通靑 인문학 아카데미 1 Tongchung Humanities Academy | 544회 | 주 제 | 강 사 |
장자 해설 (5) | 이 태 호 (통청원장/철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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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말하는 큼의 등급 분석
장자 내편(莊子 內篇), 제1장 소요유(逍遙遊)
[5절] 내용 생략함
5절은 1절과 3절에서 한 이야기와 중복되어 있음. 곤물고기와 붕새의 큼(1절), 붕새를 본 작은 새의 비웃음, 큰 것과 작은 것의 대비(3절)
[6절]
그러므로 지혜는 한 가지의 벼슬을 감담할 만하고, 행실은 한 고을에서 뛰어나고, 덕은 한 임금을 모시기에 합당하고, 능력은 한 나라의 신임을 받을 만한 사람이 자신을 보는 것도 역시 이 안(鴳)새와 같다. 그런데 송영자(宋榮子)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픽 웃었다. 그는 온 세상이 칭찬을 한다 해도 더 신나지 않았고, 온 세상이 비난을 한다 해도 더 기죽는 일이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과 밖의 일의 분수를 일정하게 알고 영예와 치욕의 한계를 분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완전하지 못한 점이 있는 것이다.
열자(列子)는 바람을 타고 다니는데 둥둥실 날렵하기만 하였다. 그는 한 번 나서면 15일 만에야 돌아왔다. 그는 바람이 부는 것이 순조로운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마음 졸이는 일이 없었다. 그는 비록 걸어다니는 일은 면했다 하더라도 아직도 의지하는 데가 있는 것이다. 만약 하늘과 땅의 참 모습을 타고 날씨의 변화를 부림으로써 무궁함에 노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또 어디에 의지하는 데가 있는가? 그러므로 지극한 사람은 자기가 없고, 신 같은 사람은 이룬 공이 없고, 성인은 이름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노자 도덕경(老子 道德經) 13장과 24장
총애와 모욕에 놀랄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큰 우환을 귀하게 여기기를 자기 몸과 같이 하는 게 좋다. 무엇을 일러 총애와 모욕에 놀랄 일이라고 하는가? 총애와 모욕은 윗사람의 결정에 나의 운명이 걸려 있는 아랫사람이 될 때 일어나는 일이다. 윗사람의 신임을 얻어 총애를 받아도 놀라고, 잃어서 모욕을 당해도 놀라니, 이것을 총애와 모욕에 놀랄 일이라고 한다.
무엇을 일러 큰 우환을 귀하게 여기기를 자기 몸같이 한다고 하는가? 나에게 큰 우환이 있는 까닭은, 내가 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몸이 없다면 무슨 우환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겨 천하로 생각한다면 그에게 천하를 바로 맡길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사랑해서 천하로 생각한다면 그에게 바로 천하를 부탁할 수 있다.(13장)
발돋움하기 위해 발꿈치를 들고 있는 자는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넓은 폭으로 가랑이를 벌려서 걷는 자는 오래 길을 갈 수 없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스스로를 현명하다고 하는(自見) 자는 밝지 못하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自是) 자는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이 공을 세웠다고 말하는(自伐) 자는 공로가 없고, 스스로를 자랑하는(自矜) 자는 조직의 장으로서 오래가지 못한다.
이것들(自見, 自是, 自伐, 自矜)은 도의 입장에서 보면 먹다 남은 밥이나 쓸데없는 군더더기 행동과 같다. 만물은 늘 그것들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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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에서 한 나라의 왕에게 신임을 받을 만큼의 벼슬을 한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잘 났다고 생각하면서 도를 닦은 사람을 비웃는 것은 작은 새가 붕새를 보고 비웃는 것과 같다고 장자는 말한다. 그런데 도를 어느 정도 닦은 송영자는 그런 벼슬아치들을 보고 픽 웃었다. 왜냐하면 그는 벼슬아치들이 영애(총애)와 치욕(모욕)에 놀라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누리는 부와 권력은 윗사람인 왕에게 달려(의지해) 있어서, 그들은 왕의 비위를 맞추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왕이 없는 현대(민주)사회에서 부와 권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좋게 보여야 한다. 이때의 타인은 사업가인 경우, 관련된 공무원이나 사업가가 만든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소비자이다. 그리고 정치가인 경우, 공천권을 가진 당대표나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이다. 만약에 사업가가 돈으로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광고를 통해 소비자를 유혹하면서까지 부를 쟁취하고, 정치가가 공천권을 가진 자에게 아부하고 유권자를 속이는 선전 선동을 하면서까지 권력을 쟁취할 수도 있다.
문제는 부와 권력을 쟁취하면 쟁취하지 못한 사람보다 잘 난 사람이 되는가 이다. 노자는 이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보고 있고, 이들이 가진 부와 권력은 군더더기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장자는 이들을 큰 붕새의 행위를 비웃는 작은 새와 같다고 하였다. 이러한 작은 새에 불과한 사람을 부러워하는 자들이 있으니 이들이야말로 더욱 작은 세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더욱 작은 세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눈초리야말로 부와 권력을 쟁취하고 있는 사람을 부추기는 기재가 된다.
이와 반대로 노자와 장자처럼 도(道)를 추구하는 송영자(宋榮子, 宋鈃)는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는 자를 보고 코웃음을 친다. 그는 작은 자들이 만들어낸 세상의 평판에 좌우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송영자도 분별심을 버리지는 못했다. 이에 비해 열자(列子, 列禦寇)는 분별심까지 버렸기 때문에 더욱 큰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열자도 자신(자신의 몸, 자신의 공력, 자신의 이름)을 버리지는 못했다. 이에 비해 지인(至人)은 자신의 몸을 버렸고, 신인(神人)은 자신의 공력을 버렸고, 성인(聖人)은 자신의 이름을 버렸다. 따라서 지인, 신인, 성인이 가장 큰 사람이라고 장자는 말한다.
| 지닌 것(소유) | 한계점 | 존재의 크기 |
벼슬추구자 | 영예는 적고, 치욕이 많음 | 명문명리를 갈망함 | 가장 작음 |
벼슬아치 | 영예는 많고, 치욕은 적음 | 명문명리를 성취함 | 작음 |
송영자 (宋榮子) | 영예와 치욕에 매여 있지 않음 | 영욕, 내외를 분별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함 | 중간 |
열자 (列子) | 분별심에 매여 있지 않음 | 의지하는 데 (자신의 존재)가 있음 | 큼 |
지인(至人) 신인(神人) 성인(聖人) | 무기(無己) 무공(無功) 무명(無名) | 의자하는 데가 없음 (무궁의 세계에 노님) | 가장 큼 |
〈이어지는 강의 예고〉
▪ 545회(2023.5.9.) : 장자 해설(6), 이태호(통청원장/『노자가 묻는다』 저자) ▪ 546회(2023.5.16.) : 장자 해설(7), 이태호(통청원장/『노자가 묻는다』 저자) ▪ 547회(2023.5.23.) : 어떻게 말할까?, 이경희(대구가톨릭대학교 연구교수) ▪ 548회(2023.5.30.) : 장자 해설(8), 이태호(통청원장/『노자가 묻는다』 저자) |