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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둘레길 길동무 원문보기 글쓴이: 수명산
한남정맥종주 9구간(석성산ㆍ부아산)
일자 : 2002년 5월 29일
구간 : 영동고속도로(청덕리) ∼ 석성산 ∼ 부아산 ∼ 하고개
도상거리 : 14km
산행시간 : 5시간 45분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무엇인가를 품고 살아가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슬픈 기억을 품고, 어떤 이는 서러운 기억을 품고, 어떤 이는 아픈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이는 아름다운 기억을 품고 살아간다. 기쁜 일을 즐겨 떠올리며 반짝이는 좋은 일들을 되새기며 감사하면서 살아간다. 정맥꾼들은 맑고 푸른 하늘 아래 우리의 산줄기를 가슴에 안고 걷고 있다.
09시 15분 영동고속도로 굴다리를 빠져나오면서 만났던 88솔밭가든이 있는 청백리에서 9구간 종주가 시작된다. 정맥의 능선으로 따라 이어지는 88골프장 진입로 주위에는 빨간 단풍나무, 옹벽 위로 늘어져있는 개나리가 제철을 만나면 너무나 아름다울 것 같다.
잠시 능선에 붙어보지만 그 것도 잠깐뿐 언덕을 넘어 내려서는 듯하다 올라서는 길에는 쥐똥나무가 잘 정돈되어 있다. 20분 정도 올랐을 때 만나는 동백리 향린동산, 곧이어 차단기가 내려져 있고 안내판이 서있는 포장도로가 오른쪽으로 열린다. 역시 좌측으로 조금은 능선이 형성되어 있지만 별 의미가 없을 듯하다.
8분 정도 포장길을 따라 올라서서 마루턱을 넘으며 만나는 입간판이 서있는 금호건설 향린동산 우측으로 전원주택단지가 내려다보인다. 컨테이너와 쉼터, 개짓는 소리와 오리의 합창소리가 시끄럽다. 정맥은 여기서 왼쪽으로 숲길로 들어서니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참나무숲길이 선명하게 나있다.
철조망을 따라 이어지는 정맥길, 우측으로 향림동산 외곽도로를 끼고 이어간다. 오르내림이 이어지던 정맥은 안부에 내려섰다가 오르막길로 한차례 철조망을 끼고 오름길이 가팔라진다.
능선분기점이다. 왼쪽으로 아카시아와 참나무가 어우러진 능선길이 오르내림이 이어지다가 올라서니 나무에 '동백리', '마성,할미산성'이라 표지가 있다. 동백리로 내려서는 하산로가 보이고 정맥은 오름길이 가파르게 이어진다.
돌무더기를 올라선 곳이 삼각점과 산불초소가 있는 할미성이다. 구성읍 동백리, 포곡면 마성리, 가실리에 접해 있는 할미성은 노고성 또는 선장산이라 부른다. 할미산성은 보존 상태가 좋아 역사학자나 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석성산(성산)과 한 줄기로 이어졌던 것이 영동고속도로로 인해...
할미성은 기능이나 지리적 위치를 기준해보면 산성이고 축성재료로 구분하면 석 성이며, 형태상으로는 타원형 퇴미식산성이다. 성의 높이는 4-7m추정되며 둘레가 700m 종단320m 횡단130m 넓이9,000 평 정도의 자연석을 이용한 성이다. 산책로 같은 성내 순환도로는 걷기에 편하고 학생들 역사 공부하기에 좋은 장소이기도 하단다.
전설에 의하면 할머니가 앞치마로 하루아침에 쌓았다고 해서 할미성이라 부르지만 돌의 크기규모로 보아 낭설이고 마고선인 또는 마귀할멈의 이야기를 합리화하려 하지만 할미성이 왜 여기에 위치했는지 역사적 배경, 연대, 입지적 조건 등이 잘 맞지 않아 학자들도 의구심을 갖고 있는 성이라고도 한다.
정상 조금 아래 있는 헬기장을 내려서며 정맥길은 가팔라진다. 성터를 끼고 어느새 고속도로가 가까워졌는지 지나는 자동차의 소음소리가 귀청을 때리고, 시야에는 유난히 뾰족하게 석성산이 올려다 보인다. 한동안 내려서다가 수로를 따라 내려선 곳이 터키군작전기념비가 서있는 작고개다. 도로를 가로지른다.
용인시 구성읍 동백리 산 16번지 고속도로변에 위치한 터키군참전기념비는 1974년 9월 6일 국방부에서 건립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집단의 불법기습 남침으로 우리의 전세가 불리할 때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터어키군이 파병되어 1950년 10월 17일부터 휴전시까지 북한군과 격전, 많은 공적을 올려 이를 기리고 산화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비를 건립하였다 적혀있다.
왼쪽으로 마성인터체인지를 뒤로 산길로 접어들면서 원주 대동굿보존회에서 91년 8월 11일 세운 '마가실서낭(魔姑仙人)' 검은 표석이 서있다. 마고선인(일명 마귀할멈)이란 할미성을 쌓았다는 할머니하고 관계가 되는 듯한데 앞서 도착한 큰 형님 나종학선배가 묘비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잠시 다리 쉼을 하며 김수남씨가 권하는 수박 한쪽이 오늘따라 꿀맛 같은데,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길이 예상한대로 가파르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좁은 날 등으로 이어지다가 밋밋한 봉을 넘어 교통호가 있는 안부에 내려섰다가 오름길이 다시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8분 정도 올라선 곳에서 마성할미산성 갈림길 표지기가 붙어있는 쉼터에는 군에서 설치한 삼각점(?)을 만날 수 있다. 조금 더 올라서면서 밧줄이 매여져 있는 바위지대를 급경사로 올라선 곳이 석성산이다. 삼각점(수원 321, 83년 재설)과 용인산악연맹에서 세운 검은색의 표지석이 서있다. 용인시 구성읍, 포곡면 마성리, 유림동 등에 걸쳐 있는 해발 471.5m의 석성산은 구성산, 성산, 보개산으로도 불리는 산이다.
산의 형세가 서쪽으로는 가파른 암벽과 같고, 동쪽은 완만하고 육중한 육산의 형세를 하고 있으며, 남쪽이나 북쪽에서 보면 뾰족한 삼각형의 산이다. 북쪽으로 자연공원인 용인에버랜드가 펼쳐져 있고, 관음사, 통화사와 백령사가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시야에 펼쳐지는 지나온 능선들이 조용히 가슴에 와 닿으며 탁 트이는 조망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바위지대를 지나 내려선 곳엔 헬기장이 있고 다시 버려진 시설물이 있는 바위봉을 지나면서 곧이어 만나는 시설물이 있는 군부대 철조망이 가로막는다. 한가지 집고 넘어갈 것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통화사를 거치는 하산로가 있는데 그 쪽을 권하고 싶다.
군부대 철조망 좌측으로 좁지만 그런 대로 이어갈 수 있는 길이 나있다. 철조망을 따라 급사면에 장애물을 피해가며 이어가다 만나는 4m 정도의 수직의 바위길이 망설이게 한다. 다행일까? 우측으로 철조망이 연결해 올라가기 때문에 붙잡을 수는 있지만 바위면의 돌이 자칫 발을 딛다가 빠지기라도 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대단한 김수남씨, 바위 등에 올라선 다음 긴 한숨을 내려 쉬는 김수남씨, 9정맥을 완주하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조금 돌아 선 곳이 군부대 정문이다. 한창 피어오르는 젊은 장병들의 모습도 보기 좋다.
부대 진입로를 조금 내려서면서 작은 오름에는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바윗길을 조심하며 내려선다. 그리고 만나는 콘크리트포장인 부대진입로를 따라 정맥은 이어간다. 곧이어 만나는 통화사입구, 정맥은 콘크리트포장도를 버리고 왼쪽으로 넓은 산길로 이어간다. 참나무가 하늘을 가린 한적한 산길, 간혹 초록색의 벤치도 보이고 또 정맥에서 보는 맨홀...
15분 정도 이어지는 호젓한 정맥길은 송전탑을 지나고 3분 정도 경사길을 오르다가 만나는 갈림길, 정맥은 오른쪽으로 조금은 가파르게 밤나무와 참나무숲길을 잠시 올라선 곳이 능선분기점인 324봉이다. 먼저 도착한 정맥꾼들이 허기를 메꾸고 있다. 20여분간의 중식시간...
12시 15분 남동쪽으로 이어가던 정맥이 여기서 오른쪽(서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내려서다 만나는 송전탑은 주위가 복구가 되지 않아 볼썽사납다. 참나무와 노간주나무가 줄줄이 서있는 정맥길, 안부에 내려섰다가 밋밋함 봉을 넘으며 흙길이 미끄러운 세 번째 송전탑을 내려서며 안부를 가로지르고 다시 밋밋한 봉을 연이어 넘는다.
절개지가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선 곳이 5번 시도가 지나는 멱조고개다. 사각의 쉼터인 정자가 있다. 잠시 다리 쉼을 하고 왼쪽으로 통나무계단을 내려서서 도로를 가로지르고 용인배수지 철조망을 좌측으로 끼고 오른다.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숲길에 들어서며 송전탑을 통과하고 올라선 봉우리가 218봉이다. 한차례 내려서는 경사길은 평탄해지더니 다시 가파르게 올라선 봉에는 TV안테나가 눈에 띄고 한동안 내려서는 길 좌측으로 누렇게 시들어 가는 장송숲과 달리 우측의 참나무숲은 푸르다.
묘지 1기가 있는 용인시에서 설치한 조류보호지역이란 하얀 말목을 만나면서 갈림길에서 우측길을 선택하고 만나는 절기지, 좌측으로 미끄러운 사면길을 내려선 곳이 현대정유 성산주유소와 성산휴게소(페업)가 있는 24번 국도다. 중앙에 중앙분대가 설치되어 있는 4차선 포장도로를 가로지르는데 대단히 위험하다. 우측으로 상당히 먼 곳에 횡단보도가 있다.
1m 정도 되는 옹벽을 올라 가파르게 올라서며 전봇대와 묘지를 통과하며 이어지는 희미한 정맥길은 참나무 숲길이다. 잡목으로 덮인 넓은 산판길이 나타난다. 아마 송전탑을 건설할 때 공사용 작업 도로로 쓰였던 것 같은데 정맥길이 되어 버렸다. 그늘도 빼앗아 버려 한동안 초여름 무더위와 한판승부를 건다. 연이어 오르내리며 만나는 송전탑, 무슨 놈의 송전탑이 이렇게 많은가...
절개지가 나타난다. 왼쪽으로 절개지를 내려서기 위해 우회하다가 한차례 곤두박질, 어디 부러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인 것 같다. 걱정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김수남씨, 오늘 내내 저놈에 '홀딱 벗고 홀딱 벗고'는 왜 그렇게 슬프게만 들리는지... 이어 만나는 조립식계단을 내려선 곳이 초록색의 입간판에 지곡낙시터와 산새알 물새알 음식점을 알리고 있고, 좌측으로 용인자연수련원이 있는 포장도로다.
다시 절개지를 기어오른다. 이것도 이젠 이력이 났는지 서슴지 않고 오르는 정맥꾼들, 지루한 오름길이 이어진다. 나종학선배가 부아산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아산은 멱조현과 더불어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옛날 삼가리에 홀로 된 시아버지를 모시고 외아들을 키우며 사는 한 시골부부가 있었다. 이들 부부는 비록 가난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부친을 잘 봉양하였다. 할아버지 역시 손주를 끔찍이 아껴주어 항상 집안에는 화기가 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관가에서 시키는 부역 때문에 여러 날 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다. 남편이 없는 동안에도 부인은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셨고 시아버지는 아들 대신 나무를 해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시아버지가 돌아올 때쯤이면 항상 아이를 등에다 업고 배웅 나가 고갯마루에서 시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밤이 깊어가고 있는데도 시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등에다 아이를 업은 부인은 조금 더 조금 더 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가다가 자신도 모르는 길을 헤매게 되었다. 한참을 헤맸을까 가까운 곳에서 사람의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부인은 혹시나 시아버지가 짐승에게 해를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그곳으로 달려가 보았다.
과연 그곳에서는 시아버지와 호랑이가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부인은 호랑이를 크게 꾸짖으며, 네가 정말 배가 고파서 그런 다면 내 등에 업힌 아이라도 줄 터이니 우리 시아버님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어린아이를 호랑이 앞에 주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겨우 정신을 차린 시아버지는 손주를 잃은 슬픔에 오열을 금하지 못하였으나 며느리의 간곡한 애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나는 이미 늙었으니 죽어도 한이 없을 터인데, 어찌해서 어린아이를 죽게 했느냐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부인은 어린아이는 다시 낳을 수도 있으나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습니까 하며 마음 상하지 않으시길 새삼 부탁하였다. 시아버지도 며느리가 더욱 마음 아파할까 봐 겉으로는 슬픈 척도 하지 않았다.
부아산은 바로 이때 부인이 아이를 업고 헤매었던 곳이라고 하며, 시아버지를 찾던 고개라는 뜻의 멱조현은 어린아이의 할아버지를 찾아 넘던 고개라는 데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능선분기점에서 왼쪽(동)으로 방향을 바꾸며 오름길이 계속된다. 경사가 급해지면서 밧줄을 붙잡고 올라서며 작은 통신시설을 만날 수 있고 조금 더 올라선 곳이 삼각점(용인 22, 94년 복구)이 있는 높이가 403.6m의 부아산이다. 정상 넓은 공터에 평행봉과 철봉시설이 있는데 철봉대에 의지한 초라한 표지목이 눈에 띈다.
부아산은 용인시 역삼동과 기흥읍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사복사면이 둥글게 돌출 되어 그 모습이 어린이를 업고 있는 형상으로 질 負, 아이 兒를 써 부아산이란 산이름을 얻었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라고 하는 말이 있다. 역삼동 구성말은 아홉 개의 별이 있는 마을로 3군사령부가 들어왔고, 이동면 어비리는 고기가 살찌는 곳이라 하여 송전저수지가 되었다. 부아산은 어린이를 업고 안고 구르니, 용인대가 이곳에 서게 된 것도 말이 씨가 된 이야기 거리라나...
백제 시조 온조가 여러 신하들을 데리고 이산에 올라 백제의 도읍지를 논의했다는 전설 때문에 산아래 마을 이름이 궁촌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마을 내에 군에 관계된 집안이 몇 대 살았다 하여 궁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다리 쉼을 끝내고 능선분기점인 부아산에서 정맥은 오른쪽(남동)으로 한차례 2분 정도 비탈길을 내려서고 다시 급경사에 오름길을 오르면서 넓게 나있는 등산로를 따라 연이어 봉을 넘는다. 능선분기점에서 왼쪽(동)으로 방향을 바꾸며 서서히 고도를 낮춘다.
미끄러운 내리막길은 송전탑을 통과하고 만나는 묘지대에서 시야에 산허리를 파헤치는 공사가 한창인 진행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고, 그 옆으로 규묘가 큰 공원묘지, 그리 반갑지가 않다. 밧줄로 막아놓은 절개지가 나타난다. 왼쪽으로 통나무계단을 내려서면 한창 터널공사가 진행중인 하고개다. 초여름 무더위와 한판승부를 승리로 끝낸 정맥꾼들...
첫댓글 덕분에 잠시들러 구경 잘하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