘[광명세계(光明世界)]의 태양 숭배인
민족 종교가 있어 후일에 가서는 ‘부루’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천도(天道)의 밝은
세상을 실현하는 고래(古來)의 민족교가 있었다” 하여 우리의 고유 신앙을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숭천(崇天), 숭산(崇山) 사상이 이어져 신라 때는 화랑의 무리가 정신 수련을 위해
관동 지방의 여러 승지(勝地) 및 지리산에서 금강산에 이르는 명산과 대천을 순례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이 화랑 정신은 신라 통일의 밑바탕이 되었는데 그들은 그때 이미 산이
주는 정신 수양과 육체 단련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깨달았던 것이다.
고려를 창건한 왕건 역시 스스로 “온 산천의 음우(陰佑)에 힘입어 대업을 이루었다”
하였고, 고려 인종 때는 정지상과 묘청이 임금에게 건의하여 서경, 즉 평양의 대화궁에
성을 쌓고 팔성당(八聖堂)을 궁내에 지었다.
팔성당은 문수보살을 비롯한 여덟 성인을 모신 도교 신전으로, 그 신전에는 호국백두악
(護國白頭嶽), 태백선인(太白仙人)을 첫 번째로 모셨다. 두 번째는 그 위치가 불분명
하지만 묘청이 최대의 길지로 꼽았던 평양 근처 임원역 부근 대화궁의 주산이었을
용원악(龍園嶽)이고, 세 번째는 지금의 황해도 금천군 월성면에 있는 월성악(月城嶽
)에 천신(天神)과 대변천신(大辯天神, 음악을 맡는 신)을 모셨으며, 그 외에 평양에
두 곳과 개성의 송악산, 황해도 구월산과 강화의 마니산에다 모셨다.
그곳에 모신 대상은 민간 신앙과 불교, 도교의 신이었는데 그들을 두루 받아들여 모신 곳이
팔성당이다. 묘청을 비롯한 그들은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稱帝建元), 금국(金國) 정벌을 꾀
하는 가운데, 서경 천도 운동의 정신적 상징으로서 이와 같은 민족 수호신의 계보를 정하여
활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은 여덟 성인을 섬겨야 국위를 세상에 떨칠 수 있다고 믿었는데,
다음의 글은 정지상이 당시 지은 축문이다.달리지 않아도 빠르고 걷지 않아도 도달하는 것은
득일(得一)이 영(靈)이요,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빈 것은 부처의
본성이다. 오직 하늘의 명이라야 사방을 통치할 수 있다. 이제 서경의 중앙에서 그 대화
(大花)의 지세를 선택하여 궁궐을 신축하고 음양(陰陽)에 순응하여 팔선(八仙, 여덟 성인)을
그 사이에 안치한다. 백두(白頭)를 만들어서 모시게 되니 밝은 빛이 어리는 듯싶고 신기하고
묘한 동작이 공룡이 나타나는 것만 같아서 눈앞이 황홀하구나.
지진(至眞)은 그 형상을 그려낼 수 없으나 그 실체는 여래(如來)인지라 화상을 그리게 해서
장엄하게 장식하고 이제 현관(玄關)을 두드리면서 소리가 나기를 기다리노라.
정지상이 축문을 짓고 제사를 지낸 곳은 산이었는데, 이렇듯 산을 숭배하는 일은 중앙 정부
만이 한 것은 아니었다. 전국 500여 고을에 주산(主山) 또는 진산(鎭山)을 정하여 제사를
지냈고 명산대천에도 따로 단(壇)을 두어 제사를 올림으로써 고을과 나라의 번성을 기원
했던 것이다. 그중 한국의 무당들이 신령으로 받드는 신이 파주시 적성면 감악산(紺岳山
)에 있는 설인귀이고, 개성 덕물산(德物山)에 모셔진 최영이다. 감악산의 산신은 당나라
고종 때의 장군인 설인귀다. 그가 왜 이 나라의 산신이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한제국
말에 이르기까지 나라에서 사람을 보내 기도를 올렸으며, 특히
무당의 치성과 굿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고을마다 진산과 주산이 있듯이 나라에도 종산(宗山)이 있었다. 최남선은 조선의
종산을 다음의 열두 개로 보았다. 서울의 삼각산, 백두산, 함경도 길주와 단천 사이의 원산
, 낭림산, 평안남도 양덕과 함경남도 문천 사이의 두류산, 강원도 평강의 분수령,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 전북 장수의 장안산 그리고 지리산이었다. 우리 민족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산은 숭배의 대상이었다. 산에 신령이 있다고 믿는 숭산 사상은 일종의 원시
신앙이다. 중국에선 산악에 대한 신앙으로 전국시대 이후 오행 사상에 따라 오악의 개념이
생겼다. 그 밖에 티베트의 카이라스 산, 바빌로니아의 에크르 산, 그리스의 올림포스 산,
유대인들의 마음속 고향인 시나이 산이 그와 같은 산이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2012. 10. 5., 다음생각)
소똥령(Sottongnyeong)
강원도 고성군의 진부령(陳富嶺)과 함께 간성(杆城)과 인제(麟蹄)가 통하는 길목에
위치한 고개이다. 이곳의 지명에 대한 유래는 다양하게 전해진다. 가장 널리 전해지는
이야기는 고개를 넘어 장으로 팔려가던 소들이 고개 정상에 있는 주막 앞에 똥을 많이
누어 산이 소똥 모양이 되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이곳은
과거 한양으로 가던 길목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 산 생김새가 소똥과 같이 되어
버린 탓에 소똥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한편, 간성과 인제를 연결하는
고개들 중에서는 그 규모가 작은 편이라 '동쪽의 작은 고개'라는 뜻으로 소동령
(小東嶺)이라 부르던 것이 자연스레 소똥령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선지지자료』에서는 간성군 해상면(海上面) 신평리(新坪里)에 위치한
소동령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한글 지명으로 '쇳영'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 조선 시대 지리지와 지도에는 소똥령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출처:(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국토지리정보원)
어성전 칡소폭포는 기암과 반석이 잘 어우러진 계곡으로 하조대해수욕장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1급수 어종인 열목어가 집단 서식하고 있어
이 하천 일대가 강원기념물 67호로 지정됐다. 따라서 하천 내 취사, 야영, 물고기
잡이, 수영 등은 금하고 있으며 열목어를 잡으면 벌금 또는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칡소폭포 주차장 안쪽으로 자그마한 캠핑장과 숙박시설이 있어
이곳을 찾는 이용객들도 많다. (출처: 강원도청)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설악산의 노래 (1969)
박일호:작사
배상태:작곡
배 호:노래
1. 푸른 바다 마주 잡고 솟은 설악산
백리길을 山水 따라 가는 나그네
석가천불 삼천년에 목탁소리 저문데
흔들바위 장한 풍경 천하명산이로세
2. 태백산맥 오랜 터전 오색 백담사
하늘 높이 솟아지는 무지개 폭포수
못 잊겠는 수령동아 사리탑은 어디메냐
천봉을 밟고 서니 약수온천 그립다
2017-07-17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