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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땅 언덕 위
박 태 순
외촌동(外村洞)은 지난 봄철에 급작스럽게 생긴 동네였다. 서울시 도시계획에 따라서 무허가 집들을 철거한 시 당국은, 판자촌에서 살던 사람들을 위하여 새로이 동네를 만들어 증정 했던 것이다. 시 당국은 ‘재건 토목주식회사’에 청부를 맡겨서 날림으로 공영주택을 지었다. 적당히 블록으로 칸을 막아가면서 닭장 짓듯이 잇달아 지은, 겉으로 보자면 기다란 엉터리 강당과 같은 모습이었다. 또는 반듯하게 죽어 있는 기다란 뱀과 같은 형국이었는데, 그렇게 본다면 형형색색의 비늘을 가지고 있는 이 뱀은 세 마리가 될 것이다. 즉 세 줄의 가동(家棟)이 개울 이쪽을 달리고 있었는데, 뱀의 비늘이라고나 할 가동의 옆구리에는 먼저 복덕방이라든가, 막걸리집, 상점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 내부를 볼 것 같으면, 방의 골격을 갖춘 것 세 개마다 부엌 형태가 하나씩 달렸고 그것이 엉성하게 하나의 가옥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가옥 형태의 안쪽에는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어서 그 번호가 217호까지 나갔다. 즉 217호의 세대가 살게끔 되어 있었는데 이 숫자는 또한 모든 면에서 이 신식 동네 주민들의 개성을 나타냈으니, 예를 들자면, ‘74호 복덕방’이라든가, ‘193 과부댁 술집’ 이라든가, ‘55 상회’라든가 식으로 이웃 사람들을 호명하는 데 사용되었던 것이다. 너나없이 억척스럽게 가난했기에, 그리고 우물과 변소를 같이 써야 했기 때문에 주인들의 사이는 우선 좋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확실하다. 우물은 대략 삼십여 미터의 사이를 두고 하나씩 만들어져 있고, 그리고 공중변소는 대략 사십오 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마치 초소인 양 세워져 있었다. 하나의 거드럭거리는 이방인으로서 당신이 이 동네에 들어선다면, 우선 대변 보는 곳으로 들어가서 십여 분쯤 앉아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변소간의 너덜거리는 썩은 나무 판때기에서, 전혀 당신이 예상할 수 없었던 감동과 환희의 고함을 듣고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영이 자지는 말방울 자지다.”
어느 위대한 화가도, 그려낼 수 없을 것 같은, 침을 묻혀가면서 일부러 그렇게 삐뜰빼뜰 썼을 것임에 틀림없는 큼지막한 그림이 이렇게 주장하고 있음을 당신은 볼 것이고, 그러면 당신은 진영이라는 어린이의 고추가 말방울처럼 삐져나와서, 그리고 말방울처럼 명랑한 음향을 연주하고 있음을 듣게 된다. 그리고 당신은 진영이의 말방울 음향뿐만 아니라, 이 동네 전체에서 무어랄까 생 (生)의 요란스런, 그리고 점잔 빼지 않는 낯선 음향이 들려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공묵이 자지는 소방울 자지다.”
그러면 당신은 소방울의 음향을 들으면서, 이윽고 바깥으로 나오는 것인데, 이제 당신은 변소 옆 대략 두 평 정도의 공지에 고추밭이 있음을 보게 된다. 만약 당신이 이 동네를 시찰하기 위해 나온 중앙관서의 관리라 할지라도, 땅을 사랑하는 밭 임자를 나무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우물 옆에 대여섯 명의 쪼글쪼글한 아주머니들이 멍청한 표정을 지으면서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음을 듣게 된다. 남정네들이야 장기를 두거나 소주를 마시면서 회동할 수 있지만, 안사람들은 도대체 우물가에서 만나곤 한다는 사실을 당신은 이해해야 한다.
경상도 말씨를 쓰는 빼짝 마른 여인이 머리카락을 수집하러 다니는 영곤이 엄마다. 영곤이 엄마는 영곤이 때문에 걱정이 많다. 영곤이는 올해 열여섯 살로서 사십 분쯤 걸어가면 있는 유리병마개 공장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영곤이는 술 담배를 벌써 배웠고, 요새는 어떤 몹쓸 계집애하고 괴상한 짓도 하고 있다. 영곤이 엄마의 옆에 두레박을 쥐고 새침하게 쭈그려 앉은 여자는 올해 스물일곱 살로서 임신 삼 개월이며, 그의 남편은 그냥 빈둥빈둥 놀고 지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남편 최경대씨는 폐병 3기인 것이다. 그리고 몸집이 좋은 전라도 말을 쓰는 여장부는 이 그룹의 대표자 격이기도 한데 흔히 193호 과부댁으로 통하며, 막걸리를 팔고 있다. 반년 전만 하더라도 스물한 살짜리 딸 미순이 때문에 장사가 잘되었는데, 그 미순이는 지난 가을철 이 동네에 들어왔던 약장수 패거리의 기타를 뜯는 사내와 배가 맞아 달아나버렸다.
여기서 잠깐 지난가을에 들어왔던 약장수 얘기를 해보면ㅡ그것은 이 동네가 생긴 이래 거의 처음으로 들떠 있었던 기간이었다. 그 약장수들은 정확히 나흘을 머물렀다.
커다란 텐트를 쳐서 무대를 만들고, 모터를 돌려서 전기를 켜고 마이크 장치까지도 가지고 있는 정말 대단한 패거리들이었다. 서울 중구에 본부를 두고 있는 ‘태평제약회사’ 영업부에 소속된 자들인데, 옛날 약장수들처럼 뱀이 뱀을 잡아먹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얘기하다가 끝내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엉터리들과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그들은 두 명의 여자 가수와 한 명의 남자 가수 그리고 네 명의 밴드를 가지고 있었는데(물론 가수와 연주자는 다 겸하고 있었지만) 나흘 동안 전부 레퍼토리를 바꾸어가면서 노래를 들려주었다. 「황성옛터」라든가, “오늘도 걷는다마는”으로 나가는 애상조의 노래들, 「목포의 눈물」, 「창부타령」을 위시해서,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 「삐빠빠룰라」,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그리고 트위스트를 위시해서 요새 새로 나왔다는 고고 댄스까지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똥똥한 코미디언은 김희갑의 흉내, 후라이보이 흉내, 배우 김진규의 흉내를 똑 들어맞게 내었는데, 또한 굉장히 유식하기도 해서 그때 미국에서 쏘아올린 제미니 6호의 원리까지도 설명해주었고, 가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피임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나온 약만
하더라도 옛날처럼 백 년 묵은 지네의 피라느니, 곰의 간이라는 식은 아니었다. 박카스라든가 영진구론산바몬트보다도 성능이 우수하다는 강장제 물약을 십 원씩 스무 병에 백오십 원으로 팔기도 하였고, 신경통약, 피임약을 팔았는데 이 동네에 사는 어른치고 아무 약도 사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었던 사람은 기타를 연주하는 얼굴이 잘생긴, 그리고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젊은이였다. 그가 기타를 뜯으면 모든 노래는, 설사 그것이 고복수의 것이었다 할지라도, 전혀 기타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만 같았다. 그 젊은이는 이 동네에 일종의 신비한 전설을 남겼다. 그리고 미순이가 사라진 것은, 그 패거리들이 저녁이 되어 홀연히 사라진 것과 때를 같이했다. 그리고 미순이도 약간의 전설적인 일화를 남겼는데, 그것은 미순이의 공공연한 애인이었던 나종열의 침울한 행동과 행패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나종열은 올해 스물여섯 살로서 군에서 제대한 것과 그의 집이 이 동네로 이사 온 것과 거의 시기를 같이했다. 그는 대학물도 이 년인가 먹어봤다는, 제법 문서 속을 환히 아는 젊은이였기에, 동네에서는 시 딩국에 보내는 청원서를 꾸미기도 하였고, 그리고 이 동네에까지 버스 노선을 끌어오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좀도둑이 들끓는 이 동네의 보안을 위해서 야경대를 조직케 한 장본인이기도 하였다(이 야경대에 대해서 동네에서는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 세대당 이십 원씩의 야경비를 갹출해야 되었기 때문이다). 나종열의 집이 그나마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야경을 돌면서 받는 돈 사천 원 벌이 덕분이었다. 그가 미순이의 애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야경 덕분이었다. 아직 파출소가 세워져 있지 않은 동네에 있어서, 야경원은 가벼운 보안책임을 겸하고 있었다. 미순이네 막걸리집은 물론 허가도 받지 않았는 데다가 손님만 있으면 밤새도록 영업을 했다. 이와 같이 미순이네 쪽의 위법 행위가 하도 노골적이었기에 야경을 마치고 술 한잔 얻어먹으러 오는 종열을 박대할 수는 없었다. 박대하기는커녕, 미순네는 나종열을 아주 친절하게 접 대했다.
이렇게 해서 미순이와 나종열의 사랑은 싹튼 것인데 동네 사람들은 밤 세시쯤 미순이와 나종열이가 같이 부르는 노래들, 「영등포의 밤」이라든가, 「혜련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미순이는 목청이 깨끗하고, 나종열은 넋두리가 좋았다
“이북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누이동생 혜련아.”
한밤중에 들려 나오는 나종열의 이런 넋두리를 들으면, 동네 사람들은 그것을 시끄럽다고 탓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기는커녕 넋두리에 맞추어, 제가끔들 망향의 설움에 잠기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본디부터 이곳에 살아왔던 주민이라곤 하나도 없고, 다들 무슨 귀찮은 휴대물인 양 제 사정에 의하여 떠돌아다니다가 이런 구석에까지 밀리어 들어 왔기 때문이다.
마침 동네에는 돌팔이 의사도 하나 껴묻어 있었다. 그자는 언변이 좋고 얼굴이 허여멀끔한 것이 흡사 정치가 타입이었다. 미순이가 애를 떼느라고 그 의사를 찾아갔을 때(물론 나종열이도 같이 갔다), 그리고 미순이가 죽을 고생을 하고 난 뒤에 미순이가 지불한 대가라는 것이 엄청난 것이었다. 미순이는 현금을 오백 원밖에는 지불하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무엇을 다섯 번 제공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익어갔던 나종열과 미순이의 사랑은 미순이가 약장수패들을 따라갔기 때문에 결말이 싱거워졌지만, 무엇보다도 미순이 엄마의 악착같은 훼방 때문에 살림조차 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모녀간의 정(情)이라는 것으로 인해서, 미순이는 의당 나종열을 사랑해서 마땅할 몫조차 술을 팔며 접대하는 곳에다가 할애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종열로 말하자면 미순이가 약장수패들을 따라가버렸다는 사실을 참따랗게* 체념하는 눈치를 보이기도 했다. 어차피 미순이를 데려다가 살림을 못 차릴 바에야 미순이의 낭만적인 방랑벽이나 축원해주자는 심사였는지도 모.르지만.
나종열의 집안은 여섯 식구였다. 신경통이 도져서 오른쪽 다리를 못 쓰게 된 나합돈 영감님과, 스물두 살짜리 살짝곰보 나종애, 지칠 줄 모르고 잔소리를 해대는 의붓어머니와 그리고 그 의붓어머니가 낳은 자식 인 종만이, 종수.
나종애는 얼굴이 과히 밉상은 아니었으나 아주 몸이 약했다. 아니, 몸이 약했기 때문에 얼굴이 예뻐 보였다. 살짝곰보가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인 데다가, 가느다란 몸매, 떠는 듯한 걸음걸이, 누군가를 원망하는 듯이 치켜뜨곤 하는 눈동자에 서린 싸늘한 아름다움이, 제대로 좋은 집안에서 자라났다면 글자 그대로 미스코리아감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불행히도 좋은 집안에서 자라난 것이 아니었기에, 아주 부당하게도 구박덩어리가 되었다. 그것은 그녀가 도대체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미순이가 달아나버린 뒤에 미순이 어머니로부터 이런 제안이 들어왔다. 그것은 황혼이 고운 여느 저녁이었는데,
“종애야.”
미순이 어머니는 나종열과 부모와 그 밑의 어린애들을 무시하면서 말했다.
“너 심심하기도 헐 텐데 나랑 같이 술이나 팔며 지내자꾸나.”
요컨대 작부 노릇을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사실 미순이가 달아나버린 뒤로, 193호 과부댁 술집은 손님을 거의 맞이하지 못했었다. 억세고 게다가 늙고 뚱뚱한 마나님을 보면서 술을 마시려 드는 사내들이 없었던 탓이었다.
“참 재미있구 게다가 아주 편하지.”
미순이 어머니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니 나종열의 부모는 미순이 어머니가 제멋대로 지껄이도록 그냥 침묵을 지키고만 있었다. 미순이 어머니의 얘기가 일차 미진해진 뒤에도 나종열과 나종열의 부모는 그냥 침묵을 지키고만 있었다.
“그럼 아예 지금 같이 가자꾸나.”
미순이 어머니는 말했는데,
“싫어요, 싫어요.”
그때 뜻밖에도 나종애는 이렇게 고함을 질렀던 것이다. 정말 그것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전혀 뜻밖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종애가 눈물을 철철 쏟았다고 해도 나종애를 동정적인 눈으로 보아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일 뒤로 나종애는 더욱 구박덩이가 되었다. 구박덩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다지도 억척스레 못사는 것이 마치 나종애 때문이기나 한 듯이, 어떤 때 식량이 떨어진다거나 빚 독촉을 받는다거나 하면 대뜸 종애에게 이런 욕을 하는 것이었다.
“야 이년아 정도령이 세상을 구한대더라. 왜 그 정도령을 쫓아가서 호강하지 않구 그러니, 이년아.”
정도령이라는 것은, 종애가 사랑했다가 차인 사내녀석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녀석의 이름은 정의도였고, 종애는 진정으로 의도를 사랑했다. 그것은 의도가 얼굴이 잘생겼다거나, 유행가 가사에서처림 키다리였다거나 무뚝뚝해서가 아니라, 전혀 그런 매력과는 별개의 문제로서, 의도가 이 동네를 떠나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의도는 이 동네를 떠났다. 종애에게 무엇인가를 단단하게 맹세하고 나서. 그리고 종애는 의도가 반드시 자기를 데리러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분 얘기는 꺼내지 마세요.”
종애는 정의도에 관한 얘기가 나올 적마다, 저도 모르게 악에 받쳐서 이렇게 대드는 것이었다.
“아이구 환장하겠구나, 그분이라니? 흥, 열녀 춘향이도 네 앞에서는 무릎을 끓을 수밖에 없겠구나.”
“왜 춘향이가 저한테 무릎을 꿇어요?”
정의도의 얘기에 관한 한, 종애는 말싸움에서 지려고 들지 않는 것이었다. 아주 당돌하게도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이었고, 그러다보면 어째 시들해져서 서로 아무 말도 않게 되는 것이었고, 종애는 진짜 춘향이거나 한 것처럼 정 의도를 그리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즈음에 변학도가 나타났던 것이다. 아니 변학도라기보다는 변학도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그 노인의 성은 변씨였고 돈도 많았다.
변노인은 고리대금을 하고 있었다. 변노인이 이 동네에 온 지는 얼마 아니되었지만, 삽시간에 동네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고 말았다. 모든 사람의 형편이 단돈 십 원이 아쉬운 판인데 유독 변노인에게는 돈이 풍성풍성했다. 갑자기 돈 쓸 일이 생기면 어쩌는 수 없이 변노인에게 찾아가는 것이었고, 그러면 변노인은 선선히 돈을 꾸어주었다. 다만 이자는 호되게 비쌌다. 일부 이자 천 원당 십 원을 가지고 달러이자라 하여 세상에서는 공연히 호들갑을 떠는데, 이 동네에서는 그것이 백 원당 삼 원이었다. 그러니까 천 원에 대면 삼십 원인 셈인데, 도대체 천 원 정도 되게 돈을 꾸어가는 일은 없었다.
변노인은 혼자 살고 있었다. 나이는 일흔세 살이었고, 아주 박식 했으며, 그리고 괴팍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하얀 한복 속에 빨간 속옷을 입는 것이야 오래 살고 싶어서 그러려니 이해할 수도 있었지만, 식도락이 아주 대단했다. 서른두어 살가량의 식모를 두고 있었는데, 그 식모 아주머니가 변노인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던 것이다. 도저히 일흔세 살이나 된 노인이라고 생각 못할 정도로, 쇠힘줄까지도 질근질근 씹어 먹는다는 것이었다. 먹는 것과 입성에는 결코 돈을 아끼는 법이 없다는 것이고,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중을 불러다가 독경을 듣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변노인이 불교신자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변노인은 세상 돌아가는 꼴에 대한 개탄에서 저대로의 일가견을 이루고 있는 우국지사적인 유학자였다. 그랬기에 변노인은 동네에서도 한문글귀나 제법 알고 있는 노인들이 있으면 서슴지 않고 교우를 텄다. 운(韻)을 놓고 율시를 짓기도 하였고, 무어니 무어니 해도 이박사만한 인걸은 없었다느니 장박사야말로 하늘이 낸 의인이라느니 하고 지치는 법도 없이 담론하는 것이었다.
나종애의 아버지 나합돈 영감님은, 요행히도 통감 정도는 읽은 처지였기에 변노인의 방에 드나드는 처지가 되었다. 적당히 변노인의 비위나 맞추어주면서 술대접이나 받자는 것이 나합돈 영감의 의도였다. 그리고 변노인도 그 점에 있어서는 의외로 관용을 베풀어 나합돈 영감을 받자 하는 것이었다.'
수신제가대천명 (修身齊家待天命)
불가무시역시운 (不可無視亦是運)
인생십사구감소 (人生十事丸堪笑)
춘색삼분이이공 (春色三分二已空)
수신제가를 마친 후에는 천명을 기다려야 하지만
역시 운이란 것을 무시 하지는 못하겠구나.
인생사 열에 아홉은 허허 웃고 말 수밖에 없고
춘색이 좋다 하나 그 셋 중 둘은 이미 공탕이구나.
대개 이런 종류의 체념적인 시구절을 읊조리고는, 못사는 데 대한 한탄을 하고 그리고 자위를 하는 것인데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들의 좌석이라 의기가 투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일 원짜리를 내어서 화투판도 벌이고, 바둑을 두거나, 장기 또는 고누까지도 두는 것이었고, 술이 한잔 들어가면 음담패설을 하는데, 그 음담패설이라는 것이 아주 지독스러운 것들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서 변노인의 괴팍한 성격이 하나 새로이 드러났다. 변노인은 두 달마다 식모를 갈아치우는 것이었다. 왜 그러는지를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이윽고 쫓겨 나온 식모에 의하여 그 이유가 밝혀졌다. 하긴 그것은 시시한 얘기였다. 성의 기능이 마비된 노인에게 있을 수 있는 약간 비정상적인 행위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리고 변노인이 이렇게 돈이 많은 것은 유럽에 광부로 가 있는 아들이 매달 만 원가량 생활비를 보내주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사람들은 그런 이유로 해서라도 더욱 변노인을 존경하게 되었던 것이다.
변노인은 동네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유지였다. 그것은 선거를 앞두고 여당 측이 득표공세를 해오는 데 따라서 이 동네에다가도 담뿍 경로사상을 주입시켰기 때문에 더욱 뚜렷해졌다. 즉, 동네에는 급작스럽게 ‘노인회’가 조직되었는데, 그 노인회의 회장에는 바로 변노인이 추대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합돈 영감은 총무자리 감투를 썼다. 노인회의 의의는 거창해서, 비단 심심파적으로 모임을 갖자는 것뿐만이 아니라 문란해질 대로 문란해진 기강을 바로잡고, 젊은 애들을 솔선해서 수범 해줘야 한다는 데에까지도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고 만장일치의 건의에 의하여 서울시 당국에다가 노인정을 지어주십사 하는 청원서를 올리기로 하였다. 그 청원서의 문안을 작성하는 데에는 나합돈 영감의 아들이며, 나종애의 오빠인 나종열이가 애를 썼다. 결국 그 청원서는 세심히 고려해보겠다는 식의 완곡한 거절을 시 당국으로부터 받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촌동 노인회의 의욕이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회비를 걷고 변노인의 찬조금을 합하여 한 달에 한 번씩 회식을 가지는 것이었는데, 밀주에다가 쇠고깃국, 그리고 193호 과부댁을 특별 초대하여 장구까지 두들기며 노는 것이었다. 그 193호 과부댁이란 다름 아닌 미손이 어머니인데, 들은풍월로 관산융마(關山戎馬)를 뽑으면서 술잔을 널름널름 잘도 받아 마시며 좌중의 흥을 돋우는 것이었다.
그러자 봄이 오고 노인회의 회식˙흔 산천을 따라 행해지고 그 규모도 커져갔다. 그리고 그때쯤 해서는 193호 과부댁은 거의 정회원이 다시피하였다.
그 193호 과부댁과 변노인이 합류되었다는 것은 동네에서도 약간 놀라운 사건으로 간취되었다. 쑤군쑤군 뒷공론이 따랐는데, 구두쇠인 변노인이 암만 해도 바가지를 쓰는 것에 틀림없잖느냐는 얘기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변노인으로 말하면 너나없이 인정하다시피 돈 많고 학식 좋고, 도대체 부러울 것이 없는 팔자 좋은 사람인데, 이 세상의 찌꺼기 구석만을 돌아다닌 193호 과부댁을 맞아들인 것은, 암만 봐도 손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이야 무어라 하든 말든 193호 과부댁의 기개는 드높아갔다. 즉 동네에는 딱히 명칭을 붙이자면 ‘중년부인회’라고나 할까, 그런 모임이 생겨난 것이다. 대개 사십 이상의 아주먼네들이 모여서 팔다리를 휘두르며 춤을 추고, 술 마시고,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노래도 드높게 흥청망청거렸다. 물론 이 모임에는 나합돈 영감님의 부인이며 나종열의 의붓어머니인 구여사도 한몫 끼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역시 여자들의 모임 인지라, ‘노인회’ 의 그것처럼 감투를 안배(按配)하는 수속이 생 략되어 있었다.
따라서 동네 인심도 뒤바뀌었다. 변노인과 193호 과부댁이 같이 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주 없어져버렸다. 그것은 외로운 늙은이끼리, 외로움에 못 이겨 살을 비벼대며 외로움을 나눠보려고 한다는 극히 자연스러운 인간 감 인 양 이해가 되어졌다.
그리고 그동안에도 변노인의 고리대금업은 번창일로에 있었다. 변노인은 공과 사를 혼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변노인에 합세해서 193호 과부댁은 이만 원짜리 계주가 되었고, 또한 계속해서 술집영업도 하고 있었다. 외촌동은 바로 변노인과 193호 과부댁에게는 더할 수 없는 낙원이었던 것이다.
외촌동은 몰라볼 만큼 발전되어 있었다. 버스 노선이 외촌동에까지 들어왔다. 버스 앞 차창에다가 ‘외촌동’ 표지를 달고 시내를 질주했으니 외촌동은 이제 어느 동 못지않게 서울의 중요한 동네의 이미지로서 서울시민의 뇌리에 부각되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외촌동의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만 할, 저 외촌교(外村橋) 다리공사도 끝이 났다.
그리고 전기공사가 끝이 나서 엉터리 강당과도 같은 각 방으로는 전등이 켜졌다. 그리고 앰프시설도 구비되어 있어서, 시설비 이백 원에 매달 사십 원씩만 내면, 날마다 열두 개의 연속방송을 사람들은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세 개의 약방이 생겼고, 두 군데의 정육점, 양복점도 하나 생겼고, 이발소 두 개, 미용소 세 개가 들어찼다. 대봉산(大鳳山)을 우뚝 세워놓은 산맥은 대략 동서쪽으로 뻗고, 그 산맥에서 잘려 나온 산줄기가 이 동네의 뒷덜미를 이루고 있었는데, 잔잔한 파도처럼 돌기하여 있는 그 산줄기에 지난번 부동(富洞) 화재 때의 재민들이 천막을 치고 수용되어 있었다. 그럼 에도 산은 언제나 산의 냄새를 풍겼고, 그리고 뻐꾸기도 울었고, 소나무를 위시해서 전나무 미루나무가 싱싱한 송진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산 쪽에서부터 내려온 개울에는 아낙네들의 빨래방망이 소리가 늘 들려왔고, 그래서 노인들의 얘기인즉슨, 산천과 경개가 사람 살기에 좋은데다가 금상첨화 격으로 서울 시내이고 하니, 가위 돈만 있으면 어느 별장지대 못지않다는 얘기였다(하긴 별장을 짓겠다고 하는 재벌이 있다는 풍설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이 동네의 발전과 직결되는 것으로서는 아무래도 교회당이 두 군데나 생겼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비록 구호금품을 바라고 몰려갔던 사람들이 구호금품이 안 나오자 적이 실망했지만. 어린애들과 학생들은 찬송가를 부르고 다녔고, 안경을 쓴 젊은 목사는 주 예수를 믿으라고 가가호호 방문을 다녔고, 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찾아가서 기도를 올려주곤 했다. 그리고 (이것이 이 동네의 발전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지만) 파출소가 드디어 하나 생겼다. 끊임없이 도난사고가 발생하고, 한번은 『동아일보』를 위시해서 각 신문에 보도가 되었지만 살인사건도 있었던 것이었기에 파출소가 동네에 대하여 가지는 비중은 실로 무거운 바 있었다.
하루는 파출소 근무의 정순경이 표지가 두꺼운 노트를 들고 동네로 들어섰다. 도난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정순경은 받았던 것이다. 풍채가 좋고 품위가 있어 보이는 변노인이 꼭두새벽부터 달려와서 그렇게 말을 했다.
정순경은 현장에 도착해서 사방을 휘뚜루 살펴보았다. 변노인과 193호 과부댁, 그리고 나합돈 영감, 구여사, 나종애 등이 민망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것을 말씀하세요.”
정순경은 방 안과 방 밖을 대충 훑어보고 나서, 약간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예 예 말씀드리죠. 현금이, 그러니까…….”
변노인은 이러다가 얘기를 멈추고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액수를 말하기가 무엇했던 모양인데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의 호기심은 증대되었다.
“삼만 칠천 원쯤 되었습니다. 그러허고……”
몰려 있던 사람들의 입으로부터는 거의 신음소리 같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태도인즉슨, 잃어버려도 좋으니까 그 정도의 금액을 만져만 보았으면 하고 바라는 듯한 것이었다.
“삼만 칠천 원이라, 가만히 계세요.”
정순경은 노트에다가 그 액수를 기입했다.
그리고 그때 193호 과부댁이 땅을 치면서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시선은 과부댁과 순경 사이를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흡사 어느 쪽이 더 좋은 구경거리인지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처럼 얼떨떨한 표정 들이었다.
193호 과부댁의 통곡은 더욱 커져가기만 했는데 보기에 따라서는 과부댁의 통곡을 말리는 사람이 없어서 그러는 것처럼도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냉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사람은 바로 변노인 당자였다. 언제 193호 과부댁과 같이 살았나 싶어 보이게 변노인은 싸늘한 시선을 과부댁에게 던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범인은 나종열이란 사내와 오미순이란 여자가 틀림없다. 이런 말씀입니까?”
순경은 여전히 흥미 없다는 듯이 물었다.
“예 예, 틀림없이 그렇소이다.”
변노인은 몸동작보다도 어조를 더 강경하게 만들었다.
“알았습니다. 나종열의 집이 어디지요?”
그리고 그때 나합돈씨가 비실비실 순경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오미순의 어머니인 193호 과부댁이 조금 뒤에 순경 앞에 섰다. 그들은 파출소로 호출을 받았다.
그리하여 정순경이 알게 된 사건의 전모라는 것은 대략 이러했다. 나종열은 올해 스물여덟으로 야경원이었다는 것. 그리고 오미순은 193호 과부댁의 딸로서 작년 가을 약장수 패거리들이 왔을 때 그들과 함께 달아났다가 약 일주일쯤 전에 되돌아왔다는 것. 나종열과 오미순은 사랑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랑이 다시 이루어졌다는 것. 그래서 밤에 변노인의 방엘 들어가서 돈을 홈쳐내어 함께 달아났다는 것.
대강 이런 것이 정순경이 알게 된 사정이었다. 정순경은 결국 이러한 사건은 해결이 될 수 없을 것을 알았기에 그만 귀찮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미처 정순경이 모르는(아니 알지 않아도 되었던) 다른 것도 있었다.
돈을 훔쳐낸 것은 미순이 혼자서였다. 기타를 뜯는 사내한테 흠뻑 반하여 집을 나가서 약장수 패거리들을 따라갔던 미순이는 곧장 그들과 한패가 되어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녀는 목청이 고왔기에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약장수 패거리를 따라 전라도 지방을 돌고 경상도 쪽에서 강원도로 하여 다시 서울 쪽으로 올라오고 있을 때쯤 해서, 미순이는 그나마 이런 딴따라질에도 싫증을 느꼈다. 우습긴 하지만 의젓하게 살림을 차려서 조촐한 집이라도 괜찮으니 집에 들앉고 싶어졌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몸 컨디션도 말이 아니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약간의 용기를 가지고 다시 외촌동으로 기어든 것인데 들어와보니, 어머니인 193호 과부댁은 엉뚱하게도 변노인과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딸을 구박했다. 구박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너 따위하고는 모녀간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어서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라고 호통질이었다. 미순이는 사실 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미순이는 나종열을 찾아봤다. 그전 때처럼 ‘영등포의 밤’ 이라든가, ‘혜련의 노래’를 같이 부르면서 밤새워 술을 마시며 얘기가 하고 싶어졌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고 보니 나종열의 태도도 싹 달라져 있었다. 그따위 약장수 패거리들이 좋아서 달아나버린 년이 이제 무슨 낯짝을 가지고 다시 내 앞에 나타났느냐고 하면서 도리어 면상을 쥐어박는 것이었다. 나종열은 아예 깡패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미순이는 이제 영원히 외촌동을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 그냥 떠나기는 억울하여 변노인의 돈을 훔쳐가기로 했다. 그리고 밤새껏 두려움에 와들와들 떨며 돈이랑 금반지랑 훔쳐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막상 도둑질을 하고 나니까 미순이는 무엇인가 겁이 더럭 났었던 모양이었다.
그날 아침 나종애는 밤을 꼴딱 새우다가 그만 지쳐서 새벽 다섯시 쯤 바깥으로 나오다가, 오빠 나종열이랑 미순이가 서성거리며 왔다갔다 하더니 이윽고 외촌교를 바삐 건너가고 있음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종애는 이러이러한 양을 보았노라는 것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기는 고사하고 나종애는 차라리 오빠 나종열과 미순이의 앞날을 위해 축원을 드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긴 그것은 나종애 자신의 설움이 겹쳤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철석 같이 정의도를 사랑하고 있었다. 정의도로부터는 세 번인가 편지도 왔다. 강원도 철암에서 삼십 리쯤 들어간 오동리라는 곳에서 개간사업을 위해 청춘을 바치고 있다는 식의 편지였는데, 어쩐지 그런 얘기는 거짓말인 듯했다. 그녀의 친구 옥현이가 정의도를 충무로 거리에서 보았다고도 했지만, 그런 데다가 정의도로부터의 편지도 끊어져버렸다.
나종애는 그것이 애가 타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직껏 정의도가 배신을 했다는 생각은 차마 안했지만 그러나 정의도가 어딘지 믿음직하지 못하다는 느낌만은 어쩌는 수 없었다.
막상 오빠 나종열과 미순이가 그렇게 가버리고 난 이후로 나종애는 정의도에게 보내는 형식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 편지나마 끼적거리지 않고는 견뎌 배길 수가 없었다.
오늘은 부활절날이라나요. 심심해서 밤에 예배당에 갔었어요. 모두들 기도하고 있기에 저도 기도했어요. 당신이 잘되라고 기도했어요. 당신도 저의 기도를 들으셨겠죠, 어머니는 요새도 신경질이 심해요. 저더러 열녀 춘향이라고 놀려대는 버릇도 여전해요. 그러나 저는 참고 있어요. 지금 갑자기 눈물이 나오지만……
나종애가 모든 것을 참고 있음은 사실이었다. 큰돈을 잃은 변노인은 갑자기 악당이 되었고, 그래서 193호 과부댁을 볼일 다 본 뒤에 절구통 메치듯이 내쫓아버렸다. 193호 과부댁은 막상 모든 것이 감감해지자 나합돈 영감에게 화풀이를 했던 것이다.
“이놈의 영감태기야. 느그 자식놈이 하나밖에 없는 내 고명 딸을 꼬여갔어. 우리 서방님 돈을 홈쳐간 것도 느그 아들놈 짓이야. 내 딸 내놓고 내 서방님 돈 내놔, 이 영감망태기야.”
193호 과부댁은 변노인을 서방님이라고 칭하면서 이렇게 나합돈 영감을 윽박질렀던 것이다.
그러면 나합돈 영감은 변노인과 사이가 틀어져버려서 변노인으로부터 술잔도 얻어먹지 못하게 된 제 설움까지 합하여 나종애를 못살게 구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씨구나 하고 구여사도 의붓딸을 야단쳐대는 것이었다. 나종애는 만만히 이런 수모를 받아낼 수밖에 없는 것인데, 더욱이 나종열이조차 없는 집안에서 돈 벌 구멍은 전연 감감했다.
당장 끼니 끓일 걱정이 앞섰고 차라리 자살이나 해버릴까고 나종애는 앙큼스런 처녀 마음으로 생각해보는 것인데, 그럴 때 위로가 되는 것은 바로 정의도에게 보낸다고 짐작하면서 쓰는 편지였다.
너무도 하늘이 맑았어요. 너무도 하늘이 맑아서 그래서 슬퍼졌던가봐요, 눈물이 나온 걸 보면. 눈물을 흘리고 나니까 제 마음도 하늘처럼 맑아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부터는 맑은 하늘을 볼 적마다 맑은 하늘이야말로 당신이 제게 힘내라고 보내준 선물인 것처럼 생각할래요. 그런데 이다지도 맑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면서 비가 마구 쏟아지다니, 이건 웬일인가요.
다음 날 나종애는 이 편지들을 몽땅 뺏겼다. 숨겨두느라고 숨겨두었는데, 이복동생인 종수가 돌아오니 구여사는 단서를 잡은 수사관처럼 눈을 가늘게 떠서 희한한 모습으로 웃어대더니 다짜고짜로 나종애를 두들겨 패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육시*를 할 년아, 무어가 어쩌고 어째?”
가만히 따져보니 구여사가 편지 문구를 가지고 야단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구여사는 글 볼 줄을 몰랐기에 편지에 무슨 소리가 씌어있는지는 채 모르는 것 같았다. 하여튼 자기에게 좋은 소리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그냥 펄펄 날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야 어찌되었든, 나종애는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
동네 아낙네들이 너무하다고 말했기 때문에 도리어 더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나종애가 두들겨 맞는 것을 말리려고 수선을 부리면서도 동네 아낙네들이 말리지는 못했기 때문에 더 두들겨맞았다. 그리고 그것은 정의도 때문에 두들겨 맞은 것이기도 하고, 오빠 나종열 때문에 또는 전혀 관계도 없는 여러 사람들 때문에 두들겨 맞은 것이기도 했다.
나종애는 정신이 없었다. 이제 죽는가보다 생각했고 아니, 죽었다고 생각하고 편안한 안도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죽음의 저쪽 세계에서 여러 재미난 이쪽 세계의 일들을 생각하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고함도 지르고 짜릿짜릿한 쾌감도 느꼈는데, 눈을 뜨고 보니 한낮이었다. 주위에는 아버지 나합돈 영감과 구여사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변노인도 와 있었다.
나종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자 너무도 서운해서 삐쭉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마를 짚었다.
“아무치도 않어, 아무 병에도 걸리지 않았어. 밥이나 먹구 나면 거뜬해질 걸 무어.”
이렇게 말한 것은 변노인이었다. 그리고 이마를 짚고 있는 것도 변노인이었다. 변노인은 처녀의 이마를 만지고 있는 것이 좋았던지 손을 떼려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나종애는 더욱더욱 서운했다. 아무 병에도 걸리지 않았다니, 아무리 얌체머리 없는 노인이라 할지라도 저럴 수가 있나 싶었다. 아무 병에도 안 걸린 게 다 무어란 말인가? 남은 지옥엘 다녀왔는데.
나종애는 울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몰인정한 사람한테 눈물을 내보인다는 것은 자기의 알몸뚱이를 내놓고 있는 거나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눈물을 대강대강 닦고, 변노인의 손을 제껴버리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하긴 아무 병에도 걸리지 않은 것도 같았다. 자기가 생각해봐도 신기할 정도로 몸이 거뜬했다. 그래서 그녀는, 죽었다가 살아나서 병이 낫고 건강해지고 이런 너무나도 기다란 과정 이 순식간에 자기에게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이런 너무나도 기다란 과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도리어 믿어지지가 않았으나 사실이었기에, 그녀는 좁은 이마 속의 암흑이 갑자기 뒤틀려지고 있는 듯한 감동을 느꼈다. 마치 새로 소생한 듯한 기분이었고, 거기에서 싱싱한 힘을 얻은 그녀는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멍청한 몰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멍청한 얼굴 중의 하나인 나합돈 영감이 머무적거리며 헤프게 웃고 있었다.
“종애야.”
나합돈 영감은 사근사근하게 물어왔다.
“왜 그러세요. 아버지 .”
종애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말대답을 했다. 말대답을 하고 나니까 그것은 스스로 생각해봐도 너무 놀라웠다.
그러자 나합돈 영감을 위시해서 변노인이랑 구여사며 기가 죽어있었다. 나종애는 더욱 말똥말똥한 시선으로 이들을 보면서 무슨 일이 있긴 있음을 짐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나합돈 영감은 스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말을 꺼냈다.
“말씀하세요, 아버지.”
“그렇게 어른에게 말 재촉을 하는 법이 아니다.”
변노인이 훈수를 두었고,
“아니 여보, 당신 얘길 하려는 거우? 편지 얘길 하려는 거우?”
구여사가 머쓱해진 표정으로 나합돈 영감을 눈 주었다.
“편지라니요? 정의도씨, 그분한테서 편지가 왔나요? 그렇죠? 편지가 왔죠?”
“원, 망할 것 같으니라구? 그런 게 아니라니까.”
구여사가 당황해서 말했으나,
“공갈 마세요. 편지 온 거 일루 주세요. 일루 주세요.”
종애는 당당한 태도로 아버지 어머니를 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합돈 영감은 노란봉투의 편지를 종애에게 주었다. 종애는 하도 반가운 나머지 눈물이 그렁그렁 해서 ‘나종애씨’ 라고 쓴 겉봉을 들여다보았다.
종애, 그동안 잘 있었어? 부모님도 안녕하셔? 나는 씩씩한 대한의 남아로서 몸과 마음을 합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중이야. 참 어제 종애의 오빠 종열이와 193호 과부댁 딸 있지, 오미순이를 만났어. 종열이한테 참 좋게 대접받으면서 네 얘기를 들었다. 네가 고생하고 있을 줄은 잘 알지만 인생은 고해라니 조금만 참아줘. 이번에 새로 생긴 서울극장에서 고용원을 모집하는데 나는 거기에 응모해보려고 해. 아마 취직이 될 거 같고, 그러면 내가 사랑하는 종애를 모셔올 수 있을 거니깐 잡담 제하고 날 믿어. 쓸 말은 태산 같지만 이만 그친다. 나의 영혼 종애, 그럼 잘 있어.
그리고 그 밑에는 ‘정의도’의 멋있는 싸인 글씨가 약간 왼쪽으로 드러눕고 싶어하는 것 같은 필체로 씌어져 있었다.
종애는 편지를 다섯 번이고 여섯 번이고 계속해서 보았다. 나긋나긋한 정의도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니 들려오는 것처럼 여겨지도록 계속해서 보았다. 그리고 종애는 너무나도 감동해서 소리 없이 울었다. 그리고 종애는 마냥 뽐내고 싶었다.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받아온 설움에 대해서 큰 소리로 뽐내보고 싶었다. 그래서 종애는 큰 소리로 정의도의 편지를 읽었다.
“아버지, 어머니, 전 그분을 찾아갈래요, 갈래요.”˙
편지를 아쉽게 내려놓으면서 종애는 말했다.
“무어가 어째, 이것아. 아 편지를 봐서 몰라. 그놈은 너를 차버렸어, 원 철딱서니가 없어두 유분수지.”
“흥, 이러지 마세요. 그분을 저는 사랑해요.”
“아이구 사랑이라구?”
구여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구여사는 입을 비죽거렸다.
“영감은 좋으시겠수, 저렇게 잘난 따님을 두셨으니.”
“어머니는 그거 제 편지나 내놓으세요. 흥 제 편지나 내놓으세요.”
종애는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다시 방 안의 공기는 험악해졌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종애가 그전과는 달리 공격적으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서 나합돈 영감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 이보렴, 종애야.”
변노인이 그때 의젓하게 말을 꺼냈다.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 .”
“그렇게 어른 말씀에 대꾸하는 게 아니래두. 내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변노인은 적잖이 체통을 세우면서 말했다. 그러자 분위기는 단박에 조용해졌고, 변노인은 마치 종애에게 담배를 권하려는 것처럼 고의춤에서 파고다를 꺼 냈다.
변노인은 나합돈 영감에게 담배를 권하고는 암말도 없이 삐끔뻐끔 담배를 피웠다.
구여사는 이윽고 풀이 죽은 태도로 얌전히 앉아 있었고, 종애는 다시 정의도로부터 온 편지를 읽었다. 그러자니 어느덧 떠들썩하니 흥분되었던 일이 어째 우습게 여겨지고, 종애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파리란 놈들이 잘난 체하면서 낮은 천장을 뱅글뱅글 맴돌고 있었다. 열심히 쫓아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죽자고 달라빼는* 놈들도 있었다. 종에는 그러고 있는 파리에게 눈 주면서 시름에 잠겨갔다. 막상 정의도의 거처를 찾아낸다는 것도 문제였고, 설사 정의도를 찾아냈다고 했자 그가 꼭 반갑게 대해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렇다고 허구한 세월을 집구석에 박혀 기다리고 있기도 싫었다. 그리고 그녀는 맥을 놓고 앉아 있는 부모를 바라보았다. 딱히 효심(孝心)이 발동해서는 아니었지만 부모님을 돌봐드려야 한다는 생각도 났다. 종애는 저도 모르게 푹 한숨을 쉬었다.
“종애야.”
변노인은 종애가 한숨을 쉬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처럼 큰 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
“너는 참 착한 아이야. 사실 말이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네 죄야 아니구말구.”
변노인은 나합돈 영감을 바라봤다.
“그런 말씀은 마세요. 누군 못살고 싶어서 못사나요.”
“그래그래. 네 말이 참 어여쁜 말이구나, 그래서 하는 얘긴데……”
“무슨 얘기라구요?”
종애는 의심이 버쩍 들어서 고개를 쳐들었다.
“아냐 아냐, 너힌테 해로운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니 그렇게 말똥말똥한 눈으로 쳐다보지 말렴, 이 아이야.”
변노인은 호걸풍으로 웃었고, 이에 따라 나합돈 영감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원 기집애두, 저렇게 도라방장을 짓구 앉아 있을 건 무어람.”
구여사가 가볍게 화를 냈다. 종애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풀었다. 그러나 마음의 무장을 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너두 내 아들녀석이 구라파에 광부로 가 있다는 건 알지?”
변노인은 적잖이 뽐을 내는 어조로 자기 아들 얘기를 꺼냈다. 미처 종애가 ‘네 알아요’ 하고 얘기하기도 전에 변노인은 아들 자랑을 하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몹시 고생을 시켜가며 키워왔는데, 이제 커서 저의 아버지를 용심(用心)하는 성의가 보통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그 아들로부터 어제 생활비와 함께 또 편지가 왔다는 것이었다. 변노인의 얘기는 바로 그 편지의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변노인은 ‘부주전상서(父主前上書)’로써 시작되는 그 편지를 한시 읽듯이 읽었다.
그 편지의 내용인즉슨 대략 이러했다. 광부 생활은 여전하다는 것. 그리고 저금도 조금 했다는 것. 그런데 조금 더 돈을 받을 수 있는 묘안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결혼한 광부에게는 가족수당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쪽 돈으로 환산하면 팔천 원가량을 더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가족수당을 받아내야 하겠다는 얘기였다.
“알겠느냐 이 아이야. 물론 내 아들놈은 총각이야. 아, 그렇다구 해서 너더러 내 아들놈과 결혼하라는 얘기야 아니구말구. 결혼이야 네가 어련히 알아서 그 정도령 인가허고 잘하겠지러.”
변노인은 나종애를 빤히 쳐다보더니,
“문제는 간단한 거여. 구청에 가서 내 자식놈허구 혼인한 양 그까짓 종이에다가 몇 자 끄적끄적 해서 내면 그것으로 그만이렷다.”
“뭐라구요?”
“원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다니? 결혼한 광부에게는 가족수당이라는 것이 붙어서 이쪽 돈으로 계산하여 팔천 원가량 더 준다는 거야. 허니까 네가 문서상으로만 내 자식놈허고 성사를 하면…….”
“그러면 저는 어찌되나요?”
나종애는 갑자기 다그쳐 물었다.
“어떻게 되다니? 아무치도 않지. 그리구 넌 매달 사천 원씩을 받게 된단 말여, 사천 원씩.”
“그래 사천 원씩 받게 된대.”
구여사가 감격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럼 전 어찌되나요?”
나종애는 다그쳐 물었다. 사실 나종애는 이것이 무슨 꿍꿍이 얘긴지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니 납득이야 갔지만 이러한 대가가, 자기에게 가져올 피해가 무엇인지를 얼른 판가름해낼 수가 없었다.
“아무치도 않다니깐 그래. 서류상으로만 혼인했다고 그래서 너의 몸이 망가지는 것도 아닐 게고.”
“그건 무슨 소리죠 할아버지?”
“원 이런 맹랑한 애 봤나? 무슨 소리라니.”
변노인이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그때 나종애는 맑은 하늘을 뒤덮어오고 있는 시꺼먼 구름장 같은 것이 바로 자기에게로 덮쳐지는 듯한 느낌에서 진저리를 쳤다.
“전 싫어요, 싫어요.”
나종애는 불현듯 정의도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의도와 결혼할 일을 그녀는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 왜 싫다는 게지?”
“내버려두세요. 제까짓 게 싫다구 해봤자 별수 있수. 춘향이 같다구 해주니까 진짜루 춘향이라두 된 것같이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흥 병신 같은 게 꼴값하지.”
한심하다는 듯이 구여사가 입을 삐죽했다.
나종애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속으로 항변을 계속했다. 결혼신고를 계출해버리면 그것으로 변노인의 아들과 결혼해버리고 만 것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리지 않는가?라는 말은 그러니까, 진실로 사랑하는 정의도와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말이고 그러니까 그것도 도대체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나종애는 간통이라는 말을 알고 있었고 간통이라는 말이 대한민국 법률에서 어떤 때 쓰여지는가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 부당한 요구를 물리칠 수 있을 방법을 생각해봤다. 방법은 없었다. 그녀는 절망을 느꼈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했지만.
“참 내 아들녀석 사진이나 보여주랴?”
변노인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드님 성함은 어찌되는지요?”
나합돈 영감이 물었다.
“아 허기는 그 녀석 이름도 안 댔구먼.”
변노인은 호탕하게 웃어 댔다.
나종애가 바깥으로 뛰쳐나간 것은 그 무렵이었다. 변노인 아들의 사진을 보기 싫다거나 변노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기 싫어서라기보다도, 그녀에게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자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서 돈을 만들어 그 돈으로 부모를 구워삶자고 계획 했던 것이다.
바깥으로 나와보니 대여섯 명의 아주먼네들이 우물가에 서서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미순이 어머니인 193호 과부댁도 보였고, 폐병쟁이 최경대씨의 부인도 보였고, 영곤이 엄마도 있었다. 수다를 떨어대고 있는 품이, 아마 동회로 밀가루 배급이라도 타러 가자고 의논하는 모양 같았다. 어제 중앙청에 있는 높은 분이 온다고 하여서 동네로 들어오는 도로를 닦았던 것이다. 밀가루 배급은 도로공사에 나온 사람들에 한하여 준다고 했는데 그것으로 빨리 국수나 누르자고 의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식충이들처럼 먹을 것밖에는 생각 않는다고 그녀는 내심 중얼거리면서 영곤이 엄마 앞으로 갔다.
“머리카락을 자르기로 결심을 한 모양이구나.”
영곤이 엄마는 반가워했다.
“그래요 아줌마, 영곤이는 잘 있어요?”
나종애는 선선히 대답하면서 영곤이 엄마를 따라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말두 마라 얘, 영곤이 때문에 속 썩는 생각을 하면…… 그건 그렇고 어떡해서 머리 자를 생각을 했니?”
“아이 아줌마두, 머릴 자르면 사람이 죽어요? 사실은 돈이 좀 필요하구 그리구 머리 같은 거 아무려면 어때요.”
나종애는 한숨을 푹 쉬면서 유럽의 광부 사내와 정의도를 동시에 생각해 봤다.
“그거 잘 생각했지. 말하자면 넌 지금부터 어른이 되는 거야. 옛날에는 쪽을 찌어주는 것으로 어른이 되었지만, 요새는 머리카락을 짧게 하는 것으로 어른이 되는 거란다.”
“하긴 그렇네요, 아줌마.”
나종애는 소탈하게 웃으면서, 머리카락 자르기를 거부해왔던 여태까지의 자기가 아주 병신스러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영곤이 엄마는 가위와 그릇을 가지고 왔다. 가위를 보는 순간 나종애는 속으로 몰래 진저리를 쳤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은 생각이 순간적으로 달아나버렸지만, 그걸 그렇게 말해버리면 비웃음을 살 것이 창피스러워서, 한숨을 쉬었다. 영곤이 엄마는 가위를 놓고 담배를 물었다. 나종애는 가위가 무슨 흉기인 듯이 생각했는데, 조금 있으면 저 흉기가 아가리를 짝 벌리고 자기의 몸뚱이를 X자 모양으로 싹둑 잘라버릴 것만 같아 다시 몰래 진저리를 쳤다.
그러자 가위가 다가왔고 그녀는 수술대 위에 올라가 있는 듯한 느낌으로 눈을 감아버렸다.
그녀가 마음속으로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가위는 그녀의 머리를 푹 찌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에서 피가 솟아 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조금 뒤에 그녀는 굉장히 중요한 것을 뺏겨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무엇을 뺏겨버렸는지는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비록 그 누군가가 자기의 옷을 하나하나 벗겨대고 있고, 그래서 몹시도 허전한 쓸쓸한 느낌이기는 했지만. 그런데 자기의 머리카락이었음이 분명한, 새까맣게 반들거리고 있는 흑진주가 불쑥 그녀의 코앞으로 내밀리어왔고, 영곤이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돈이 왔고, 나종애는 너무 부끄러워서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녀는 변소로 갔다. 이윽고 정신을 차려서 그녀는 너덜거리는 썩은 나무 판때기로부터 전혀 그녀가 예상할 수 없었던 이런 낙서를 보았다.
“진영이 자지는 말방울 자지다.”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그 낙서의 문구가 하도 순진하게 보이고, 그리고 아주 마음에 들어서 한참 후에야 수줍음을 느꼈다.
썩은 나무 판때기 사이로 바깥을 내다보면서, 그녀는 그런 채로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자기의 머리카락이 달아나버렸음을 그녀는 새삼 느꼈고, 그런 꼴을 해가지고 바깥으로 나갈 용기가 생기질 않았던 것이다. 바깥은 저쪽 유럽에 있을 어느 이름도 모르는 사내 편에 붙어 있는 듯싶었다. 마침 버스가 들어온 모양인지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중에서 누군가가 말하고 있었다.
“이 동네보다는 내촌동이 나을 거 겉잖어?”
“그래요, 내촌동이 훨씬 나을 거 겉애요.”
동행인 듯싶은 여자가 말을 받았다. 아마 그들은 집 구경을 다니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졌다. 정의도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문학』 5호(1966. 9); 『낮선 거리』 (나납 1989)
박 태 순
박태순(朴泰洵)은 1942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1948년 월남한 뒤 서울에서 성장했다. 서울대 영문과 재학중 4·19혁명에 참가했다. 1964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공알앙당」 이 입선되고, 196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약혼설」 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발기에 참여하는 등 문학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민중 현실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정든 땅 언덕 위」 「삼두마차」 「무너진 극장」 「정선 아리랑」 「밤길의 사람들」 『신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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