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살인마 🔥 사도(思悼)세자의 죽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들을 그것도 뒤주에 가두어 죽일수가 . ."
풀리지 않았던 의문을 여러 자료 읽어보며 풀어 봅니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늦둥이로 후궁 영빈 이씨 소생(영조 42세),
8세 ~10세까지는 영조로부터 칭찬도 받으면서 무난,
12세 세자로 기대에 못미치기 시작 15세 대리청정(영조에 의해)을 기점으로
정신질환 기행과 영조의 아킬레스건인 경종 독살설에 관심을 갖고,
영조(노론 지지)에 뜻에 반하여 소론을 중용 한 일 등으로
아버지를 극도로 무서워 하게 됨.
영조와 사도세자(장헌莊獻세자)의 대화.(사료)
영조 "왜 동물을 죽였느냐 ? "
사도세자 "소자는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영조 "어째서 상처를 받았느냐 ?"
사도세자 "아바마마께서 사랑해주시지 않아서이옵고,
또, 아바마마께서 늘 저를 꾸짖으시니 소자는 아바마마가 무섭사옵니다."
사도세자가 애정결핍과 의대증(衣帶症)이라는 정신질환 앓았어도
생모의 고변과 한중록의 사실을 감안하면 죽임을 당 할 수밖에
없었던 "악행"을 저지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세자가 내관, 내인, 하인을 죽인 것이 거의 백여명이오며
그들에게 불로 지지는 형벌을 가하는 등
차마 볼수 없는 일을 행한 것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 형구는 모두 내수사 등에 있는 것으로 한도없이 가져다 썼습니다.
또 장번내관을 내쫒고 다만 어린 내관 별감 들과 밤낮으로 함께 있으면서
가져온 재화를 그놈들에게 나눠주고, 기생, 비구니와 주야로 음란한 일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제 하인을 불러 가두기까지 했습니다.
근일은 잘못이 더욱 심하여 한번 아뢰고자 하나
모자의 은정 때문에 차마 아뢰지 못했습니다.
근일 궁궐 후원에다가 무덤을 만들어 감히 말할 수 없는 곳을 묻고자 했으며
하인에게 머리를 풀게하고 날카로운 칼을 곁에두고 불측한 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지난번 제가 창덕궁에 갔을 때 몇번이나 저를 죽이려고 했는데
제 몸의 화는 면했습니다만 제 몸이야 돌아보지 않더라도 임금의 몸을 생각하면
어찌 감히 이 사실을 아뢰지 않겠습니까."
"세자의 병이 점점 깊어져 소인이 차마 이 말씀을 드리기는 어려우나,
임금을 보호하고 세손(사도세자의 아들, 후의 정조)을 살려 종사를 평안히 하는 것이 옳사오니
대처분을 하소서. 부자의 정으로 차마 어찌 그러하시겠으나
병이오니, 어찌 그 병을 책망하오리까. 다만 은혜를 베푸시어 세손 모자는 편안케 하소서."
마침내 자신의 손자라도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아들을 포기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 생모 선희궁 영빈 이씨 고변 내용 -
영빈 이씨의 고변이 있은 그다음 날,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히는 몇일 뒤 죽는다.
환관을 죽이고 그 머리를 자신의 부인에게 가져다준 일,
영조의 침방나인이었던 박 씨를 건드려 임신시킨 일,
후궁을 살해한 일도 있고, 가선이라는 여성을 겁탈하고 궁중에 몰래 들인 일,
궁에 토굴을 파고 온갖 기행을 저지르고, 의대증으로 나인들이 두려워 하므로
혜경궁 홍씨가 옷을 입힘에도 바둑판을 던져 눈알이 빠질 뻔 한 일 등등
역사서에 나와있는 사도세자의 악행은 "시대의 살인마" 였다.
(정조의 의해 사도세자의 악행들은 승정원 일기에서 삭제되었고
한중록 등등을 통해 전해 내려 온 자료.)
오죽했으면 "한중록"으로 유명한 부인 혜경궁 (惠慶宮) 홍씨,
생모 마져도 세손(정조)를 지키기 위해 고변하고 구명하지 않아겠는가
어린 세손(정조)만이 아버지를 살려 달라고 애원 할 뿐이었겠는가 !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영조대왕의 단호한 조치가 없었더라면
정신질환자가 임금이 되고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반정이 일어나고 세손(정조)도 없고 백성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첫댓글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영조대왕의 단호한 조치가 없었더라면
정신질환자가 임금이 되고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반정이 일어나고 세손(정조)도 없고 백성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역사를 다시 배웁니다
첫 아들 죽고
42세 늦은 나이(조선조 왕 평균 사망 나이)에
얻는 아들 얼마나 예뻐했겠어요.
그런데 학문엔 게으르고 노는데 정신 팔려있으니
노력파인 영조는 얼마나 속이 타 들어 갔을까요
기행과 사람을 불로 지져 죽이는 악행이 계속 보고 되고 ..
다른 왕자가 없으니 대안도 없고 ..
오히려 정조가 자신을 지켜 준 할아버지 성덕에
흠을 내고 사실을 삭제 시켜 스스로 정통성 시비에 휘말리고
오늘날 역사사관에 혼란을 주었으니 ,,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역사를 배워갑니다.
사도세자 동정하는
그릇된 역사관을 바로 잡습니다. 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